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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62화 (63/69)

62화

“빨리 죽고 싶어 안달이 났나 보네.”

이상훈의 몸 주변에 붉은 기운이 회오리쳤다. 태욱은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주먹을 그러쥐었다.

짙푸른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 * *

강한 힘과 힘이 부딪친 여파로 주변은 초특급 태풍이 몰아친 것처럼 쑥대밭이 됐다.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땅이 움푹 팼다.

상훈은 핏물이 흐르는 붉은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오래 끌 거 없이 한 번에 끝내려고 온몸의 힘을 끌어모았건만 강태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수많은 칼날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쑤셔 박히는 느낌, 더 충격적인 건 믿을 수 없게도 그는 멀리 날아갔고 태욱은 조금 뒤로 밀린 정도였다.

“말도 안 돼.”

조두명이 그에게 무릎을 꿇은 날 강태욱을 상대할 유일한 자라고, 무족의 종주가 되어 달라고 머리까지 조아렸다.

비록 조두명이 약에 중독된 상태이기는 해도 만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그런 자를 꺾었으니 세상을 반쯤 가진 것처럼 꿈에 부풀었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자들 중 실패는 없었는데 강태욱은 마치 무소불위 같았다.

“아니야. 제일 강한 사람은 나야.”

조두명도 그렇게 말했었다. 넌 최고라고. 무족의 종주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상훈은 이를 부득 갈며 살기 띤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눈알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쑤시고 아팠지만 통증 따위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강태욱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넌 반드시 내가 죽인다.”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더니 이젠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힘이 강해져서라고 생각했다.

상훈은 주먹을 꽉 움켜잡고 달렸다. 동시에 태욱도 움직였다.

팍! 주먹이 서로 맞닿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또다시 지축이 흔들렸다. 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였지만 힘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죽어. 죽어 버려.”

강태욱 너만 죽으면 된다. 너만 사라지면 내 세상이 될 거다. 무족뿐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난 강하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강태욱, 죽어라!”

상훈은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은 압박감을 견디며 온몸의 힘을 방출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우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나무가 사정없이 뽑혀 허공을 날아다녔다.

강태욱의 몸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모습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지.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

기대와 달리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도 태욱은 멀쩡했다.

힘을 모조리 쏟아 냈는데 태욱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태연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너 도대체 뭐야?”

태욱의 푸른 눈동자가 섬광을 뿜어내며 번뜩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상훈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멍하니 태욱을 쳐다보았다.

“내가 분명 날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고 경고했을 텐데.”

“난, 난 누구보다 강해.”

“착각도 정도껏 해야지. 쯧.”

“으윽!”

상훈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태욱이 움직인 것도 아닌데 심장에 칼날이 박힌 것처럼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버티고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 윽.”

태욱이 뿌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상훈은 통증도 통증이지만 온몸이 짜부라질 것 같은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내가 힘을 힘으로 맞서기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은 이유는 네 힘을 빠르게 소진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넌 내 힘을 막아 내느라 많은 체력을 소모했어.”

“개소리 집어 쳐.”

“넌 조두명에게 속은 거다. 우쭈쭈 해 주니까 뭐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겠지.”

상훈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멀쩡한 척할 뿐이지 태욱 또한 치명상을 입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널 꼭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말 테다.”

“기백은 가상하나 늦었다. 감히 나와 내 여자를 건드린 자는 오직 죽음뿐이다.”

반쯤 피운 담배를 집어 던진 태욱이 서늘하게 웃었다. 상훈은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조두명이 그를 속였든 아니든 이제 와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조두명은 죽었고 그는 살아 있으니까.

“몸이 왜 이래.”

힘을 끌어모으려고 하자 겨우 가라앉았던 눈의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내장이 뒤틀리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팽창되는 느낌도 들었다.

급기야 몸이 뜨거운 용암에 던져진 것처럼 끓어오르는 것 같더니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난 죽지 않을 거라고 했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끝까지 멍청하군. 금서에 현혹이 됐나 본데 그 누구도 불사의 몸이 될 수 없다.”

“거짓말 마.”

조두명은 그가 만든 약을 먹으면 불사의 몸이 된다고 했었다. 본인은 약에 중독돼서 안타깝게도 효과가 없지만 그는 아닐 거라고. 그러니 고통을 참고 꼭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먹었고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몸이 너무 예민해서 바람도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주변에서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처음엔 예민해진 신경 때문이겠지 생각했는데 땅 밑으로 뭔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섬뜩한 기운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강태욱, 무슨 짓을 한 거냐?”

마치 벌레가 그의 몸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느낌은 끔찍했다.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부풀기 시작하는 순간 태욱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힘을 뿜어냈다.

몸은 팽창되고 그 힘에 압도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안 돼. 안 돼!”

거의 다 왔는데, 강태욱을 죽이지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다.

팍, 뱃가죽이 터지고 내장이 쏟아졌다.

상훈은 경악에 찬 시선으로 바닥에 쏟아진 물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살점이 누가 잡아 뜯는 것처럼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괜찮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지만 힘을 몽땅 소진해서 치료가 되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심장을 뽑아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네가 자처한 일이다.”

“괴물 같은 놈. 차라리 그냥…… 죽여.”

강태욱에게 죽여 달라고 사정을 하게 될 줄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강태욱은 정녕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건가.

그 고생을 하며 인내한 대가가 결국 이거라니.

억울하고 분한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부탁은 진작했어야지.”

살점이 뼈가 보일 정도로 떨어져 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흐릿한 시야로 웃고 있는 태욱이 보였다. 어쩌면 감히 자신에게 맞설 생각을 한 그를 비웃는 건지도.

* * *

태욱은 차가운 땅 위에 누워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당장 유주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유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영향을 받을 게 뻔했다.

‘사랑해요.’

유주가 웃는 게 좋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곤 했었다.

처음으로 가슴에 담은 내 여자, 내 사랑, 내 거.

태욱은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비벼 끄고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팬 흔적과 나무가 꺾이거나 뽑혀 나간 것도 꽤 많았다. 산이 반쯤 무너져 내려 논밭이었던 곳은 돌멩이나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후우.”

조금 더 힘을 가라앉혀야 할 것 같은데 유주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한참 걷고 있을 때쯤 차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구 실장이 다가오다 말고 멈칫했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유주는?”

“병원으로 모셨고 여사님이 오신 것까지 확인하고 저는 나왔습니다.”

“신 비서한테 전화해.”

“잠시만 기다리시죠.”

피를 많이 흘린 게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진 여사가 있다면 그나마 안심은 되었다. 차에서 핸드폰을 가져온 구 실장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머뭇거렸다.

“왜?”

“회장님 힘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게 힘듭니다.”

“핸드폰 던져.”

“제가 어떻게 회장님께…….”

“당장.”

머뭇거리던 구 실장이 핸드폰을 던졌다. 받아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한참 후에 전화를 받았다.

“유주는 어때?”

-저는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밖에 있고 원장님과 여사님이 치료하고 계십니다. 회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짧게 통화를 마치고 구 실장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차에서 내렸을 때보다 더 창백했다.

“같이 가는 게 힘들면 나 혼자 가고.”

“아닙니다. 타시죠.”

“힘들 텐데 무리할 필요 없어.”

“운전을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는 뒷좌석에 타고 구 실장이 운전했다. 핸들을 잡고 있는 구 실장의 손에 힘이 바싹 들어가 있고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내가 운전해서 갈 테니 택시 탈 수 있는 곳에서 내려.”

“견딜 만합니다. 댁에 잠시 들렀다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곧 진정될 테니 곧장 병원으로 가.”

“옷을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그냥 가시면 민유주 씨가 걱정할 겁니다.”

옷이 여기저기 찢어진데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유주가 너무 걱정돼 한시도 지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 실장 옷을 줘.”

“제 차가 아니어서 여분의 옷이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회장님께는 맞지 않을 겁니다.”

체격 차이가 있으니 바지는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고 와이셔츠는 단추를 채우지도 못하기는 하겠네.

“10분 정도 돌아서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해.”

어느새 날은 환하게 밝았고 다행히 도로는 텅 비었다. 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도 힘들어?”

“이제 괜찮습니다.”

혹시 병원에 가서도 유주를 못 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도착해서 곧장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병실엔 신 비서 혼자 있었다. 여전히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유주를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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