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편
<-- 19. 이런 엔딩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마왕과 섹스하는 성녀라니, 효과적일 것 같지 않아?”
음, 확실히 충격적일 것 같긴 하다. 신자들뿐만 아니라 내 멘탈도 견디지 못할 것 같고 말이지. 스트립쇼도 깡이 되어야 하는 거야.
“아예 신자들 앞에서 대놓고 하지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군.”
“나빠. 나빠. 내 사생활 만천하에 까발릴 만큼 철면피가 아니라고.”
머슨을 밀어내고, 거울을 보니 빨갛게 불어 튼 입술과 번진 립스틱이 문란하기 짝이 없었다. 머슨이 티슈를 뽑아 내 입가를 정성스레 닦아주기 시작했다. 제 입도 만만치 않으면서.
립스틱도 다 지워졌고, 머리도 헝클어져 결국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신전에 도착했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방탕성녀가 되기론 한 마당에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냐 하며 오히려 어깨를 당당히 폈다. 신전 내부에 들어서자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먼 곳에서 부터 누군가의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미사가 시작 됐나봐.”
마왕성 만큼은 아니지만 방이 수십 개는 돼 보이는 신전 안에서 미사를 드리는 성전을 찾는 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 같았다. 타고난 길치인 나로서는 불가능이었고, 어쨌거나 신전이 처음은 아닌 듯한 머슨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신자님,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될 까요?”
찰나에 검은 수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수녀님이 다가왔다. 옳다구나, 고민도 없이 고개를끄덕이자 수녀님은 미소 지으며 우리를 성전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성녀님이 오시는 날이라, 신자님들이 많이 모이셔서 오늘은 야외 성전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육중한 상아색 문이 열리고 빼곡하게 들어찬 고개 숙인 머리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보였다. 잔잔하게 들리는 성가의 반주에 마음이 경건해지는 기분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마왕의 반려인 입장에서 신의 가호를 바라는 것도 웃기는 것 같아, 그저 목례하는 것만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질서 있게 열을 맞추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많은 신자들을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덜컥 겁이 났다. 입버릇처럼 했던 주신 욕을 무심코 내뱉었다간 당장에 돌 맞아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였다.
발꿈치를 들어 앞을 내다 보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원형의 천막이 얼핏 보인다. 예상 컨데 그 아래엔 십자가와 단상이 있을 것이고, 사제님이 애타게 날 기다리고 있겠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뚫고 앞까지 가나, 막막해졌다. 에이씨,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죄송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 어깨를 툭툭 쳐가며 앞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지나갈게요. 임시 성녀인지 뭔지 돼버리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나는 열심히 몸통박치기 하며 앞으로 향하고 있는데, 뒤가 허전했다. 돌아보니 머슨이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따라오고 있지 않고 있었다.
“머…”
큰 소리 내어 부르려다가, 정숙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고 손만 흔들어댔다. 먼 곳을 응시하던 그가 드디어 나를 발견한다.
‘빨.리.와’
입 모양으로만 말하니, 그가 거침없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에게 다가왔다. 넓은 어깨에 밀쳐진 사람들이 기도를 하다 말고 불편한 기색으로 머슨을 바라보았다.
“그, 그렇게 빨리 오라는 소리는 아니었어.”
순식간에 내 앞까지 도착한 머슨이 손목을 잡아챘다.
“가자.”
“어딜?”
“단상.”
“지금 가고 있잖아.”
머슨이 이상했다. 화라도 난 것처럼 뚝뚝 끊어지는 냉 저음에, 붉은 눈동자는 서슬 퍼런 날이 섰다.
“벨라가 있어.”
“...?!”
머슨이 텔레포트를 시전 하였고, 단숨에 단상 위까지 이동되었다. 어지러운 머리 탓에 시야가 흔들렸으나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살폈다. 가장 처음으로 본 것은 당혹스러워 하는 사제님의 모습이었다. 푸른빛을 타고 나타난 내 모습에 놀라하던 사제님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본 것은, 미사전례를 위하여 책을 펴들고 있는 세르데벨라의 뒷모습이었다. 자칫 하면 알아보지 못 할 뻔 했다. 그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넘실거리던 금발을 모조리 가린 채 새하얀 베일을 뒤집어 쓴 모습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순순히 신전을 나간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아니었어. 비릿한 웃음이 흘렀다.
나와 머슨의 등장으로 어수선해진 장내에 이상함을 느낀 세르데벨라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잘 있었냐?”
내 인사에 그녀의 동공이 커지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집어 던져버렸다. 머슨이 팔로 그것을 쳐내어 다행히 맞지는 않았다.
깜짝이야.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세르데벨라 옆으로 천신이 다가와 그녀를 지탱했다. 역시, 너도 있구나? 세르데벨라가 날 향해 삿대질 하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내가 할 말이야. 너 왜 여기에 있냐?”
“죽어서 까지 날 괴롭히려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당장 지옥으로 썩 꺼져!”
정신 나간 사람처럼, 벨라는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소리만 질러댔다. 타인의 시선에 그렇게 신경을 쓰던 애가, 천명이 넘는 신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가감없이 날뛰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이젠 내가 무섭긴 하나봐. 아니, 네 죄가 무서운 건가.”
한 발자국 다가서니 세르데벨라가 두 발 멀어진다.
“차원의 문으로 날 던져 버릴 때 까지만 해도 얼마나 즐거웠겠어. 이렇게 다시 나타날 줄도 모르고 말이야. 덕분에 난 개고생만 엄청 했어. 이젠 네가 개고생을 할 차례야.”
“어떻게 돌아 온 거야, 악령이든 껍데기든 간에 당장 내 세계에서 꺼지라고!”
“싫은데.”
“그렇다면 다시 보내 주지.”
세르데벨라가 치아를 훤히 다 드러낼 정도로 입이 찢어지게 웃고는 내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아무런 변화도 없이 뻘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당황한 세르데벨라가 눈을 힘주어 감고는 다시 손을 뻗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만해.”
내가 다 창피할 지경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천신이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며 말렸다.
“왜, 왜 안 되지? 문이 안 열려. 어째서!”
“...그만해, 벨라.”
“그만하긴 뭘 그만해! 지금 뭐가 잘 못 됐어. 케일, 너 나한테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거야? 왜 잘 열리던 문이 안 열려!”
내 곁에서 가만히 서있던 머슨 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르데벨라가 했던 것처럼 손을 뻗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내 작은 빛들이 몸 위로 통통 튀어 오르더니 머지않아 빛 무리가 한데 모여 벨라의 등 뒤로 거대한 문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오오, 신이시여.”
사제님이 무릎을 꿇자 어리둥절하게 지켜보던 다른 신자들 또한 기적을 보았다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이거 말하는 거야?”
벨라의 얼굴이 경악으로 번졌다. 문을 향해 다가간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어루만졌다.
“내, 내것이 왜…”
“네게 아니야.”
챙!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빛 무리가 공중으로 흩어져 신자들의 머리위로 내려앉았다.
“물론, 내 것도 아니지. 따지고 보면 주신 놈 능력이야.”
사라져버린 문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세르데벨라가 고개를 푹 아래로 꺾자, 그것을 지켜보던 사제님이 그녀 앞에 걸어 나와 다시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얘기했다.
“세르데벨라님께 내려진 마지막 말씀은, 차기 성녀님으로 에리나 홀든님이 선택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성녀님이 바뀌었습니다.”
한동안 대답이 없던 성녀가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웃음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커져만 갔고, 숨죽여 웃던 소리가 입 밖으로 호탕하게 터져 나왔다. 머리에 둘러 싼 베일을 집어 던지면서 까지 웃어 대자 뒤에서 천신이 그녀의 몸을 끌어안는다.
“놔!”
“이제 그만하자.”
다 벗겨져 두피가 훤히 드러난 그녀의 머리에 신자들의 놀란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하!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뭘 그만해! 이제껏 하찮은 인간들을 위해 봉사했더니 내가 같잖게 보이나봐?!”
가히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칠게 몸부림치는 성녀로 인해 버티던 천신이 손을 놓아야 했고, 자유로워진 세르데벨라는 신전기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덩치로 따지면 배는 큰 기사가 세르데벨라의 기세에 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너무나 손쉽게도 허리춤에 달린 장검을 그녀에게 내주고 말았다.
“다 죽여야지.”
“벨라!”
광기에 휩싸인 눈이 날 향했고, 나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며 검을 바닥위에 질질 끌고 오던 세르데벨라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그것을 힘껏 올려 들었다. 연약한 팔이 머리 위에서 부들거리는 것도 보았고, 눈동자 사이로 검날이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내 몸에 그것이 닿기도 전에 발이 먼저 튀어나갔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단상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살의에 대한 집념이 강해 검을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놀란 천신이 그녀를 일으키려 팔을 잡자 거칠게 뿌리친다.
“이 죽일 년이!”
검을 잡고 일어선 세르데벨라가 악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무예를 배우지 않은 탓에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엉성했으나, 그만큼 괴기스럽기도 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간 절제되지 않은 칼날에 몸을 베이고 말 것이다. 몇 발자국 떨어진 채로 그것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아, 하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땀만 쭉 뺀 성녀가 죽일 듯이 나를 노려봤다. 그리곤 다시 검을 든다. 힘이 많이 들었는지, 위치도 엉망이었다. 굳이 피하지 않아도 검 날이 나에게 닿는 일은 없을 것이다.
푸우욱-
성녀가 칼을 내리치자, 얼굴 옆으로 많은 양의 피가 튀었다.
“꺄아악!”
공포에 찬 비명소리가 귀를 때리고, 질서정연하던 신자들이 마구잡이로 섞여들기 시작했다. 그들끼리 부딪히고, 밟히며, 엉겨 붙는다. 반면 내 몸은 멀쩡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피가 튀어 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수녀 한 명이 목을 감싸 쥔 채 바닥에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내 발 밑까지 진득한 피가 퍼져왔다.
========== 작품 후기 ==========
*독자님 : 작가님 오늘 링거 투혼이신가요?(약빨았다고 적고 싶으나 미화시킴)배째짐
작가 : 앗~ 배가 째지셨으면 다시 봉합해야죠~ 넝담~(한번더 웃어주셨으면!!!)
독자님 : (정색of정색) 저 원래 되게 잘 웃는 사람인데.
*독자님 : 으캬컄 아직 신혼이니 뜨거워야 할텐뎅 그렇다면 다음은 꾸금신?
작가 : 피의 꾸금신이요...
독자님 : (이게아니잖아)
*독자님 : 그렇게 기도 잘 들어줄거면 에리나가 주신 때리고 싶어하는 기도도 들어주시지 ㅋㅋ
주신 : 이미 한 방 맞았잖아! 나 맞는거 싫어해!!
독자님 : 나한텐 아직이지(살기)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확인 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