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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레는 감았던 눈을 떴다. 분명 잠시 정신이 어찔했는데, 지금은 어째선지 조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몸이 개운했고 항시 달고 살던 두통도 싹 가셨다.
“뭐지?”
기꺼운 것이 아니라, 의아했다. 이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찰나 그녀의 눈앞에 자신의 죽은 몸이 보였다.
관 안에 들어선 시체는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얼굴엔 짙은 화장이 칠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죽은 사람 특유의 질린 기색을 지울 순 없었다.
세실레는 새하얀 옷을 입고 누워있었다. 그 곁을 수많은 국화가 둘러쌌다.
아래엔 검은색 카펫이 깔렸다. 수없이 많은 조문객이 카펫 위에서 줄을 섰다.
개중에 진심으로 그녀를 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제국의 황후가 죽었으니 마땅히 참석했다는 정도의 반응.
어찌하여 젊은 여인이 급사하였는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이제 빈 황후 자리는 누가 차지하는지에 대한 수군거림.
명복을 비는 이들의 반응은 대개 그러했고 그들을 보는 세실레의 반응 또한 무심했다.
‘아무도 울지 않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 누구도 울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조차도 세실레를 위해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았다.
도리어 죄인처럼 구석에 자리해 머리를 조아린 채,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상상하며 진저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가족이라 그런지 마음이 쓰였다. 얼마나 비통하면 저럴까 싶어, 얼굴이나 더 보자며 그들 앞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꼬박 오 년 만에 보는 여동생, 디젤라의 입에서 원망이 흘렀다.
“왜 죽고 난리야?”
“디젤라. 보는 눈이 많다. 입조심 하렴.”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잖아요. 여신의 딸이라며, 그래서 우리 굶을 때도 언니 식사는 챙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죽어서 우리 밥줄을 끊느냐고!”
디젤라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누군가 그대로 칼을 들어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아버지의 미간이 잘게 떨렸다. 한숨처럼 뱉어낸 말엔 원망이 섞여 있었다.
“미련하기는.”
“여, 여보.”
그의 말이 사뭇 충격이었는지 어머니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내내 억눌렀던 심정을 토로하며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말도 없이 죽어? 아팠으면 말을 했어야지. 황실에서 일부러 속인 것이 아니냐며 노발대발하고 있다고.”
“…….”
“이 일을 어쩔 거야! 우리도 다 같이 죽으라는 건가?”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두운 얼굴로 비탄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그의 한탄은 그칠 줄 몰랐다.
“이젠 다 같이 굶어 죽을 게 분명해. 세실레가 죽어도 별일이 없는 걸 봐. 신화는 모두 거짓이었던 거고 우린 이용가치가 다 한 거야.”
그의 말에 디젤라와 어머니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었다. 그들은 손끝을 떨며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당장 저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사람이라, 먹고 사는 건 중요한 문제니까 그런 거라고 다독여보아도 세실레는 자꾸만 치솟는 눈물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물에 푹 젖은 솜이 목구멍 안에 들어찬 것처럼 목이 멨다.
아파도 아프다고 얘기하지 못했던 세월이, 감정 없는 인형처럼 살아왔던 세월이 떠올랐다.
그토록 기나긴 시간을 버텼던 이유 중 하나는 가족 때문이었다. 그들이 또다시 몹쓸 짓을 당할까 봐, 그게 걱정되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혼자만의 힘듦이었나 보다. 결국, 아무도 알아주질 않는 걸 보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이미 죽은 몸이라, 무어라 소리치든 들리지도 않을 텐데도.
세실레는 입술을 꾹 사려 문 채로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흐느끼는 소리 한 점 밖으로 새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어린 시절을 황궁에서 보내면서 터득한 버릇.
아무도 모르게 타오르는 감정이 사그라들 때를 기다리다, 마침내 재가 되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마음을 접으면 됐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녀는 기어코 울음을 터트리지 않은 채로 버텼다.
대신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하나, 둘, 셋.
심호흡을 마치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정을 수없이 죽이고 나면, 무엇에도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오롯한 인형이 되어 살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돼. 난 어차피 죽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그들이 있는 장례식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대리석이 무너지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채 피하지 못한 이들로 인해 장례식장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그려낸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사정없이 깨지며 이리저리 파편이 튀었다.
비단 장례식장에 국한된 재앙이 아니었다.
땅이 휘듯 물결쳤고 한낮의 태양이 모습을 감췄으며 넘쳐 흐르던 강이 메마르고 멀쩡하던 식물이 죽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방이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신화 속 내용대로였다.
[세렌디의 딸이 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 대륙은 바다에 가라앉고 제국의 축복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 말대로였다. 대륙은 점점 요동쳤고 더욱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멀쩡하던 땅이 갈라지며 바닷물이 들어찼고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더 많은 사람이 죽을수록, 더 많은 땅이 물에 잠길수록 세실레의 몸은 점점 하늘 위로 떠 올랐다.
아무리 힘주어 대지에 발붙이려 해도 좀처럼 되지 않았다.
무언갈 붙잡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몸은 하늘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세실레는 저가 몸담아 살던 황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대륙은 완전히 물에 잠겨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이게 무슨.”
뒤늦은 탄식이 흘렀다. 세실레는 멍하니 무너져내리는 제국을 지켜만 보았다.
그러고 있으니 그녀 안의 무언가가 깨져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해왔던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나는 대체 왜 그렇게 살아왔지?’
허망한 감정이 스쳤다. 세실레의 눈동자엔 초점조차 맺히지 않았다. 분노도 원망도 모두 흐릿해졌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그제야 그녀는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갈수록 몸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이대로면 영혼이 뭉게뭉게 흩어져 형체조차 남지 않게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실레는 눈을 감으며 최후의 평화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지척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밉지?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지?”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실레가 눈을 떴다. 그러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가지, 바뀐 점이 있다면 상승하던 몸의 움직임이 멎었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에게로 다시금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대로 떠날 수는 없잖아.”
세실레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히 지상은 아비규환이었고 그녀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세실레는 손을 들어 입술을 더듬었다. 자신이었다. 조금 전 말은 그녀가 뱉은 것이었다.
인지하자마자 새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가. 돌아가서 복수하자.”
복수, 그 단어에 세실레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남아있던 미련이 달라붙어 그녀를 유혹했다.
“가여운 세실레. 정말로 이대로 죽을 셈이야?”
그 말에 응어리졌던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자신의 삶이 참으로 가엾고 또 불쌍했다.
덩달아 마음속 깊숙이 꽁꽁 숨겨 놓고 모른척했던 미움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미워, 너무 미워.”
자신을 이리 만든 이들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고작 저 정도 재앙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을 만큼.
“너희를 용서하지 않아.”
그녀의 존재를 이용하려고만 들었던 사람들. 허울뿐인 성녀라 무시했던 이들.
세실레는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결심하는 순간 몸이 무거워졌다.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다니던 영체는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대로라면 지상을 뒤덮은 바다에 몸이 빠질 터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눈을 떴을 땐,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사방에 붉은 천이 가득했다. 어두운 와중에 오직 촛불만이 차분히 빛났다.
세실레는 급히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대기 중이던 시녀가 조용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
“금방 오실 겁니다. 조금만 참아보시지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세실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무어라 따질 경황조차 없었다.
그녀는 눈을 옅게 내리깐 뒤 생각에 잠겼다. 이 광경은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장면이었다.
‘붉은 조명, 갑갑한 의복.’
그녀는 곧 생각을 마쳤다. 이건 식을 올린 날 당일이었다. 확실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침실에 흐드러지게 꽃잎을 뿌려놓지도, 새하얀 예복을 입고 있지도 않을 테니까.
세실레는 마지막으로 확신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손을 들어보았다.
고생이란 모르고 자란 듯 고운 손등 위로 은색의 달 문양이 곱게 자리했다.
세렌디 신의 상징인 달 문양은 제국의 중대사를 처리할 때나 새기는 표식이었다.
이렇게 차려입고 문양까지 새길 정도면 역시 결혼식밖에 없었다.
‘지금은 첫날밤인 거겠지.’
상황을 파악한 세실레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렀다.
‘어째서 살아 돌아온 거지.’
과거로 돌아오다니,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누워 쉬고 싶었다.
지긋지긋하리만치 익숙한 공간, 포근한 침대. 세실레는 당장 잠들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과거의 일이 맞는지, 혹은 저가 꿈을 꾸었던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었다.
세실레는 겨우 고개를 들어 시녀에게 물었다.
“폐하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