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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배신을 알지 못하여-125화 (125/138)

125화

“네?”

“치료만 하면 살 수 있는 거잖아요, 릴라. 내 말이 맞죠?”

테사는 새끼 올빼미를 치료해 주고 싶었다. 초면이지만 저 귀엽고 작은 존재를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테사의 간절한시선을 느꼈는지 릴라가 머지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마님께서 원하신다면요. 그럼 일단 응급처치부터 해야겠어요. 수의사를 부르는 건 그다음이에요."

“얘를 응급처치해 달라고요…………?”

케니스는 순간 제 두 눈을 의심했다. 바구니 속에 들어있는 게아무리 봐도 사람은 아니었다. 저와 눈이 마주친 샛노란 눈동자도 머쓱한지 은근슬쩍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대고 있었다. 당황스럽니? 나도야.

유테르트 후작가의 멸문 후, 케니스는 공작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작부인을 담당할 여자 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사실 처음 일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케니스는 평화로운 백작가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칼리아스 공작이 된 헤르트가 제안한 봉급은………… 거절하기엔 너무나 큰 돈이었다.

이미 한 번 금전의 맛을 보았던 케니스는 차마 고액의 봉급의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그렇게 공작부인 주치의가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주치의로서 사람이 아닌 다른 것도 진찰해야 하는지는몰랐지만.

“미안해요, 근데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아니에요, 부인. 일단은 데리고 오셨으니까 한번 살펴는볼게요. 그보다 올빼미라고 하셨나요? 귀엽게 생겼네요.”

케니스는 성심껏 새끼 올빼미를 진찰했다. 매끈한 팔다리가 아닌 보송보송한 털뭉치를 살펴보는 건 조금 어색했지만 생각 외로진찰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확실히 말씀하신 대로 날개를 다쳤네요. 하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 잘 보살펴만 준다면 금방 낫겠어요.”

케니스는 새끼 올빼미의 다친 날개를 붕대로 감아 고정시키며 빠른 시일 내로 수의사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고도 조언했다. 외상으로는 날개를 다친 것 외엔 별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혹 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전문가의 진찰을 받는 게 확실할 터였다.

“근데 올빼미 환자는 처음인데 되게 얌전하시네요.”

케니스의 말대로 배고파서 힘이 없는 건지, 너무 울어서 기진한 건지 처음에 열심히 울었던 새끼 올빼미는 이젠 울지도 않고 조용히 눈만 깜박거렸다. 동그란 눈이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더욱 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릴라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했다.

“마님, 뭐라도 줘볼까요? 허락하시면 주방에 가서 고기 좀 받아올게요."

테사가 허락하자 릴라가 고기를 잘게 잘라서 가져왔다. 테사는 케니스가 건네준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고기조각을 집어 새끼 올빼미에게 내밀었다. 다행히 맛있는 냄새가 나는지 새끼 올빼미는 그것을 냉큼 받아먹었다. 배가 상당히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고기 한 접시를 허겁지겁 비운 새끼 올빼미는 배가 부른지 바구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그 속에서 느른하게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세 사람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보통은 경계심이 많아야 정상인데. 고기 한번 줬다고 저렇게

풀어지는 걸 보면 마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나 봐요.”릴라의 말을 케니스가 받아쳤다.

“짐승도 다 아는 거죠. 어디에 발을 뻗어야 좋은 대우를 받는지

말이에요. 운이 좋은 녀석이네요. 부인께서 발견했으니.”

그 말에 테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운이 정말로 좋았다면 둥지에서 떨어질 일도, 날개가 다쳤을 일도 없었을 테지만 굳이 그걸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케니스, 고마워요. 무리한 부탁인데도 들어줘서요.”

“괜찮아요, 부인. 저도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하루빨리 올빼미 환자분이 쾌차하시는 걸 보고 싶네요. 그것보다……… 슬슬 부인의 상담 치료 시간 아닌가요?"

“아, 벌써 시간이…………”

거처를 신전에서 공작저로 옮긴 이후에도 테사의 상담 치료는 계속 진행되는 중이었다. 다만 추기경이 공작저를 마음대로 오고갈 인물은 아니다 보니 상담사만큼은 추기경이 아닌 다른 신관으로 바뀐 상태였다.

안 그래도 때마침 하녀 하나가 테사를 찾아와 신전에서 사람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테사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금방 내려가겠다고 전해주세요. 릴라, 미안하지만 나 대신 새”

끼 올빼미를 방에 놓고 와줄래요?

“마님 방에요?”

“네, 이왕이면………… 제 방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무 데나 둘 수 없으니 그냥 제 방에 두는 편이 안심도 되고 새끼 올빼미를 보살피는 것도 수월할 것 같았다. 어차피 새끼 올빼미를 발견하고 치료하자고 했던 것도 자신이었으니까.

“그럼 다녀올게. 자고 있어.”

테사는 바구니 속 늘어진 새끼 올빼미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신관을 만나러 가기 위해 움직였다.

***

“오늘 늦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니지, 더 재밌었겠지. 그 노친네들 없는 머리 서로 쥐어뜯는거 볼 수 있었을 테니까. 아쉽군, 더 늦게 왔으면 머리가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

귀족원 회의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 헤르트는 거추장스러운 정복을 랑그에게 던지며 차갑게 대꾸했다.

사실 헤르트는 그 미친 노인네들이 땅따먹기하는 것에 왜 자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칼리아스 공작인 이상, 좋든 싫든 귀족원 회의가 한번 소집되면 무조건 참석해야만 했다. 그건 보르웬 후작이 헤르트를 칼리아스 공작으로 올려주면서 당부했던 세 가지 본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원 회의라는 것이 이토록 쓸데없는 헤르트가 생각하기에- 일로도 열리는 줄은 몰랐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테지만, 저택에 임신한 테사를 두고 추잡한 노친네들 싸움이나 막으러 왕성에 오는 것은 확실히 짜증이 솟구치는 일이었다.

“오늘내일할 것처럼 골골거리는 새끼들이 명은 길어가지고."

“…………… 아직 왕성입니다, 경."

“욕심은 더럽게 많은 새끼들."

“.……………경.”

“한꺼번에 뒤져버렸으면 좋겠어. 그럼 장례 때문이라도 당분간 회의가 열릴 일은 없을 테니까.”

“...…...”

보르웬 후작이 이전의 칼리아스 공작의 세력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숨겨놨던 재산들이 드러나자 남은 귀족들은 그것을 어떻게 분배하고 가져갈지 다들 혈안이 된 상태였다.

특히 이번에 보르웬 후작의 편에 섰던 원로 귀족들이 모두 하나같이 자기가 좀 더 가져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늘 열린 회의도 사실상 그들을 중재하기 위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몇 달을 끌고 온 안건답게, 오늘도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헤르트는 목을 채우고 있는 단추를 거칠게 풀며 빠르게 바깥으로 향했다. 그 뒤를 랑그가 급히 따라붙었다.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당연한 소리 좀 묻지 마.”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일이………….”

“그 사탕수수밭 문제라면 티이젠 자작 쪽으로 조만간 주류법 개정이 있을 거라고 말 흘려놔. 그럼 알아서 합의하려고 들 테니까. 어차피 짜고 치는 판에 굳이 시간 아깝게 그 장단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지."

귀족원의 최고결정자 중 한 명인 헤르트는 귀족원 회의의 중재뿐만 아니라 왕이 처리하기 애매한 귀족들 간의 분쟁들도 맡고 있었다.

본래는 이를 처리하는 직책을 따로 뽑는 편이었지만 이전 칼리아스 공작의 세력을 정리하는 과정에 사람이 비게 되자 보르웬 후작이 헤르트에게 부러 넘겨준 것이었다. 이는 대외적으로 헤르트의 정의로운 영웅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여자.'

귀찮고 성가신 일들은 죄다 제게 몰아주다니.

“그럼 지디아 백작의………….”

“사기죄에 해당되니 소송으로 넘기라 해. 이의 있음 알아서 합의 보라고 하고. 씨발, 애새끼들도 아니고 지들 스스로는 해결도 못 하나? 나머지는 제프리, 네가 알아서 해결해. 따지고 보면 네가 그쪽 전문이잖아.”

“아니, 그래도………….”

“간다."

“경!”

그 말을 끝으로 급히 말에 올라탄 헤르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발했다. 현재 그에게는 잔챙이 싸움에 할애할 시간 따윈 없었다. 안 그래도 노친네들 싸움에 많은 시간을 버리고 난 후였다. 서둘러 테사에게 돌아가 봐야 했다. 벌써 해가 내려앉고 있었다.

숨 가쁘게 달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공작저에 도착한 헤르트는 저를 마중 나온 집사에게 테사가 아직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는 그사이에 옷을 갈아입을 요량으로 방으로 올라갔다가 방 안의 탁자 위에 뜬금없이 올려진 작은 바구니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헤르트는 못 보던 바구니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싶어 방을 대강 둘러보았지만 딱히 바구니 외에는 평소와 별다를 게 없는 방이었다.

테사가 가져다 둔 건가? 바구니를 열어보려던 그 순간이었다. 바구니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헤르트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달린 검에 손을 대었다.

'움직였다………??

바구니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재차 손을 뻗던 차였다. 이윽고 바구니의 입구를 덮은 천이 들썩거리더니, 그 속에서 털뭉치 하나가 쏙하고 튀어나오다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헤르트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뭐야.”

꾸? 눈이 마주친 샛노란 눈동자가 헤르트를 빤히 쳐다본다. 예상치 못한 존재에 헤르트 또한 미간을 좁혔다. 숲속도 아니고 방에서 새를 줍게 되다니. 그것도 맹금류였다. 아직 덜 자란 놈 같았지만 뾰족한 부리부터 날카로운 발톱이 맹금류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대체 누가 이딴 걸…"

한편 올빼미는 헤르트의 신경질적인 중얼거림에 바짝 긴장했다.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개와 위압감이 사나운 맹수를 만나는듯했다. 반사적으로 발톱을 세우며 헤르트를 공격하려던 차였다.문을 열고 들어온 테사가 헤르트의 손에 들린 새끼 올빼미를

보고 기겁하며 달려왔다.

“그렇게 잡으면 안 돼, 헬!”

“테사?"

“아직 다쳐서 치료 중이란 말이야!”

테사는 급히 헤르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새끼 올빼미를 낚아채더니 다시 바구니 속으로 넣어주었다. 그제야 새끼 올빼미가 발톱을 숨기고 테사를 향해 삑! 뺙! 하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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