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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혼, 취소하고 싶습니다-10화 (10/100)

10화

“이브, 이게 널 살릴 수 있을 거야.”

그는 그녀가 그간 보지 못했던,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브는 그가 내민 상자를 받았다.

“이게 뭐야……?”

그가 건넨 상자는 가벼웠다. 안에 무엇이 들었기에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황실의 카니엘 리데반을 불러줘.”

발레리안이 돌연 자비에에게 요청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던 자비에가 말했다.

“다짜고짜 황궁의를 찾으면 어쩌자는 거지?”

“이게 이브를 살릴 수 있어.”

자비에는 이브를 바라보았다. 결정권을 그녀에게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브는 난감한 시선으로 상자를 열었다.

인삼을 닮은 이상한 약초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약초라고 하기엔 뿌리의 색이 조금 이상했는데, 초록색이었다.

‘이거 독초 아니야?’

이브는 꺼림칙한 시선으로 약초를 바라보았다. 자비에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약초를 보더니 눈을 홉떴다.

“이건……!”

그가 그렇게 놀라는 건 처음 보았기에 이브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비에를 쳐다보았다.

“불로초로 알려진 카빌라.”

발레리안이 대답했다. 자비에는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마를 짚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생전에 이 약초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심지어 이런 방식으로.”

카빌라를 캐 왔다는 소식이 어느새 궁의부에까지 닿았는지, 카니엘은 헐레벌떡 응접실로 달려왔다.

궁의부의 최고 권위자인 그는 처음 보는 카빌라의 모습에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살다 보니 이걸 제 눈으로 보게 되는 날이 오는군요……!”

다 똑같은 말들이었다. 궁의부 사람들이 모두 응접실로 모이고 있는 기이한 사태에 이브는 굉장한 불길함을 맛보았다.

“그럼 이걸 황제 폐하께……!”

그들 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지금 황제는 병환으로 국정을 황태자인 자비에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귀한 약초라면 제국의 태양인 황제 폐하께 드리는 게 응당 맞는 도리이리라.

그 얘기를 듣자마자 퍼렇게 눈을 빛내는 발레리안을 본 자비에는 한숨을 삼켰다.

“아니다…… 병증에 귀천이 어디 있겠나. 먼저 급한 불을 끄는 것이 맞지.”

“하오나 전하……!”

이 모든 것이 허위 진단이라는 걸 아는 카니엘은 반발했다. 하지만 입을 닥치라는 자비에의 눈빛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비에도 속이 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여기서 황제의 치료를 간절히 바라마지않던 사람은 아마도 그의 아들인 자비에였을 테니.

‘어차피 영애의 거짓말이 아니었으면 구하지도 못할 약초였다.’

그리 마음을 다스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애께 복용 방법을 알려 줘라.”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몰라 당황하던 이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잠깐…… 발레리안!”

“왜 그래, 이브? 어디 아파?”

발레리안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며칠 못 본 사이에 그녀의 병증이 더 심각해졌을까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상태로 그는 불로초이자, 영약의 재료인 카빌라를 구하는 것에 성공했다.

“아, 아니. 괜찮아. 난 이제 정말 괜찮아. 리안.”

이브는 저 귀한 약초를 제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실제로 아픈 것도 아니었으니.

발레리안은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괜찮지 않다는 의미로 들려 마음이 급해졌다.

혼자 죽음을 준비하던 이브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가슴이 타들어 가기만 갔다.

결국, 발레리안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약초를 이브의 입에 넣어 주었다. 어차피 카빌라는 별도의 복용 방법을 따르지 않아도 약의 효용엔 영향이 없었다.

그저 이 약초가 카빌라라는 걸 황궁의한테 확인받았으면 된 것이다.

당혹스러움에 버둥거리던 이브는 입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화한 맛에 저도 모르게 입을 오물거렸다.

‘미, 민트초코 맛이 나…….’

불로초에서 민트초코의 맛이 난다는 건 생전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렇게 전생의 추억을 떠올리며 꿀꺽, 불로초를 삼킨 그녀는 경악하는 의원들의 시선에 머쓱히 입을 닦았다.

“이브, 몸은 어때?”

“잘 모르겠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던 이브는 속에서 올라오는 화한 기운에 당황했다.

“어라? 갑자기 굉장히 몸이 가벼워…….”

그녀는 갑자기 퍼지는 약 효과에 당혹스러웠다. 보통 약이라고 한다면, 섭취 후 몇 시간 후에 효능이 나타나지 않던가.

원래도 건강체였던 그녀의 몸에 불로초까지 들어가자, 그녀의 몸은 깃털이 된 듯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약효가 빨리 일어나는 게 정상인가요……?”

그녀가 머쓱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심지어 의원들-에게 열기 어린 시선을 받는 게 오랜만인지라 참으로 어색했다.

“모든 병을 낫게 해 준다는 전설의 비약을 먹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 당연한 효과입니다.”

카니엘은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으로 말했다.

무척 할 말이 많았지만, 황태자의 눈총으로 그는 가까스로 말을 아낄 수 있었다.

이브는 제 몸에 일어난 변화에 신기했다.

‘몸도 가볍고,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미친 근자감이 드는 건 왜일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거, 사실 불로초가 아니라 이상한 약 같은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하기엔 정신이 너무 말짱하고 맑은데…….’

발레리안은 그녀의 몸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는 걸 깨닫고, 기쁘게 웃었다.

“이브, 정말 다행이야.”

“으, 응. 고마워…… 리안.”

그녀는 난감한 미소를 삼키며 대답했다. 진짜 환장할 노릇이다.

* * *

“이브 에스텔라,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더냐!”

집에 돌아오자, 그녀의 상태를 본 백작은 깜짝 놀랐다.

이브는 이미 그가 황실에서 소식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어요.”

“아니, 네 몸에 흐르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무엇이냐 묻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로서 소질은 없지만, 마력을 느낄 수는 있던 백작은 이브의 등장과 동시에 느껴지는 막대한 마력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네……?”

복도를 걷던 이브는 그의 설명에 멈칫했다.

“그, 그게 황궁에서 뭘 먹었는데…… 그거랑 연관이 있는 걸까요?”

그녀는 황궁에 있던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듣던 백작의 얼굴빛이 하얘졌다가 붉어졌다가 종잡을 수 없이 변했다.

“우리에겐 나쁘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구나.”

그의 눈빛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직감한 이브는 단호히 말했다.

“반역 같은 거 할 생각 없으니까 헛물켜지 마세요.”

“끙…….”

그녀의 말에 노골적으로 아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를 보며 이브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민트초코 맛이 나는 이상한 약초였는데…….’

그게 마력을 증대시켜 주는 비약이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나.

마력을 극소량 가진 일반인은 그저 병을 치료하는 약초.

하지만 타고난 마력이 많은 그녀에겐 불로초의 의미, 그 이상이었다.

“휴, 이제 어떤 핑계로 도망치지.”

하지만 그녀에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파혼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

이제 이유리가 강림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그 시간까지 무사히 파혼하고 도망쳐야만 했다.

* * *

청명한 하늘 아래, 오후.

평화로운 대신전의 기도실.

대주교 아리엘은 갑자기 사라진 발레리안을 걱정하며 그곳을 서성였다.

또한, 갑자기 들려온 소식에 그녀는 더욱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브 에스텔라.

친한 친우의 막내딸인 그녀가 시한부 여생을 살게 되었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아마도 발레리안은 그 소식에 상심하여 떠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서 발레리안이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올 수 있길, 신께서 보살피고 도와주소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아리엘은 홀로 기도했다. 그리고 전해진 소식에 아리엘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래서, 발레리안이 왔다니?”

“네, 이브 에스텔라 영애를 위해 불로초를 구하느라 사라진 거였어요.”

소식을 전해 온 신관은 이미 그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 감동의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아리엘도 그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쩜 이렇게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

신이라면 분명 그들의 앞을 축복해 줄 터였다. 아리엘은 감명에 물든 얼굴로 기뻐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침 좋은 소식이 있으니, 발레리안이 오면 불러주겠니?”

“네, 대주교님.”

신관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주교 아리엘은 어제 일어난 일에 묘한 고양감에 흠뻑 젖어 있었다.

‘신탁이 내려졌다.’

정확히는 어제 새벽.

대주교들이 모여서 신에게 기리는 기도를 올리는 날이 한 달에 한 번 있었다.

그때, 신탁이 내려졌다.

우리 세상을 구원하고 지켜줄 신의 대리자가 내려온다는 목소리였다.

100년 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성녀는 죽었고, 그 뒤로 성녀의 강림은 없었다.

그렇게 대신전의 위세는 나날이 저물어가고 있을 때, 구세주처럼 신탁이 내려진 것이다.

‘아직! 신이 우릴 버리지 않았어!’

대주교들은 그 사실에 열광했다.

이제 곧 성녀의 강림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아마 이번 성녀님도 태양의 힘을 가진 기사를 보면 만족스러워하겠지.

아리엘의 푸근한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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