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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곁엔 아무도 없었다-61화 (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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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레는 폐쇄된 황후궁에 잠입한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누구지?’

세실레는 황후궁 소속의 시녀들과 하인들, 그리고 신관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황후궁 소속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설프게 은신을 쓰고 있는 게 유독 눈에 띄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세실레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남자를 지켜봤다. 남자의 행동이 수상했다.

호숫가로 다가가더니 물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뭐 하는 짓이람.’

호숫물엔 신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신력은 신관들 외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저 평범한 물일뿐이었다.

‘후유증을 겪는 사람이 마시면 심하게 앓겠지만.’

어느 의미로든 쓸모가 없는 물이었다.

세실레는 남자가 물을 떠서 무엇에 쓰려나 고민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친위대장이로군.’

언젠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황제가 보내서 온 게 분명했다.

무슨 생각으로 호숫물을 퍼가는지는 몰라도, 상관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까.

‘도르데아가 사라졌어.’

이상한 점은 황후궁 어디선가 도르데아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기척만 느껴지고 막상 가면 보이지 않았다.

이능을 수련한다는 핑계로 황후궁을 폐쇄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지난번 테르델이 도르데아의 모습으로 위장한 뒤, 그녀가 실종됐다. 어쩌면 테르델이 여기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는지도.’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도르데아를 찾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세실레는 허공에 이능을 펼쳤다. 아직 환한 낮이기에 이능은 제어를 벗어나 멋대로 움직였다.

세실레는 안개처럼 흩어지는 이능을 응집해서 도르데아의 기척을 좇았다. 아까 느꼈던 위치 그대로였다.

하지만 가봤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 감옥이었지.’

도르데아가 자신의 발로 감옥에 들어갔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테르델이 가두었거나,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세실레는 우선 힘을 거두었다. 그새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낮에 힘을 쓰는 것은 상당한 기력 소모를 동반했다.

피로한 얼굴로 있으니 루베르가 다가와서 이마에 찬 수건을 대주었다.

“엄마, 갠차나여?”

“응, 잠깐 지친 것뿐이야.”

“으응. 하지만 얼굴이 하얘.”

“그래?”

세실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루베르의 말대로 안색이 창백했다.

오늘 무리를 하긴 한 모양이었다. 세실레는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곤 테레사를 향해 물었다.

“감옥엔 아무도 없던가?”

“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실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일찍 세실레가 직접 가봤을 때도 도르데아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테다.

세실레는 도르데아를 마냥 믿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테르델과 손을 잡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궁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추궁하더라도, 우선 찾는 것이 먼저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루베르는 좋은 생각 없니?”

“움……루베르는 그런 거 몰라요.”

“그렇구나.”

세실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베르가 불쑥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그 할머니 찾고 싶어여?”

“할머니……라니.”

세실레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기야 루베르가 보기에 할머니처럼 보이긴 했을 터였다.

그렇다곤 해도 다른 데서 할머니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형식적이나마 작위도 받았는데.’

나이가 들면 사교계에 데뷔할지도 몰랐다. 언젠가 대외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귀여워서 괜찮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건 위험했다. 세실레가 루베르의 앞머리를 쓸어주며 물었다.

“우리 루베르, 나이가 들면 자라니?”

“네, 자라여. 쑥쑥 커서 엄마를 지켜줄 꺼에요.”

“그래? 그러면…….”

세실레는 말없이 종이에 책 목록을 써서 시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도서관으로 적혀진 책을 대출하러 떠났다.

의아한 상황에 루베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세실레는 루베르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가만가만 말했다.

“공부하자.”

“……네?”

“많이 배워야지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어.”

어차피 지금은 이능을 연습하기엔 너무 지쳤다. 하지만 루베르의 공부를 봐줄 체력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루베르는 싫은지 엉덩이를 슬그머니 뒤로 뺐다.

“시, 시러여.”

“싫어? 싫으면 엄마랑 못 노는데.”

“아니야. 그냥 놀면 돼여. 저기 호수 가서 수영 할까여?”

“아니, 엄마는 책 읽고 싶은데.”

“……무슨 책?”

“우선은 역사부터 시작하자.”

역사라면 신학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루베르의 이해를 돕기 쉬울 터였다.

하지만 루베르는 불퉁하게 입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의 역사 따위…….”

“루베르는 인간 아냐?”

“아냐! 엄마도 아냐!”

“그럼 엄마랑 신학 공부할까?”

“으……루베르는 다 알아여. 공부 피료업서여.”

“그래?”

“으응, 우리 그러지 말고 맛난 거 먹어요.”

어지간히 공부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세실레는 난리를 치는 루베르가 귀여워 고개를 끄덕이고만 말았다.

안 그래도 허기짐이 몰려왔다. 무언가 먹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시녀가 다가와 물었다.

“식사를 준비할까요?”

“아니, 가벼운 디저트로. 아, 디젤라한테도 물어봐 줘.”

“네.”

아마 지금도 쟈르스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실레는 왜인지 둘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못마땅하단 말이지.’

세실레는 아직 쟈르스를 믿지 않았다. 디젤라의 말대로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세실레는 일부러 툭하면 쟈르스와 디젤라를 떨어뜨려 놓으려 애쓰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디젤라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화를 내려나.’

하지만 매번 둘이 붙어 있으니, 사사로운 용건을 전하는 것도 방해가 됐다.

‘도대체 언제 떨어지는 거야.’

저렇게나 좋을까. 걱정되면서도 내심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연상되는 사람이 있어서, 세실레는 신경 끄기로 했다.

‘왜 자꾸 떠오르는 거람?’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또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올 때 목격한 이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세실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빠른 속도로 황후궁으로 다가왔다. 눈으로는 쫓지 못할 움직임이었다.

‘그때도 별다른 힘을 느끼지 못했지.’

어쩌면 아르베우타와 테르델이 깊은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곰으로 변했었지.’

그땐 단순히 세실레가 수도에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황궁에 돌아오고 나서,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번 일이 황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저기 손을 대지 않는 곳이 없군.’

비테르 후작의 영아 납치 이후로 시내에 경비를 늘린 것도, 쟈르스를 이곳에 보낸 것도 그였다.

분명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리라 예측했는데, 하는 행동의 의미는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일전엔 아무런 간섭도 없었건만, 요즘에는 어찌나 이것저것 끼어드는지.

그 덕에 세실레는 좀처럼 심란했다.

그러는 사이 먹을 것이 준비되었다. 루베르가 세실레의 볼을 쿡쿡 찔렀다.

“엄마, 엄마.”

“……응?”

“가치 먹어요!”

루베르의 활기찬 목소리에 세실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베르가 호두 파이를 포크로 잘라 세실레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먹는 투정을 부린다는 여타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세실레는 루베르를 보며 가만히 웃음 지었다.

‘굳이 교육할 필요는 없을지도.’

루베르가 클수록 정신 연령이 높아진다면, 어련히 나이에 맞게 행동할 것 같았다.

‘원래 루베르의 모습은 어떠려나.’

테레사는 붉은 새로 변했다. 루베르의 본모습은 어떨지 상당히 궁금했다.

생각에 잠겨 있으니 루베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왜 자꾸 나 바여?”

“귀여워서.”

“루베르 귀여어?”

세실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베르는 좋아 어쩔 줄 모른다는 듯이 발을 동동거렸다.

귀엽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세실레는 무심코 손을 들어 루베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루베르의 진짜 모습도 어서 보고 싶다.”

“으웅, 루베르 잘생겨써.”

“잘생겼어?”

“응!”

루베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갈 가리켰다.

벽화였다. 벽화엔 황제의 관을 쓴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루베르는 황제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얘보다 내가 백배 잘생겨써. 그러니까 엄마 기대해도 조아요.”

무얼 기대하란 건지, 세실레는 웃음을 삼키며 답했다.

“응, 기대할게.”

루베르의 다 큰 모습은 영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어린 모습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리며 디젤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이미 한 접시 던 파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초대했으면서.”

“안 올 줄 알았지. 이리로 와. 새로 내어달라고 할게.”

“뭐, 아무래도 좋아.”

디젤라의 안색이 심상찮았다. 뾰로통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세실레는 침묵했다.

그러자 디젤라가 짜증스레 말을 이었다.

“짜증 나, 뭐 그런 남자가 다 있지?”

예상대로였다. 쟈르스와 싸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두고 디젤라 혼자 올 리 없었으니까.

세실레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 쟈르스랑 싸웠니?”

그러자 디젤라가 분통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말도 마! 글쎄 내가 자기 없으면 못 살 거라고 굳게 믿더라고.”

“…….”

“허, 참, 정말. 나도 필요 없거든? 악! 목소리 또 들려!”

모두 맞는 말이라, 세실레는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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