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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61화 (62/69)

61화

그의 경고에도 남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태욱은 한 손으로 이상훈의 힘을 막고 다른 손으로 남자들의 목을 잘라 냈다. 쓰러진 자들의 몸을 밟고 다가오는 남자들의 눈이 이상했다.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동공이 풀어져 있었다.

“한 손으로 언제까지 버틸지 궁금하네. 그러다 민유주도 못 지키고 같이 죽을 거 같은데.”

유주가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복면을 한 자들 중 반은 쓰러졌지만 아직 꽤 남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몇 명이 더 계단을 올라왔다.

“영감이 이준의 돈을 흥청망청 써서 내가 덕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한 손으로 이상훈을 막고 다른 손으로 유주를 지키는 게 쉽지가 않았다. 힘 조절을 잘못해서 유주에게 오히려 무리가 갈까 봐 걱정이 되었다.

두 명이 동시에 유주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

그 순간 태욱은 벌떡 일어나 힘을 강하게 뿜어냈다. 건물이 흔들리고 가구들이 들썩였다. 천정에 달린 전등과 압력을 견디지 못한 유리창이 박살 났다. 복면을 한 자들은 낙엽처럼 날아가 벽에 쿵쿵 부딪쳐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순식간에 집 안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멀쩡한 건 이상훈뿐이었다.

“쿨럭쿨럭.”

그때 유주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홱 돌아보자 의자는 부서지고 유주 또한 구석까지 밀려나 쓰러져 있었다. 유주의 입에서 또다시 붉은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태욱은 황급히 다가가서 유주를 품에 안고 살폈다.

“유주야.”

축 늘어진 유주는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갑자기 힘을 쓰기에 민유주를 죽일 생각인지 알았습니다.”

실실 웃고 있는 이상훈을 향해 참을 수 없는 살의가 뻗쳤다. 태욱은 유주를 내려놓고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힘을 쓰면 민유주는 내가 아니라 회장님이 죽인 게 되는 겁니다.”

“조두명을 보고 느낀 게 없나 보네. 힘은 그릇이 되는 자만이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법. 그걸 모르면 스스로 자멸하게 될 거다.”

“약에 중독된 영감을 나와 비교하면 안 되죠. 영감은 필요에 의해서 그냥 둔 거뿐입니다. 맹독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자이기도 하고.”

“넌 조두명을 만날 걸 후회하며 죽게 될 거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준이 설레발쳐서 말을 안 해 줬는데 나한테 독이 영향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종주도 그렇겠죠. 그러니 우리 둘은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맞설 수밖에. 그 전에 선배부터 해결해야겠습니다.”

이상훈의 시선이 유주를 응시하는 순간 재빨리 앞을 가로막았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태욱은 힘으로 맞섰다. 마주친 시선에서 불꽃이 튕겼다. 온전히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뜨거움이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때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들이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상훈이 거만하게 입술을 끌어 올렸다.

“내 손으로 반드시 종주의 심장을 뽑아 버릴 겁니다.”

* * *

진 여사는 영매실을 나와 본채로 향했다. 밤새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마당을 쓸고 있던 진주가 쪼르르 달려왔다.

“나오셨어요?”

“차 사장은?”

“별채에 계세요.”

“잠은 잘 주무셨나 모르겠네.”

“어제 저녁 식사도 안 하셨어요.”

“저런.”

수연을 혼자 두는 게 걱정돼 함께 오기는 했는데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진 여사는 서둘러 별채로 향했다.

수연은 소파도 아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차 사장, 편히 있지 않고 왜 불편하게 이러고 있어요?”

“저도 기도하고 있었어요.”

“저녁도 안 먹었다면서 설마 밤새 이러고 있었던 겁니까?”

“한 끼 정도는 괜찮습니다. 잠은 이따 자면 되지요.”

“이러다 몸 상하겠습니다. 진주가 식사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본채로 가세요.”

“회장님께 연락이 있었나요? 진주는 없다고 하던데.”

“다른 때라면 몰라도 연락이 왔다면 내가 영매실에 있어도 진주가 알렸을 겁니다.”

진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의 손을 꼭 잡았다.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태욱을 걱정하는 마음이 예뻤다.

“걱정 말아요. 회장님께서 알아서 잘 처리하실 겁니다.”

“생각해 봤는데 민유주 씨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제 도움이 필요했다면 연락이 왔을 겁니다.”

“연락 올 때를 기다리지 말고 비서실이든 어디든 먼저 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차 사장도 있으니 그럴까요?”

무족에게 종주는 종족을 지켜 주는 동시에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하는 구심점 같은 존재다.

민유주는 종주의 여자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민유주가 종주의 약점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전화가 본채에 있어요.”

“제 전화로 하세요.”

수연이 얼른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회장님께 직접 전화를 드리는 건 아닌 것 같고 구 실장님이나 신 비서한테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한테 번호 있어요. 혹시 몰라서 전에 식당에 왔을 때 핸드폰 번호를 받아 두었습니다.”

수연이 구 실장에게 전화해서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한참 신호가 가도 받지를 않았다. 신 비서에게 전화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 다 안 받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게요. 일단 전화를 했으니 연락이 오겠지요.”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수연의 번호를 몰라서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진주가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알려 왔다. 두 사람은 같이 별채를 나왔다.

* * *

넓은 거실은 피가 낭자했다. 태욱은 유주를 품에 안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좀비처럼 달려들던 자들은 숫자가 줄어들 만하면 또 지하실에서 기어 나왔다.

조종을 당하고 있다면 이렇게 길게 유지될 리가 없고, 움직임이 느린 걸 보면 약에 취한 게 분명했다.

“영감이 왜 종주를 두려워했는지 알 거 같네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승자는 내가 될 테니까.”

이상훈이 여기저기 떨어진 칼을 그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그에게 닿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약이 바싹 오른 이상훈은 점점 이성을 잃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훈이 찢어진 상의를 벗어 던지고 무섭게 돌진했다. 태욱은 유주를 꽉 안은 채 재빨리 몸을 피했다. 함부로 맞설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유주를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네. 이제 그만 끝내야겠습니다.”

움직임을 멈춘 이상훈이 온몸의 힘을 끌어모으는 게 느껴졌다. 거리가 있는데도 그 힘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태욱은 이상훈을 응시하면서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목을 잡아 뽑았다. 그때 구세주처럼 구 실장과 신 비서가 나타났다.

“회장님.”

신 비서가 복면 쓴 남자들을 상대하고 구 실장이 가까이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지금 당장 유주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 여사님한테도 연락하고.”

태욱은 유주를 구 실장에게 건네고 이상훈을 응시했다. 신경을 집중하느라 구 실장과 신 비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를 상대하느라 힘을 써서 느리기는 해도 힘의 기운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신 비서를 보내고 저는 남겠습니다.”

“안 돼. 최대한 빨리 움직여.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

“회장님.”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구 실장이 이상훈을 돌아보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태욱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유주를 바라보다 이상훈을 쳐다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살기가 가득했다.

“명령이야. 당장 가!”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유주를 부탁해. 뒤돌아보지 말고 최대한 멀리 가.”

구 실장은 걱정 가득한 표정이면서도 신 비서를 데리고 나갔다.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던 자들은 집 밖으로 따라 나가지 않았다.

건물 전체에 이상훈의 기운이 가득한 걸 봐서 영향을 받고 있는 듯했다.

태욱은 두 사람이 나간 뒤 복면 쓴 자들부터 목을 가차 없이 잘라 냈다. 이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지금 당장 이상훈이 힘을 방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유주가 최대한 멀리 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한 대 피울 동안 잠시 대화 좀 할까?”

“그사이 쥐새끼가 왔다 갔네 보네.”

“어차피 우리 둘의 싸움이니까. 아까 말한 맹독 말이야. 조두명 솜씨인가?”

“약초에 대해서 아주 잘 알더군요. 치명적인데 절대 흔적이 남지 않는 독, 그 독에 당한 자들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꽤 되죠.”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그런 독이 있었군. 혹시 조두명이 금서를 갖고 있었나?”

“쓰잘데기없는 책을 한 권 갖고 있기는 했었지. 이준이 찢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태욱은 담배를 피우며 서늘한 시선으로 이상훈을 응시했다. 힘을 결집해 얼굴까지 벌게져 있었다.

“민유주가 도망갈 시간을 주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겁니까?”

“너와 내 힘이 부딪히면 상당한 거리까지 영향이 갈 거다. 도망가기엔 담배 한 대 피우는 걸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

“민유주를 죽였어야 했는데 마음이 약해서 살려 둔 게 조금 후회가 되네.”

태욱은 하마터면 힘을 풀 뻔했다. 유주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당장 찢어발겨도 시원찮지만 구 실장이 조금이라도 멀리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인데,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날 찾아오지 그랬어.”

“보여 주기 위한 쇼였겠죠. 난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가질 겁니다.”

“당당은 너한테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 실력으로 나를 이길 자는 없다. 난 아주 많이 특별한 존재거든. 그냥 조용히 유주 후배로 살았으면 좋았을걸.”

“반대의 상황은 생각 못 하나 봅니다. 종주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민유주는 내 세상에서 잘 살았을 겁니다.”

“넌 모르겠지만 유주와 난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이 닿아 있었다.”

“허튼소리 그만하고 이제 진짜 제대로 붙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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