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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곁엔 아무도 없었다-1화 (1/110)

1부

그녀 곁엔 아무도 없었다

1

“기침하시옵소서.”

세실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이네.’

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팔을 들어 제 눈을 가려버렸다.

누군가가 통증에 심각하게 일그러지는 제 얼굴을 목격하지 못하도록.

그녀는 아침마다 고질적인 두통을 앓고 있었다. 지끈거림을 넘어서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지독한 통증이었다.

문제라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녀 외에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그녀를 내내 곁에서 보살피는 시녀들도 담당 의원도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그저 그녀가 지독한 저혈압이라고만 알았다. 그래서 자주 비틀대고 몸에 힘이 없으며 아침마다 힘들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실레는 만성 두통에 시달렸고 그 외에도 수많은 질병을 떠안고 살았다. 그랬기에 허약했고 몸에 힘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세실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나 고작 침대에 몸을 기대는 동작에도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어지러워 몸이 휘청였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대며 버텼다.

시녀들은 평소처럼 황후가 아침이라 기운이 없을 뿐이라 생각하며 세숫물을 떠왔다.

세실레는 흐려진 시선으로 대야를 쳐다보았다. 시야가 일그러져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어지럼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세안을 시작할까요?”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세실레는 요령껏 입안의 살을 깨물며 정신을 부여잡은 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시녀들은 보드라운 수건을 가져다 꼼꼼히 세실레의 얼굴을 닦았다. 따듯한 물수건이 닿자 그나마 통증이 완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도 얼마 가지 않아 세안이 끝났다. 시녀들은 침대에 드리운 캐노피를 치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신한 카펫 위엔 양모를 짜 만든 실내화가 정갈하게 놓였다.

그러나 실내화조차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흐릿한 흰색의 물체를 또렷이 응시하던 세실레는 아주 옅게 숨을 내뱉었다.

‘어지러워.’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더 끌었다간 시녀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세실레는 바닥에 발을 디뎠다.

아주 조금 몸이 휘청거렸으나 이윽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는 곧이어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시녀들은 꽉 죄는 코르셋으로 세실레의 몸을 조였다. 목이 꺾일 정도의 머리 장식을 꽂고 황실의 법도에 맞는 우아한 드레스를 걸치는 과정은 장장 몇 시간이나 계속됐다.

이젠 한계였다. 세실레는 치마를 손으로 꽉 쥐었다.

‘힘들어.’

식은땀이 흘렀다. 차차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가는 그녀를 지켜보던 기사, 테레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건국제가 곧이라, 식이조절을 했더니 그런가 봐.”

그러나 세실레의 표정엔 한결 흠조차 가지 않았다. 심지어 입가엔 미미한 웃음기마저 어렸다.

현재 그녀가 얼마나 아프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는 것이었다.

‘누구도 알아선 안 돼.’

그녀가 아픈 것은 세실레만의 비밀이었다.

자잘한 감기로라도 의원에게 진찰을 받아선 안 되었다.

그랬다간 이 명분뿐인 자리도, 겨우 조달받던 지원도 끊길 게 분명했다.

‘너는 우리 가문의 유일한 희망이다.’

세실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제국의 눈 밖에 난 가문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보고 겪었으니까.

순식간에 먹을 것이 사라졌고 입을 것이 사라졌다.

사용인들은 귀한 것을 몰래 훔쳐다 달아났고 잘 정돈되었던 정원은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흉흉해졌다.

겨울에도 찬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해야 했고 빵 하나를 가지고 가족들과 모두 나눠 먹어야만 했다.

그들이 그토록 배고프고 굶주려야만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세실레를 고작 일곱 살의 나이에 황궁에 보낼 수는 없다며 황명을 거절한 탓이었다.

‘제 딸 아이는 고작 일곱 살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황실에선 무어라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문을 완전히 고립시켜버렸다.

그러면 결국 딸을 보낼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들의 생각은 맞았다. 그렇게 유폐되듯 생활하기를 반년. 정원에 일구었던 텃밭마저도 모두 얼어붙고 더는 벗겨낼 나무껍질마저 없어졌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세실레를 황실로 보냈다.

‘미안하다. 하지만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세실레는 가족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고작 일곱 살의 나이였지만, 세실레는 애써 수긍했다.

예리한 눈초리로 손끝의 움직임마저 평가하는 교사도,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시녀들도, 홀로 지내기엔 지나치게 넓은 방마저도, 모든 것이 낯설고 겁이 나는 중에도 이해하려 노력했다.

밤이면 창가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무서워 떨었고 낮이면 쉼 없이 밀려드는 일과에 치여 살았다.

그러는 중에도 감정은 차곡차곡 쌓여 당장이라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멋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철저한 계산 하에 하라 교육받아왔으니까.

“자고로 황실의 일원이 되시려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고작 일곱 살 소녀에게 가해지는 교육이라기엔 지나치게 가혹했다.

하지만 피할 방법은 없었다.

그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마다 쏟아지는 비난 어린 시선들이 무서워서라도 세실레는 해내야만 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덧 세실레는 성인이 되었고 황실은 서둘러 결혼을 준비했다.

황제의 불치병이 기어코 그의 생명을 앗아간 탓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황태자는 황위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황태후가 새로이 황위에 오른 아들을 보조할 예정이었고 세렌디 신의 축복을 받은 여인도 오랜 기간 황후가 될 준비를 마쳤다.

그게 바로 세실레였다.

황실의 유구한 전통을 잇기 위해, 그러나 감히 외척세력이 황권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혈육 모두를 황실의 감시하에 두는 가문의 딸이 그녀였다.

말이 좋아 공작 가문. 성녀를 배출했기에 격이 높아졌을 뿐 실상은 정계에 진출할 수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도 없는 허울뿐인 가문이었다.

그 모든 것을 황실에서 막아두었으니까.

공작이란 작위도 황후 위에 어울리는 신분을 가진 여자가 필요해서였다. 그들은 결코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황실은 세렌디테 공작 가를 철저히 감시하에 두었다.

누구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 하나 멋대로 구매하지 못하게끔 통제했다. 나중에는 가족들마저 아예 성에 감금시켜버렸다.

황실의 지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만들어놓고, 그들을 목줄 삼아 세실레를 협박했다.

“네가 잘해야, 네 가족도 굶지 않는 거다.”

비루한 가문의 유일한 희망은 저 하나였다. 그런데 어찌 병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후에 벌어질 일을 세실레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티자.’

세실레는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만큼이나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꼿꼿하게 편 허리가 그대로 꺾이며 의식을 놓을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때마침, 시녀 하나가 들어와 조용히 언질을 전했다.

“황태후께서 뵙자 하십니다.”

세실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시녀가 자리를 뜨고서야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황태후가 무슨 말을 할지 벌써 짐작이 된 탓이었다.

어젯밤, 황제가 침실에 들지 않았다.

어찌하여 합방 날 밤을 홀로 지새웠느냐며 추궁을 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억울하게도 세실레는 분명 침실에 있었다. 오지 않은 것은 그쪽이었다.

결혼 후,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는 황제 말이다.

‘왜 그쪽은 질책하지 않고.’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입 밖에 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침묵하고 있자니,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익숙한 장미 향이 코끝을 찔렀다.

“왜 이리들 소란이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황태후였다.

그녀는 노크조차 없이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도 뻣뻣이 치켜든 고개는 처질 줄을 몰랐다.

황태후는 아래위로 세실레를 훑었다. 이윽고 냉정한 목소리가 세실레의 귓가를 날 서게 후벼팠다.

“황후께선 아내로서 기본적인 도리도 못 하시니. 고개를 들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폐하.”

“어찌 사내의 맘을 그리 몰라요. 고고하게 굴어 혹하지 않으면 다가가 낚아챌 생각을 해야지요.”

“황태후 폐하.”

“그리 여유롭게 굴다 노후에 냉궁에 처박히고 싶으신 게 아니시라면.”

“폐하!”

이어지는 대화에 진저리가 났는지 세실레의 목소리가 드물게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황태후는 꿋꿋했다.

도리어 세실레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며 짓씹듯 말을 이을 뿐이었다.

“가문을 돌봐 주는 것이 누구인데. 이까짓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해 시어미의 심성을 어지럽히다니……. 반성하세요.”

내내 들어오던 말이었지만, 손끝이 덜덜 떨렸다. 티 내지 않기 위해 치맛자락을 와락, 움켜쥐었으나 황태후의 비난은 끝이 없었다.

그녀는 매서운 눈을 한 채로 최후의 통보를 날렸다.

“성녀? 착각하지 마세요. 명분이 중요해 그대를 황후로 들였으나 씨를 품지 못하면 끝입니다. 일 년, 그 안에도 소식이 없으면 가차 없이 후궁을 들일 줄 아세요.”

황태후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세실레는 거세게 닫힌 문을 황망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았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속에서부터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이윽고 입에서 왈칵 피가 흘렀다.

검붉은 색의 죽은 피였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세실레의 눈동자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그저 그녀는 조용히 피 묻은 손수건을 소매에 숨긴 뒤 태연한 척 말을 이을 뿐이었다.

“오늘 황제께선 시간이 있으시다던가?”

“그것이…….”

“점심을 같이할 시간조차 내줄 수 없으시다던가.”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시녀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세실레의 속눈썹이 길게 내리깔렸다.

“그렇구나.”

체념하는 기색이 짙은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는 투였다.

그녀는 그저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들이켜다, 갑작스레 드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시렸다.

온몸이. 몸을 감싼 뼈마디가. 그보다도 더 깊숙이 처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 시렸다.

‘어째서 몸이 이리 떨리지.’

의아했지만 표정에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감정의 기복 따윈 느껴지지 않는, 고아하고 아름다우나 죽은 얼굴.

그 얼굴을 한 채로 세실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쓰러졌다.

우습게도. 그것이 그토록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던 세실레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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