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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배신을 알지 못하여-87화 (87/138)

087화

테사는 헤르트의 명령에 가까운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 정사가 계속되리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흣……. 싸, 주읏……. 아, 흐…….”

“발음 똑바로 해야지.”

“학, 싸주, 싸주세요……. 안에 가득……. 제발…….”

새는 발음을 최대한 주워 담아 애원했다. 그러자 사내의 굵은 손가락이 밑으로 내려가 톡 튀어나온 작은 음핵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응! 예상치 못한 쾌감에 테사가 높은 신음을 토해 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이, 이건 반칙…… 반칙인데……. 그녀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었다.

“큿, 그렇게 힘주면…….”

일순 헤르트의 허리짓이 이전보다 더욱 난폭하게 변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가락은 여체의 둥근 알을 쉴 새 없이 문대고 긁어대는 바람에 테사는 이제 입을 벌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싫어, 이상해……. 그만…….

별안간 선단이 가장 깊은 곳까지 크게 짓쳐 올라간다. 퍽! 자궁이 통째로 징 하고 울리는 느낌과 함께 남자의 물건이 경련하더니 꿀렁이며 정액을 한가득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

이어 질이 크게 수축하며 사내의 사정을 도왔다. 상당한 양의 정액이 테사의 태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갔다. 일부는 기둥을 타고 밑으로 내려와 그들의 접합부를 음란하게 물들였다. 희고 반투명한 백탁액이 반들거린다.

테사는 어느새 헤르트에게 몸을 맡긴 채 몸을 축 늘어트렸다. 시야가 가물가물한 것이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만 같았다.

“하아, 테사…….”

그 때 헤르트가 기나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테사의 배를 어루만졌다. 아까보다 더 불러 온 듯한 이 느낌은 과연 기분 탓일까. 이 작은 뱃속에 제 것이 모두 들어간 것도 모자라서, 이 안이 씨물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자 다시금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 배가 정말로 부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테사가 저를 떠나고 싶어도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 아이가 생기면 테사는 분명 제 출신에 대한 열등감과 죄책감 때문에라도 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못할 터였다.

헤르트도 자신과 테사를 반씩 닮은 아이를 보고 싶기는 했다. 아니, 테사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소망이었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의 테사의 몸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사가 처음부터 그리 진단했으니까. 오랫동안 이어진 학대와 방치로 인해 달거리가 끊긴 지 오래며, 앞으로 회복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거라고.

빌어먹을.

헤르트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으, 아……. 흣, 헤, 헬……?”

테사는 불현듯 파리해진 안색으로 몸을 바르작거렸다.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헤르트의 성기가 제 안에서 다시 부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불안한 기분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녀는 헤르트에게 잡힌 팔들을 빼내려 몸을 움직여보았지만 사내의 손아귀 힘이 워낙 강해 빠지지 않았다.

“헤르―”

“안 되겠어.”

그 순간 헤르트가 사타구니를 더욱 가까이 접붙이며 뇌까렸다. 테사는 다시 파고드는 선단에 몸서리쳤다.

“그, 흑……. 으, 런……. 분명, 한 번만…….”

“그래, 한 번만 더 하자고.”

“아, 모, 못 해……. 흑, 제발…….”

“익숙해져야지. 앞으로는 더 하게 될 텐데.”

“그게, 무……슨…….”

헤르트가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애액과 정액으로 가득한 뱃속이 출렁이며 소름 끼치는 다른 감각을 선사했다. 테사는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듯이 마구 고개를 흔들었지만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매일 이렇게…… 박을 거야.”

네 입으로 날 사랑한다고 할 때까지.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인정할 때까지.

헤르트는 드러난 테사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추삽질에 집중했다. 곧 테사가 자지러지며 엉엉 울었다.

***

“미치셨습니까?”

보르웬 후작의 계획을 대강 듣고 난 랑그의 반응은 꽤나 격했다. 그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제 앞의 여자를 쳐다봤다. 반면에 이 모든 일의 배후인 후작은 그 누구보다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대수롭지 않은 양 꼰다리를 까닥거렸다.

“이제 알았니?”

“미치신 건 진즉에 알았지만……. 아니,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왜 그런 무모한 자충수를 두신 겁니까? 만에 하나 샤인 경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이 계획은 각하의 발목을 붙잡게 될 거라고요! 성사된다 해도, 그 후폭풍은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 그런 거 하나하나 다 염두에 두고 수를 둔 거니까. 그보다 제프리,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구나. 내가 언제 실패한 적이 있든?”

“……하지만.”

“늘 내 선택은 성공 아니면 죽음뿐이었어. 이번에도 나는 내 선택을 믿어. 그렇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니까.”

“그럼…… 저하께서는요! 이 계획을 알고 계세요? 분명 말리셨을 텐데…….”

랑그가 마지막 희망을 건 채 반문했다. 저하, 제발……. 그러나 베아트리체가 그를 향해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말 안 했지. 가끔은 아군까지 속여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

“각하!”

“뭘 그리 쫄아. 애새끼도 아니고. 다 좋게 해결될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이번 일은 너무…….”

“제프리.”

베아트리체가 랑그를 향해 입 좀 다물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에 랑그는 몹시 할 말이 많았지만 후작의 명대로 고분고분 입을 다물고 그녀를 응시했다. 보르웬 후작은 제 말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랑그는 그러한 그녀의 성미를 어릴 적부터 보아왔기에 잘 알았다.

“내 선택에는 후퇴란 없어. 이미 말했잖니. 내게는 오로지 승리만 존재한다고. 이번 일쯤이야 예전과 똑같아. 나는 승리를 거머쥐겠지. 그리고 그들 위에서 군림하게 될 거야.”

아주 오래전 아비에게 버림받았던 아이는 훗날 자라서 제 손으로 오라비들을 죽이고 늙은 아비를 버리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얻기 위해 선대왕을 죽이고 그곳에 허수아비인 어린 왕을 올리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적당한 명분을 위해, 제 동생을 왕비로 만들고자 전쟁까지 벌였고, 이제는 그 왕가마저 갈아치우려고 하고 있었다.

“성공만 하면 역사 정도야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어. 이깟 일 정도는 포석에 불과해. 너도 그걸 잘 알잖아?”

“……대체 언제부터 준비하셨습니까?”

“내 개새끼를 만난 2년 전부터? 파다 보니까 재밌더라고.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열쇠가 쓰레기 속에서 굴러다니고 있다니. 그게 기회가 아님 뭐겠어?”

“하, 그래서 이곳을…….”

“그래, 이곳을 빌려 설계했지.”

멍청한 새끼. 베아트리체는 이 커다란 덫이 제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칼리아스 공작을 향해 웃음 지었다. 그러게 분수에 넘치는 욕심은 왜 부려서. 얌전히 외국에 처박혀 살았으면 적어도 그 목 하나는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샤인 경이 모든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다 떠먹여 주는데도 싫다 하면 병신인거지.”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공작으로도 만들어주겠다는데, 그게 싫다고? 바보 천치가 아니고서야 싫어할 리가 없었다.

“각하,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제프리. 네가 가장 옆에서 봐놓고 그런 소리를 하다니. 머리를 얻어맞아 잘못됐나 보구나. 그 새끼, 제정신 아니란다. 미쳐 날뛰는 개새끼지.”

“…….”

“걔도 곧 원하게 될 거야. 이 바닥은…… 한 번 올라오면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가 않거든.”

정말로 멍청한 게 아니라면 본능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앞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가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도.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한 번 맛보면 돌이킬 수 없다. 그 달콤한 유혹은 사람의 가장 약한 것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왕 온 김에 맞장구 한번 쳐주고 가.”

“……네?”

옆을 지키고 있던 부하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베아트리체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얼굴을 모두 덮는 가면이었다.

***

‘제대로 일이 진행되는 게 맞긴 한 건가?’

페르데일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 주인의 도움과 제안은 그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으나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 가능하기는 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유테르트 영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영지전을 벌이겠다고? 하지만 상대방은 무려 보르웬 후작의 개새끼였다. 지난 전쟁에서 공을 가장 많이 세운 놈! 가신들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벌벌 떨며 줄행랑을 치기 바빴고, 제 아비는 그자의 손에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전투로는 그를 이길 자가 없을 것이다.

‘내가 침몰하는 배에 탄 건 아닌지 몰라.’

성벽에 걸린 아버지의 목이 생각나면서 찝찝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만에 하나 영지전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또 무슨 망신인가! 가문의 재산은커녕 명예마저 실추되어 바닥에 처박힐 것이다.

페르데일은 제 아비처럼 목이 날아가고 싶지 않았다. 재산도 중요하기는 했지만 제 목이 더 소중했다. 일단 살고 봐야 다음 일도 꾸릴 수 있는 게 아니던가.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직도 제 선택이 올바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로 모든 걸 얻거나, 목숨까지 잃는 것이었다. 과연 자신을 도울 군대가 제 영지를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을지, 또 자신은 그 미친개를 몰아내고 영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산을 이루는 듯했다.

게다가 자신을 돕겠다는 자의 신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그는 끝까지 재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군대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이상, 페르데일은 얌전하게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페르데일은 병사 하나라도 소중한 입장이었으니까.

‘그래,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엔 없으니까…….’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자 직원 하나가 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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