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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36화 (37/69)

36화

유주는 품에서 벗어나려고 바동대다 포기했다.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아 기운만 점점 빠졌다.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다른 오빠 아니고 태욱 오빠 생각했어요.”

“갑자기 말을 돌리는 느낌이 드는데.”

“오빠라고 하는 거 싫어요?”

“호칭은 이름으로. 혹시 내 나이가 신경 쓰여?”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거 아니에요.”

기억이 떠오른 후부터 한 번쯤 어릴 때처럼 오빠라고 불러 보고 싶었다.

“오빠, 태욱 오빠.”

“나하고 가족이 되고 싶어?”

“네?”

유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욱을 쳐다보았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대화가 왜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지.

“너무 멀리 간 거 같은데요?”

“싫어?”

태욱과 가족이 된다는 건 결혼을 한다는 의미 아닌가?

결혼, 가족.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한테 가족은 그다지 좋은 상황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태욱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은 생겨도 결혼을 떠올린 적은 없었다.

“어, 음. 일단 좀 놔줄래요?”

“대답부터 듣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네 몸 구석구석 물고 빨고 할 거 다 했는데 기간이 중요한 건 아니지.”

유주는 얼굴로 열이 확 올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 물론 야한 짓을 한 건 맞지만 그런 이야기는 말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태욱이 예기치 않게 언급을 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앞으로 민유주하고만 야한 짓을 할 건데 넌 아니야?”

“당연히 나도……. 우리 편한 자세로 대화를 하면 안 될까요?”

“지금 아주 편해.”

“난 아니에요.”

“그럼 자세를 바꾸면 되지.”

이제야 놓아주나 했더니 오히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그의 무릎에 도로 앉게 됐다. 몸이 바싹 밀착되고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다.

“이게 더 불편한데.”

“말 돌리지 말고.”

유주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태욱의 짧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한 번 더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고 태욱을 쳐다보았다.

“난 지금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내가 평범하지 않아서 싫은 건 아니고?”

“싫다면 벌써 도망갔지 이러고 있겠어요?”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를까 넌 도망 못 가.”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렇게 멋진 남자를 두고 내가 왜 도망을 가요?”

그녀가 눈을 곱게 흘기자 태욱이 빤히 쳐다보다 입술을 뜨겁게 물어 삼켰다. 유주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열렬히 호응했다.

키스는 뜨겁고 강렬했다. 맞닿은 입술에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매번 이런 식이다. 분명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열락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그의 열정적인 키스에 늘 그렇듯 몸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 * *

토요일 저녁, 유주는 태욱의 서재로 들어와서 고개를 갸웃했다. 양평에 가서 점심을 같이 먹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모자를 꼭 써야 해?’

가만히 있어도 이목을 끄는 외모인데 책이 서점에 배포되자마자 불티나게 나가고 있는 상황.

선글라스와 모자를 썼는데도 단연 돋보여서 신경이 쓰였지만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이라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다녔다.

“익숙한 이 느낌은 뭐지?”

돌아와서 도착한 곳은 그녀의 집도 태욱의 오피스텔도 아닌 넓은 정원이 있는 주택이었다.

잠깐 통화를 한다고 태욱은 방으로 들어갔고 집을 둘러보라고 하기에 문 하나를 열었더니 서재였다.

책상 두 개가 나란히 놓인 서재는 꽤 넓었다.

“…….”

유주는 책상 두 개를 번갈아 쳐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한쪽 책상에 노트북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에 화살이 꽂힌 붉은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은정이 샀다며 직접 붙여 줬던 것과 똑같은 스티커였다.

흔한 스티커라 우연이겠지 생각했는데 책꽂이에 꽂힌 책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집 책꽂이에 있는 책들이 몽땅 이곳에도 있었다.

유주는 활짝 열어 놓은 문 쪽을 쳐다봤다가 스티커가 붙은 노트북을 열었다.

“내 거잖아.”

스티커야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비밀번호가 똑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화면에 있는 파일이 그녀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그중 맨 위에 있는 ‘준’ 파일을 클릭했더니 그녀가 정리한 이준의 기사였다.

태욱의 기사가 마무리가 돼서 오늘 외출 전에 이준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옆에 있는 노트북도 네 거야.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서 새로 샀어.”

어느새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태욱이 문에 비스듬히 기대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설마 내 짐을 이곳으로 옮긴 거예요?”

“필요한 건 모두 가져왔으니까 천천히 확인해.”

“말도 없이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사하라고 했었잖아.”

너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사 이야기를 잠깐 했었고 이후에 서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데 둘이 만나고 있는 사이 그녀의 짐을 몰래 옮기다니.

좋아하는 감정과 별개로 화가 불끈 솟았다.

“이건 선을 넘은 것 같아요. 우리 집으로 오는 게 불편하면 밖에서 만나면 되고…….”

“주인아주머니와 통화 안 했어?”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았고 이틀 전에 잠깐 마주쳤는데 그때도 아무 말 없었어요.”

“아주머니 조카가 들어오기로 했다던데. 처음 계약할 때 월세를 싸게 주는 대신 2년 지나서 집을 비워 달라고 하면…….”

“잠깐만요.”

집을 계약할 때 조건이 있기는 했지만 3년이 지나도 말이 없기에 더 살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말도 안 하고 짐을 옮긴 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와 이야기해 봐야겠어요.”

“이미 수리 시작했을 거야. 화가 난 건 이해하겠는데 내 말을 듣고도 아니다 싶으면 아주머니와 통화해.”

유주는 핸드폰을 꺼내 들다 말고 후우, 숨을 내쉬고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렸다.

“말해 봐요.”

“계약서에 명시를 했으니 이사는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근처를 알아봤는데 적당한 조건의 집이 없었어.”

“그건 내가 알아서…….”

“회사까지 시간이 20분이 단축돼. 돈 절약, 시간 절약. 게다가 굳이 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지.”

“…….”

“넌 바쁘고 난 더 바쁘고, 난 널 매일 보고 싶은데 넌 아니야?”

참 할 말 없게 만드는데 선수다. 그녀도 매일 보고 싶지만 차도 받았는데 집까지 신세 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차는 몇 년 된 거라고 하더니 한 번도 타지 않았는지 완전 새 차였다.

“더 중요한 건 네가 다친 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안 되겠어.”

“뭐 알아낸 거 있어요?”

“아직.”

“근데 왜.”

“당연히 그런 일은 다시 없겠지만 네 안전만큼 중요한 건 없어. 그동안 집이 허술해 보여 계속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비워 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이 집은 안전해.”

유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안전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었다. 도대체 왜 다쳤는지 기억나는 건 없지만 두 번 다시 그런 끔찍한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인정?”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요. 근데 아주머니와는 언제 연락을 한 거예요?”

“전화로 이사 이야기 하기 전날. 미리 말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 아주머니한테 오늘 짐 빼겠다고 했어. 아직 보증금 안 들어온 거야?”

유주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온 줄도 몰랐는데 돈이 이미 입금이 되어 있었다.

“돈 보내셨네요.”

“어차피 짐도 옮겼는데 이제부터 이곳에서 살아.”

“후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럼 결정한 걸로. 이리 와.”

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미는 태욱을 복잡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내 나직이 한숨을 쉬고 다가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집은 마음에 들어?”

“당연한 걸 뭘 물어요?”

당장 집을 알아보고 짐을 옮길 수도 없는 상황, 상의 없이 진행한 건 화가 나지만 더 따질 수도 없게 됐다. 그렇다고 금세 표정을 싹 바꿀 수가 없어 불퉁하게 대꾸했더니 태욱이 귀엽다는 듯 그녀의 콧등을 톡 건드렸다.

“집은 천천히 둘러보고 와인 한잔할까? 내 집에 온 걸 환영해야지.”

“내 집? 혹시 우리 같이 살아요?”

“당연한 걸 뭘 물어?”

어버버, 하는 사이 손이 잡힌 채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질문을 하려고 하면 태욱은 키스로 입을 막았다. 어느새 몸은 녹진하게 풀어지고 키스는 점점 더 농밀해졌다.

“유주야.”

“으으응.”

“나 믿지?”

유주는 소파에 누워서 열기 가득한 눈빛으로 태욱을 올려다보았다. 전에도 비슷한 말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태욱 씨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거 같아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아니라면서 그의 눈빛은 절실해 보였다. 유주는 방그레 웃으며 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지금까지 내가 믿는 사람은 나뿐이었어요. 이젠 아니에요.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태욱 씨를 믿어요.”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태욱이 그녀의 입술을 뜨겁게 물어 삼켰다. 이후에 대화는 더 없었다. 열정적인 키스, 뜨거운 몸짓.

넓은 거실은 오랫동안 두 사람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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