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화
“저년이나 네놈이나 똑같아! 더럽고 천한 년놈들! 네가 아무리 보르웬 후작의 개새끼라 해도 나는 유테르트 소후작이야! 귀족원에서 가만 있을 줄 아냐고! 이거 놔! 놓으라고!”
기사들에게 끌려가는 내내 페르데일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르트는 테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그녀를 살펴보았다. 목의 상처는 다행히도 생각보다 깊지 않은 듯 지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가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그 외의 상태는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왜 이 꼴이야?”
뺨 한쪽이 퉁퉁 부은 것을 이제야 발견한 헤르트가 짓씹듯이 랑그에게 따져 물었다. 사실 얼굴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안색도 좋지 않았다. 그녀의 온몸이 차가웠다. 그는 결국 랑그를 밀쳐내고 테사를 안아 들었다.
“의사 불러와. 당장!”
***
저 멀리 한 여자의 목소리가 어물어물 형태를 갖추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돼.’
테사는 산발이 된 머리를 들어 제 앞을 쳐다봤다. 한 하녀가 등잔불을 들고서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으나 갇힌 그녀의 식사를 챙겨주는 하녀들 중 한 명이었기에 얼굴과 목소리는 익숙했다.
‘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하녀는 발 한쪽이 묶인 테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남작가를 탈출하여 고아원으로 도망갔다 잡혀 온 이후로 테사는 손이나 발, 어딘가 하나는 꼭 묶여 있었다. 때문에 그녀의 손발은 언제나 붉은 자국의 상처들로 얼룩덜룩했다. 하녀는 그런 상처를 딱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는 거야. 너한테는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니니? 고아라며. 그런 네가 언제 그런 곳에 가서 귀한 옷을 입고 좋은 물건을 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겠어?’
‘……가.’
‘뭐?’
‘그럼 너나 가라고!’
테사가 울부짖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에 깜짝 놀란 하녀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소리 지르지 마. 지금이 몇 신지 아니? 하녀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러다 아무도 다가오는 기척이 없자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손 좀 내밀어 봐. 발도 내밀면 더 좋고.’
‘…….’
‘너 해치려는 거 아니니까, 줘봐.’
‘내, 내가 왜.’
테사는 경계 어린 얼굴로 하녀를 바라보다가 몸을 웅크렸다. 하녀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억지로 테사의 팔을 잡아당겨 제 쪽으로 끌어왔다. 이거, 이거 놓으……. 머지않아 차가운 느낌의 액체가 손목의 상처 위로 뿌려졌다. 잠시 싸한 느낌과 함께 상처의 따끔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 고향에서 주로 쓰는 약이야. 약초는 싸구려라도 진정 효과는 뛰어나.’
‘…….’
‘그보다도…… 너도 참 고집 세다. 어디서 그런 말 안 들어봤니?’
다른 손목의 상처에 약을 뿌려주며 하녀가 말했다. 테사는 입을 다물고 하녀를 올려다봤다. 그녀가 왜 제 상처를 치료해 주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순간 테사는 하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하녀가 웃으며 느닷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은 가난했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 다행이었지. 맨날 굶기 바쁜 그런 집이었어. 그래도 가족끼리는 사이가 좋았어. 그래서 버티며 살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
‘근데 어느 날 고향에 역병이 돌았어. 가장 처음은 엄마였지. 그 다음엔 내 세 명의 동생 중 가장 어린 막내였고. 두 사람이 어떻게 된 줄 아니? 죽었어. 왜냐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거든. 제때 치료만 받았어도 살 수 있었는데…….’
하녀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테사는 그런 하녀의 이야기에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다른 집도 역병으로 고생이었어. 마을 전체가 역병에 시달렸지.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치료를 받고 살 수 있었지만, 나처럼 가난한 집은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하고 죽어나가기만 했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 마을에서 제일 예쁜 애가 있었거든.’
하녀의 시선이 잠시 테사에게 머물렀다. 그녀는 손을 뻗어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테사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 애는 나랑 동갑이었고, 우리는 막 엄청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사 정도는 살갑게 주고받는 사이였어. 그 애가 갑자기 나한테 그러더라고. 옆 마을 목장주와 결혼을 하게 됐다고. 그 목장주는 이 일대에서 유명한 부자였어. 나이도 많고 죽은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애들도 있었지만……. 역시 중요한 건 부자라는 거였지.’
‘그럼…….’
‘맞아. 걔네 집도 가난했어. 그리고 걔네 오빠가 역병에 걸렸지. 뭐 어쩌겠니? 가족이 당장 죽어가는데. 그래서 걔는 목장주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정확히는 팔려가는 거라고도 할 수 있었지. 근데 그거 아니? 내가 그 애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하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나였으면.’
‘…….’
‘저 애를 대신해서 내가 목장주와 결혼했으면. 그렇게 되면 내 가족들은 더 이상 배를 곯는 일도, 치료를 못 받아서 죽을 일도 없을 텐데. 아직도 내 가슴 한켠에는 나를 붙잡고 살려달라 애원하던 막냇동생이 있어. 그 어린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아프게 죽어야만 했을까. 나는 늘 그걸 생각하면서 살아.’
‘…….’
‘네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널 대신해서 그 늙은 후작님에게 팔려갈 수 있었으면 그리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너처럼 진저빛 머리카락도, 흰 피부도, 작은 키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너는 우리 남작님이 찾던 아가씨의 대용품으로 최적이야.’
하녀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테사는 그런 하녀를 하염없이 올려다봤다. 저런 말들을 내게 하는 이유가 뭘까. 너는 충분히 행운아니까 불평 없이 받아들이라고? 테사는 숨이 가빠졌다. 하지만 자신은 이 모든 걸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나는…… 원한 적이 없어.’
‘그래, 그럴 거야.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거겠지. 근데 나 같은 사람도 있다고. 내가 너였다면, 이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내게 주어진 환경들을 최대한 이용하려 애를 썼겠지.’
‘나는…… 창녀가 되긴 싫어!’
테사가 참지 못하고 하녀에게 소리쳤다. 창녀. 내내 목울대에서 걸려 울렁이던 단어였다. 테사가 눈물을 흘렸다. 제아무리 부모에게 버려진 삶으로 태어났다지만 이렇게 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 몸까지 버리면 그땐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니까.
그때 머리 위로 차가운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되게 이상하게 들린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팔려가듯 결혼하면 창녀니?’
‘…….’
‘그리고 창녀가 왜 싫은데? 더러워서? 애당초 창녀의 기준이 뭔데? 누가 그들을 창녀라 부르고, 그 수많은 여자들이 왜 창녀라 불리우게 됐는지, 너는 그 이유를 알기는 하니?’
‘…….’
‘그것도 모르면서, 말을 참 쉽게도 하는구나.’
테사에게서 아무 말이 없자 하녀는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손잡이를 꽉 잡아 쥐며 말했다.
‘나약한 소리 좀 하지 마. 현실을 받아들여. 그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야.’
그 말을 끝으로 테사는 암흑으로 처박혔다.
***
잠든 테사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어 꼭 죽은 자를 보는 것 같았다. 때문에 미동 없이 창백한 안색을 볼 때마다 헤르트는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그는 손끝으로 테사의 아주 미약한 숨결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각하, 부인께서는 현재 몸이 너무 많이 혹사되셨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일로 상당히 놀라신 탓에 맥박과 호흡도 불안정하고요. 당분간이라도 절대적인 안정과 함께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의사는 테사에게 각고한 관리와 몸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헤르트는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반나절이 지나도록 움직임이 없는 테사를 응시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입 안에서는 하염없이 욕이 쏟아졌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종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헤르트가 보기에 테사는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저 가냘픈 몸으로 여태까지 버텼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헤르트는 두 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쓸었다. 저런 몸뚱이를 붙잡고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자 머릿속이 아득했다.
‘짐승만도 못한 새끼.’
벌써 두 번째였다. 이곳에 온 뒤로 자신을 자책하게 된 것이.
‘날 엿 먹이는 방법도 다양하지.’
헤르트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제 앞에 있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 여자는 대체 왜 제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헤르트는 테사를 노려보다가도 이윽고 고개를 맥아리 없이 떨구었다. 아픈 사람을 두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날 팔아먹고 이곳에 들어왔으면 잘 살아야 하는 거잖아. 왜 이 모양이야, 왜 또!’
처음에도 다 죽어가는 양 골골대어 제 심기를 긁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드러누웠다. 죽은 것 같은 병자의 얼굴을 하고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려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헤르트는 어이가 없어 속으로 웃음을 끊어 뱉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단지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장 소중했던 이가 저를 배신한 이유를. 그것만 보고 달려왔고, 드디어 이제야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상대방은 매번 입을 다물었다. 미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래선 내가 복수당하는 것 같잖아.’
헤르트는 이제 자조적으로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물론 아예 조사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헤르트는 개인적으로 테사에 대한 것을 조사하려 몇 차례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후작의 도움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후작이 이런 식으로 제게 여자를 던져 줄 줄은 몰랐지만.
‘테사 유테르트…….’
헤르트는 다시금 잠든 테사를 바라봤다. 손을 뻗어 차가운 여자의 뺨을 어루어만졌다.
“죽지 마.”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