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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이 남자가 화적떼를 잡는 방법 (57/148)

57화 이 남자가 화적떼를 잡는 방법

만약, 루키우스 저자가 진짜 드래곤이라면 지금 자기 유희의 경험담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가볍게 내저은 카셀은 여관 주인에게 다짐을 받았다.

“일행의 말마따나 다른 본거지가 또 있거나 하면 추후 책임을 묻겠소.”

“아이고, 절대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장사만 이십 년을 넘게 했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합니까? 여관 건물을 떠메고 도망갈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늘어져라 하품하면서 2층에서 내려오던 라파엘이 끼어들었다.

“음? 저 솥이 백 년을 넘게 끓었다고 하지 않았나? 나머지 팔십 년은 다른 데서 음식을 팔았었나?”

“…….”

“라파엘 씨에게 한 그릇 떠 주세요, 아저씨.”

“아이고, 알겠습니다. 속이 든든해야 화적을 잡을 터이니 안의 건더기까지 듬~뿍 넣어 드리지요.”

“아니, 나는 됐어! 왜 또 나인데!”

아무튼, 이렇게 해서 그들은 갑작스럽게 화적떼 토벌의 일을 맡게 되었다.

최소 백 년이라는 INN 전통이 갑자기 이십 년으로 줄었으나, 여관 주인아저씨는 과연 정보통이었다.

그가 말하는 지점에 해당하는 지도의 지형을 보던 루키우스가 말했다.

“일단 내가 정찰조로 정령을 보내 볼게.”

“저도 운디네 정도는 다룰 줄 아는데요.”

씨익. 미소 짓는 루키우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한테 맡겨.”

“삐이… 삐삐삐삐이….”

그간 비교적 잠잠하던 모모가 또 간 크게 흥겨운 곡조를 뿜어 댔다.

다른 건 몰라도 대귀족이라 남이 하는 음악은 또 절대음감인 라파엘이 끼어들었다.

“음? 이 새, 지금 대충 소리를 낸 게 아니라 멜로디를 따라 노래를 부른 게 아닙니까?”

“그렇게 들리나요? 전 그냥 기분 좋아서 소리 냈다고 생각하는데.”

페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루키우스의 험악한 눈초리가 모모의 등줄기를 쭉 훑었다.

만약 그의 감정이 무엇인지 남에게 들통을 내는 순간, 드라칸 모이테트라 바누스의 생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모는 재빨리 날개를 퍼덕거려 페이의 스커트 무릎 위로 달아났다.

라파엘은 이 와중에도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음이긴 한데 명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됐고! 지금 보낸다. 최대한 빠르게 알아봐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위험한 놈!’

라파엘의 말을 탁 끊은 루키우스는 다른 정령도 아닌 실피드를 냅다 소환했다.

그들 주변의 마나가 파도처럼 크게 일렁였고, 최상급 정령은 지정해 준 목표 지점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마나의 파동을 감지한 카셀이 신음했다.

“뭘 한 건가.”

“흥.”

페이는 바람의 정령과는 친화력이 없으나, 실피드가 떠나가는 순간 흰색의 보드라운 머릿결이 출렁이는 장면은 보았다.

뭔지 몰라도 예쁘네, 루키우스는 늘 이런 걸 보는 걸까?

그가 조금 부러워진 페이는 일부러 운디네를 불러내 제 곁에 두었다.

“…….”

유치한 건 아는데 이럴 때 정령의 존재란 조금 위안이 된다.

잠시 후.

“왔다.”

“네? 벌써요?”

곡물을 넣어 끓인 따뜻한 차를 들고 있던 페이의 눈이 커졌다.

“어.”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반응이 생각보다 잠잠한 걸 봐서는 열 명 미만 맞나 보네요.”

“어떻게 알았어?”

“열한 명인 순간 루키우스가 주인아저씨한테 화냈을 거잖아요.”

꽤 일정한 행동 양식을 간파당한 루키우스가 당황했다.

“내가 언제 늘 화만 냈다고 그래.”

“음, 요즘은 좀 줄긴 했죠.”

그야 너 때문인 거고.

파랗게 멍든 짝사랑을 차마 말할 수 없는 루키우스는 실피드가 물어 온 정보를 그들에게 공유했다.

여관 주인이 말한 대로, 화적 무리는 아홉 명이었고 정확히 그 근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활잡이가 두 명 있기는 하지만 관상이 명사수는 아니란다.

여기까지 들은 페이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활을 잘 쏘는 유무가 얼굴로 가려지나요?”

“그냥 얼굴이 무술을 못 하게 생겼어. 어깨도 손도 도저히 궁술을 잘할 것 같지가 않다고. 위치는 파악했으니까 나 혼자 금방 다녀온다.”

“앗, 안 돼요. 같이 가요.”

덥석. 마음이 급한 페이가 막 일어선 루키우스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은빛 머리칼 아래로 가려진 귀가 엉겁결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을 눈치챈 이는 한 시간 전부터 루키우스를 뚫어지게 주시한 카셀뿐이었다.

“놔, 놔!”

그의 드래곤 하트가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증이다.

이 와중에 페이는 눈치가 없는지, 순순히 손을 떼기는커녕 타박을 놓았다.

“혼자서 가긴 어딜 가요?”

카셀은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일어섰다.

“그럼 나와 루키우스 군 둘이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페이 양. 당신은 아스와 라파엘과 함께… 으음.”

“누구 마음대로 루키우스 군이야?”

루키우스는 페이의 손길 때문에 당황한 마음을 감추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카셀은 심경이 복잡했다.

페이와 아스테인 황자에게 위험이 끼치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지. 한데 그의 눈이 없는 곳에서 라파엘과 같이 두자니 마음이 꺼려졌다.

하지만 그도 어엿한 한 명의 기사.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하여 그가 다른 짓 안 하고 두 사람을 잘 지킨다면야 문제가 없긴 한데. 라파엘 경…. 마법사 루키우스…. 둘 중 누구와 페이 양이 있는 편이 나은지 골라 둬야 하나.’

온 세상에 그 홀로 어엿한 남자고 나머지는 다 늑대로 보일 지경이었다.

페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루키우스에게 따져 댔다.

“왜 저는 두고 가려고요?”

“…넌 아무튼 여기에 있어.”

“안 돼요, 전 무조건 가겠어요. 라파엘이 아스 곁에 있어 주세요.”

“피를 볼 수도 있어서 그래.”

“두렵지 않아요. 여기에 온 일 자체가 제 결정이었는데 어떻게 뒤로 빠져요?”

페이는 단호하게 말하며 함께 일어섰다.

아무래도 말릴 수 없나 싶어 루키우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 일단은 현상금이 내려진 녀석들이니, 생포 위주로 가겠다면 못 할 것도 없긴 한데. 굳이, 꼭 가야겠어?”

“네.”

“그럼 놈들을 모모로 죄다 사뿐하게 밟아서 영주관에 넘기자.”

루키우스의 생각으로 페이의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이게 최고로 좋은 방법이다.

“…방금 생포 위주로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에잇, 그러면 내 곁에 딱 붙어 있어. 네 몸을 내 정령으로 칭칭 둘러 줄 테니까 화살이 날아오거나 함정이 있어도 다치지 않을 거야.”

페이는 신뢰하는 눈으로 루키우스를 쳐다보았다.

“그럼, 카셀도 보호해 줄 거죠?”

“사내놈을 내가 왜?”

루키우스는 툴툴거리긴 했으나, 페이가 같이 가겠다는 고집을 더 꺾진 않았다.

가는 길은 그가 도와주어 새로운 이동 경험을 했다. 바람의 정령이 그들의 몸을 감싸 부드럽게 날게 해 주었는데, 모모를 타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신기해요.”

온 세상에 존재하는 탈것은 다 타도, 유니콘을 타기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목에 걸어 둔 피리를 한번 만졌다.

지금도 루키우스가 건네준 유니콘을 보았을 당시가 꿈결 같다.

“…거의 다 왔어. 이 숲 안에 유독 나무와 풀이 무성한 지역이 있는데 위장을 위해 일부러 심은 것 같더라. 활잡이 둘 중 하나는 정찰조로 바깥에 나와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건물 주변에 있었어. 지금 시간이 애매해서 다들 본거지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지.”

그가 하는 스산한 말에 페이는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경계가 삼엄하진 않나 봐요?”

루키우스는 음성을 살짝 낮췄다.

“건물 안에서 문이나 창문을 향해 활을 쏴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야. 나하고 저놈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내 뒤에, 알았지?”

“옆에 있으라면서요.”

“방금 방침 바뀌었다.”

“쳇….”

“루키우스 군 말씀대로 하십시오.”

“군 아니라니까!”

페이는 투덜대면서도, 자기가 선두에 서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두 남자 모두 페이를 아껴 준다.

이유….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게 좋아. 뭣보다 이런 자리에서 나대다가 사고를 치면 큰일이니까.

그녀는 점차 현명한 마법사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루키우스의 말대로 가까이 갈수록 숲 안이 점차 무성해졌다.

소음 약화 마법을 써 두긴 했지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나뭇잎이 바람결에 스치는 바스락대는 소리가 멀찍이서 들릴 때마다 긴장되었다.

따끔-

‘뭐…지?’

접근하던 도중 왠지 뒤통수가 따끔해진 페이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왜. 뒤편에 아무것도 없어.”

“아… 아니에요.”

루키우스의 말에 답한 페이는 머리 뒤편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방해되지 않게 얌전히 묶은 머리칼에선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는 굉장히 아팠어. 머리가 터져서 피가 흐른 것처럼.

“아가씨! 마리에타 아가씨… 우욱, 도망가세요! 잡히면 안 돼…!”

‘설마?’

가슴이 꽉 죄어 오는 아픔과 함께, 거의 발악하듯 외치는 소리가 기억났다. 그때와 똑같이.

순식간에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페이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이전과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어서 떠올린 건가?

‘나… 내가 그 일을 당했던 장소에 직접 가 본 적은 없어. 여기가 그곳과 환경이 흡사한가 봐. 아니면, 나와 유모와 하녀들에게 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화적이라서… 그런 걸까.’

“저기다.”

음성을 한껏 낮춘 루키우스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거기엔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도록 위장한 셔츠와 바지를 입은 두 놈이 있었다.

한 명은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인 활잡이는 서 있었다. 다만 그도 화살통만 메고 활은 손에 쥐지 않았다.

“경계가 형편없군. 공연히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에 놈들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내가 먼저 한다.”

카셀은 반대하지 않았다.

이윽고 루키우스의 손에서 작은 구슬이 생성되었다가 곧 흩어졌다. 페이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저 앞의 둘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지는 모습을 관찰했다.

“……!”

“…….”

읍, 소리도 내지 못한 그들의 몸이 먼저 굳었고, 그 후에 몸 곳곳에 하얀 끈이 생겨나 칭칭 동여매졌다. 여기선 보이지 않으나 입안의 혀도 말하지 못하도록 똑같이 묶였을 것이다.

‘루키우스는 역시 대단해.’

7서클의 홀드 마법.

원래는 발목 따위를 묶어 움직임을 봉하는 데 쓰이나, 루키우스는 마법을 세밀하게 조정하여 도망가란 경고의 말을 외치지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영창조차 없이 강력한 마법을 쉬이 발동하다니.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페이는 머릿속으로 전투 시 행할 마법 몇 가지를 생각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슬립.”

반항도 못 해 보고 묶인 그들의 눈동자에 힘이 풀리더니, 곧 흰자위가 보였다. 서고 앉았던 자리에 풀썩 쓰러진 그들 곁으로 다가간 카셀은 활을 잡아 조용히 부러뜨렸다.

뽀각.

“이놈들은 당분간 안 일어날 거니까 놔두고 가자. 정령으로 근처에 벽을 다 쳐 뒀으니 놈들의 퇴로는 없어. 후딱 가서 처리하자고.”

“좋습니다.”

루키우스는 대놓고 손을 시커먼 마력으로 물들였고, 카셀은 칼을 빼 들었다. 페이는 운디네를 소환하여 마력을 전이한 채로 그들 뒤편에 따라붙었다.

키 큰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인 통나무 근거지에 근접한 루키우스가 대놓고 소리쳤다.

“야, 나와!”

“루키우스…!”

이래도 되나 싶어서 페이는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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