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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60화 (61/69)

60화

태욱은 눈을 부릅떴다. 목이 잘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준은 잠시 휘청할 뿐 그대로 서 있었다.

“방금 나한테 뭔 짓을 한 거 같은데 조두명한테 배운 것 중 가장 쓸 만한 게 뭔지 알아요? 상대의 힘이 내 몸을 통과하게 하는 방법.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힘을 받아쳐야 할지 말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는 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나 보네. 내 힘이 널 통과했다는 건 네 몸속에 있는 장기가 작살났다는 뜻이다.”

“작살났다면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을 수가 있을까? 우리가 진지하게 대화를 할 사이는 아니고 안으로 들어가려면 날 이겨야 할 겁니다.”

이준이 빙글빙글 웃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아직 자각을 못 한 것 같은데 이준은 더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민유주가 엄청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조두명이 두려워했던 종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 궁금해서 말입니다.”

“빨리 죽고 싶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누가 죽을지는 두고 봐야……. 컥.”

태욱은 단숨에 이준의 목을 틀어쥐었다. 더는 시간을 끌 수도 없고 유주가 걱정돼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준의 목을 비틀려는 순간 옆구리에 날카로운 칼날이 파고들었다.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변한 이준은 목이 졸려 컥컥대면서도 웃고 있었다.

“칼에 구하기 힘든 맹독을 발랐는데 어쩌나.”

“이딴 건 나한테 안 통해.”

태욱은 가차 없이 이준의 목을 뽑아 버렸다. 붉은 피가 솟구치는 몸이 뒤로 넘어가는 동시에 뽑은 목을 바닥에 던져 짓밟아 버렸다.

숨을 깊게 들이켜자 옆구리 상처가 금방 아물었다.

성큼 걸어가 현관문을 걷어찼다. 정면에 의자에 앉아 있는 유주가 보였다. 복면을 쓴 자가 유주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담요를 두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유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튕겼다.

“강태욱 회장님, 생각보다 늦었네요?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요. 이상훈입니다.”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이상훈이 고개를 까닥하고 환하게 웃었다. 태욱은 대꾸도 않고 유주를 향해 걸었다.

오로지 유주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쪽으로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칼에 독을 발라 놔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선배한테 치명적일 테니까.”

“…….”

“하나 더 알려 줄 게 있는데 주변에 민유주 심장을 겨냥하고 있는 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집 안에 다른 자들이 있는 건 눈치챘다. 태욱은 걸음을 멈추고 유주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민유주, 내 목소리 들려?”

* * *

“유주야. 민유주.”

몇 번을 부른 뒤에야 유주의 어깨가 꿈틀 움직였다. 그뿐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오지…… 말지.”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들렸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숨만 붙어 있다면 살릴 수 있다. 그가 다시 움직이려고 하자 남자가 유주의 목에 칼을 더 바싹 들이댔다.

“회장님, 제가 참을성이 없어요. 얌전히 앉는 게 좋을 겁니다.”

“유주를 당장 데리고 가겠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팔찌가 없는 민유주도 괜찮습니까? 팔찌를 찬 손목을 싹둑.”

“감히 내 여자한테 손을 댔다는 거냐?”

“싹둑 자르려다 선배가 싫다고 해서 안 했어요.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흥분을 하시다니, 종주 성격이 엄청 급한가 봅니다.”

그동안 유주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태욱은 유주에게 칼을 들이밀고 있는 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자칫 잘못했다가 칼이 유주에게 닿을 수도 있어 일단 신경을 마비시키고 순식간에 남자에게 다가가 손목과 목을 동시에 잘라 버렸다.

남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몸이 뒤로 쿵 넘어갔다.

“예상에서 한 치도 안 벗어나네요. 근데 혼자 들어온 걸 보면 내 귀염둥이를 보내 버렸다는 건데.”

이상훈이 뭐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담요를 확 젖혔다. 옷에 피가 잔뜩 묻은 채 묶여 있었다.

“유주야. 정신 차려. 민유주.”

유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미약한 숨결.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는 순간 이마에 핏대가 서고 푸른 눈동자가 광채를 뿜어내며 번뜩였다.

입술은 터지고 한쪽 볼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오른쪽 손가락 두 개가 뒤로 꺾였고, 손목을 비틀어 피부가 터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

눈이 팽 돌았다. 태욱은 핏줄이 튀어나오도록 꽉 움켜쥔 주먹을 펴고 묶인 끈을 푼 뒤 유주의 가슴에 손을 댔다.

“내 강아지는 밟아 놓고 회장님 여자는 살리고 싶은가 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죽일 걸 그랬습니다.”

당장이라도 이상훈을 산산 조각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유주가 더 급했다.

“태욱 씨.”

“늦어서 미안해.”

이상훈을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은 그의 잘못이다. 장례식장에 간다고 했을 때 신 비서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그가 직접 움직였어야 했다.

태욱은 몰아치는 후회를 잠시 접어 두고 치유에 집중했다.

“오지 말지.”

“말하지 마.”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치유가 더뎠다. 상처는 서서히 아물기 시작하는데 심장 박동이 너무 느렸다. 이 상태에서 힘을 강하게 쓰면 오히려 유주에게 독이 될 수가 있어 속이 바싹 탔다.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최대한 천천히 힘을 흘려보냈다.

“괜한 수고를 하고 계시네. 이런, 결계를 쳤군요.”

겨우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는 찰나 챙, 소리와 함께 결계가 사라지고 등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의 결계를 뚫은 자는 없었다. 연이어 날카로운 통증이 등을 강타했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집중을 해도 부족할 판에 계속 방해를 받는다면 유주가 위험해진다.

“조금만 참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태욱 씨.”

“눈 감고 있어.”

“조심…… 해요.”

태욱은 유주의 손을 꼭 잡았다 놓고 이상훈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겨우 누르고 있던 분노가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제야 나를 바라보네요. 혹시 착각하실까 봐 미리 말하는데 난 이준과 달라요.”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확연히 다르기는 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그의 힘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상훈이 그의 결계를 뚫었다. 게다가 신경을 마비시키는 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 정도의 힘을 받으면 목이 잘려야 하는데 살짝 붉은 자국만 생겼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두명이 말한 자가 너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럴걸요? 우리 아버지가 내가 뭐가 되도 크게 될 거라고 했었는데 누구 덕에 좋은 세상을 못 보고 가셨지 뭡니까.”

“너도 복수가 목적인가 본데 나를 비롯한 우리 집안 그 누구도 이유 없이 목숨을 거둔 적은 없다.”

“확실해요? 음, 근데 난 복수는 10% 정도? 나머지는 내 의지예요.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았거든요. 이제 내 힘으로 차지하려고요.”

“남의 것을 탐하는 자치고 끝이 좋은 사람은 없었다.”

“남의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거였는데 뺏긴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죠.”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그동안 감쪽같이 속여서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여자한테 손을 댄 건 그 누구라도 용납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종주의 자리가 아닙니다. 복수를 끝내고 무족을 그리고 세상을 가질 겁니다. 이제 강씨가 아닌 나, 이상훈의 세상이 될 겁니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군.”

“생각만 해도 막 흥분되는데 회장님은 아닌가 봅니다. 무족의 역사에 강태욱은 마지막 강씨 집안의 종주가 될 겁니다. 미리 명복을 빌죠.”

이상훈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다다닥 발소리가 들리고 복면을 쓴 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여기 지하실이 많이 넓어요. 소개를 하자면 영감이 이준의 돈으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표정이네.”

“나한테 이런 애송이들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어리석군.”

“회장님은 날 상대하느라 이자들을 막지 못할 겁니다. 정리하자면 회장님은 내가, 이자들은 민유주를. 이해됐습니까?”

복면을 한 자들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건 집중력이 상당해야 하는데 온통 유주한테 신경이 쓰여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앞에 선 자들의 목이 잘려 나가면 뒤에 서 있는 자들이 다가왔다.

“쿨럭.”

태욱은 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 고개를 홱 돌렸다. 유주가 붉은 피를 왈칵 토해 내며 몸을 경련했다.

“유주야.”

“태욱 씨, 난 괜찮으니까 빨리…… 가요.”

“반드시 널 지킬 테니까 나 믿고 조금만, 조금만 견뎌 줘.”

이대로 유주를 놔두면 위험하다. 다시 결계를 치고 유주의 심장에 손을 댔다. 그 순간 등에 칼날이 날아와 꽂혔다.

“삼류 드라마는 그만 찍고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볼까요?”

이상훈이 빠르게 다가왔다. 태욱은 가까워지는 이상훈을 향해 손을 펼쳤다. 움직임을 멈춘 이상훈이 그의 힘에 맞섰다. 복면 쓴 자가 둘 사이를 지나치려다 힘에 튕겨 저만치 날아갔다.

“강태욱 회장은 내가 맡는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인 내가 약속한다. 누구든 민유주를 죽이는 자는 앞으로 꽃길을 걷게 해 주겠다.”

양손에 칼날을 뽑아 든 자들이 유주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유주의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는 자는 내 손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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