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괴물이 나를 원할 때-0화 (프롤로그) (1/69)

프롤로그

숲이 우거진 산속에 여자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앙상한 몸의 아이는 여기저기 피부가 찢어지고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딸기 땄는데.”

아이는 곧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산을 꽤 많이 올라온 데다 뱀에 물렸다.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발을 헛디뎌 한참을 굴러떨어졌다.

운 좋게 누군가에게 발견될 것 같지도 않고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우리가 널 동생으로 생각하니까 여기까지 같이 와 준 거야. 딸기 따 오면 원장님께 말하지 말고 우리한테만 줘야 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저 위로 올라가서 이 봉지 가득 채워서 와.’

많이 따 오면 앞으로 같이 놀아 준다고 했었다. 아이는 어리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

따돌림과 무시가 배고픔보다 더 무서웠으니까.

“아파.”

굴러떨어지면서 머리가 깨져 피가 나고 뱀에 물린 발목은 퉁퉁 부어올랐다. 이 주 전 독이 있는 뱀에 물린 오빠 하나가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이후 산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원장님의 말을 듣지 않아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소원은.”

아이는 보육원에서 제일 어린 5살, 전에는 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모두 입양되었다. 원장님은 좋은 분이지만 어리다고 특별히 챙겨 주는 건 없고, 보육원에 같이 있는 언니 오빠들은 딱 두 종류였다. 아이한테 관심이 없거나 괴롭히거나.

“살고 싶어.”

가족이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할 걸, 그랬으면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아이는 자신이 참 멍청했다고 생각했다.

“살려 주세요.”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원망하지 않을게요.

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할게요.

입양 가는 아이들이 부럽다고, 왜 내가 아닐까 속으로 질투했던 것까지 전부 다 잘못했어요. 욕심부리지 않고 착하게 살게요.

그러니 제발 살려 달라고 아이는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어디선가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쳤구나.”

아이는 힘겹게 눈꺼풀을 끌어 올렸다. 시야가 흐릿해서 키가 큰 것 말고 형체만 보일 뿐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천사.”

아이는 남자가 천사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하늘이 기도를 들어준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설핏 웃었다.

“난 천사가 아니야.”

남자가 다가와서 아이의 손을 잡았다. 몸이 차갑게 식어서인지 남자의 커다란 손은 굉장히 뜨거웠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병원까지만이라도 데려다 달라고 사정하고 싶은데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혹시 그냥 가 버릴까 봐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바지를 꽉 움켜잡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남자가 나직이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해.”

어차피 움직일 기운도 없고 이대로 있으면 곧 죽는다. 아이는 남자가 천사가 아니라면, 다친 사람을 고쳐 주는 의사가 아니라면 병원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힘이 엄청 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한 기대와 달리 남자는 아이를 안아 들지 않았다. 잠시 후, 커다란 손이 아이의 심장 위에 닿았다.

그 순간 몸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고 차가웠던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야?”

“은샛별.”

“예쁜 이름이네. 샛별이 몇 살?”

“5살이요.”

“여기까지 왜 온 거야?”

“딸기…….”

“딸기 따러 왔어? 혼자?”

“네.”

“딸기는 저 아래도 꽤 있을 텐데.”

갑자기 몸이 엄청 뜨거워졌다. 심장부터 시작된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불 속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샛별은 괴로워서 몸부림쳤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몸이 멋대로 파닥거렸다.

“처음 해 보는 거라 힘 조절이 안 되네.”

“으으으.”

“곧 괜찮아질 거야.”

남자의 말을 믿고 싶지만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자꾸자꾸 몸으로 흘러들어 오는 느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숨 쉬는 것도 편안해졌다. 단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이 이상해요.”

“힘 조절을 못 한 것도 있지만 네 몸이 약해서 그런 걸 거야.”

“이제 아무것도 못 보나요?”

“괜찮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잠깐 입 벌려 볼래?”

샛별은 입을 살짝 벌렸다. 물은 아닌 것 같은데 입 안으로 뭔가가 흘러들어 왔다. 남자가 삼키라고 해서 꿀꺽 마셨다.

“몸에 퍼진 독을 희석하기 위해 내 피를 먹게 한 거야.”

샛별은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프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이제 아프지 않지?”

“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넌 운이 좋았어. 샛별아. 나하고 약속 하나 할까?”

“무슨 약속이요?”

“나를 만났다는 걸 누구한테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자. 약속할 수 있지?”

샛별은 고개를 끄덕이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손을 내리려고 할 때쯤 손가락이 가만히 얽혔다.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샛별이가 약속을 잘 지킬 거라고 믿을게.”

“오빠는 이름이 뭐예요?”

“모르는 게 좋아.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

얼굴을 볼 수 없어 이름이라도 알고 싶은데 남자는 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자꾸 물어보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묻지도 못했다.

“집이 어디야?”

“산 아래에 있는 샘 보육원에 살아요.”

“움직이기 힘들 테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혼자 갈 수 있어요.”

“어두워지면 위험해서 지금 가야 해. 한동안 열이 날 수도 있고 몸이 힘들 거야. 물 많이 마셔. 알았지?”

“네.”

“약속 잊지 말고 오늘 일은 꿈을 꿨다고 생각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면 더 좋고.”

남자가 안아 드는 동시에 샛별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깨어났을 땐 어둑해진 창고 안이었다. 벌떡 일어나 앉아 몸을 살폈다. 다친 곳도 없고 멀쩡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딸기 따 오랬더니 여기서 처자고 있었네.”

“손에 딸기 물이 든 걸 보면 혼자 다 먹은 거 아니야?”

“내가 뭐랬어? 얘가 잔머리 굴릴 거라고 했지? 영악한 계집애라니까.”

샛별은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오빠들을 피해 구석으로 도망갔다. 주먹이 날아오고 발길질이 시작됐다. 소리를 지르거나 원장님한테 이르면 나중에 더 심하게 당할 거라는 걸 알기에 꾹 참았다.

그러다 용기를 내 발딱 일어나 앙칼지게 소리쳤다.

“때리지 마!”

“어쭈, 이게 미쳤나.”

“다시는 내 몸에 손대지 마.”

처음으로 대들었다가 평소보다 더 맞았다. 그날 밤 샛별은 열이 올라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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