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세실레는 지상 위로 올라가서 정원에서 쟈르스와 놀고 있는 디젤라의 팔을 잡아챘다.
“나랑 어디 좀 가.”
“어, 언니?”
“빨리.”
디젤라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세실레가 잡아끄는 대로 따라왔다.
하지만 곧 세실레가 향한 곳이 지하 감옥임을 깨닫고 기겁했다.
“나 여기 들어가기 싫어! 유령 나온단 말이야.”
“유령 아니야.”
“유령이 아니긴! 내가 분명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래, 그게 중요해.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려줘.”
“뭐어?”
디젤라가 항의하듯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세실레는 디젤라를 잡은 팔을 놓지 않았다.
세실레는 단호한 눈동자로 디젤라를 응시했다.
“그 목소리는 아마 도르데아일 거야. 나는 그녀를 찾아야만 해.”
“……말도 안 돼.”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세실레가 진지한 눈으로 디젤라를 응시했다. 하지만 디젤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망설이는 그녀를 향해 세실레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사람이 사라졌어. 네 도움이 필요해, 디젤라.”
간곡한 말에 디젤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도 곁에 있으니 괜찮겠지?’
세실레는 머뭇거리는 디젤라를 데리고 감옥으로 내려갔다.
디젤라는 멀찍이 뒤에 물러서선 내려오다, 이내 안색을 굳혔다.
[구해줘.]
일전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 것이다.
세실레가 디젤라의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물었다.
“들렸어?”
“……응.”
“뭐래?”
“자기 좀 구해달래.”
“더 자세히 물어봐. 어디 있는지.”
[쟈르스가 있던 감옥.]
“……쟈르스가 있던 감옥이라는데.”
하지만 쟈르스가 갇혔던 곳엔 아무도 없었다.
소름 끼치는 상황에 디젤라가 몸을 뒤로 뺐다.
“난 몰라! 이제 갈래!”
“안 돼.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싫은데…….”
하지만 세실레는 물러나지 않았다.
디젤라는 기어코 지하 감옥 안쪽으로 들어서는 세실레를 주저하며 따라갔다.
감옥을 흘낏 훑는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렸다.
세실레는 동요하는 디젤라를 감옥 앞에 데려다 놓곤 물었다.
“쟈르스가 갇혔던 곳이 여기지? 어때? 뭐가 보이진 않아?”
디젤라는 잠시 입술을 물다, 눈을 내리깔았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데……어쩔 수 없지.’
무섭긴 했지만, 이대로 시간을 끈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었다.
결심을 굳힌 디젤라는 세실레의 뒤에 바짝 붙어선, 감옥을 천천히 살폈다.
하지만 감옥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장식이라곤 하나도 없는 단조로운 구조였다. 무언가 보였다면 벌써 보였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여기! 여기입니다, 황후 폐하!]
그러나 간절한 목소리는 도통 세실레에겐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세실레는 디젤라를 유심히 살피다,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들어가 보면, 뭔가 느껴지지 않을까?”
“뭐어? 나보고 감옥에 들어가라고?”
디젤라가 놀라선 소리쳤다. 하지만 세실레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무서우면 같이 가줄게.”
“……하아, 언니 진짜.”
“들어가 보자.”
말릴 틈도 없이 세실레가 철창문을 잡아당겼다. 그러곤 냉큼 디젤라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얼결에 감옥 안으로 들어온 디젤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감옥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디젤라를 세실레가 재촉했다.
“뭐 보이는 건 없어?”
“……없어.”
“들리는 것도?”
“그냥, 계속 여기 있다고만…….”
잘 모르겠다. 일전에 황제가 건네준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고작 각성 중일 뿐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가 한계일지도 몰랐다.
‘……그럼 황제의 눈엔 무언가 보일지도. 그래, 황제 핑계를 대고 나오자!’
일을 해결하는 동안 언니와 황제 간의 관계가 더 좋아질지도 몰랐다. 이것이 바로 일석이조!
결론을 내린 디젤라가 세실레를 향해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그녀와 디젤라 사이에 드리운 그림자 사이에서 무언가 사람의 형체가 일렁였다.
나이가 제법 있는 중년의 여인, 도르데아였다.
디젤라는 기겁해선 아래를 가리켰다.
“꺄악! 여, 여기!”
“……여기?”
세실레는 고개를 갸웃했다. 디젤라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는 그녀를 보며 디젤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 방금 있었는데…….”
“사라졌어?”
“응……그림자 사이에서 보였는데.”
그림자, 순식간에 사라진 도르데아의 형체. 테르델이 사라진 것과 비슷했다.
‘역시 테르델의 소행이로군.’
세실레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아르베우타의 입으로 그는 테르델과 같은 편이라 했다.
그렇다는 건, 그가 자신의 수족을 데려갔다는 뜻이었다.
내내 의심했지만, 애써 의심을 지웠다.
설마하니 그가 이런 짓까지 벌이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다시는 내 사람을 건들지 못하게 해야지.”
디젤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누가 이렇게 했는지 알아?”
“물론이지, 이건 전부 황제의 소행이 분명해.”
“아닌 것 같은데.”
“……뭐?”
“아닌 것 같다고. 그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어.”
세실레는 입을 다물었다.
디젤라가 언제 아르베우타와 따로 만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렇듯 호평을 내리는 것도 의외였다.
세실레의 침묵에 디젤라는 괜히 머리를 긁었다. 조용한 시선에 어쩐지 혼이 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디젤라는 변명처럼 말을 이었다.
“실은……그가 나와 같은 각성자라고 했거든. 그래서 따로 불러낸 거라고. 언니도 알겠지만 내가 최근에 이상한 일을 겪었잖아.”
“…….”
“그러다 저번에 만났는데 나한테 각성 과정을 적은 자료도 보여주고 쟈르스가 도움이 되는 것도 알고 있고……아, 언니도 자료 한번 볼래?”
디젤라는 애써 웃었다. 세실레의 표정이 너무나도 딱딱하게 굳어 있던 탓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했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디젤라는 무서운 것도 잊고 혼이 나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러니까……황제가 날 부른다는 데 가지 않을 수도 없잖아. 쟈르스도 가라고 했고.”
“……내가 쟈르스도 믿지 말라고 했잖아.”
“언니! 또 그런 말 하지! 나랑 쟈르스 관계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잖아. 내 생각엔 언니가 더 이상해. 언니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고!”
“…….”
“비켜, 나 갈래.”
디젤라는 세실레의 어깨를 밀치며 감옥을 나섰다.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철문 닫히는 소리가 감옥 내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럴 때까지 세실레는 꿈쩍하지 않고 서 있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분명 모든 일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몸에 힘이 빠졌다. 그저 디젤라가 속고 있는 거라, 아르베우타가 영악한 간계를 펼치고 있는 거라 믿으면 될 텐데도 그리되지 않았다.
마음이 그를 의심하기를 전력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심한 말, 험한 생각 하나조차 하기 힘들었다.
고민하던 세실레는 겨우 걸음을 뗐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황제가 디젤라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고 했다. 일전 고서에서 보았던 ‘각성자’란 존재에 관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아르베우타도 테르델도 디젤라도 각성자라는 것인가.’
어쩌면 신력으로는 그들의 힘을 명확히 감지할 수 없는지도 몰랐다.
고민을 마친 세실레는 계단을 올랐다. 디젤라가 말한 자료를 볼 참이었다.
***
막 침실로 돌아온 디젤라는 영 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분을 내는 그녀를 보며 쟈르스는 혀를 찼다. 어딜 갔나 했더니 황후 폐하와 다투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쟈르스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매일같이 싸움을 벌이고 다니는군. 저것도 능력이야.’
하지만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간 또다시 감옥에 갇힐지도 몰랐다. 그것도 유령이 나오는 감옥에.
쟈르스는 한숨을 삼키며 그녀를 위로했다.
“황후 폐하께서 무어라 하셨습니까.”
“글쎄! 너랑 황제랑 다 믿지 말라고 하잖아.”
“그분도 여전하시군요.”
“너무 화가 나! 언니는 고집불통이야.”
쟈르스의 생각은 달랐다. 황후는 오랜 시간을 고립되어 살아왔다.
황후가 황궁 생활을 오래 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또 두려울 것이다.
이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었다.
‘성녀의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면 지금쯤 유폐되었겠지.’
역사상 성녀 출신 황후들은 보통 이때 유폐되곤 했다. 이맘쯤 새로운 성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 황후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그녀가 지닌 이능처럼, 기적이었다.
그러다 쟈르스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의아해졌다.
‘왜 새로운 성녀가 나타나지 않지?’
황후의 나이가 스물을 넘었다. 새로운 성녀가 발표되고도 남을 시기였다.
하지만 신전이 조용했다. 무언가 변동이 생긴 모양이었다.
‘……설마 다음 대 성녀가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황후 폐하가 사라지신 후로 악령이 들끓었다.
그런데 다음 대 성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인간의 삶은 유한했다. 지금 대 성녀가 이능을 부린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인간이었다.
황후는 착실히 나이가 들고 있었고 언젠가 죽을 터였다.
그때까지도 제국에 성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이거,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별 희귀한 경험을 많이 한다 싶었는데, 이제는 대륙의 존망을 걱정해야 한다니.
쟈르스가 고민에 잠긴 사이 디젤라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를 살폈다.
무어라 위로를 해줄 줄 알았는데, 쟈르스는 한참이고 망부석처럼 서서 말이 없었다.
괜히 심통이 난 디젤라가 중얼거렸다.
“뭐야? 왜 말이 없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 뭔가 수상한데.”
쟈르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디젤라의 볼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속상하신 모양이군요.”
그제야 디젤라가 분을 누그러뜨리곤 쟈르스를 껴안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디젤라는 지금 속상하고 또 무서웠다.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그래도 쟈르스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디젤라가 고개를 들어, 쟈르스를 올려다보았다.
아까의 분은 잊은 지 오래였다. 눈앞에 쟈르스가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할 겨를 따위 없었다.
디젤라는 시야에 어른대는 붉은 입술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밖에서 노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