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화
‘……죽었다고 하더군요.’
‘…….’
‘뭐, 검투사 노예로 팔려갔으니 당연한 일이죠. 안타깝게 됐습니다.’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테사는 시야마저 흐릿함을 느꼈다. 안개가 서린 것처럼 모든 것이 희뿌옇다. 그녀는 두 눈을 멍하니 깜박이며 제게 계속 말을 걸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애초에 그곳에 끌려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어요.’
눈코입이 뭉개질 대로 뭉개진 남자는 자꾸만 헤르트가 죽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테사는 저도 모르게 비식 웃음을 흘렸다. 헤르트가 죽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문득 테사는 이 모든 것을 예전에 한 번 겪은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아…….’
머지않아 테사는 낮게 탄식했다. 그녀는 제 앞에 펼쳐진 상황이, 예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꿈으로 꾸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 이건 악몽이다. 7년 전 일을 다시 제게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제 앞의 남자가 헤르트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만 잊으시죠.’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는 남작가의 하인을 어느새 테사는 노려보고 있었다. 죽긴, 누가 죽어요. 헤르트는 살아 있어요. 거짓말쟁이. 하지만 입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저 하인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한마디 쏘아붙여야 하는데도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에 그날처럼 점점 머리가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아아……. 안 돼…….’
별안간 입가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것도 그날과 똑같았다. 헤르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 믿기지가 않아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모든 걸 쏟아내듯 울기 시작했더랬지. 울음을 인지하기 무섭게 눈가에서도 눈물이 죽죽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곧 어마어마한 슬픔이 테사의 온몸을 잠식했다. 고개가 기울어지고 몸이 허물어진다. 허파가 끊어질 듯 폐가 조여들고 테사는 바닥에 엎드려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죽지 않았어, 헤르트는 죽지 않았다고! 거짓말. 날 속이려 드는 거짓말이야!’
지금에서야 거짓말임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하인이 소식과 함께 주고 간 금빛의 머리카락 한 줌 때문에 헤르트의 죽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테사는 목을 놓고 꺼이꺼이 울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몸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안 돼……. 제발, 이러지 마…….’
테사는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헤르트는 살아 있는데도 그날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그를 잃은 괴로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자신의 멍청한 선택으로 인하여 그를 사지로 내몰았던 점이 그녀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건 거짓이 아닌 사실이었으니까.
테사는 몸을 웅크렸다.
‘……싫어, 싫다고!’
그만 보여줘. 왜 갑자기 내게 이래. 설마…… 내가 욕심을 부려서? 헤르트와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빌어서?
테사는 엉엉 울며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젖어들었는데도 온몸의 물기가 마를 때까지 계속될 것처럼 자꾸만 눈물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심장 또한 칼로 저미는 것 같아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그만해, 제발!’
제아무리 꿈속의 자신에게 소리쳐 봐도 고통은 계속되었다. 원래 이 꿈이 이렇게 괴로운 거였나? 테사는 얼굴이 벌개진 채로 숨을 헐떡이며 바닥을 긁었다. 헤르트와 함께 침대를 쓰고 난 뒤로 처음 겪는 악몽이었다. 잠시 잊고 살았던 악몽이 이토록 사람을 미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싫어, 그만 일어날래. 제발 깨워줘. 누가 나 좀…… 이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줘. 테사는 허공에 대고 애원했다. 이 꿈속에서 그녀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빌었다. 체념하며 받아들였던 예전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테사.’
그 때 누군가가 테사 앞에 나타났다. 테사는 반사적으로 그 누군가의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들었다. 아악! 테사는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헤르트가 피가 철철 흐르는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몸 곳곳에는 검으로 헤집어 놓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벌벌 떨고 있는 테사에게 헤르트가 사나운 음성으로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헤, 헬…….’
‘네가 날 지옥으로 밀어 넣었어. 이제 만족해?’
테사는 고개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 괴로웠어, 도망치고 싶었어……! 한 번도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어! 나도 네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랐어! 꿈 바깥에서는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것들을 꿈속에서나마 테사는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헤르트는 여전히 테사를 노려보기만 했다.
‘널 사랑했어. 그런데 그 사랑의 대가가 배신이야?’
‘아니야, 헬…….’
‘나만 널 사랑했던 거야.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았고.’
꿈에 나올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헤르트는 테사에게 원망 서린 비난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실제 헤르트의 말이 아님에도 테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들었다. 어쩌면 저게 헤르트의 속마음일지도 몰랐다. 테사는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널 죽여버리고 싶어.’
‘아아…….’
‘같이 죽자. 너도 나와 함께 죽는 거야.’
소년의 손이 테사를 향해 뻗어온다. 그의 커다란 손이 테사의 목을 잡자 컥 하고 순식간에 목이 졸렸다. 정말로 숨을 쉬지 못할 만큼 괴로웠다. 드디어 죽을 수 있는 걸까? 헤르트에게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테사는 생각했다.
죽어가는 고통은 몹시도 괴로웠지만 사실 이대로 죽길 바랐던 적이 많았다. 우습게도 당시에는 그랬다. 죽어서라도 헤르트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테사!”
그녀를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흐릿했던 시야가 깜박거리며 누군가를 비추었다. 누구…….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테사는 아주 느리게 꿈에서 깨어났다. 세상은 여전히 암흑이었지만 못 보던 작은 빛 하나가 있었다.
테사는 겁에 질린 푸른색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정신을 차렸다.
“테사!”
아.
테사는 숨넘어갈 듯 상당히 흥분한 헤르트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저를 악몽에서, 암흑에서 깨워준 사내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파르르 떠는 속눈썹 아래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눈동자는 그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고 저를 잡은 손길에는 억센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그가 두려움으로 뒤덮인 표정을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테사는 믿기지가 않는다는 투로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헤르트……?”
“너…… 괜찮아?”
헤르트의 씨근덕거리는 숨이 바로 앞에서 느껴졌다. 테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안은 그녀가 잠들기 전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대신에 시간은 꽤 흘렀는지 밝았던 방 안이 어둑어둑했다. 아마도 저녁을 같이 먹기 위해 헤르트가 자신을 찾아온 것 같았다.
“괜, 찮아……. 그냥 악몽을…… 꿨어.”
테사는 헤르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해명했다. 그러나 헤르트가 개소리 말라며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고는 씹어뱉듯이 대꾸했다.
“괜찮기는 시발, 누가 악몽을 스스로 자기 목 졸라가며 꿔?”
“…….”
“내가 너…… 그 꼴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하아, 헤르트가 참아왔던 숨을 토해 내며 꽉 잡았던 테사의 몸을 놓았다. 그리고는 심각하게 덜덜 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이후로 마른세수를 몇 번 더 하고서야 헤르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너 문제 있어. 그것도 심각해.”
“……나는…….”
“조용히 해, 지금 미칠 것 같으니까.”
헤르트의 말에 테사가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헤르트는 아까보다는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떠는 손길로 테사의 얼굴을 조심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마치 테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신기루라도 되는 듯한 취급이었다. 젠장, 빌어먹을. 더불어 그의 입에서는 적나라한 욕설이 계속 쏟아졌다.
“이전에도…… 그랬어?”
“……난, 괜……찮아. 한 번도 문제된 적 없고…….”
오늘처럼 스스로 제 목을 조르며 잠에서 깨어난 적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큰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일어나면 목이 조금 아플 뿐이었다. 애당초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테사가 숱하게 겪어왔기에 잘 알았다.
물론 그런 대답에 헤르트의 눈매가 매섭게 치켜뜨였다.
“문제가 없어? 너 미쳤지? 그걸……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네가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
“너, 사람 미치게 만드는데 재주 있다고 해서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지? 정말 날 미친 새끼로 만들 생각이 아니고서야…….”
별안간 헤르트는 테사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가 테사에게까지 전해졌다.
테사는 단단하고 포근한 품에 안겨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모르고 있었는데, 자신의 심장도 헤르트 못지않게 요란하게 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테사는 잦아드는 고동 소리에 왜인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여태 악몽을 꾸고 자신의 목을 조르며 깨어날 때마다 테사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식어 내린 몸을 꾸역꾸역 말아 웅크리며 동이 틀 때까지 홀로 버텨왔다. 그리고는 오늘 하루도 살아남았구나, 하고 안심 아닌 안심을 내뱉는 것이다.
내일이 오기를 바라지 않으면서, 또 오늘을 버틸 수 있기를 바라는 모순을 만들면서.
“…….”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의 식은 몸뚱이를 뜨겁게 안아줄 헤르트가 옆에 있었다. 결국 테사는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불가항력이었다.
이런 식으로 눈을 뜰 때마다 한 번도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건만, 이제 와보니 자신은 고독에 지쳐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던 것이었다. 아니, 외로움을 느낄 자격조차 박탈당했다고 봐야 했다.
우는 테사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헤르트가 입을 열었다.
“울지 마.”
“…….”
“너 정말 문제 있다고.”
헤르트의 말에 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자신에게는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