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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3화 (4/69)

3화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남 부장이 문을 열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자 씨익 웃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상훈아. 부장님이 나 왜 부르는 거야?”

“글쎄요.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올까요?”

“됐다.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지.”

“선배가 바보면 나는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죠.”

“차라리 대꾸를 하지 마.”

“감히 내가 어떻게 선배 말을 씹어요?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 말을 해 봐야 혈압만 오를 것 같아 부장실로 들어갔다.

남진수 부장은 일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회사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남 부장 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닮고 싶고 존경하는 분이기는 한데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너무 완벽을 요구한다는 것.

넘치는 열정과 능력은 백 번 인정하지만 가끔은 프라이팬 위 콩처럼 달달 볶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부장님, 무슨 일이에요?”

“담양하고 구례 가는 일정을 앞당겨야겠어.”

“언제로요?”

“오늘이나 내일.”

“갑자기 왜요?”

“다음 주에 인터뷰가 잡혔는데 민유주 씨가 해야 할 거 같아.”

그녀는 주로 맛집과 알려지지 않은 명소에 대한 기사를 쓰는 편이고 인물 인터뷰 담당자는 따로 있다. 담당자가 바쁘면 그녀가 할 때도 있기는 한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김수진 씨가 많이 바쁘대요?”

“아니, 저쪽에서 민유주 씨를 지목했어.”

“저를요? 인터뷰할 사람이 누구인데요?”

“이준.”

유주는 고개를 갸웃하다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설마 제가 알고 있는 그 이준은 아니죠?”

“우리 집 유치원 딸도 알고 있는 그 이준 맞아.”

“헐, 대박!”

이준은 모델로 데뷔했다가 드라마 한 편으로 단숨에 탑의 자리에 올라, 몇 년째 섭외 대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핫한 배우다.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매번 시청률을 갱신하는 중이고 올해 초 개봉한 영화도 대박이 났다.

모 제품은 이준이 광고할 거라는 기사가 나자마자 매출이 몇 배는 뛰었다고 했다.

“sns도 하지 않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겠다니 나도 연락받고 많이 놀랐어.”

“부장님이 따신 게 아니에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

“진짜요?”

이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예능 방송은 물론 제작 발표회나 시사회, 종영 파티도 참석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심지어 작년 연기 대상을 받을 때도 직접 수상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지만 정작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지 반박 기사 한 줄 나온 적이 없었다.

“근데 왜 저예요?”

“나야 모르지. 인맥도 안 통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혹시 뭐 짚이는 거 없어? 이준 팬 카페에 가입을 했다든가.”

“제가 그럴 리가 없죠.”

노래는 듣는 것만 좋아하고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라 사람한테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녀와 달리 은정은 이준의 열렬한 광팬이다. 이준을 보면 신을 영접하는 기분이라나 뭐라나. 아마 그녀가 이준의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지도.

“시간과 장소는 저쪽에서 연락을 주기로 했고 인터뷰 시간은 딱 30분.”

“달랑 30분이요?”

“30분 아니라 10분이라도 우리한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니까 미리 준비해 놔. 민유주 씨 혼자 와야 하고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비밀을 유지해 달라는 게 조건이야.”

“혼자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담양은 언제 출발할 수 있겠어?”

“차를 수리 맡겨 놔서 일단 전화해 볼게요.”

“비밀 엄수하는 거 잊지 말고 그만 나가 봐.”

유주는 자리로 돌아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상훈은 외출을 했는지 없었다.

“이준 인터뷰를 내가 한다니.”

사적인 관심은 없지만 인기 절정에 있는 배우의 첫 인터뷰를 한다는 생각에 살짝 들뜨기는 했다.

“은정이가 좋아하겠네.”

* * *

“날씨 좋다.”

유주는 죽녹원 입구에 들어서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대나무 특유의 청량함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쭉쭉 뻗어 올라간 대나무, 드문드문 삐죽 올라온 죽순, 이파리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 다람쥐다.”

유주는 빠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찰칵, 소리에 놀란 다람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침 시간을 즐기려고 나왔을 텐데 미안.”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하다 운수 대통 길을 택했다. 혹시 걷고 나면 정말 운수가 대통할지도 모른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다음 일정이 아니면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데 구례에서 취재할 게 더 많아 걸음을 서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볼록 솟은 둔덕 옆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짧은 초미니 둘레 길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당연히 걸어 봐야지.”

팻말에 세 바퀴를 돌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해서 네 바퀴를 돌았다. 언제나처럼 별문제 없이 평범하게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둔덕 위에 올라 잠시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좋다.”

날씨는 더할 수 없이 좋고 신선한 공기와 따듯한 햇살. 속이 뻥 뚫리는 동시에 무언가로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요 며칠 팔찌 때문에 찜찜했던 기분마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 뭐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렌즈를 통해 뭔가 번쩍하는 게 보였다. 깜짝 놀라 카메라를 내리고 주변을 살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대나무 숲만 보이고 딱히 이상한 건 없었다.

“잘못 봤나?”

유주는 고개를 갸웃하고 둔덕을 내려왔다. 올라올 때는 드문드문 사람이 보였는데 언제부턴가 아무도 없었다.

다른 길로 갔거나 아직 이곳까지 올라오지 않은 거겠지.

사진을 더 찍어야 할 것 같아 올라왔던 길과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바람 소리만 들릴 뿐 한적했다.

“어, 또 다람……쥐네.”

굵은 대나무에 붙어 있는 다람쥐는 올라올 때 봤던 것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커 보였다. 저렇게 큰 다람쥐가 있었나? 신기해서 얼른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다람쥐가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렌즈를 통해 대나무에 붙어 있는 다람쥐를 빤히 응시했다.

그때 다람쥐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헉.”

유주는 흠칫 놀라 카메라를 내리고 주춤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몸집이 그녀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커 신기해서 찍으려고 했을 뿐인데, 눈동자가 짙은 회색인데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맹렬히 노려보는 것 같아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찌, 찍으려고 해서 화, 화났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다람쥐가 훌쩍 튕겨 올랐다. 그녀한테 달려들 것 같은 기세라 너무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나다 쿵,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카메라를 놓쳤다는 것도 몰랐다.

“…….”

숨도 못 쉬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을 꾹 감았다. 주변은 이파리의 사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다람쥐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나? 그보다 진짜 다람쥐가 맞기는 한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은데 차마 눈을 뜨고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머리 위에서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 *

“다친 겁니까?”

유주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리자 감색 슈트와 연한 하늘빛 와이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보였다.

“…….”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흡, 들이켰다. 남자는 마주 보고 서 있어도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꽤 컸다.

수려한 외모에 고급스러운 슈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어디 한군데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눈빛이 심장까지 파고들 것처럼 너무 강렬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유주는 방금 전 끔찍한 다람쥐를 본 것도 잊은 채 처음 보는 남자의 눈빛에 사로잡혀 눈도 껌벅이지 못했다.

“…….”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 처음 보는 남자인데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랄까.

게다가 요 며칠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던 믿을 수 없는 감정들이 남자를 보는 순간 왈칵 솟구쳤다.

그녀는 꿈속에서도 저런 외모의 남자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사무치는 감정이 뼛속까지 느껴지는 걸까.

유주는 가슴을 꽉 움켜잡았다.

“못 움직일 정도로 다친 게 아니라면 일어나는 게 어때요?”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저 멍하니 남자만 쳐다보았다.

“아파서 우는 겁니까?”

“내가 운다고요?”

눈가를 훔치자 손이 축축했다. 황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순간 몸이 번쩍 일으켜 세워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뭐라고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걸어 볼래요?”

“네?”

“혹시 다리를 다쳤나 해서.”

“아, 아니에요. 놀라서 넘어지기는 했는데 다치지는 않았어요.”

남자는 놀란 이유에 대해서 묻지는 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살피기만 했다.

남자가 시선을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거침없이 올곧이 부딪쳐 오는 시선에 채 진정되지 않은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내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네? 아, 아니요. 근데 혹시 봤어요?”

“뭘 말입니까?”

“다람쥐요.”

“다람쥐라면 저기도 있는데.”

유주는 화들짝 놀라 남자 옆으로 바싹 붙어 섰다. 정말 다람쥐가 있었다. 방금 본 것과는 다른 평범한 다람쥐였다.

“후우.”

나직이 한숨을 쉬다 말고 또 흠칫 놀라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순간 너무 무서워서 낯선 남자의 팔을 목숨 줄처럼 꽉 잡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 미안해요.”

너무 민망해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찌를 듯이 응시하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슬쩍 고개를 돌리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기겁을 하고 냉큼 집어 들었다.

“어머, 어떡해.”

렌즈가 깨진데다 셔터도 눌러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비싼 돈을 주고 산 카메라였다.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난 뒤 너무 갖고 싶어 큰맘 먹고 중고가 아닌 새 제품으로 샀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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