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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곁엔 아무도 없었다-33화 (3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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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세실레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슬슬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어.’

보통은 그녀를 알아보더라도 수군거리기만 하고 말았다. 그녀가 기적의 상징이 됨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아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개 부도덕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지만, 황후가 돌아오고도 병이 낫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로 더 큰 벌을 받을까 몸을 사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두려움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대신 황후를 보겠다며 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럴수록 테레사와 도르데아의 반발 또한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건 위험합니다.”

“맞습니다. 폐하께서 이능을 발휘하시면 된다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세실레 또한 동의했다.

“역시 변신을 하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만 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세실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외려 그녀 또한 모습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할게.”

순순한 답변에 두 사람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들을 보던 세실레가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대신, 오늘은 혼자 갈래.”

“네? 어째서…….”

“그야. 네 모습도 같이 알려진 모양이니 말이야.”

황후의 곁을 지키는 여자 기사가 있다는 소문도 덩달아 퍼졌다. 여자의 몸으로 기사가 된 경우가 극히 드문 탓에 황후를 찾고 싶거든 그 기사를 찾으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세실레가 아무리 변신을 해도 테레사가 옆에 있으면 모두 알아볼 거란 뜻이었다.

‘같이 변신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세실레는 뒷말을 꾹 삼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테레사는 은근히 엄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테레사가 없는 시간에 알아볼 것이 있었다.

그러려면 고집 센 테레사가 따라붙을 이유를 만들기 전에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세실레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알겠지? 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먼저 들어가서 쉬어.”

“……하지만 혼자라니, 위험합니다.”

여전히 내켜 하지 않는 테레사를 두고 세실레가 괜찮다며 손을 휘저었다. 완고한 주인의 태도에 테레사 또한 말릴 거리가 없었다.

‘쉬이 당할 분도 아니시고.’

지상에 세실레를 이길만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가끔은 물러서기도 해야 했다.

때마침 테레사 또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었다.

세렌디와 관련된 고서를 뒤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해가 뜨기 전엔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알겠어. 내가 애도 아니고.”

투덜대는 듯한 표정에 테레사와 도르데아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덩달아 세실레도 함께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훈훈한 광경이라며, 황후궁의 시녀들은 이 평화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

세실레는 내내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기대하는 일이 있어선지 유독 시간이 더디게 갔다.

마침내 밤이 되자, 그녀는 완연한 남성의 모습으로 변한 채 시내로 나갔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군중에 섞여드니 기분이 남달랐다.

“처음부터 이럴걸.”

걸걸한 목소리가 밖으로 흘렀다. 그것이 어찌나 낯선지 말해 놓고도 놀랄 정도였다.

평생을 여성으로 살아왔다. 그건 황궁 밖에서 머물 때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자로 사는 것이 편하고 익숙했을 뿐이었다.

‘남자라니.’

반쯤은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지만 퍽 색다른 기분이 들어 좋았다.

게다가 변신하고 나니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거리를 걸어갈 때마다 흘긋거리던 시선이 모조리 사라졌다.

아무도 그녀를 모르니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세실레는 개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하려던 일을 해야지.”

세실레는 미리 눈여겨 두었던 정보 길드에 들렸다.

그곳에서 도르데아와 쟈르스, 그리고 황후궁 시녀들의 정보를 의뢰했다.

더불어 시중에는 풀리지 않은, 신과 관련된 고서나 금서를 모두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길드 직원은 거침없이 큰돈을 내놓는 세실레를 보며 가타부타 않고 알아봐 주겠노라 약조했다.

“일주일 정도 소요될 겁니다.”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세실레는 밖으로 나왔다. 하려던 일이 금방 끝나버리니, 시간이 비었다.

‘이대로 돌아갈까.’

고민하는 사이, 거리를 지나가던 취객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말이 돼? 후유증을 치료하려고,”

“쉿, 쉬잇. 그 말은 나중에 하게.”

“아, 황후가 돌아오고도 병증이 낫지 않,”

옆의 남자가 취객의 입을 틀어막고 주점 안으로 끌고 갔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실레 또한 그들을 따라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문 앞에 걸려 있던 종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어서 옵쇼!”

***

주점 안은 왁자지껄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찬 덕에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어느새 취객 두 사람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지만 그들 주변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어 보이네.’

아무리 둘러봐도 빈 테이블이라곤 없었다. 구석구석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떡할까, 망설이는 사이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손에 맥주잔 다섯 개를 든 종업원이 서 있었다. 그녀는 전투적인 눈동자로 세실레를 보며 구석을 가리켰다.

“잘생긴 오빠! 저기 자리 있어요.”

“……오빠?”

“그래, 저기. 저 테이블. 구석에 자리 하나 남잖아.”

세실레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자리가 하나 있기는 했다. 테이블이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게 문제기는 했지만.

게다가 아까 본 취객들도 그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세실레가 생각에 잠긴 사이, 종업원은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퉁명스러운 얼굴로 대꾸했다.

“좁은 자리는 싫다 이거야? 오빠 얼굴값 좀 한다?”

종업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세실레를 향했다.

그들 중 몇몇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으며 품평을 하기도 했다.

“거,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무 데나 앉으쇼.”

“원래 저녁 시간에는 다 이런 거라고. 어디 촌 동네서 왔나?”

“맛있는 걸 먹으려면 바닥에 앉을 줄도 알아야지!”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거침없었다. 그러는 사이 종업원이 세실레를 끌어다 기어코 구석 자리에 앉혔다.

힘이 어찌나 센지 반쯤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얼떨떨하게 의자에 앉은 세실레의 앞으로 나무로 만든 메뉴판이 들이 밀어졌다.

“주문은?”

“아? 어, 주문은.”

세실레는 급히 메뉴판을 훑었다. 그러나 글자가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갑작스레 붐비는 가게의 구석에 착석해버린 데다가, 곁에 앉은 사내들에게선 특유의 냄새가 났다. 쉬이 맡아보기 힘든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세실레가 머뭇거리자,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멋대로 주문을 했다.

“이거 먹어, 버터 가리비. 이게 대표 메뉴니까.”

“그럼 버터 가리비 하나에 맥주 하나. 맞죠?”

종업원의 물음에 세실레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실레는 우락부락한 남자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심지어 소맷자락을 걷어붙인 남자들은 자랑하듯 근육을 내보이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몹시도 당황스러워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괜스레 몸을 움츠리고 있자니 주변의 사내들이 세실레의 팔을 툭 쳤다.

“어이, 샌님인가 보지?”

“……샌님?”

“하하, 순진하기는. 꼭 어디 부잣집 자제라도 되는 모양인데.”

붉은 머리의 사내가 세실레를 위협적으로 훑었다. 아까 무언갈 말하려던 취객이었다.

그에게 무어라 대응하려던 세실레는 얌전히 앉아, 남자가 이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가지 교훈을 깨달은 채로.

‘다음번엔 옷에 신경을 더 써야겠네.’

세실레가 평복을 가져다 입었다지만 황궁에 있던 것이었다. 평범한 서민의 것과는 차이가 났다.

이 정도의 옷을 입을 정도려면 황도 내에 그럴듯한 이층집을 가진 집안의 자제나 되어야 가능했다.

즉, 그들과 같은 일용직 노동자는 아니란 소리였다.

‘눈에 띄는 차림을 했군.’

세실레가 남몰래 다음 계획을 짜는 사이, 멋대로 결론을 내린 남자가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거, 귀족 나으리면 한 판 붙으려 했는데. 보니까 애송이 같고. 에이, 시시해라.”

“시시하기는 이 사람아. 자네가 진짜 귀족을 앞에 두고 그런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

“허, 못할 건 뭔가? 나 몰라?”

흥분했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언뜻 봐도 후끈하게 달아오른 뺨이 그가 제법 취했음을 알려왔다.

하지만 세실레는 계속해서 입을 다물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몸을 강철같이 단단히 해둔 채로.

그 순간, 남자가 세실레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어때? 여기서 내가 제일 강해 보이지 않나?”

“예끼. 이 사람아. 샌님 놀라.”

“말해봐. 내가 귀족 놈들 대가리도 못 깨게 생겼느냐고.”

저를 향한 흉흉한 질문에 세실레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강하든 약하든 사람을 죽이는 건 옳지 못하죠.”

“허, 이 사람. 정말 샌님이네.”

태연자약한 대답에 남자가 김이 빠진 듯 맥주를 들이켰다. 하지만 여전히 흥분감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가 거칠게 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야! 됐고. 여기서 나보다 강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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