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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곁엔 아무도 없었다-7화 (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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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는 침실 앞을 지키고 섰다. 도르데아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처신을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애매한 입장을 취하다가는 황후와 황태후, 둘에게서 버려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는 안 됐다. 도르데아의 주먹이 잘게 떨렸다.

***

하늘 높이 해가 떠올랐다. 그러나 세실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정오가 넘은 시간임에도 일어나지 않는 그녀를 두고 시녀들이 안절부절못했다.

조심스레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세실레는 꼭 시체처럼 조용히 두 눈을 감아 내린 채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은백색의 머리카락,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

그러나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몸은 한눈에 보아도 유약했고 가지런히 놓인 두 손은 툭 치면 스러질 듯 힘이 없었다.

조용히 맥을 짚어보던 도르데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의사는 아니었지만, 건강한 사람의 맥이 이렇게 약하지는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끊길 듯 희미한 숨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 두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의원을 불러라.”

“네.”

황후궁을 통솔하는 도르데아의 명에 다른 시녀가 재빠르게 침실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행보를 확인한 도르데아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렀다.

‘좀 더 제대로 모셔야 했는데.’

자책하던 도르데아는 순간 흠칫했다. 세실레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도르데아는 제 자식들에게마저 엄하기로 유명했다.

그러한 성품을 좋게 본 황태후 덕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녀는 스스로가 의아하면서도 당장 세실레가 걱정이 되어 눈을 뗄 수 없었다.

***

복도에서부터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의원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묵직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녀들은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침실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엔 제국의 황제, 아르베우타가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황제의 등장에 시녀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이들이 황급히 예를 갖추는 사이 아르베우타는 주저 없이 침대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옅게 드리운 캐노피 속,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세실레를 응시했다.

무감한 시선이었다. 그가 세실레를 돌아본 적이 손에 꼽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째서 황후궁을 찾은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도르데아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황제를 보다, 허겁지겁 도착한 의원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내내 침묵하던 황제가 막 당도한 의원을 향해 명했다.

“진찰해라.”

“네.”

황제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명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내내 세실레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창가에 자리한 의자에 앉아 비서관이 내어준 서류를 팔락일 뿐이었다.

덕분에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창가에선 황제가 업무를 보고 다른 쪽에선 의원이 황후를 진찰했다.

눈이 휘둥그레질 진풍경이었다.

‘의원을 내치려나 했는데.’

희한한 광경에 시녀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선 아르베우타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는 서류에 집중하는지 아예 세실레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의원이 진찰을 마치곤 보고했다.

“황후 폐하께선 그저 기력이 쇠하셨을 뿐입니다.”

“기력이 쇠하였다?”

“네.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면 회복하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기력이…… 쇠했다라.”

의원의 말에 한숨 놓은 도르데아와는 달리, 아르베우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곱씹었다.

그러다 몸을 일으켜 아무런 말 없이 침실을 벗어났다.

도대체 왜 찾아온 건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황제의 행실에 투덜댈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침실은 금방 정적에 감싸였다.

***

세실레가 눈을 뜬 건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물들 무렵이었다.

석양을 응시하던 세실레는 곧 어색하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황태후와 어머니를 발견했다.

깜빡깜빡.

속눈썹이 나풀거리며 두 사람을 응시했다.

깨어나자마자 경기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시녀들의 예상과는 달리 지나치게 조용한 반응이었다.

황태후는 세실레의 얌전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이 있는 틈을 타, 다시금 세실레를 교육할 예정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지.’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힌 황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뭐 하느냐? 시어미가 왔는데 두 눈 치켜뜨고 보기만 하다니.”

그러자 세실레의 어머니, 세렌디테 부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 딸이 아직 미숙하여.”

“입 다물어라. 어째서 황후가 그대의 딸이지? 세실레는 세례를 마친 뒤 인세에 얽매지 않는 몸이 되었거늘!”

“소, 송구합니다.”

공작부인은 황태후 앞에서 절절맸다.

이전이었다면 세실레 또한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나섰을 거였다.

그러다 또 황태후에게 모진 말을 듣고 밤새 눈물을 삼켰겠지.

‘뭐지?’

그러나 세실레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 정신이 어지러워선지 몸이 붕 뜬 것도 같았다.

그러는 중에 달갑지 않은 두 사람이 난리를 피우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시끄러워.’

세실레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녀들이 눈치를 주어도 매한가지였다.

그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더니 다시 스르륵, 이불을 파고들어 누웠다.

“으음.”

고운 음색이 방을 울리자 황태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그녀는 화가 난 듯 성큼성큼 걸어, 침대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곤 당장 머리채라도 잡아챌 기세로 세실레의 얼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네 이년!”

그러나 황태후의 손은 테레사에 의해 막혔다.

테레사가 딱딱한 표정으로 황태후의 손을 잡아채자 황태후의 낯이 하얗게 질렸다. 이어 커다란 목소리가 침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감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러나 테레사의 낯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도리어 테레사의 큰 키 덕에 묘하게 내려보는 구도가 되어버렸다.

단신인 황태후의 얼굴이 귀까지 벌겋게 물들었다.

황태후의 몸이 수치심에 바들바들 떨렸다. 그제야 테레사가 정중히 그녀의 손을 놓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감히 황태후 폐하를 막아섰으니, 죽어 마땅한바. 엄히 벌해주십시오.”

딱딱한 목소리가 칼 같았다. 잘 벼려진 검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누구의 사람인지를 아는 황태후는 화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테레사는 황제의 사람이었고 황태후는 그가 여러모로 자신에게 불만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황제와 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 어차피 잡것들일 뿐이다. 저 기사도. 황후도.’

그리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황태후는 겨우 분을 삭인 뒤, 사뭇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괜찮다. 호위로서의 책임감을 보아 좋게 넘기도록 하마.”

“자비로운 처사에 감사합니다.”

테레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한 뒤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그림자처럼 몇 발 뒤로 물러서 본분대로 침실을 지켰다.

테레사를 지켜보던 황태후가 콧방귀를 꼈다.

‘지금이야 저리 뻣뻣하게 굴지.’

저렇듯 곧은 사람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기 일쑤였다. 곧 태풍이 불 예정이었다. 그녀가 불러일으킬 폭풍이었다.

황태후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그녀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부채를 꺼내 들어 입을 가렸다.

채 숨기지 못한 교묘한 웃음이 눈가에 어렸다. 황태후는 들으라는 듯 커다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래서 태생은 못 숨기는 게로군. 역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더니, 황후의 미래가 빤히 보이는 듯해.”

황태후의 말은 전대 성녀들이 어찌 죽었는지 암시했다.

더불어 세실레 또한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주 같은 말을 늘어놓은 황태후는 여전히 이불 속에 누워있는 세실레를 노려보았다.

저 천한 것의 낯짝이 절망으로 일그러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괜한 짓을 해, 일을 키울 이유는 없었다.

‘곧 하늘이 처리해 줄 테니까.’

황태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곳에 있어 봐야 내게도 좋은 일이 없지, 가자.”

황태후가 걸음을 떼자 그녀를 모시는 시녀들이 졸졸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황태후가 자취를 감추자마자 세렌디테 부인이 다가와 세실레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일어나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러나 세실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분에 겨운 부인이 거칠게 세실레의 뺨을 내려쳤다.

친어미기에 테레사조차 방심했다. 결국 날카로운 손길이 그대로 세실레에게 닿았다.

새하얀 세실레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제야 감겼던 눈이 뜨였다.

자다가 맞은 사람이라기엔 지극히도 무심한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세실레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렀다. 몹시도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세실레는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어머니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당신은 절 때릴 자격이 없어요.”

“자격? 자격이라고? 네가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해!”

그녀가 오열하며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이니! 황후가 되었다고 그리 방자하게 굴면 어떡하느냔 말이야!”

분에 차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하는 모습을 세실레는 가만 응시했다.

그녀는 세실레를 낳아준 친모였다. 한때는 세실레의 모든 것이자 이상향이었던 적도 있었다.

‘황태후가 무서워 벌벌 떠는 모양새라니.’

세실레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지겨워.”

“뭐……라고 했느냐? 지금?”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공작부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세실레는 황망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를 향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지겹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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