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2/55)

외전 2. 채팅

* * *

정헌이 독일로 먼저 떠난 지 벌써 일주일가량 흘렀다. 그동안 나는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헌 역시 그 곳에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고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

그리고 새벽 네 시가 되어가는 깊은 새벽, 나는 완전히 잠에서 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송다비, 며칠이나 됐다고 그새 욕구 불만이냐.”

내 자신이 한심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다. 참으로 오랜만에 절륜 버전 한정헌이 꿈에 나왔던 것이다.

완전히 옷을 벗은 그가 섹시하게 웃으면서 침대 위로 올라와 내 몸을 깔아뭉갰다. 거친 손놀림으로 내 가슴을 주무르고 은밀한 부위를 실컷 괴롭히고 삽입했다. 그 순간 가득 차는 느낌이 안 드는 바람에 어쩐지 허탈감이 느껴져서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매일매일 같은 침대에서 껴안고 잠을 자다가 떨어져서 그렇지, 하고 스스로를 변호해 보았지만. 아니 무슨 십대도 아니고 툭하면 야한 꿈이야? 매일 일하고 돌아오는데 정력이 얼마나 뻗치길래.

구스다운 이불을 끌어당겨 바디 필로우처럼 몽글몽글하게 인간 모양을 만들고 꽉 끌어안았다. 정헌이 머물던 향이 옅게 배어있어서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운 기분이 몸 안으로 차올랐다.

하지만 이 느낌이 아냐. 갑자기 그의 촉감, 체온, 목소리가 필요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충동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다비 씨.”

신호가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정헌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노곤해졌다.

“거기 지금 몇 시예요?”

“저녁 여덟시입니다. 거기는 많이 늦은 시간이겠는데요.”

“응, 새벽 네 시예요.”

“아까 열두시쯤 주무신다더니 여태 깨어 있었나요? 몸이 또 안 좋아지신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나는 약해진 목소리로 투정했다.

“정헌 씨가 그리워서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왜 자꾸 남의 꿈에 나오고 그래요?”

그가 하하 소리를 내면서 기쁘게 웃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보고 싶어요.”

정헌의 목소리에서 애틋함이 묻어났다. 그 진심어린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뿔이 솟았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애달픔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좀 더 피부에 닿는, 노골적이며 현실적인 그리움이었다.

“정헌 씨, 난 지금 신체적인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는 거라고요. 형이상학 아니고 형이하학.”

“…몸이 외롭다는 뜻입니까?”

“그거죠. 지금 당장 어떻게든 해줬으면 좋겠는데 정헌 씨는 못 해주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섹스 토이라도 꺼냈을 텐데, 우리 집에서 정헌 씨랑 같이 도구를 썼던 이후로는 혼자 하는 걸로 흥분이 잘 안 돼요. 정헌 씨가 날 이렇게 만들어 놨다구요.”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잠잠히 듣고 있던 정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흥분이 한 겹 입혀진 목소리였다.

“책임이 막중하군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몰라요. 정헌 씨가 알아서 해봐요.”

“저는 아시다시피 다비 씨 목소리만으로도 흥분하는 사람이라서요. 그럼 목소리라도 괜찮다면 쓰시겠습니까?”

“목소리? 그거 폰섹스 말하는 거예요?”

“네, 폰섹스요.”

그가 나를 따라 대놓고 적나라한 단어를 뱉었다. 정헌이 아무렇지 않게 야한 말을 할 때마다, 키스 한번에도 쩔쩔매던 한정헌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묘한 쾌감이 몸을 뒤흔들었다.

“적어도 목소리로는 다비 씨 옆에 있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겠어요?”

“처음이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무슨 올림픽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얘기를 한담. 폰을 귀에 대고 피식 웃는데 갑자기 정헌의 목소리가 착 바닥에 깔린 것처럼 낮아졌다.

“다비 씨 지금 뭐 입고 있습니까?”

“정헌 씨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해준 슬립이요.”

“진한 파란색에 반짝이가 뿌려진 것 같은 것 말씀하시는 거죠? 그 슬립 입은 다비 씨를 쓰다듬을 때마다 우주에 손을 넣고 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한정헌이 이렇게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하다니. 이 슬립을 입고 보냈던 뜨거운 밤을 떠올리자 어쩐지 조금씩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폰섹스 한번 해보고 싶긴 했어.

“그 슬립은 가슴 부분에 불필요한 장식이 달려있지 않아서 좋았어요. 가슴을 만질 때 방해가 되지 않아서요.”

“…으응….”

“다비 씨는 다비 씨 가슴이 얼마나 부드럽고 예쁜지 압니까?”

정헌의 목소리는 조용조용 나긋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 그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하얗게 몽롱해졌다. 그가 내 위에서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다비 씨 가슴을 주무르면 부드럽고 말랑해요.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손자국을 남기고 싶을 정도로요.”

“…아, 으응.”

“한번 만져보세요.”

정헌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 감각이 간질간질했다. 평소보다 훨씬 나긋해서 귀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오는 목소리였다. 그저 그의 말을 듣는 것뿐인데 귀에서 목덜미로 찌르르, 신경을 자극하는 느낌이 났다. 나는 마치 그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홀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정헌의 말대로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뭉클, 부드러운 살의 감촉과 둥글게 솟아오른 모양이 손을 통해 전해진다. 뱃속에서 줄을 당기는 것처럼 꾸욱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으응, 정헌 씨. 아, 앙.”

“다비 씨는 내가 만졌던 거 기억하죠?”

“흐읏… 응, 응, 네….”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려 보세요.”

“아……”

“그럼 푸딩처럼 가볍게 살짝 흔들립니다. 손에 가득 들어오는 느낌이 얼마나 황홀한지. 그리고 끄트머리가 손가락 사이에 걸려서 파르르 떨리는 느낌도요….”

“으응, 하아…아, 이상해요….”

“그때 이미 다비 씨 젖꼭지는 빳빳하게 서 있죠. 얼른 만져달라는 듯이. 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나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왼쪽 가슴의 젖꼭지를 잡고 끝을 살짝 비틀었다. 온 몸에 파동처럼 짜릿함이 퍼져 나갔다. 나도 모르게 앗, 하고 신음이 터져 나갔다. 정헌은 잠시 침묵했다.

“잘 했습니다. 지금 내가 만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읏….”

“입술로 비비고 입에 넣고 싶습니다. 다비 씨가 그만 하라고 소리 낼 때까지 영원히 계속해서 핥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고.”

“아읏, 정헌 씨….”

정헌이 가슴을 애무하는 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한쪽 젖꼭지를 두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듯이 하면서 돌리고, 다른 쪽 젖꼭지를 빨아들이는 거였다. 젖꼭지 주변을 돌면서 촉촉하게 젖을 정도로 핥고, 밑에서 위로 여러 번 핥아 올리고. 그러는 동안 다른 쪽은 꾸욱 누르면서 둥글게 문지르곤 했다.

입에 머금고 부드럽게 혀로 핥는 것도, 가끔 흥분해서 이빨 자국이 날 정도로 거칠게 물고 빨아들이는 것도 모두 좋았다. 특히 가슴을 애무하다말고 흘끗 올려다보아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야릇하고 뜨거운 숨을 뱉곤 했다. 그 눈빛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허리가 흠칫했다.

“아흑, 하, 읏.”

“지금 다비 씨 허리가 튀어 오르지 않았습니까?”

“뭐야, 하앙, 그런 걸 으읏,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다비 씨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까요.”

정헌의 목소리에 흥분이 넘실넘실 차오른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에 색깔이 있다면 분명 붉게 달아올랐을 터다. 붉은 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의 성기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미 붉게 커져서 흉흉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정헌의 것.

“그렇게 흥분하고 느끼면서 살짝 찡그리는 다비 씨 표정, 본 적 없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예쁜데. 나중에 거울로 보여드릴게요.”

“…아…읏… 하앙, 앙, 정, 정헌 씨.”

“혹시 다비 씨 벌써 아래를 만지고 있는 겁니까?”

“…네.”

“젖었습니까?”

“…완전히.”

아직 손도 제대로 대지 않았는데도, 그저 스스로 가슴을 주무르고 그와의 섹스를 떠올렸던 것뿐인데 이미 속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얇은 천이 안쪽 성기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표면이 완전히 젖어선 질 입구가 움직이고 있겠군요.”

움찔거리면서. 정헌이 조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말을 듣자 다리 아래쪽에 싸아하게 전율이 돌면서 아래쪽 물이 흘러내렸다. 애액이 흘러넘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나는 팬티를 벗어 침대 아래로 던지듯 떨어뜨렸다.

“클리토리스도 부풀었습니까?”

잔뜩 흥분해서 젖은 살갗에 손이 닿자마자 아릿한 쾌감이 찾아왔다. 성기를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은 차다고 느껴질 만큼, 아래쪽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천천히 꾹꾹, 정헌이 그러는 것처럼 부풀어 오른 정점을 만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바이브나 공기압 기계를 써서 자위할 때처럼 급속도로 간편하게 올라가는 쾌감은 없었지만, 대신 손이 주는 장점은 강도를 부드럽게 조절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아래쪽에서 뭉근하게 차오르는 달짝지근한 감각이 퍼지면서 천천히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마치 꿀에 빠진 개미가 된 것처럼.

“아…, 기분 좋아요, 응, 정헌 씨, 흣, 아앙.”

“얼마나 좋은가요? 다비 씨는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할 텐데.”

“간지러워요…. 꼭 녹아내리는 것처럼, 흥분되고, 계속 젖어요.”

“조금만 더 세게 만져보세요. 다리에 힘을 주고.”

정헌의 말을 따라 힘을 주며 감각을 집중했다. 손이 은밀한 부위를 열고 만질 때마다 열감이 홧홧하게 솟아올랐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원초적인 쾌감이었다. 마치 어린 십대 때 처음으로 자위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툭 하고 어느 선을 타고 올라온 쾌락이 몸을 지나갔을 때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놓칠 뻔 했다.

“아, 으, 흐읏, 아아, 아 너무 좋아, 으응, 흑.”

“저도 듣고 싶습니다. 들려주세요.”

질걱 질걱, 내 손 아래에서 축축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정헌이 갈증 섞인 목소리로 한 번 더 재촉했다. 저에게도 들려주세요. 조금 민망했지만 나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하반신으로 가져갔다. 물이 차오르고 또 흘러넘치고 문지르면서 들쑤시고.

하지만 정헌이 귀를 기울이며 이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는 상상을 하자마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온 몸에 쾌감이 차올랐다.

“하아…….”

“아, 아, 흑! 정헌 씨! 하으으윽!”

다시 휴대폰을 귀로 가져왔을 때,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정헌의 숨소리를 듣자마자 커다란 파도에 철썩 먹힌 것처럼 큰 쾌락이 관통했다. 질 안쪽이 마치 흥분한 맥박처럼 불규칙하고 거칠게 들뛰기 시작했다.

“앗, 아앙, 아읏, 앗! 아흐응!”

“아… 다비 씨….”

흥분으로 잠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오르가즘을 맞이할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정헌의 눈빛을 상기했다.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당장이라도 내 온몸을 핥아서 먹고 싶다는 듯이 바라보는 야해빠진 눈동자. 가쁜 숨을 내쉬면서 내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을 때 눈에 잔뜩 치밀어 올라 있는 성감.

“손가락은 넣었습니까.”

정헌이 잔뜩 잠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따라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질 안으로 넣었다. 안쪽에 뜨겁게 솟아나오는 물이 가득했다. 저절로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눈을 꽉 감으면서 손가락의 감촉과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다비 씨 안쪽은 꼭 다비 씨랑 닮았습니다. 손가락을 하나만 넣어도 꽉 안아주는 것처럼 강하고 따뜻하고 가끔은 제멋대로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이고.”

“아아, 으응….”

“다비 씨는, 다비 씨 안이 얼마나 기분 좋고…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운지 압니까? 가끔은 나만 그걸 누리는 것 같아서… 하, 다비 씨에게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아…, 그런 말 너무… 야하네요…, 하읏, 응, 응.”

내가 내 손가락으로 만지고 있는데도 마치 그의 것을 빌린 기분이었다. 정헌이 발견한 곳인 안쪽의 윗부분, 도톰하게 튀어나온 부위를 손끝으로 긁어냈다. 순간 탄성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으, 응, 아읏, 아!”

애액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깊숙한 곳까지, 내 손가락이 닿을 수 있는 끝까지 들어갔다. 질걱 질걱, 철썩철썩, 음란한 소리와 함께.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가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신음 소리를 참지 않았다.

“아, 다비 씨 안에 지금… 너무 들어가고 싶어요….”

흥분으로 무거워진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가 삽입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돌리면서 끝까지 들어오고, 힘껏 삽입했다가, 끝 부분을 잘게 자극하고, 부드럽게 쳐올리다가, 강하고 빠르게 박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처럼 흥분되는 한정헌과의 섹스.

잠시 숨을 한 번에 들이마시려고 긴장을 푼 순간 통증처럼 단번에 쾌감이 번졌다. 나는 헉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뒤로 꺾었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강한 쾌락이 깊숙한 곳에서 퍼져 나와 온몸을 경련케 했다.

“흐윽, 흣, 하앙, 아아아… 하윽!”

여러 개의 섹스 토이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은, 얄궂게도 빨리 차오른 쾌감은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차오른 느낌은 몸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가 느릿하게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속도 20으로 절정까지 다다른 기분이었다. 완만한 능선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흥분을 마음껏 만끽했다.

“하아…아.”

귓가에 흥분한 정헌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내 몸 위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목소리만으로 이 정도까지 흥분하다니. 정헌이 내 목소리를 듣고 느낄 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좋았습니까?”

“응… 너무 기분 좋았어요. 하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요.”

나는 아까부터 흥분에 떨리고 있는 정헌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곧바로 휴대폰의 영상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응했다. 그의 얼굴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를 흥분시키려다가 자기가 훨씬 흥분해서 귓가와 눈매 끄트머리가 붉어진,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는 사랑스러운 한정헌의 얼굴.

“나는 나만 느끼는 걸로는 충족이 안 되거든요. 이번에는 정헌 씨 차례예요.”

* * *

정헌의 귓가가 빨갰다. 호텔 침대의 헤드에 기대 있었는지 그의 등 뒤로 커다란 베개와 호텔 벽이 보였다. 정헌은 약간 나른하게 풀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뻐라.

“나 정헌 씨가 느끼는 것도 보고 싶어요.”

“왜 저는 영상통화입니까?”

“그야 나는 청각보다 시각에 약한 사람이니까요.”

숨소리 사이로 웃음이 섞였다. 이불이 바삭바삭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음량 버튼을 최대로 조절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휴대폰 고정해 놔요. 내가 정헌 씨 몸을 다 볼 수 있는 자리에다가.”

정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에 놓인 사이드 테이블에 휴대폰 거치대가 있었는지 몸을 구부리고 휴대폰을 가로로 올려두었다. 이제 내 시야에는 그의 호텔 침대가 완전히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옷 벗어 봐요.”

정헌은 편한 홈웨어를 입고 있었다. 함께 쇼핑가서 골랐던 파자마 상의였다. 정헌은 내 쪽을 보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섰다. 그리고 부끄러운지 약간 망설이면서 파자마의 단추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안에는 흰 무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정헌의 반팔티셔츠 차림을 정말로 좋아했다. 거의 집착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온갖 색깔의 티셔츠를 사다가 그에게 입혀보고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내 취미가 되었다. 부드러운 면 티셔츠가 팽팽해지도록, 정헌의 몸이 그득 들어차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흐뭇하고 뿌듯한지. 그 어깨와 가슴과 등 근육을 보면서 만지작거리면 아무리 화가 나 있어도 금세 기분이 풀렸다.

“다 벗어야죠.”

웃는 낯으로 말했다. 정헌은 잠깐 망설이더니 티셔츠를 먼저 벗었다. 그리고 하의인 트레이닝 바지를 내렸다.

속옷 하나가 남았다. 그가 머뭇거리면서 내 쪽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벗어야 되느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정헌은 팬티를 벗었다. 물건은 이미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그가 조금 민망한 듯이 뺨을 붉혔다.

“내 목소리 들으면서 흥분한 거예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응, 인정해요. 오늘은 그럴 만 했죠.”

“평소에도 늘 그럴 만 합니다. 다비 씨 목소리가 너무 섹시한걸요.”

“그래도 그렇지 목소리만 듣는데도 매번 그렇게 서는 건 좀 문제가 있어요.”

“다비 씨는 이 문제를 고칠 의향이 전혀 없으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는 배시시 웃었다. 정헌도 나를 따라 웃었다.

“자, 이제 앉아서 내 쪽을 봐요.”

정헌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배 쪽으로 솟아오른 성기가 확실히 보였지만 난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다리 벌려 봐요.”

“네?”

“정헌 씨 다리를 벌리라고요. 내가 안을 볼 수 있게.”

정헌은 처음 듣는 명령에 눈이 커졌다. 제 다리를 벌려서 뭣에 쓰느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타협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금씩 무릎 사이를 넓혔다. 천천히 양 옆으로 벌어져서 내 손으로 한 뼘 정도 간격이 되었다.

정헌의 목 부분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시키는 난잡한 짓거리들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된 그였지만, 가끔 신선하게 수치스러운 짓을 시키면 저렇게 목부터 귀까지가 붉어지곤 했다.

“조금 더.”

“다비 씨….”

“활짝 벌려야죠, 정헌 씨.”

“저, 이건 너무.”

“괜찮아요, 응? 지금 너무 예뻐요.”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정헌은 자기가 이런 걸 하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리면서 주춤주춤 다리를 좀 더 벌렸다. 안쪽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자세였다. 빳빳하게 일어난 성기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이 영상통화의 낮은 화질로도 보였다.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들여다보았다. 정헌은 내 눈치를 살피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다리 사이를 닫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 보였다. 한 손으로 계속해서 붉어지는 얼굴을 가렸다.

“다비 씨, 부끄러워서…….”

“예쁘기만 한데 왜 그래요. 손 대고 싶어요. 나 정헌 씨 허벅지 안쪽 만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아, 으음.”

정헌은 기억을 떠올리는지 목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냈다. 귀보다 조금 더 예민한 부위로 그의 허벅지 안쪽을 찾아낸 이후, 나는 섹스를 할 때마다 정헌을 눕혀놓고 다리 안쪽을 밤새도록 가지고 놀았다. 쓰다듬을 때마다 정헌의 허리부터 엉덩이까지가 흠칫거리는 것이 얼마나 나를 자극하는지.

“지난번에는 내가 정헌 씨 허벅지를 온통 핑크색으로 만들어 놨었잖아요. 키스마크 수십 개 남겨서.”

“아, 흐읏.”

“그날 수영장에 같이 가고 싶었던 걸 겨우 참았다고요. 수영복 아래로 빨아들이고 깨물어놓은 자국이 잔뜩 보이면 얼마나 섹시할까. 아마 시선이 집중될 테죠. 남들한테 당신이 내 거라는 표식을 보여주면 진짜 기분 좋겠죠? 응?”

나긋나긋하게 말하자 정헌이 파르르 떨었다. 상상을 했는지, 그래서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면서 숨을 뱉었다. 그와 동시에 다리가 약간 오므려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제대로 다시 벌려요.”

내가 이렇게 달려갈 때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이 사람은 잘 안다. 정헌은 결국 두 눈을 꽉 감고 다시 다리를 벌렸다. 위를 향해 솟구치고 있는 그의 물건이 완전한 모양으로 단단해져 있었다.

“아… 다비 씨.”

“내숭쟁이. 정헌 씨는 안 그런 척 하면서, 이런 말에 엄청 흥분한다니까요.”

“그런 게 아니라….”

“직접 봐요. 얼마나 빳빳하게 섰는지. 만지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로 섰다구요.”

정헌이 제 물건을 바라보았다. 붉어진 귓가와 콧잔등이 보였다.

“너무 예쁘다. 그쵸?”

“…하아, 으음.”

“허벅지에 온통 키스마크를 남겨 놓고, 천천히 아래 주변을 만지고 싶어요. 보통은 조금 젖어 있는데, 지금도 그래요?”

“으음… 네, 조금, 그렇습니다.”

“응, 핥고 싶어요. 내가 입으로 해주면 좋아하잖아요. 하아하아, 되게 귀엽게 숨을 내쉬면서.”

“아, 다비 씨, 하아.”

내가 계속해서 말로 그를 희롱하자, 견디다 못한 정헌의 손이 자신의 페니스로 다가갔다. 페니스의 끝이 이미 젖은 걸로 봐서는 한껏 흥분한 모양이었다.

“안 돼요, 아직 만지면.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응? 금방 하게 해줄 테니까.”

“아, 으응, 읏.”

“정헌 씨는 입으로 해주는 거랑 손으로 해주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아요?”

“그걸 어떻게 고릅니까?”

“안 고르면 앞으로 둘 다 안 해줄 거예요.”

“…….”

정헌이 괴로워하면서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정말로 우위가 없이 둘 다 좋습니다. 뭐든 다비 씨가 해주는 거면.”

“음, 오늘은 손으로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네.”

“그럼 이제 천천히 만져 봐요. 내가 해줄게요.”

속삭이자 정헌이 천천히 손을 내려서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위 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나 역시 흥분이 차올랐다. 정헌은 뜨거운 숨을 내쉬면서 짧게 신음했다.

“아, 으, 으읏.”

“응, 정헌 씨, 기분 좋아요? 눈감고 내 손이라고 생각해요, 알았죠?”

“네… 아아, 으으응, 흣.”

“정말 좋은가 보다. 내 앞에서 이렇게 다리 벌리고, 이제는 움츠릴 생각도 안 하고 손으로 문지르는 거 보니까.”

“아, 흐, 으으,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정헌 씨 거 얼마나 뜨겁고 단단한지 알아요? 큰 것도 큰 거지만 너무 단단해서 처음에는 놀랐어요. 내 안으로 들어올 때, 꽉 차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요….”

정헌의 손길이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두 눈을 꽉 감고 참기 어렵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질걱 질걱, 흘러내린 액체와 단단한 살갗이 마찰하는 소리가 지나치게 야했다.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잔뜩 흥분한 그의 모습은 평생 본 어떤 장면보다도 선정적이었다.

“하아, 다비 씨, 다비 씨….”

“아, 이제, 넣어줬으면 좋겠어요. 응, 망설이면서 천천히 들어오지 말고, 한 번에 끝까지. 나 그거 너무 좋으니까. 응?”

“저도… 저도 너무 좋습니다. 하아, 다비 씨한테 들어가서 안에서 움직이는 거, 흑, 응.”

정헌이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곧은 목선과 목덜미가 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소리가 좀 더 요란하게 들린 것은 물론이었다. 그게 신경 쓰였는지 정헌이 눈을 뜨고 내 쪽을 살폈다.

“아, 꼭, 내가, 지금 당신한테 박히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정헌이 헉 소리를 냈다. 나에게 내밀한 곳을 내보이고 흥분한 성기를 잡고 흔들고 있다가 거칠게 밀어붙이는 섹스를 상상했는지 손놀림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쾌감이 치닫는 표정이었다.

“아아, 아읏, 윽!”

짧고 강한 신음을 내뱉은 다음 순간, 정헌이 참았던 더운 숨을 토했다. 그리고 동시에 뜨겁고 하얀 액체를 분출해냈다. 정헌은 한참 동안 거칠게 호흡했다. 쾌락에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잘 보였다. 그가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만족했다.

“응, 잘했어요, 정헌 씨.”

“하… 후우우….”

“왜 얼굴을 못 들어요?”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목소리로만 하는 것보다 이게 좀 더 야한 것 같다. 그쵸?”

“저는… 다비 씨 목소리만 듣는 것도 못 견디게 야합니다.”

섹스 후에는 서로를 안고 키스하는 패턴이 몸에 익어서 그런지 지금 당장 그를 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헌이 휴대폰으로 손을 뻗더니 카메라가 있는 방향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습니다.”

“응, 나도요.”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그가 애틋하게 말했다.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정헌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안긴 기분으로 드디어 천천히 나른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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