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에르퀼 저택에서 지내는 나날들은 친정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숙련된 버틀러가 있는 저택은 그녀가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될 만큼 잘 관리되고 있었고 덕분에 할 일이라고는 없었다.
이졸데는 방에 틀어박혀 수를 놓거나 책을 읽었고 때때로 누군가의 부인이 된 친구들을 초대해 티타임을 가졌다. 매일 반복되는 비슷비슷한 일상이어도 이졸데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꿈 같은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바라 왔던 남편은 설탕 과자처럼 달콤하게 굴기만 해서 그녀는 때때로 이게 꿈은 아닌지 제 팔뚝을 꼬집어 봐야 했다. 함께 식사하고, 간혹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정원을 걸었다.
정원은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에 타인의 눈길이 닿지 않을 만큼 폐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끄러운 디딤돌이 깔린 잔디밭을 지나치면 빼곡하지만 조화롭게 배치된 꽃나무와 덩굴 그리고 키 낮은 화초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꾸며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꽃이 있습니까?”
“이미 완벽한걸요. 튤립을 좋아하는데, 여기 있으니까요.”
그녀는 색깔별로 늘어선 튤립밭을 손끝으로 훑으며 홀린 듯 대답했다. 걷는 내내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정원 깊숙이 들어가자 커다란 분수대가 나타났다. 분수대 위로 작은 무지개가 걸렸다.
햇빛이 충분하게 비쳐 드는 정원은 낮잠을 자기에 딱 좋을 만큼 아늑했다. 이졸데는 서둘러 달려가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기분 좋을 만큼 차가운 물속으로 손을 담그고 빙글빙글 돌리며 물장난을 치던 그녀의 입가로 절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졸데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당신도 이리 오라며, 남편을 부를 생각이었던 그녀는 어딘지 멍한 얼굴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살짝 찌푸린 눈이 눈부신 것을 보는 듯했다. 괜히 부끄러워진 그녀는 서둘러 분수대로 시선을 돌렸다. 맑은 물 바닥에 깔린 흰색 자갈이 반짝반짝 빛났다.
모른 척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온 신경이 쏠렸다. 어느 순간 훌쩍 가까워진 인기척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던 이졸데는 다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얼마나 가까운지 남자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손끝이 이졸데의 턱을 가볍게 받치고 입술이 맞물렸다. 순간 청량했던 물소리나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했고 그녀의 심장이 멈춘 것 같기도 했다.
살며시 떨어져 나갔던 입술이 다시 가볍게 달라붙었다. 그녀는 잠시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발음이 달라붙는 입술에 뭉개졌다.
“리카온….”
“리라고 불러요.”
가슴이 벅차올랐다. 애칭을 허락하는 목소리며 달콤하게 내려앉는 입맞춤이며.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설마 꿈인 건 아니겠지?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결혼식을 기점으로 누군가가 무심한 리카온과 지금의 다정한 남편을 바꿔치기한 게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의심마저 하게 될 지경이었다.
세상만사 관심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사내의 어디에 이런 열정이 숨어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의 이런 모습을 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짜릿했다. 견딜 수 없는 만족감이 온몸을 휘감고 돌았다.
그녀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일인지 몰랐다. 매일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이졸데는 해가 뜨고 다시 저물기를 반복하는 날들 속에서 그를 향한 사랑이 속절없이 깊어지고만 있음을 느꼈다.
불현듯 덜컥 겁이 난 이졸데는 저를 가두듯 분수대 턱을 짚은 남자의 팔을 꽉 붙잡았다. 손안에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은 절대 꿈일 리가 없다는 듯 생생하기만 했다. 슬금슬금 나타났던 불안을 단번에 쫓아낼 만큼 선명한 감각이었다.
남자가 그녀의 입술을 몇 번이나 부드럽게 빨더니 살며시 벌어진 입술 안으로 혀를 넣었다. 이제 키스를 어떻게 하는지 아는 이졸데는 멍하니 있는 대신 적극적으로 혀를 얽으며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점점 깊어지는 키스에 몰두하는 사이 몸이 붕 떠올랐다. 이졸데를 안아 든 남자가 서너 걸음 걷는가 싶더니 어딘가에 앉으며 그녀의 몸을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조금 민망한 자세였지만 그의 품에 가득 끌어안긴 느낌이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치마를 들추고 가느다란 발목부터 종아리와 무릎을 지나 허벅지를 꽉 움켜쥐는 손길마저 달게 받아들이던 이졸데는 선선한 바람 한 줄기가 뺨을 스쳐 지나갔을 때가 되어서야 화들짝 놀라며 남자의 어깨를 밀어 냈다.
때로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사내가 있다고 하던데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 걸까? 이렇게 야외에서 일을 치르는 걸 좋아한다든가. 그녀는 가능한 남편에게 맞춰 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당혹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밖이잖아요.”
“아무도 안 올 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자 남자가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며 속삭였다.
“어떻습니까? 또다시 나와 불장난을 칠 마음이 있습니까?”
간지럽도록 속삭이는 목소리는 영문 모를 것을 묻고 있었다. 남편과 몸을 섞는 것이 어째서 불장난이 된단 말인가? 그녀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단어 선택이 우스워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렇게 불한당처럼 말하는 거예요?”
남자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졸데가 더는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그의 손은 대담하게도 그녀의 속옷을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민망해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 행동을 제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얇은 천 조각이 느릿하게 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에 온 신경이 쏠린 것을 알아차렸는지 남자가 다시 입을 맞춰 왔다.
남자는 야외라는 사실을 개의치 않는 것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치마 속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언제 이렇게 젖었습니까? 응?”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자꾸만 간지럽게 속삭였다. 어느샌가 다리 사이로 파고든 손가락이 음부를 벌리고는 미끈거리는 액체로 흠뻑 젖은 음핵을 문질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신음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이졸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답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음탕하긴. 이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요? 어젯밤은 얌전히 잠만 잤습니까?”
“흐으… 읏….”
“응? 왜 대답을 안 해.”
그녀는 남자의 셔츠를 찢어져라 부여잡고 그가 주는 자극을 견디려 애썼다. 계속해서 무어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희미하게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졸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매만졌다. 턱에 입을 맞추고 슬며시 올려다보자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금빛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귀엽게 굴긴.”
남자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귓속으로 뭉클하게 혀가 밀려들었다. 민감하고 연한 살을 샅샅이 핥는 감각에 이졸데는 허리를 비틀며 목을 움츠렸다. 절로 눈이 감겼다.
“응….”
남자의 어깨를 꼭 붙잡고 숨을 몰아쉬던 이졸데는 갑자기 휑한 느낌이 들어 화들짝 놀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목 끝까지 잠가 두었던 드레스의 단추가 모조리 풀려 있었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속옷과 윗배까지 고스란히 드러난 걸 본 그녀는 흠칫 놀라며 옷을 여미려 했다.
“그렇게 가리면 젖을 빨아 줄 수 없는데.”
젖은 입술이 목덜미의 얇은 살결을 빨아들이며 말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숨에 다시 한번 간지럼이 일었다.
유독 관계를 가질 때면 돌변하곤 하는 그의 태도와 말투는 쉽게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천박하기까지 한 말투와 거침없는 행동, 마치 그녀의 수치심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지, 놀랐던 마음도 갈수록 마냥 싫지만은 않아졌다.
그의 입술이 발음한 단어가 스위치가 된 것처럼 지나간 기억을 되살렸다. 선명하기 그지없는 기억에 절로 입이 말랐다.
그의 모양 좋은 입술이 그녀의 가슴을 한가득 물고 빨아들이면 발끝까지 저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한참을 빨리고 깨물린 유두는 어찌나 민감해지는지 종일 욱신거리며 아래를 젖게 만들었다. 이졸데가 갈등으로 머뭇거리자 남자가 재촉하듯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당신 젖을 빨아 주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그의 말에 대답할 생각만으로도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이졸데는 거의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즐겁다는 듯이 웃은 남자가 그녀에게 또 다른 수치를 요구했다.
“그럼 내가 빨기 좋게 꺼내 봐요.”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반쯤 울먹이면서 눈에 띄게 덜덜 떨리는 손을 속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레이스로 된 얇은 속옷을 살짝 내리고 그 안의 말랑한 살덩이를 끄집어내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과정을 남자는 핥듯이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탐스러울 만큼 예쁜 가슴이 대낮의 햇빛 아래 모두 드러났을 때, 이졸데는 제게 닿는 남자의 시선을 차마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예고도 없이 커다란 손이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아!”
가슴에 붉게 자국이 남을 만큼 양껏 주무르던 남자가 고개를 숙여 흰 살결을 한가득 입에 물었다. 뜨거운 입술이 살결을 빨아들이고 혀끝이 멋대로 그 위를 핥았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것과 같은 감각이 엄습했다. 숨이 다시 가빠지기 시작했다.
기어이 남자가 유두를 깨물었을 때 이졸데는 새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흘러나온 비명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놀라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이 그녀의 몸을 확 끌어당겼다. 그의 가슴팍 위로 쏟아지듯 끌어안긴 이졸데에게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안 온다니까…. 그런 것보다 이걸 신경 써 줘요.”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이 붙잡혔다. 남자가 이끄는 대로 손을 내리던 그녀는 아까부터 허벅지에 닿던 불룩한 것의 정체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놀라며 손을 물리는 이졸데의 손목을 붙잡은 남자가 제 성기를 꽉 쥐게 했다.
“만져 봐요. 어떻습니까?”
“모, 모르겠….”
“제대로 안 만지니까 모르지.”
그가 그녀의 몸 어딘가에 입술을 붙이고 웃을 때마다 배 속이 간지러워졌다. 이유를 알 수 없게 답답해졌고 자꾸만 안달이 났다.
눈치 빠르게도 이졸데의 상태를 그녀보다도 먼저 알아차린 남자가 제 성기를 살며시 감싸고 있던 손 위에 제 것을 겹치고 문질렀다. 다른 손은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면 당신 배 속에 넣어 줄 테니까 해 봐요.”
남자는 꼭 그녀가 해 달라고 매달렸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그게 억울했던 이졸데는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당신은 안 그랬을지 몰라도 여기가….”
음부를 부드럽게 매만지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흠뻑 젖은 음순을 벌리고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부끄러울 만큼 젖어 있는 곳에서 쉴 새 없이 물소리가 났다.
“으응, 아, 흐윽….”
“읏, 쑤셔 달라고 안달이 났는데.”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는지 남자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이졸데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배 속을 간질거리게 하던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재촉하고 싶었다. 멍한 머리로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떠올려 봐요. 남편이 질질 흘리는 당신 보지를 쑤셔 줬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쑤셔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서 당신이 얼마나 교성을 질렀는지. 분명 밖에서도 다 들렸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의 말은 열락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벌어진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게 꽉 붙잡았던 뜨거운 손, 끈적이는 소리와 함께 쉼 없이 엉덩이에 부딪히던 남자의 단단한 허벅지, 남자의 성기가 한번 밀고 들어올 때마다 짙은 쾌락으로 부들부들 떨리던 몸의 기억.
배 속이 움찔 조여들며 부드럽게 음부를 쑤시던 손가락을 조였다. 애액이 얼마나 흐르는지 엉덩이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해 달라고 한 적 없습니까?”
그녀가 참지 못할 지경에 다다른 것이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기색이었다. 이졸데는 울고 싶었다. 그에게 매달려 정숙한 숙녀는 할 리 없는 요구를 하고 싶었다. 마구 조르고, 마구 뒤흔들리고 싶었다.
“솔직해져 봐요. 괜찮아. 아무도 당신을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어딘가 사람을 부추기는 구석이 있었다. 홀린 것 같기도 했다.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안달이 난 그녀는 남자의 어깨를 부여잡고 애원했다.
“해 줘요, 응, 읏, 얼른…!”
그녀의 말에 부옇게 번진 시야로도 남자가 만족스럽게 눈을 빛내는 게 보였다.
“이거 봐, 이렇게… 깜찍한데.”
이졸데를 번쩍 들어 올린 남자가 중얼거리며 빳빳하게 발기한 제 성기 위에 내렸다. 단번에 음부를 벌리고 들어온 커다란 성기에 놀란 이졸데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끅끅거렸다. 충격과 달리 삽입은 매우 수월했다.
갑작스럽게 좁은 통로가 벌어지는 감각에 놀란 것과 달리 고통은 희미하기만 했다. 오히려 충격이 가시고 나니 그녀는 저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무언가가 원하는 게 이것이란 사실을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졸데는 남자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몸을 들썩였다. 커다란 성기가 질벽을 문지를 때마다 감질나는 쾌감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울었다.
“응, 얼른, 흐윽, 좀 더… 더.”
띄엄띄엄 새어 나오는 말들은 문장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를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주 잠시, 이졸데가 안달하는 걸 지켜보던 남자가 드디어 그녀의 허리를 콱 붙들고 아래에서 거세게 치받아 올리기 시작했다. 가녀린 몸이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도무지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윽, 아앙! 흐윽, 응, 아아!”
이졸데의 찬란한 금발이 마구 뒤엉키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자세 탓에 더욱 깊숙이 들어온 남자의 성기가 그녀의 배 속을 거세게 두드리고 한껏 예민하게 달아오른 질벽을 마구 문지르며 빠져나갔다가 보다 빠르게 짓쳐 들었다.
성기가 들락거릴 때마다 그녀의 음부에서 애액이 물처럼 질질 새어 나와 남자의 성기를 흠뻑 적시고 그로도 모자라 벤치까지 흘러내렸다.
“이런, 당신 이렇게 적셔서 어떡합니까?”
남자가 헐떡거리면서 걱정하듯 말했다. 이졸데가 입은 치마가 하반신을 모두 가리듯 덮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하체가 접붙을 때마다 그녀가 흘린 애액이 튀어 오르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여태 그녀의 두 발목을 잇듯이 헐겁게 걸려 있던 속옷이 풀밭에 아무렇게나 떨어지고, 기다렸다는 듯 남자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양옆으로 벌렸다. 두 사람의 하체를 가려 주고 있던 치마가 들려 올라간 다리를 따라 훌러덩 뒤집혔다.
“아윽!”
남자의 성기가 몸속에서 돌아가는 감각이 적나라했다. 이졸데가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정원의 풍경을 제대로 눈에 담기도 전에 다시 몸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이졸데의 무릎 뒤를 붙잡고 한 팔로 배를 꽉 끌어안아 제 하체에 짓누른 채 짧게 쳐올렸다.
이젠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이 정사 중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으리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더라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졸데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뒤통수에 닿는 남자의 어깨에 마구 머리를 문지르며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조각조각 내뱉었다.
“아읏, 아, 안 돼, 흑, 리, 카온!”
“‘리’라고 부르라니까.”
남자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한껏 거칠어진 숨을 쏟아부으며 호칭을 정정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입술이 맞붙었다.
혀를 섞으면서도 남자는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질내를 빠듯하게 채운 성기가 내부를 한번 찍어 올릴 때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쾌감에 온몸이 징징 울렸다.
이졸데는 입술이 잠시 떨어질 때마다 쇳소리마저 섞여 나오는 숨을 뱉어 내며 울었다.
“아파, 응, 으응, 아픈, 것 같….”
“거짓말. 이렇게 적셨는데, 아플 리가 없잖습니까.”
남자가 손으로 제 성기가 쉼 없이 들락거리는 접합부를 매만지며 말했다. 헐떡이면서도 웃는 소리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쾌감은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고통을 닮았다. 단박에 부정당한 말은 남자의 움직임을 저지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삽입을 계속하며 붉게 충혈된 음핵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앗! 싫, 못 하겠, 으응!”
이보다 더 위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건만 감각은 위로, 더 위로 치솟기만 했다. 도무지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내저었을 때 남자가 성기를 퍽 처박았다.
그의 성기가 움찔거리며 뱉어 내는 정액이 점막을 적시기 시작하자 그녀도 죽을 것같이 몰려오는 절정에 몸을 떨었다. 배 속이 제멋대로 조여들며 여전히 사정 중인 성기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남자가 낮게 신음했다.
“흑, 그렇, 게 조르지 않아도… 하아, 충분히 싸 줄 테니….”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몰아치던 절정이 물러가려는 찰나 그 여파로 움찔거리는 음부를 뒤덮은 손이 예민한 곳을 빠르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지나친 자극에 절로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그의 손길은 슬금슬금 새어 나오기 시작한 정액을 음부 전체에 펴 바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졸데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남자의 품을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밖에서 일을 치른다는 사실이 불러왔던 수치심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마당에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제발, 흐윽, 읏….”
그녀는 뭔지도 모를 것을 빌기 시작했다.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탓인지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다시 힘을 얻은 성기가 아래를 들쑤시기 시작한 것을 깨닫자 멎었던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그녀는 흠뻑 젖은 속눈썹을 핥으며 제 눈물을 핥아 먹기 시작한 남자의 얼굴을 밀어 내며 투정했다.
“으응, 싫다고… 당신이 마, 말 잘 듣는다고 했던 거, 취소예요.”
“그런, 말도 했습니까?”
남자가 킬킬거렸다. 얄밉기 그지없는 웃음소리였다.
“한 번은 아쉽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당신을 만족시키려고 얼마나 힘썼는지 모릅니다.”
얼토당토않은 트집이었다. 그 밤의 관계가 기준이 될 줄 알았더라면 이졸데는 마냥 휘둘릴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넘어섰을 때 어떻게든 빠져나왔을 것이다.
남자는 힘없이 흔들리던 그녀의 몸을 훌쩍 들어 벤치에 눕히고는 위에 올라탔다. 필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려는 힘은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벌린 뒤 다시 삽입이 시작되었다.
이졸데는 그제야 다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지춤을 풀어 헤친 게 전부인 멀쩡한 차림으로 지금껏 그녀를 희롱하고 있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땀에 젖어 뺨과 이마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을 이졸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쓸어 넘겼다. 반듯하고 잘생긴 이마가 드러나자 남자가 눈을 접어 유혹적으로 웃었다.
역시 좀 다른 것 같은데. 이졸데가 다른 생각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남자가 금세 그녀의 혼을 빼놓으려 들었다.
“어떻게 해 주는 게 좋았습니까?”
그는 그녀가 반했던 근사한 얼굴로 대답하기 곤란한 말들을 지껄였다. 이졸데는 그의 눈을 피해 차가운 물을 흩뿌리는 분수대에 시선을 못 박았다. 남자가 퍽 소리가 날 만큼 하체를 부딪쳤다.
“응?”
“왜, 왜 그런 걸….”
이졸데는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남자는 그녀가 그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대답한다면 정사를 이번 한 번으로 끝내 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내내 감추지 못한 웃음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의 말은 그녀를 혹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야외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이졸데는 대체 왜 그런 것이 궁금한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사내란 어쩔 수 없나 보다 하고 여기기로 하고 고민 끝에 답을 내어 놨다.
“이… 입 안을 핥….”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들은 남자가 눈을 휘어 웃었다. 귀여워서 봐준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정사는 이졸데를 탈진 직전까지 몰아붙일 만큼 기나길었지만, 한 번은 한 번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도무지 제 발로 설 수 없었던 이졸데는 남자의 등에 업혀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