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한편, 한참 숲 안을 헤매던 이브는 가까스로 마차들이 지나가는 외진 길을 발견했다. 마차를 본 이브가 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었다.
“여기 사람 있어요!”
그런데 마차가 그대로 지나가려는 게 아닌가!
황당했던 이브는 미간을 왈칵 찌푸렸다.
아니! 이렇게 선량하고 불쌍한 사람을 지나치는 매몰찬 사람을 봤나.
“거기 서! 멈추라고!”
오기가 치민 이브는 마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저 마차를 얻어타고 말 테다!
‘언제 마차가 오는지 알고 기다려!’
사실 이 때문에 저 마차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치 초원 위를 가르는 말처럼 뛰던 이브는 가까스로 마차를 추월해 그 앞을 막았다.
“후욱, 자, 잠깐만요! 나 좀 태우고 가 줘!”
“히익! 마녀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마차를 이끌던 마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녀에게 살려 달라 애원했다. 이브는 황당한 시선으로 그를 보다 제 모습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이게 무슨 몰골이람.’
머리는 산발에 옷은 완전히 누더기였다.
릴리트에게 입은 상처로 옷까지 피범벅……. 누군가 이런 숲에서 튀어나온다면 섬뜩하게 보일 모습이긴 했다.
“저, 저한텐 토끼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부디 자비를.”
지금 마부는 두려움이 앞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했다.
이브는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저 마녀 아니고, 사람이에요.”
“히이이익!”
그녀가 말을 걸자 마부는 도리어 기겁했다. 이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렇게 잠시 뒤. 여러 번의 대화 시도 끝에 완전히 오해를 푼 마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아휴, 미안하구만. 이 근처가 워낙 흉흉한 일이 많아서 말이야.”
오해했던 게 미안했는지 마부는 흔쾌히 마차를 얻어타는 걸 허락했다. 마차의 짐칸에 함께 몸을 실은 이브는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휴우, 숲에서 영영 갇힐 뻔했네.”
“아니, 근데 왜 아가씨는 이런 숲에서 그런 모습으로 있던 건가?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구먼.”
마부가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앞으론 이런 숲엔 얼씬도 하지 말아. 아주 무서운 숲이여.”
“여기가 어디인데요?”
이브는 이제껏 제가 있던 곳이 어딘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마부는 그것도 모르고 여길 돌아다녔냐며 깜짝 놀랐다.
“마물의 숲이지. 나도 돈만 아니면 절대 이 근방은 얼씬도 하지 않았을 거야.”
“마물의 숲이요……?”
어쩐지…….
이브는 숲에서 흔한 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여름에 가까워지는 이 날씨에 나무들이 앙상한 것도 이상했고.
돌이켜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브는 제도에 도착했다.
“앞으론 조심하게, 아가씨.”
“감사합니다. 아, 혹시.”
이브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마부는 그녀가 이브 에스텔라라는 걸 끝까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하긴, 이브 에스텔라가 이런 몰골로 돌아다닐 거라고 어느 사람이 예상하겠어.’
지금 그녀의 모습은 당장 길거리에서 구걸해도 위화감이 없을 몰골이었다.
“돈을 더 지불할 테니, 에스텔라 백작저까지 데려가 줄 수 있을까요?”
그녀는 품에 있던 금화를 꺼내어 마부에게 보여 주었다. 마부의 눈이 커졌다. 그녀를 태운 마차는 금방 다시 움직였다.
* * *
“이브! 그 모습은…….”
백작은 누더기가 되어 돌아온 이브의 모습에 반쯤 실신할 듯 쓰러졌다.
남편을 뒤에서 받은 백작 부인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이, 이브…….”
충격이 컸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넋을 잃은 부모님 사이에서 노아가 심각한 얼굴로 나와 이브 앞에 섰다.
“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웬일인지 그걸 묻는 모습이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곤 이브의 팔을 보고 얼굴을 왈칵 찌푸렸다.
“이 팔 상태는 뭔데?”
사람 손톱이 아니라 큰 짐승한테 할퀸 듯한 흔적이었다. 노아는 황당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디서 호랑이랑 싸우기라도 한 거냐?”
“뭐, 비슷해…….”
이브는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악마와 싸웠다고 실토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쩌다가 악마와 싸웠냐는 질문이 나올 테고, 그럼 자신이 발레리안의 세례식에 갔다는 사실까지 밝혀질 테니까.
‘절대 안 돼.’
이건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녀는 괜히 이마를 짚으며 엄살을 피웠다.
“어머니, 너무 피곤해요…….”
“어서 방에 가서 누워 있으렴!”
백작 부인의 시선을 받은 노아가 한숨을 내쉬며 이브를 안고 방으로 데려갔다.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아온 백작 부부는 노아가 이브를 침대에 눕히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이브, 치료사를 데려올 테니 아파도 잠깐만 참고 있으려무나!”
이어 그들은 제일 실력 좋은 의원을 데려오겠다며 부리나케 방을 나갔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던 이브는 바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노아는 기겁했다.
“지금 그 상태로 뭘 하려고?”
“찾을 게 있어서.”
이브는 슬쩍 문을 열어 서재 쪽으로 갔다. 노아가 그 몸으로 미친 게 아니냐며 말렸지만, 그녀는 제 앞에 놓인 상황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아무래도 내 마법이 이상해.’
이렇게 상급 악마까지 제압할 정도면 진즉 원작에서 언급이 되었을 텐데.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발레리안이 준 약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너, 대체 누구랑 싸우다가 온 거야?”
그녀의 뒤를 쫓아온 노아가 물었다. 이브는 눈대중으로 마법서를 찾으며 말했다.
“악마.”
“뭐라고?!”
노아가 화들짝 놀랐다.
“악마랑 개싸움을 하고 왔다고? 그래서 그 악마는 어떻게 되었는데?”
“저승에 있겠지.”
이브는 건성으로 대답하곤 책을 뽑았다.
‘찾았다.’
책을 펼치려던 순간, 노아가 이브의 책을 확 뺏었다. 이브는 그런 노아를 노려보며 짜증 냈다.
“무슨 짓이야?”
“전후 상황을 설명해.”
“어떤 악마가 나한테 시비를 털었고, 나는 그에 적절히 응수해 줬을 뿐이야. 됐지?”
“아니, 뭔가 이상한데.”
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숨기고 있지.”
“…….”
그를 빤히 쳐다보던 이브는 결국 한숨과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차피 편지의 존재를 아는 건 나랑 노아뿐이니까.’
이 상황에 대해 논의할 만한, 적절한 상대는 노아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마친 이브가 노아의 손에 있는 책을 도로 빼앗으며 말했다.
“이 사실은 어머니랑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해 줘.”
한숨을 내쉰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의 문제만 관련되면 이성을 잃는 부모님을 이번 기회로 아주 잘 알게 된 탓이다.
‘어떻게 이브의 정체를 숨길 생각을 하셨는지.’
노아는 그게 가장 충격이었다.
“근데 거기서 릴리트가 날 어떻게 알아본 건지 모르겠어.”
“그 편지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던 거 아니야?”
노아의 추측에 이브의 눈이 커졌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이브는 마법서를 펼쳤다. 먼저 발레리안이 가져다준 영약에 관해 찾아보았다.
[카빌라.
세간엔 영약, 불로초로 알려진 약이지만 사실 이 약초의 진짜 효과는 몸속에 있는 마력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
특히 힘이 각성되지 않은 마법사가 복용할 시, 잠재된 마력이 개방되고 극상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된다…….
이 전설의 약초를 먹는다면 바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항설이 있는데, 사실인지 누가 간증 좀 해 주면 고맙겠삼. ^^]
“바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이브는 제 눈을 의심했다. 완전히 마법사를 위한 영약이 아닌가.
[추가로, 물을 조종하는 마법사가 그 약을 먹으면 날씨를 조종할 수도 있다고 함. 물론 이것도 풍문임. ㅇ_ㅇ;;]
우스갯소리처럼 들어간 첨언이었지만 이브의 시선은 그곳에 꽂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그간 날씨가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건가?
“이건 악마에 관련한 책이야.”
책장을 둘러보던 노아가 이브에게 한 책을 건넸다. 그 책을 받은 이브는 편지의 존재를 떠올리곤 방으로 향했다.
‘발레리안이 준 약, 정말 굉장한 거였잖아…….’
여전히 영약 카빌라에 관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였다. 방에 들어온 이브는 편지를 보관해 두었던 상자를 열어 편지를 펼쳤다.
그러나 편지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문양이 사라졌어…….”
편지를 본 이브는 편지를 보았다. 분명히 문양이 있던 자리를 이모저모 살펴봤지만,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럼 이 문양에 마법이 걸려 있던 건 확실하네.”
노아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어떻게 알고 나한테 보냈냐는 거야.”
“글쎄…….”
노아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한번 만난 거 아니야? 이 편지를 받기 전에.”
“으음, 그런 건가…….”
밖에서 만난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대신전과 황궁에서 마주친 사람만 백 명이 넘는다. 후보군이 너무 많았다.
‘잠깐만, 델르노 숲에서 내가 빠져나오자마자 악마가 출몰했다고 했지…….’
그녀는 발레리안이 부상을 입었던 그 당시를 떠올리며 흠칫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했다.
‘그때, 누가 날 지켜보고 있던 건가?’
왜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일순 마차에서 비가 왔을 때 그녀를 미묘한 시선으로 보며 웃던 마부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릴리트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상급 악마는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걸 불현듯 떠올렸다.
그때 방의 문이 열렸다. 잔뜩 치료제를 들고 온 백작 부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무언가 이상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이브! 누군가 찾아왔는데…….”
“누구인데요?
“바, 발레리안이 찾아왔단다…….”
백작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브는 당장 돌려보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모습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