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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배신을 알지 못하여-17화 (17/138)

017화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아무것도 없군.’

‘구려. 이딴 게 아버지 부인이라고?’

게다가 가장 현실을 강렬하게 일깨워준 것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늙은 남편은 테사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고, 그의 아들은 대놓고 테사의 외모를 비하했다. 성의 사용인들조차 테사를 볼 때마다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테사는 점차 작아지기만 했다.

“어머, 부인. 무슨 소리세요. 꾸며도 소용이 없다니요. 아직 꾸며보지도 않았잖아요.”

“아니에요, 꾸미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저는…….”

“에이, 그렇지 않아요. 지금도 이렇게나 예쁘신 걸요. 꾸미시면 더더욱 예쁘실 거예요.”

땅을 파고드는 테사에게 마니가 아이를 달래듯 칭찬했다. 하지만 테사의 귀에는 마니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예쁘다니. 눈에 뻔한 거짓말이다. 자신이 예쁠 리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못난 곳투성이인데 어떻게 예쁠 수가 있나.

테사는 급히 거울 앞에 벗어나려 몸을 틀었다.

“저 역시, 아, 안 할래요. 그냥 갈래요. 그편이 새 영주님……의 마음에도 드실 거예요.”

그 순간 자넷이 어딜 가냐며 테사를 확 잡아챘다. 그녀가 엄한 얼굴로 테사에게 말했다.

“안 돼요! 그건 제가 용납 못 해요. 제가 힘들게 다 준비했는데 진짜 이러기예요, 테사?”

“하지만…….”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예요! 한 번만 날 좀 믿어봐요. 네?”

자넷이 테사를 꽉 붙잡고 늘어지며 말했다.

“제가 진짜 예쁘게 꾸며준다니까요?”

“…….”

“테사, 한 번만요. 딱 한 번만! 자넷 소원!”

자넷은 이제 테사의 양팔에 매달려 애원했다.

“이 예쁜 얼굴을 가지고도 안 꾸미면 그건 유죄라구요!”

그러나 자넷이 철부지처럼 애를 쓰면 쓸수록 당황스러운 것은 테사였다. 그녀는 정말로 제게 예쁘다고 말하는 자넷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넷, 저는 안 예뻐요. 그러니까…… 꾸며도 소용없을 거예요.”

“아니라니까요? 테사, 예뻐요! 진짜 예쁜데! 왜 자꾸 아니래요! 그리고 꾸며본 적 있어요? 없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리 확신해요!”

“그야 사람들이…….”

“나랑 마니는 사람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적 없는데? 진짜 한 번만, 날 믿고 맡겨줘요. 제가 정말 예쁘게 꾸며줄게요!”

“…….”

“거울이 보기 싫으면 치울까요? 진, 여기 와서 거울 좀 치워봐.”

자넷이 테사의 반응을 살피고서는 거울을 치우라 명했다. 하녀가 거울을 치우는 동안 자넷은 다급히 여러 번의 드레스를 가져와 테사에게 가져다 대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테사는 여전히 자넷을 이해하기 어려워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도 아닌데…….’

테사는 자넷의 손에 들려진 옷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질 좋고 값비싼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달린 보석과 금색 실로 수를 놓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렸다.

저런 것이 제게 어울릴 리가 없었다. 저런 건 어려서부터 입고 자라온 자넷 같은 귀부인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누군가 입고 버린 낡은 옷들만 입어왔던 테사에게는 그 존재만으로 과했다.

사실 테사도 저런 질 좋고 화려한 옷들을 아예 안 입어본 것은 아니었다. 자넷이 가져온 드레스만큼 좋은 건 아니지만 명색이 후작의 부인인 만큼 제대로 된 드레스를 몇 번 입어보기는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남작가로 갈 때. 그리고 남작가에 갇혀 인형처럼 갇혀서 교육받을 때. 후작이 밤을 보내기 위해 그녀를 부를 때. 간단한 식을 올리기 위해 웨딩드레스도 입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테사는 입어선 안 되는 것을 걸친 느낌이었고 누구 하나 그녀에게 예쁘다고 해준 적이 없었다.

‘내가 입으면 분명 과할 거야. 나는 자넷처럼 본래 귀족도 아닌 걸. 사람들이 날 비웃을지도 몰라. 볼품없고 천박한 계집이 분에 맞지도 않는 걸 입었다고…….’

좋은 물건도, 옷도 사람의 태가 좋아야 좋아 보이는 것이다. 거지가 비싼 옷을 몸에 걸쳤다고 해서 부자처럼 보이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테사는 옷이 아닌 자넷을 바라봤다. 자넷은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웠다. 윤이 흐르는 갈색 곱슬머리는 매일 아침 관리받은 티가 났고 눈썹은 반듯했으며, 이마 또한 솜털 하나 없이 매끈했다. 무엇보다 오똑한 콧날과 둥근 눈매는 그녀가 웃을 때마다 반짝였다. 자넷은 사랑스러웠고 동시에 우아하고 고상했다.

테사가 늘 그리던 귀족영애의 표본이었다. 그렇기에 자넷이야말로 그녀가 들고 온 옷과 가장 잘 어울리고 그걸 입을 자격이 충분한 여자였다. 테사처럼 어수룩한 얼뜨기와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아, 이거다!”

그 때 자넷이 드레스를 한 벌 집어 들며 낮게 소리쳤다.

그녀가 집은 것은 차르르 광이 떨어지는 실크 소재의 초록색 드레스였다. 소매와 허리 부근에는 금색 실과 붉은 보석으로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고, 안쪽에는 얇고 부드러운 소재의 천이 이중으로 덧대어져 있어 움직일 때마다 사륵거리며 살랑였다.

한눈에 보아도 기성품은 아니었으며 값어치가 상당해 보였다. 자넷은 그것을 테사 앞으로 쪼르르 가져와 내밀었다.

“이거 입고 나와봐요. 테사한테 분명 잘 어울릴 거예요.”

“이, 이걸요?”

테사는 제 손에 닿기도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받아 들지 못하고 뒤로 주춤거렸다. 테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 나 못 입어요. 입었다가 조금이라도 드레스에 흠집이라도 생길까 무서웠다.

“괜찮으니까, 빨리 입어봐요! 테사한테 잘 어울리면 내가 선물로 줄 건데요, 뭘! 마니, 진! 뭐 해? 테사가 옷 갈아입는 것 좀 도와줘.”

자넷의 말에 마니와 하녀가 테사에게 다가왔다. 테사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이끌려 가림막 뒤로 옮겨졌다. 하녀가 테사의 옷을 벗기려는 순간이었다. 테사가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녀의 손길을 뿌리쳤다. 하녀가 당황한 얼굴로 테사를 바라봤다.

“뭐야, 왜 그래? 거기 문제 있어요?”

작은 소란에 자넷이 가림막 안쪽을 기웃거렸다. 그 때 하녀가 제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테사를 발견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님! 그녀는 테사의 반응에 무언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사실 이 성에서 일하는 사용인들 중에 귀가 밝은 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늙은 후작의 여섯 번째 부인이 소후작에게 매질을 당한다는 것 정도는.

“미, 미안해요. 그게, 거부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부인. 아무래도 저는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녀가 테사와 마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가림막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마니가 테사에게 다가와 말했다.

“죄송해요, 부인. 제가 좀 더 신경 써야 했는데…….”

“괘…… 괜찮아요. 저도…… 저도 모르게…….”

“그럼 옷 벗는 거 도와드릴게요.”

마니는 아주 조심스럽게 테사의 옷을 벗겨주었다.

가냘픈 테사의 등에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길고 긴 상처들이 빼곡했다. 오랜 시간 이어진 학대의 흔적이었다. 테사는 등을 돌린 채 몸을 떨었다.

‘그냥, 그냥 싫다고 할 걸. 괜찮다고 할 걸.’

테사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갑자기 이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완강하게 거부하지 못한 자신의 태도부터 이 모든 상황까지. 분명 등이 흉측하다고 생각할 거야. 마니라면 제 등을 몇 번 봤을 텐데도 그런 생각이 떠나가질 않았다.

테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등의 상처만 생각하면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도망치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온전히 체벌의 시간.

‘건방진 년, 팔려 온 주제에! 네년이 뭔데 나를 무시해!’

쫘악! 두껍고 무거운 가죽벨트가 그녀의 등으로 날아들어 왔다. 순간 졸도할 정도로 큰 고통이 그녀를 덮쳤다.

테사는 반항하지 못했다. 반항할 수 있는 힘도, 도망갈 수 있는 힘도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이 어서 멈추길 기다리며, 바닥을 기면서 폭력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개 같은 년!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넌 이미 뒈졌어. 알았어? 한 번만 더 날 무시하기만 해봐. 그땐 널 죽여버릴 거야.’

남자는 테사의 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그녀가 의식을 잃고 나서야 때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테사를 독방에 가둬놨다.

다음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밤새도록 방치된 상처는 심각했다. 테사는 치료받는 내내 입에 수건을 물고 온몸을 덜덜 떨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영지쟁탈전이 벌어진 이후로는 맞은 적이 없는데다가 케니스의 꾸준한 치료로 인해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가끔가다 고통이 종종 느껴졌다. 케니스의 말로는 마법사에게 치료를 받지 않는 한 이 흉터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많이 흉하죠.”

“아, 아니에요. 부인. 그렇지 않아요.”

이건 정말 거짓말. 테사는 마니의 말에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누가 여자의 몸에 이런 흉터가 크게 자리 잡았는데 흉하지 않다 생각할까. 지금 돌이켜보면 헤르트가 제 잠옷을 완전히 벗기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랬다간 이 등의 상처를 숨기지도 못하고 훤히 드러내야만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테사는 잠시 우뚝 멈추었다. 그러고 보면 언제까지고 헤르트가 제 옷을 벗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만에 하나 그가 이런 흉터를 발견한다면…….

‘싫어, 그건 정말 싫어.’

이런 흉터를 가진 여자를 좋아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테사는 헤르트가 제 등의 상처를 보고 저를 더 경멸하고 끔찍해 할까 봐 무서웠다. 이미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 커다란 증오를 샀음에도 두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더는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테사는 마니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내내 표정이 무거웠다.

“자, 다 되었답니다!”

마니가 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옷을 갈아입은 테사를 가림막 밖으로 이끌었다.

자넷은 옷을 갈아입고 나온 테사를 보며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탄성을 뱉었다. 세상에! 그녀는 테사의 앞으로 한 걸음에 달음박질했다.

“테사, 정말 예뻐요. 이건 정말 테사에게 어울리는 옷이에요. 아니, 테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방해요.”

자넷이 테사의 두 손을 꼭 잡아 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테사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거짓말일 거야. 이런 옷이 어떻게 내게 어울릴 수가 있겠어. 테사는 쭈뼛쭈뼛 자넷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자넷, 과장이 심해요…….”

“뭐예요? 제 말이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진짜예요. 진짜 테사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 자, 이리 와봐요. 머리랑 화장까지 해줄게요.”

“아니, 그냥 다시 옷 갈아입…….”

“또 저 섭섭하게 그런 말 하는 거예요? 아직 거울도 제대로 안 봤으면서!”

자넷은 자꾸만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테사를 붙잡아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테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하녀와 함께 테사의 머리를 매만져 주기 시작했다.

“테사의 머릿결은 반곱슬기가 있어서 이렇게 살짝 말아주기만 해도 컬이 잘 들어갈 거예요. 저는 머리가 악성 곱슬이라 이런 테사의 머리가 너무 부러워요. 제 머리도 테사처럼 적당히 꼬불거렸음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제 머리는…….”

얼마나 잘 엉키고 약한데요. 윤기는커녕 푸석거려서 전혀 부드럽지도 않고요. 이 성에 온 이후로 테사는 제 머리카락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다들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반면에 테사의 머리카락만 볼품없었다.

“또 그런다 또! 예쁘다는데, 왜 자꾸 말을 덧붙여요.”

“……미안해요.”

“사과도 안 해도 돼요. 내가 봤을 땐 테사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예쁜데.”

자넷은 자신이 아끼는 보석함까지 열어가며 테사를 꾸미는데 집중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땀을 훔치며 허리를 짚었다. 됐다, 내 노력! 그녀는 테사를 치웠던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하나, 둘, 셋!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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