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8/55)

* * *

정헌은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처음 그녀가 개목걸이를 채웠을 때만 해도 분명 빛이 쏟아지는 오전이었는데, 지금은 창밖으로 어둑한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한 번도 절정을 느끼지 못하고 괴로움에 신음해야 했다. 다비는 그를 절정 가까이에 올려놓고 그만두고, 또다시 올려놓고 그만두는 일을 반복했다.

그녀는 아주 느릿하고 능숙했다. 꼭 호랑이가 자신의 먹이를 먹지 않고 삼켰다가 물었다가 뱉으면서 길들이는 것 같았다.

그를 무엇보다 괴롭게 하는 것은 그녀의 향기였다. 분명 살 냄새인데 왜 이렇게 야하고 자극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머리가 어찔하고 몸에 흥분이 차올랐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성에게 이런 욕망을 느낀 적이 없었다. 성욕이라는 것이 이렇게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종류의 감정이라는 것도 처음 깨달았다.

“으윽… 큭… 제발, 송다비 씨, 제발 그만….”

정헌은 어느새 다비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끝없는 자극으로 예민해진 페니스가 이제는 아플 정도였다. 그의 다리 사이를 만지고 있던 다비가 고개를 들었다.

“기억나는 거 없어요?”

“없, 습니다….”

“하나도?”

“처음 떠올랐던 기억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이상하다. 그래도 몇 개는 더 기억나야 하는데. 나랑 했던 섹스가 그렇게 임팩트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다비는 청순해 보이는 얼굴을 옆으로 갸웃했다. 몇 번 더 해봐야 하려나,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헌은 힘껏 고개를 흔들며 거부했다. 수갑으로 붙잡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손이 함께 흔들렸다.

“이, 이런 짓을 한다고… 기억이 돌아올 리가….”

다비의 손이 정헌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작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했다. 생소한 감각 때문인지 귀 뒤쪽에 오소소 솜털이 일어섰다.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네요. 그렇죠? 적어도 한 장면은 기억났잖아요.”

다비가 몸을 위로 기울였다. 머리카락 끝이 그의 얼굴을 간질였다. 향기가 퍼졌다.

“윽…….”

정헌은 숨을 참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향기는 꼭 마취약이 몸에 퍼지는 것처럼, 코가 아닌 온몸을 적시면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정헌이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다른 이유라 생각했는지, 다비는 그의 손을 묶고 있는 수갑과 목에 걸린 개목걸이를 드디어 풀어주었다. 정헌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 다비를 노려보았다.

“…….”

“알았어요,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나도 좀 화가 나서 일부러 괴롭힌 거예요.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만 잊어버릴 수가 있어요? 내가 당신한테 얼마나 서운하고 섭섭했겠어요.”

그녀가 과즙처럼 다디단 목소리로 정헌을 달랬다. 섭섭하다고 사람한테 개목걸이를 채운단 말인가? 서운하다고 몇 시간씩 타인의 성기를 만져대며 수치심을 준단 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더 어이없는 건 정헌 본인이었다. 몇 시간째 괴롭힘을 당했으면서, 그녀의 말 한마디에 쌓여 있던 당혹스러움과 화가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그리고는 그녀가 그럴 만도 하다, 기억을 잃은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고 자책하는 마음마저 드는 게 아닌가.

도대체 기억을 잃기 전의 한정헌은 뭐 하는 인간이었던 거지?

이렇게 송다비라는 여자에게 약해지는 반응은 기억을 잃기 전의 한정헌이 몸에 새겨둔 것일 터였다. 과거의 자신은 어지간히 쾌락에 약했던 모양이었다. 이대로라면 몸의 즉각적이고 외설적인 반응에 이성이 먹혀버릴 것만 같았다. 정헌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해볼래요?”

다비가 귀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정헌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저는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여성과 가볍게 성관계를 맺을 만큼 성욕에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 그런 사람인 거 내가 잘 알죠. 그래도 분명 지금보다 몇 배는 기분 좋을 텐데.”

“안 됩니다.”

“그럼 이렇게 해요. 키스만 해보는 거예요. 키스를 해봐도 계속 나랑 하기 싫으면, 그때부터는 당신을 건드리지 않을게요.”

“…….”

정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또 개목걸이와 수갑에 묶여서 몇 시간씩 그녀가 주는 괴로움을 겪느니 키스 한 번으로 벗어나는 것은 나쁜 거래 같지는 않았다. 입을 가볍게 부딪치는 행위야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과도 하는 일 아닌가.

키스를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상하게도 다비와 입술이 맞닿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본래 타인의 체액이나 신체가 몸에 닿는 것을 질색하는 정헌이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다비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녀의 향을 실컷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야릇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기까지 했다.

“…그럼, 키스만….”

갑자기 새로운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자신이 키스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정헌이 다른 생명과 입을 맞춰본 경험은 이모님이 키우는 커다란 골든레트리버가 갑자기 앉아 있던 그에게 달려들어 입을 핥았던 것뿐이었다.

정헌은 자기도 모르게 흘끗,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다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제가 상당히 미숙할 겁니다.”

“그래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서툴 게 분명합니다.”

정헌은 머뭇거리며 말하다 말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키스가 처음이든 서툴든 무슨 상관이라고, 이걸 왜 이 여자에게 변명하듯 말하고 있는 건가.

그는 퍼뜩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그녀에게 모자란 실력을 들켜서, 그녀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정헌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말똥말똥 눈을 뜨고 정헌의 말을 듣고 있던 다비는 갑자기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요. 나는 못 하는 사람한테 가르쳐주는 걸 좋아하거든요.”

다비는 여전히 정헌의 몸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녀가 나른하게 눈을 감으면서 흐트러져 있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정헌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벌거벗고 거실 위에 누워있다는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비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녀가 느릿하게 다가왔다. 향기가 훅 강하게 풍기면서 몸으로 스며들었다. 심장이 떨렸다. 다비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헌은 질끈 눈을 감고 숨을 참았다.

“…….”

얼굴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그녀는 다가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짝 눈을 떴을 때였다. 다비가 눈앞에 있었다. 웃음기를 담뿍 담고 반달처럼 둥글게 휜 눈과 마주쳤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아래로 급강하했다.

“눈 뜨고 나 봐요.”

다비가 정헌의 한쪽 뺨을 귀엽다는 듯이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약간 꺾으면서 입을 맞춰왔다.

입술이 입술에 맞닿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성이 아찔하게 먼 곳으로 날아가고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났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감지 말라 명령했으므로, 그는 쾌감으로 감기는 눈을 필사적으로 뜨려고 노력했다.

“…읏…….”

키스라는 게 원래 이렇게 기분 좋은 건가? 정헌은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쾌감이 폭포나 파도처럼 몸 위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왜 마약에 빠지는 것인가? 입술이 닿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쾌감이 느껴지는데?

다비가 정헌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었다. 입술을 그저 맞대고 있었을 때보다 쾌감이 배가 되면서, 모든 신경이 입술 피부로 몰렸다. 그녀가 살며시 그의 아랫입술을 물더니 쪽쪽 빨아들였다. 누군가 둥근 물건으로 꾸욱 누른 것처럼 심장이 저릿해지며 그 저릿함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흐… 으으….”

그때 다비가 입술을 떼면서 고개를 들었다. 정헌은 숨을 헐떡였다. 입술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키스를 나눈 시간이 0.1초도 채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했던 향기에 다시 닿고 싶은 안타까움이 몸 안을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그의 간절한 마음을 깨닫기라도 했는지 다비가 다시 몸을 숙였다. 입술이 다시 닿은 순간 정헌은 눈을 꽉 감았다. 다비가 정헌의 입술을 아래위로 살며시 핥았다. 그는 움찔 떨었다. 자신이 꼭 사탕이 된 것 같았다. 입술을 할짝거리는 부드러운 혀에 온몸이 녹아내리고 있었으니까.

“아… 으음….”

정헌은 그녀의 몸에 손을 대고 싶었다. 다비가 다시 멀어지지 않도록 어깨를 붙잡고 싶었고 그녀의 목덜미를 가까이 당겨서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조금 더 가까워지면, 더한 기쁨이 주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양손은 그녀 주변을 애타게 맴돌았다. 조금 전까지 다비는 정헌의 페니스를 손으로 만지고 다리 사이로 문질러대며 아무렇지 않게 그의 은밀한 부위까지 만졌었지만, 그 사실은 이미 정헌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비가 정헌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뺨을 만지는 손끝이 따뜻했다. 손등이라면 괜찮을까. 정헌은 홀린 것처럼 다비의 손등 위를 감싸면서 매만졌다. 손은 자신의 것보다 훨씬 작고 보드라웠다.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손등 위에 닿자, 다비가 그의 입술 위에서 살짝 웃는 소리가 났다. 다비가 조그만 목소리로 간지럽게 속삭였다.

“예전에도 그러더니 똑같네.”

그때였다. 다비의 혀가 정헌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몸이 굳어졌다. 키스는 혀와 혀가 얽히는 행위라는 것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다비가 혀끝으로 살며시 그의 혀를 쓸어 올리고 입안의 점막을 쓰다듬었다. 정헌은 어떻게 응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멈춘 채였다.

그러다 갑자기 다비가 입술을 뗐다. 정헌은 자신이 뭘 실수했나 싶어서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녀와 나누는 키스가 너무 기분 좋아서 절대로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해요? 하기 싫으면 그만둘게요.”

다비가 뾰로통한 얼굴로 정헌을 노려보았다. 화가 난 건가. 정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겁지겁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럼 정헌 씨도 하고 싶은 거죠?”

“……예.”

정헌의 대답에 다비가 표정을 풀더니 배시시 웃었다. 정헌은 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졌다. 세상에서 저렇게 예쁘게 웃는 생명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그녀를 웃게 만들고 저 웃음을 보고 싶었다.

“모르면 열심히 따라 해요. 가만히 있으면 나 속상해요.”

다비가 그의 뺨을 톡톡 손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향기가 코와 입을 통해서 전해졌다. 향은 정신없이 몸 안을 파고들어 피부 바깥으로 솟아 나오려고 아우성쳤다. 페니스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헌은 다비가 움직이는 대로 키스를 따라 했다. 그녀가 입술을 빨아들이자 그 역시 똑같이 입술을 빨았다. 입천장을 핥으면 그녀의 혀 아래를 문질렀다. 혀가 얽혔다가 풀렸다. 그녀가 혀를 거둬들였다. 정헌은 빨려 들어가듯이 다비를 따라가 그녀의 입 안에 혀를 넣었다.

“아… 으, 으응.”

조심스럽게 다비의 잇새를 핥자 다비가 자그맣게 신음했다. 귀가 먹먹해서 확실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을 통해 소리가 전해지자 가슴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반응하는 것이 기뻐서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정신없이 키스하고 있는데, 입술을 살짝 뗀 다비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는 키스만 하자고 했잖아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정헌은 입을 다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키스만으로 빨리 끝내버리고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녀보다 그가 훨씬 더 원하고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다비에 비해서 그는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앞의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하고 싶은데… 당신은?”

다비가 말끝을 살짝 늘이면서 정헌의 가슴 위쪽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 감촉에 손끝까지 욱신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퓨즈가 나간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렸다.

“저… 저도….”

정헌은 홀린 것처럼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다비의 입술이 양쪽 끝으로 올라갔다.

“그러면 가만히 있어요.”

“예?”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하고 싶으니까. 움직이지 말아요. 안 그러면 그만둘 거예요.”

다비는 그렇게 다짐을 받더니 상의로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었다. 옷 안의 속옷이 모습을 드러내자 정헌은 헉 숨을 참았다. 둥글고 부드러운 가슴을 하얀 브래지어가 감싸고 있었다. 너무나 야하고 자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커트를 벗었다. 브래지어와 같은 색의 팬티를 보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옷을 전부 벗으니 그녀의 살결에서 풍기는 향이 아까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정헌의 성기는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커져서 끝까지 올라붙었다.

“나는 어디를 만지면 당신이 좋아하는지 다 알아요.”

“으… 으읏….”

“말하자면 당신에 대한 완벽한 공략법을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셈이죠.”

다비는 손으로 정헌의 가슴 끝의 유두를 쓸어내렸다. 생각도 하지 못한 감각에 그의 허리가 위로 튀어 올랐다. 다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머금었다.

“여기가 첫 번째.”

“아아….”

다비가 손으로 그의 가슴을 매만지면서 몸을 숙여 가슴 위를 깨물었다. 정헌은 날카로운 쾌감에 고개를 뒤로 꺾었다. 그녀가 깨문 부분을 가볍게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들였다. 단단한 가슴 윗부분에 새빨간 자국이 남았다.

“여기가 두 번째.”

다비의 손이 가슴에서 옆구리와 허리 쪽으로 내려왔다. 손이 닿은 순간 정헌은 신음했다. 간지럽고 오싹한 느낌이 손끝과 발끝으로 내달렸다. 다비가 아주 나긋나긋한 손놀림으로 그의 허리를 주무르고 쓰다듬었다. 머리가 어질하고 성기가 꺼떡거렸다.

“여길 이렇게 만져주면 좋아서 바들바들 떨었는데, 기억 안 나요?”

“아… 아흐윽… 흣….”

그녀가 만지는 곳마다 황홀경이 몰아쳤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헌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녀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했으므로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지만, 점점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비를 만지고 싶었다. 살결을 쓰다듬고 싶었다. 품에 끌어안고 싶었다.

“만지는 건 괜찮아요.”

정헌의 숨이 흐트러지고 눈가가 붉어진 것을 발견한 다비는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허리 위에 올렸다. 그녀의 피부가 자신의 손 안에 착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의 몸은 원래 이렇게 말랑거리는 건가? 남자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새삼스럽게 그녀가 다른 성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손이 천천히, 몇 번 머뭇거리면서 다비의 가슴으로 올라갔다. 둥근 가슴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쌌을 때 그는 숨을 멈췄다. 부드럽고 촉촉한 살이 위아래로 살며시 흔들렸다. 얼마나 연약해 보였는지 손자국이 남을 것 같아서 함부로 힘을 줄 수도 없었다.

“아… 으음…….”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하자 다비의 표정이 조금씩 녹는 것이 보였다. 정헌의 심장이 조여들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이런 표정을 지어준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헌은 그녀의 등 쪽으로 손을 뻗었다. 브래지어를 풀고 싶어서 손으로 끈을 매만져 보았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등 쪽에 여밈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정헌은 몇 번 헤매다가 마침내 후크를 풀고 브래지어를 벗겨냈다.

“…….”

젖가슴은 희었다. 끄트머리의 유두가 붉게 솟아 있었다. 천으로 감싸져 있던 가슴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한 향이 풍겼다. 숨이 가빠지고 침이 꿀꺽 넘어갔다. 뭔가에 끌려가는 것처럼 손을 뻗어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둥근 가슴이 그의 손안에서 움직이는 대로 모양을 바꾸었다.

“아… 으으응.”

다비가 허리를 살며시 뒤틀었다. 신음이 꿀보다 달았다. 그 모습이 어찔하게 아름다워서 정헌은 넋을 잃었다. 다비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끝을 그의 입에 닿게 했다. 정헌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다비의 유두를 입에 물었다.

“하아, 읏.”

다비의 신음 소리를 듣자 뱃속이 울렁거리며 솟아올랐다. 그는 뭔가에 취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꼭지를 빨았다. 살갗은 태어나서 혀를 댔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그녀의 가슴 안쪽에서 심장이 뛰는 움직임이 느껴져서 그럴 지도 몰랐다.

아, 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이렇게 기분 좋은 거지?

그때 어떤 장면이 정헌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어느 호텔 위의 침대인 것 같았다. 몸 위에 앉아 있는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마시며 심장 소리를 느끼는 중이었다. 옷을 벗은 다비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순간 정헌은 벼락처럼 불쾌함을 느꼈다. 이름조차 모르는 거센 감정에 온몸이 저릴 정도였다.

“기억나는 거 있어요?”

정헌이 잠시 멈칫하자 다비가 뭔가를 느꼈는지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없습니다.”

정헌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방금 떠오른 것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정헌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걱정 말아요. 내가 결혼식 전까지 당신 기억을 꼭 찾아줄게요.”

정헌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다비가 그렇게 다짐했다. 정헌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거짓말을 한 것 때문인지 가슴이 쿵쿵대며 심하게 뛰고 있었다.

다비가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단단하게 발기해 있던 정헌의 페니스를 쓰다듬었다. 손이 닿았을 뿐인데 다리 사이가 뜨겁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상자 속에 있는 콘돔을 꺼내더니, 젖은 눈동자로 흘끔 정헌과 눈을 마주쳤다.

다비가 자신의 팬티를 벗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성기에 콘돔을 손쉽게 씌우더니 그 위를 부드럽게 자신의 성기로 문질러 적셨다.

성기와 성기의 예민한 점막이 맞닿는 생생한 느낌에 정헌이 파르르 떨었다. 뜨겁고 촉촉하고 화끈거렸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날것의 쾌감이 뒤통수까지 치솟았다.

“아….”

“으… 으윽….”

천천히 다비가 그의 성기를 몸에 넣기 시작했다. 빠듯하게 채워갔다. 다비는 뜨거운 숨을 내쉬면서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워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성기 끝부터 녹아내리는 것처럼 쾌감이 흠뻑 느껴졌다. 괴로울 정도의 황홀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곳에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천천히 다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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