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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7화 (8/69)

7화

키스라니, 아무리 필름이 끊겼다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유주는 목을 잔뜩 움츠리고 경계 어린 시선으로 태욱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거, 거짓말하는 거죠?”

“키스를 아주 잘하던데.”

놀리는 거라고 믿고 싶지만 까맣게 암흑이 되어 버린 머릿속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더구나 태욱은 너무 가까이 있고 장난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의 눈빛은 온몸을 꽁꽁 옭아맬 정도로 강렬했다. 시선에 사로잡혀 눈을 감을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럴 리 없어요. 키스를 해 본 적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태욱에게 키스를 했을 리 없다고 부정해야지, 키스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 왜 나오느냐고!

유주는 생각 없이 말을 뱉어 버린 입술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녀와 달리 태욱은 입매를 매끄럽게 끌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 내가 첫 키스 상대였다고 고백하는 거야?”

“고백은 무슨. 황당하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잘못 나왔을 뿐이에요. 그런데 정말 내가 그쪽, 강태욱 씨한테 키스를 한 게 확실해요?”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절대 그런 짓을 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녀가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갑자기 태욱이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단추를 모두 풀고 와이셔츠를 옆으로 확 젖힌 순간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외모만큼이나 근사하고 완벽한 그의 몸 때문이 아니었다.

굳이 만져 보지 않아도 남성미를 풀풀 풍기는 탄탄한 가슴에 손톱으로 긁힌 붉은 자국이 몇 군데나 있었다.

“어찌나 저돌적인지, 말리는데 꽤 힘들었어.”

유주는 믿을 수가 없어 붉은 흔적들을 맹렬히 노려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저건 저돌적인 게 아니라 진짜 완벽하게 미쳤다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난 민유주 씨가 잠든 것까지 확인하고 내 방으로 얌전히 돌아갔지.”

“진짜 내가, 그랬다고요?”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데 발뺌을 하시겠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받아쳐야 하는데 하필 그 순간 연애 어쩌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말만 했겠지. 설마 그녀가 먼저 덤벼들기까지 했을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절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유주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박박 우겨야 하나. 아니면 깔끔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은 금방 끝났다.

“미, 미안해요. 그렇게 취한 적이 없어서. 나한테 미친 아니 이상한 술버릇이 있는지 몰랐어요.”

“사과는 됐고, 이제 다른 약속도 지켜야겠네. 어제 우리가 키스만 한 게 아니거든.”

“뭐, 뭘 또.”

더는 놀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또 뭔가를 했단다. 입 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

“내 손을 잡더니 제발 만져 달라고.”

태욱이 말을 멈추고 봉긋 솟아오른 그녀의 가슴을 지그시 응시했다. 유주는 황급히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지, 지금 어디를 보는 거예요?”

“그곳만 손댄 게 아닌데.”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지금 내가 기억을 못 한다고 막 던지는 거죠?”

“더 적나라하게 말해 볼까?”

“아니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게 터져 나왔다.

이젠 정말이지 태욱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렵기까지 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더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미안해요. 진짜, 진짜 미안해요. 어제는 내가 실수했어요. 사과할게요.”

“사과는 됐고.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모르지만 안 지켜도 돼요.”

“손가락까지 걸면서 한 약속인데 그건 안 되지. 난 약속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거든.”

그놈의 손가락, 기억은 나지 않지만 태욱이 말을 할 때마다 그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젠 손가락을 걸었든 약속을 했든 더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건 그가 빨리 이곳을 나가 줬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약속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줄게요.”

“말로만 인정받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순식간에 몸이 훅 끌려갔다. 안 그래도 가까운 거리였는데 태욱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바싹 끌어당겼다.

뭐 하는 짓이냐고 항의할 틈도 없었다.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입술이 뜨겁게 삼켜졌다.

“읍.”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이 아닌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지는 것 같은 키스였다. 입술을 앙다물고 버티자 아랫입술이 잘근 씹혔다.

벌어진 틈 사이로 그의 혀가 밀고 들어왔다. 뜨거운 혀가 거침없이 입 안을 핥고 다니며 숨도 못 쉬고 있는 그녀의 숨결까지 모조리 흡입했다.

키스는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깊고 강렬했다. 마치 온몸이 그에게 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허리가 바싹 조여지고 그의 손이 머리를 꽉 잡고 있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날카롭고 거침이 없던 키스가 어느 순간 눈물이 날 만큼 부드러워졌다.

유주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키스에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

살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갑자기 심장이 울컥했다. 고되고 고됐던 지난 시간들이 눈 녹듯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고,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으응.”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린 입술 사이로 야릇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 순간 왼쪽 손목이 뜨거워지고 그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갔다.

키스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각들이 몸을 가득 채웠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모조리 깨어나 소용돌이치는 황홀한 느낌.

아,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아.

유주는 미약하게나마 밀어내던 몸짓을 멈췄다. 키스는 점점 더 진득하고 농밀해졌다.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한없이 다정했다.

“하아, 하아.”

마침내 긴 키스가 멈추자 유주는 가쁜 숨을 토해 냈다. 차마 그를 쳐다볼 수가 없어 눈은 꼭 감고 있었다.

“눈 떠.”

“…….”

“계속 눈 감고 있으면 또 키스할 거야.”

눈을 반짝 뜨자 시선이 마주쳤다. 유주는 순간 헐떡이던 숨을 딱 멈췄다.

검고 깊은 그의 눈동자는 열기 따위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모닝 키스를 해 달라는 약속을 지킨 거니까 사과는 안 해도 되겠지.”

뼛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과 달리 목소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처럼 덤덤했다.

깊은 키스로 생각 자제를 할 수도 없는 터라 멍하니 있는 사이 태욱이 방을 나가 버렸다.

유주는 멀뚱히 서 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참았던 숨이 길게 터져 나왔다.

“후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제 만난 남자와 취한 것도 아닌 멀쩡한 상태에서 진짜 키스를 했다. 유주는 뺨을 찰싹 때렸다. 힘이 꽤 실렸는지 볼이 따끔거리고 얼얼했다.

통증이 사라질 때쯤 한 대를 더 때렸다.

“일단 이곳을 나가자.”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빠르게 짐을 챙겨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고 할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밖으로 나오는 동안 태욱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나란히 주차된 차를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미쳤어. 미쳤어.”

유주는 운전을 하면서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그나마 키스로 멈췄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으윽,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키스로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인데 만약 태욱이 그 이상의 행동을 했다면 그녀는 속절없이 무너졌을 게 뻔했다. 마치 뭔가에 단단히 홀린 기분이었다.

“진짜 키스 잘하더라.”

뜨겁고 강렬한 키스에 이어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키스는 짜릿하고 눈물이 날 만큼 황홀했다.

그런 느낌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아. 몰라. 키스 한 번 했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잖아.”

키스에 흠뻑 취했을 때는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차피 짐은 다 들고나왔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태욱을 만날 일은 없겠지.

당연히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내가 이 나이에 키스가 아니라 더한 짓을 했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럼, 그럼. 유주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키스 좀 한 게 무슨 대수라고 뺨을 때리고 머리를 쥐어박는단 말인가.

“근데 왜 그런 눈빛이었지?”

아무리 곱씹어 봐도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던 남자의 눈빛과 표정이 아니었다.

모닝 키스를 해 달라고 한 기억도 없지만 설사 취중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무시하면 그만인데, 누가 알면 그녀가 덤벼들어서 하기 싫은 키스를 억지로 한 줄 오해하겠다 싶었다.

“됐어. 그걸 내가 왜 신경 쓰고 있는 거야?”

훌훌 털어 버리자고 다짐한 순간 조수석에 얌전히 있는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직접 돌려주지는 못했을 테고 펜션 사장님한테라도 맡겼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어쩌지?”

가이드를 해 주는 대신 빌린 카메라를 돌려주지도 않고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핸드폰 번호도 모르는데 어째야 하는 걸까.

“아우, 바보.”

유주는 하는 수 없이 펜션을 다시 들러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주치지 않고 돌려주면 되겠지 싶어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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