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여기에 뭐가 있다고……?”
이브는 벽면을 훑으면서 중얼거렸다. 도저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밤이 깊어서 감옥 안은 어둠, 그 자체였다.
‘마법으로 어둠을 밝힐 수도 없고.’
마력을 차단하는 재질의 건물이라,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이브는 곤란한 시선으로 벽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쇠창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귀신 소리를 내었다.
“흐흐흐…….”
“뭐, 뭐야?”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간수들이 곧장 이브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잽싸게 감옥 구석에서 잠을 자는 척했다.
“이브 에스텔라!”
“으음…… 네?”
“너 방금 웃지 않았나?”
“제가요?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는데요……?”
하암, 하품을 한 이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맹하게 대답하자, 간수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당황한 시선을 교환했다.
“저기 간수님…… 오신 김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무슨 일이냐?”
“여기 횃불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어두운 곳에서는 잠을 잘 못 자서요…….”
“가지가지 하는구만. 아까까지만 해도 잘만 자던 녀석이?”
“겨우 잠든 거였는데, 간수님이 깨우신 거잖아요…….”
이브가 한탄하듯 투덜거리자, 간수들은 일순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마법사인 널 뭘 믿고 횃불을 준단 말이지?”
횃불을 들고 있던 간수가 의심의 눈초리로 이브를 노려보며 횃불을 슬쩍 뒤로 숨겼다. 눈을 깜빡이며 무해한 사람을 연기한 이브가 양순한 얼굴로 눈썹을 휘었다.
“너무 무서워서 그래요……. 자꾸 귀신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여기 원귀가 많은 것 같아요. 으으.”
“뭐?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나 참!”
간수들을 웃긴 소리를 들었다는 듯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마법사라…… 이런 쪽으로 되게 잘 느끼는 편인데, 여기 음의 기운이 엄청나요.”
“음의 기운이 뭐냐?”
“사람이 원한을 가진 채로 죽으면 망령이 되어서 세속을 맴돌게 되거든요. 그때 그 망령이 특유의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데, 그걸 음의 기운이라고 해요.”
이브는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혹시 여기서 사람이 많이 죽었나요?”
사실 이브는 여기가 마법사들의 감옥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간수에게 물었다. 여기서 마법사들이 죽어 나갔다는 걸 알고 있는 간수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여름인데도 여긴 좀 춥지 않나요……?”
지하니까 추운 게 당연했다. 심지어 밖은 달이 중천에 뜬 깊은 밤이었다.
기후와 지리를 생각하면 지하가 지상보다 추운 게 당연하지만, 간수들은 이브의 말에 설득되어 버렸다.
“음의 기운은 차가워서, 따뜻한 불 같은 걸 설치해 주면 괜찮아져요.”
“그게 정말이냐?”
“네, 정말이에요.”
확신에 찬 그녀의 긍정에 간수들이 눈빛을 교환하며 속삭였다.
“뭐 어차피…… 여기서 마법은 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냥 줘 버리자고. 어차피 곧 죽을 녀석인데, 잠이라도 잘 자야지.”
저기요, 다 들리거든요.
하지만 이브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천진한 얼굴로 눈만 끔뻑끔뻑 깜빡였다. 그러자 한 간수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쇠창살 사이로 횃불을 집어넣었다.
“빨리 받아!”
“가, 감사합니다!”
이브는 넙죽 고개를 숙이곤 황급히 횃불을 받았다. 그러곤 불을 구석에 세워 두었다. 이러니까 나름 약간 운치도 있고 좋…… 기는 개뿔.
‘빨리 나가고 싶다.’
불 하나 얻으려고 구걸을 해야 한다니, 갑자기 탈옥 욕구가 치솟았다.
그러나 그런 속내와 다르게 이브는 다소곳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러면 안녕히 주무세요, 간수님들.”
“우리가 잠을 자면 직무유기다, 요 녀석아.”
그러나 이브의 깍듯한 인사가 나쁘진 않았는지, 간수들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암…….”
하품을 한 이브는 자는 척 땅에 귀를 대고 누웠다. 점점 간수들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이다!’
잠시 뒤, 이브는 벌떡 일어나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횃불 아래 그녀는 노아가 준 쪽지와 책을 펼치고 내용을 대조해 보았다.
[우리 자매들의 영혼이 모인 그곳에, 같은 미래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 흔적을 남겨 놓으리라.]
영혼이 모인 그곳.
이브는 노아가 왜 이 감옥 안에 그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는지, 알 법했다.
마법사들이 가장 많이 죽어 나간 곳이 이 감옥, 그녀가 갇힌 곳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간수들이 말하는 걸 엿들었지만.’
그들 딴에는 본인끼리 속닥인다고 했지만, 그녀의 귀에까지 닿았다.
이브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횃불을 들고 벽면을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구석구석까지 훑어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다른 장소를 뜻하는 거였나?’
이브가 회의적으로 책을 내려다보았다.
‘아니야, 조금만 더 조사해 보자.’
고작 한 시간 정도 살펴보고 포기하기엔 걸린 목숨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는 횃불이 꺼지기 전에, 빠르게 벽면을 훑었다. 이번엔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닌, 손으로 훑어보았다. 혹시 손끝에 걸리는 거라도 있으면 재빨리 횃불을 갖다 대고 유심히 관찰했다.
“후…… 없는 건가.”
아무리 손으로 더듬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
‘어……?’
이브는 벽면 중에 유독 차가운 표면이 있는 걸 발견하고 손으로 매만졌다.
다시 한번 더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점점 확신이 차올랐다.
‘이건…… 누가 마법으로 차갑게 만든 표면이야!’
책에 적힌 흔적이 진짜라는 걸 깨닫자, 그녀의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또 다른 난관에 막혀 시름에 빠졌다.
‘흔적을 찾아낸 건 좋은데, 이다음엔 뭘 해야 하지?’
요리조리 만져 봐도 버튼 같은 것도 없고, 숨겨진 메모도 없었다. 하지만 이브는 이 표면에 무언가 숨겨진 장치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마력을 한번…… 넣어 볼까?’
하지만 여긴 마력이 차단된 건물인데, 어떻게 마력을 쓰라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은 이브가 벽돌에 손을 대고 마력을 흘려 보내자, 갑자기 찌릿한 전류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그리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기시감이 드는 상황이었다.
‘환상 마법!’
이브는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리아 루시엘라? 리아!”
이브는 누군가 제 어깨를 흔들며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누구……?”
“지금 얼빠진 소리나 할 때야? 어서 성녀를 구해야 한다고!”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에 이브는 얼떨떨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이었다.
“여긴 제도……?”
하지만 제도라고 하기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곳곳에 피어오르는 불꽃, 끔찍한 소리가 뒤엉켜 아비규환이었다.
“아무래도 얘, 텔레포트 때문에 정신이 멍한가 본데?”
주위에 있던 다른 여자가 말했다. 이브는 주위에 있는 여자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똑같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옷을 본 적이 있었다.
‘에스텔라 서재에서 봤던 옷이야.’
100년 전 마법사들이 입었다는 옷들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은 100년 전의 순간에 와 있는 건가?
그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붉은색이었다.
“리아, 지금 텔포 후유증에 빠져 있을 시간 따위 없어. 이러다가 정말 포털이 열릴 거야!”
“포털이라면, 지하로 연결되는 포털?”
“이제야 좀 정신이 돌아왔나 보네. 빨리 성녀를 구하러 가야 해!”
이브는 주위에 이끌림에 떠밀려 얼떨결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악마들이 그들의 주위를 에워쌌다.
“크큭…… 여기부터는 못 간다.”
[이엘로!]
마법사들이 주문을 영창하자마자, 마법진이 나오며 악마들에게 얼음 화살들이 박혔다.
그녀들의 마법에 악마들은 너절해진 채 쓰러졌다. 이브는 왠지 익숙한 그 광경을 지나치며 마법사들을 따라 달려갔다. 그러자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성녀가 피로 그려진 문양 안에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영희!”
바로 성녀였다. 이전 대 성녀도 유리와 같은 곳에서 왔는지 익숙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마법사들이 발끈했다.
“젠장! 엘라 녀석들은 성녀도 못 구하고, 뭐 하고 자빠진 거야!”
“왜…… 성녀가 저기 갇혀 있는 거야?”
이브는 좀처럼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옆에 있던 마법사가 당연한 사실을 묻느냐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당연히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겠지.”
“제물? 무얼 위한 제물?”
“그걸 몰라서 물어? 악마들의 속셈이야 뻔하지!”
“성녀를 이용해서 지하의 문을 열려고 하는 거야.”
어떤 마법사가 차분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브는 일순 사고가 정지했다.
‘……성녀가 제물이라고?’
그런 그녀를 의아하게 보던 마법사들이 그녀를 불렀다.
“리아, 어서 성녀를 본래 세계로 보내야지.”
“여기서 유일하게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건 너잖아.”
“응.”
이브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입이 움직였다. 그러자 지반이 열리면서 거대한 문이 바닥에서 열렸다. 문이 서서히 열리며 문틈 사이로 빛무리가 쏟아져나왔다.
눈이 부셔서 눈을 찌푸리고 있는데 눈앞의 광경이 다시 일렁이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곧 어둠이 찾아왔다.
‘방금 뭐지……?’
이브는 다시 삭막한 벽면을 보고 흠칫했다. 시공간에 있다가 빨려 나온 기분이었다. 악마의 편지를 받을 때와 달리 은근하면서 불쾌한 현기증도 남지 않았다. 마치 신기루를 보고 온 기분만 남았다.
감옥 안의 횃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며 꺼졌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제물이 성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