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편
<-- 19. 이런 엔딩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이렇게 잘 생겼는데도?”
순식간에 다가온 주신이 쪽 배 위에 양 팔을 얹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주신이라는 것을 알지만, 머슨의 얼굴은 엄청나게 취향이었다.
“머슨 얼굴로 그러지 말아요.”
“흔들리는 구나.”
“아니거든요?!”
“읏샤”
주신이 단숨에 배 위로 올라와 물에 젖은 옷을 짜지도 않고 바닥에 철푸덕 앉아 버렸다.
“사실 고민하고 있잖아. 넌 심성이 여리니까.”
“세뇌시키려 하지 마요.”
“세뇌 정도의 정신 마법은 우습지만, 그랬다간 케일이 한바탕 난리를 칠 것 같으니까, 포기. 진짜 화나면 나라도 조금 감당하기 힘들거든. 아차, 그리고 저번에 깜빡하고 얘기 안 한게 있는데.”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주신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수면 아래에 잠겨있던 문이 열리고 갈라진 틈 사이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있었다.
‘이름 모를 신님. 앞으로 기도도 꼬박꼬박 드리고 신전도 다닐 테니까, 제발 머슨이랑 만나게 해주세요.’
이어지는 천둥소리.
뜨끔. 분명히 내가 했던 말이다. 선명하게 기억도 난다 그런데 이걸 전부 보고 있었을 줄이야!
“이, 이건…”
“분명 네가 기도도 드리고 신전도 꼬박꼬박 다닌다고 했었지.”
“성녀가 되겠다는 말과는 다르죠!”
“신전에 가고, 기도를 드린다는 부분에선 비슷하지.”
“이런 억지가…!”
“케일을 만나게 해줬는데, 이제 와서 발뺌하기야?”
이마가 빨갛게 달아오를 때 까지 퍽퍽 때렸다.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저 말 취소할래요.”
먹고 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심에 찔렸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약속을 안 지키면 벌을 받겠다는 소리를 한 것도 아니니 일단 우겨보는 수밖에.
주신이 자신의 턱을 쓸더니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오히려 그 점이 더 수상해 아무 반응도 없이 지켜보기만 하자 말을 덧 붙인다.
“그렇다면 성녀의 권능을 빼앗고 너를 다시 다른 차원으로 넘겨야겠어.”
그러면 그렇지. 다른 수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너무 비겁하잖아요”
“신전에 가서 꼬박꼬박 기도를 한다는 조건으로 케일과 만나게 해줬던 건데, 취소한다니 뭐 별 수 있나,”
“으윽”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 자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내가 응하지 않으면 다른 차원으로 넘겨버릴 것이 분명했다. 주신에게 동정이나 연민 따위를 바라는 건, 여름에 모기가 나오지 않는 것만큼이나 허무맹랑한 것이다.
일어선 주신이 내 등을 두드렸다.
“10년만 하면 돼.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어렵고 말고를 떠나서, 당신이 멋대로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요.”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할 거지? 다시 차원을 넘어가겠단 소리인가?”
“...”
대답하지 못하자 주신이 본격적으로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도움 받을 건 다 받으면서, 싫은 건 하지 않겠다는 이기심이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 같군. 성녀는커녕 케일의 반려가 되기에도 넌 아직 애송이일 뿐이야, 그런 마음가짐이 벨라와 다를게 머… 악!.”
손이 얼얼했다. 멋대로 지껄이는 저 주둥이에 주먹 한 방 꽂아주면 속이라도 시원할텐데, 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주신이 입을 붙잡으며 신음했고, 그 모습에 소화제라도 먹은 듯 속이 뻥 뚫렸다.
“미안해요, 생각만 한다는 게.”
“웃지나 말고 얘기하지?”
겉으로도 티가 났지만, 미안함 마음 따위는 일절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 사과였을 뿐.
“이왕 한 대 때린 김에 하고 싶은 말도 다 할게요.”
“언제는 참았었나”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나를 멋대로 데려온 건 당신이고, 데려왔으면 살아갈 수 있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줬어야지, 나 몰라라 내팽개친 것도 당신이에요. 악착 같이 어떻게든 버텨서 머슨이랑 잘 좀 살아보려는데, 당신이 무책임하게 뽑은 그 빌어먹을 성녀 때문에 강제 이별 하게 된거라고요, 그때 잠깐 도움을 줬다고 나한테 이렇게 몰상식하게 협박해도 돼요? 인간이 이기적인건, 주신이라는 당신이 이기심의 결정체라 그래요. 어디서 인간 탓을 하고있어”
가만히 듣고만 있던 주신이, 몇 발자국 멀어지더니 발꿈치가 배의 끄트머리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자 그제야 멈춰 선다.
“뭐예요?”
“또 때릴 거잖아.”
들켰네.
흥분에 자제력을 잃은 척 한 방 더 갈겨주려는 것을 완전히 간파 당했다. 아쉬웠지만,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아쉬운 기색이나 없애고 얘기해.”
아까부터 내 심리에 대해 잘도 파악한다. 멀찌감치 떨어진 주신이, 벌어진 거리만큼 소리를 크게 내어 말했다.
“그래, 넌 확실히 벨라와는 다르지 정의롭고, 옳고 그름이 뭔 지 구분할 줄 알아. 내가 무책임 했던 것도 인정해. 하지만 내 열의를 다시 끓어 올려줄 만큼의 자극은 아직 없으니 난 앞으로 이 생활을 계속 하려고 해. 어이없고, 화가 나지? 이게 바로 네가 정의롭다는 증거야.”
뜬금없는 주신의 합리화에 당연히 내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여기서 주신은 멈추지 않고 한 술더 떠 얘기했다.
“들어 보니, 나 또한 이기적이었어.”
“이제 알았어요?”
“생각해보면 신들은 전부 이기적이야. 인간들에게 은혜를 내리는 건 기적이라 부를 만큼 희박하지만, 신을 위한 믿음은 늘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야.”
주신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하지만 난 이대로 살래. 이기적이게. 난, 주신이니까. 그러니까 에리나, 케일과 헤어지기 싫으면 10년간 잘 부탁해.”
“아니 뭐 이런 게 다있…”
발밑이 배 아래로 점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를 자신의 공간에서 쫓아내려는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얄밉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주신을 향해 욕을 쏟아 부었지만 물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마디도 소리가 되어 흘러나오지 못했다.
보글보글.
“아악!”
겨우 소리가 터져 나왔을 땐, 난 여관의 침대 위였다.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아니. 더러운 꿈을 꿨어.”
날 안아오는 머슨을 피하고, 침대에 다시 벌러덩 누워버렸다.
“주신새끼...”
내가 머슨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선 임시성녀가 되어야만 했다. 결국은 주신 뜻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 분통이 터졌다. 후우.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절대로 이상적인 성녀는 되지 않으리라. 신자 수 0명에 육박하는 이례적인 성녀가 되리라 다짐했다.
*
결전의 날이 왔다.
복수의 칼을 갈고 외나무 다리위에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비슷하다. 하나로 높게 묶은 머리와 평소엔 바르지 않던 붉은 립스틱 까지 진하게 발랐다.
“나 무서워 보여?”
한껏 턱을 들어 올리곤 확 째려보자 머슨이 움찔 한다. 후훗, 성녀치곤 내재된 화가 많아 보이게 하려던 방법이 통했…
“으읍?”
겨우 나갈 준비를 마쳤건만 갑자기 입술을 부비며 덮쳐오는 머슨으로 인해 머리가 헝클어지고, 입 주변에 붉은 립스틱이 번졌다.
“야, 잠깐…읍!”
“귀여워”
“하읍, 뭐? 귀여우면 안 돼…읏”
버티던 몸이 무너지고 등 아래에 차가운 바닥이 닿았다. 립스틱을 모조리 빨아 먹을 듯 머슨의 입술이 내 아랫입술을 꾹 물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으음...”
고개를 조금 튼 머슨이 혀를 집어넣고는 입안을 모조리 맛봤다. 다정하게 치열부터 침샘까지 훑어 가다가, 타액이 입 밖으로 흘러내릴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한번 빨아 드렸더니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그의 움직임이 성급해졌다.
츄읍, 츠으읍.
난폭해진 침입자에게 걸리지 않으려 가만히 숨어 있던 혀를 쿡쿡 찌르다가, 혀 주변을 빙글 돌리며 자극해 나간다. 아래턱을 눌러 입을 벌리게 한 머슨이 기어코 내 혀를 자
신의 입안으로 끌어당겼다.
“흐음”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뜨거운 입 안에서 혀와 농밀한 장난을 주고받았다. 입가에 뭍은 타액이 마르고 또 다시 타액이 젖어 올 때 까지도 키스는 멈추질 않았다. 슬슬 힘에 겨워 고개가 꺾일 때면 머슨이 턱을 잡고 제 앞으로 돌려왔다.
“하아, 하아.”
가슴을 툭 밀치자 그제야 입술이 떨어졌다. 립스틱의 붉은색을 입은 타액이 점성을 띈 채로 나와 머슨 사이에 야한 선을 만들어 냈다.
머슨의 입술을 지나 하얀 피부 위까지 립스틱으로 붉게 물든 채로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발끝이 간질간질해져 왔다.
“이대로 갈까?”
어투는 능글맞았으나, 살짝 내리깐 눈은 진지하기만 했다. 두근두근. 그의 사소한 장난에도 심장이 요동쳤다.
“미쳤어?”
“마왕과 섹스하는 성녀라니, 효과적일 것 같지 않아?”
========== 작품 후기 ==========
*지각지각!
*독자님 : 윽 머슨과 에리나 갈수록 닭털을 날리는 수준이..bb
*작가 : 어엇,(작가와 닭털 날리실 독자님 모십니다) (놀라울 만큼의 무관심)
...^^...ㅜ
*독자님 : 여기 환자가 두명이나 있네요... 세르데벨라(망상병말기), 머슨(에리나없인 못살아병 말기)
작가 : 한 명 더 추가요. (독자님없이 못사는 망상병 말기 작가)
*독자님 : 세르데벨라 덕에 인테리어 새로하겠네요~
작가 : (빵터지다) 여기서 가장 득을 본 건, 성녀의 방을 청소하는 시종이겠네요
시종 : 뜻밖의 개이득
*독자님 : 머슨 멋져요. 신랑 보고 머슨 처럼 똑같이 해달랬더니 셋째를 갖자네요;
작가 : (남편님 화끈) (훠오~) (박수)이미 머슨보다 더 멋지신 남편분을 만나신 독자님 (머슨은 아직 첫째도 태어나지 않음) 머슨, 분발하자?
머슨 : (...끄덕!)
에리나 : ? 조용히해.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사월화님 감사합니다^^
*확인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