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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33화 (34/69)

33화

“네 반응을 보니까 민유주 씨가 확실한 거 같은데 우리 쪽이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야? 설마 우리 종족이 아닌 거야?”

“…….”

“팔찌 주인이 나타났다는 게 가짜라는 소문도 돌고 있는 거 같아.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니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면 다행이기는 한데, 진짜 민유주 씨가 우리 종족이 아니야?”

“…….”

“나한테는 아는 거 전부 말하라고 협박하더니 왜 말을 안 해?”

“관심 꺼.”

팔찌의 주인인 유주한테 관심을 갖는 자는 그게 누구든 신경이 쓰인다. 재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가 딱 잘라 말하자 재명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반응은 뭐지? 분명히 말하지만 난 팔찌 주인한테 조금도 관심 없어. 내 이름 걸고 맹세해.”

“언제부터 본사로 출근할 거야?”

“와, 말 돌리는 거 봐. 넌 항상 이런 식이야. 난 내 속을 다 까발려서 보여 주는데 넌 한 번도…….”

“저녁에 술 한잔할까?”

“용건 끝났으니 나가라 이거야?”

“쭈니에서 저녁 8시.”

그가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한 적이 없어서인지, 재명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본사로 들어오면 이 상황을 재명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려고 했었다.

유주 이름이 언급이 된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신 회장님께서 술을 마시자고 하니 황송하기는 한데, 하필 장소가 쭈니네. 나보고 cctv든 뭐든 확인하라는 소리야?”

“확인은 내가 하면 되고, 너하고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

“하나만 물어보자. 네 반응을 보니 단순히 관심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결정을 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오픈하는 게 낫지 않겠어? 종주의 여자라고 알려지면 조용해질 거 같은데.”

“나와의 관계가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해. 그리고 종주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우리에 대해서 치료 능력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고.”

무족은 무족만의 법과 규칙이 있다. 합당한 이유가 있을 시 살인까지 허락된 종주의 권한과 그동안 그가 했던 행동을 평범한 유주가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겠지.

기억이 전부 돌아온다고 해도 굳이 세세한 것까지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회의 있어. 그만 가 봐.”

“설득하러 왔다가 찍소리도 못 하고 가네. 본사로 오는 건 마무리할 것도 있고 인수인계까지 하려면 한 달은 걸릴 거야.”

“금융에서 완전히 손 떼는 게 아니니까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들어와.”

“한 달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야. 도대체 날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간다. 저녁에 봐.”

태욱은 재명이 나간 뒤 창가로 가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뿌연 연기가 빠르게 밖으로 흘러 나갔다.

‘태욱 씨와의 사이가 알려지면 사람들 주목을 받게 될 텐데 나 그런 쪽으로 면역력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기사가 나가도 당분간 우리 사이 비밀로 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진짜 불손한 무리가 있다면 유주가 팔찌의 주인이 아니어도 그의 여자라는 이유로 타깃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주의 안전이므로 당분간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의심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아니라면. 태욱은 담배를 비벼 끄고 책상으로 돌아가 인터폰을 눌렀다.

“구 실장 잠깐 들어와.”

노크 소리와 함께 구 실장이 들어왔다.

“지시한 거 어떻게 됐어?”

“오늘 센서 감지기와 cctv 추가해서 달 예정입니다. 지시하신 다른 것들도 이번 주 안에 끝날 거 같습니다.”

“신 비서 자리에 있나?”

“회장님 댁에 들렀다가 조금 늦게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연락할까요?”

“아니야. 신 비서 들어오면 구 실장이 신촌에 있는 쭈니에 다녀와야겠어.”

“쭈니라면 와인 바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주를 언급한 여자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다면 답답한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전 8시에서 11시 사이 혼자 온 여자. 체격이 좀 큰 편이고 머리가 길고 검은색 모자와 검은 셔츠를 입었다고 했어. 누군지 확인해.”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재명이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민유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같아.”

처음부터 유주의 존재가 너무 빨리 드러난 것도 여전히 의문이었다. 비서실은 당연히 아닐 테고 진 여사와 금 원장도 아니다.

유주가 입원했던 곳은 일반 병동이라 직원들은 팔찌에 대해서 모르고, 영매관 경호를 맡았던 A팀과 B팀 또한 함부로 입을 놀릴 자들은 아니다.

“차수연 사장은 그날 식당에서 눈치를 챈 거 같은데.”

“네?”

“유주의 존재를 초반에 알고 있는 사람. 진 여사님한테 들었다고 했는데 누군지는 몰랐던 것 같았어.”

“설사 그 전에 알았다고 해도 차 사장님은 함부로 말을 옮길 분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

“제가 쭈니 사장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비서가 있으니 지금 가서 확인해 볼까요?”

태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 실장이 나간 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막 문자 보내려고 했는데. 잠시만요. 옥상 가서 통화할게요.

탁탁탁, 발소리에 이어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강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가까워지는데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유주는 무족의 존재에 대해서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무족이라는 걸 알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의 품에서 화려하게 날아오르던 유주를 생각하니 허리 아래가 묵직하게 조여 왔다.

-태욱 씨한테 줄 거 있는데 오늘 만날 수 있어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 되고. 줄 게 뭔데?”

-이번 달에 태욱 씨 기사 나가요. 며칠 후에 서점에 배포될 건데 방금 전 책을 미리 받았어요.

“마감 끝나서 다음 달에 나올 거라고 하더니.”

-다른 기사 뺐어요. 사실 예상했던 건데 책 나오면 말하려고 안 했어요.

기사와 상관없이 이미 그의 일정은 시작됐고 회사 공고란에도 알렸다. 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유주라는 걸 알려나 모르겠네.

-요즘 사무실 분위기 장난 아니에요.

“왜?”

-사장님이 나한테 절대 이직하지 말고 오래오래 다니래요. 대박인 건 연봉 협상 다시 할 거 같아요. 원래 1월에 하는데 어제 퇴근할 때 오늘 이야기하자고 했거든요. 어느 정도를 말해야 할지 지금 행복한 고민 중이에요.

목소리가 통통 튀었다. 태욱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지금 머릿속에 생각하는 금액 딱 세 배 불러.”

-그랬다가는 특종 하나로 회사 기둥 흔든다고 할걸요?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죠.

“앞으로 내 개인 인터뷰는 없어. 만약 한다면 유주 너한테 할 거고.”

-진짜죠?

“세 배 부르고 거절하면 우리 회사로 와. 연봉은 그 이상으로 줄 테니까.”

-고맙지만 난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차라리 유주가 그에게 온전히 기대고 바라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해 줄 텐데, 자동차 이후 부담스러운 선물은 절대 안 받겠다고 선을 그었다.

자동차도 금액이 상당할 것 같다며 거절하는 걸 겨우 설득했다.

“우리 회사로 오는 게 싫으면 집만 옮겨.”

-집을 옮기라고요?

“지금보다 회사가 더 가깝고 주차 걱정 없는 곳으로.”

-거기가 어딘데요?

“만나서 이야기해. 회의 들어가기 전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만 끊을게.”

-이사는. 일단 알았어요.

쪽,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태욱은 볼을 스윽 만지며 입매를 매끄럽게 끌어 올렸다. 유주의 입술이 직접 닿은 것도 아닌데 볼에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 * *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구 실장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얼굴 확인했어?”

“말씀하신 시간대에 그런 옷차림을 한 여자분은 없었습니다.”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승강기나 다른 곳도 전부 다 확인했습니다. 그날 손님이 평소보다 많지 않았다는데 직원들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재명이가 날짜를 잘못 안 건가?”

“박 본부장님과 통화도 했습니다. 회식 전날이라 확실히 기억한답니다.”

재명은 봤다는데 cctv에 찍힌 게 없다? 29층에 있는 쭈니까지 계단을 이용했다고 해도 복도나 어디서든 찍힌 게 있어야 하지 않나?

태욱은 구 실장이 건넨 메모리 칩을 노트북에 꽂고 화면을 응시했다. 이내 미간을 설핏 좁혔다.

“이 사람 이준 아니야?”

“네. 직원 말로는 혼자 왔다가 얼마 있지 않고 나갔답니다. 주문한 걸 가져갔을 때 돈만 테이블에 있고 자리에 없어서 술과 안주를 그냥 뒀는데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소 이준한테 관심 따위 없었지만 유주가 만난 시기가 팔찌의 주인이 된 후라 신경이 쓰이기는 했었다. 다행히 그때 이후 만났다는 보고는 없었다.

“검은색 모자네.”

재명이 말한 사람은 여자지만 이준이 마치 보란 듯이 cctv를 쳐다보면서 마스크와 모자를 쓰는 걸 보니 왠지 신경이 거슬렸다.

“회장님. 민유주 씨를 곁에 두시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집으로 데리고 올 생각이야.”

회사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원룸에 혼자 두는 건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유주가 바쁘기도 했고 무작정 그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싫다고 할 게 뻔해 고민을 했었다.

더 늦춰서는 안 될 것 같아 cctv를 추가로 달게 했고, 유주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 놓으라고 지시했다.

감히 그의 집에 함부로 침입할 자가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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