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편
<-- 19. 이런 엔딩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정말 이것이면 됩니까?”
“완벽하죠.”
머슨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소박맞은 사내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사제님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올렸다. 조금은 무책임 할 지도 모르겠으나, 볼 일을 끝낸 나는 미련 없이 신전을 빠져 나왔다. 방이야 어떻게 꾸며지든 알 바는 아니었다. 하기 싫은 사람 억지로 붙잡아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알려주기 위하여 무리한 것들을 마구 요구했으니 신전 측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사실상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성녀의 방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을 만한 것들이라 나중 가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얘기를 들어도 서운한 것은 없었다. 미련이나 애착이 없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방이 완성 될 때까지 수도에 머물러 줬으면 한다는 사제님의 간곡한 부탁과, 묘연한 행방의 세르데벨라를 그냥 두기가 마음에 걸려 하는 수 없이 수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내리 묵었던 그 여관에 신전 기사들이 찾아 왔고, 생각 보다 일찍 방이 채워졌다는 소식을 함께 들고왔다.
...족히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행동력 한 번 끝내주신다.
내 무리한 요구에도 불평 없이 수용하였던 사제님의 정성과, 과연 방이 어떻게 변했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결국 다시 신전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제님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일주일 전의 난처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당함이 깃든 여유가 얼굴위로 드러났다.
설마 하는 생각이 불안하게도 스친다.
“들어가시지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왠지 모르게 뜨거운 공기가 피부 위로 닿는 것만 같다. 보여서는 안 될 검은 아우라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손 등위에 닭살이 돋았다.
“...”
있는 힘껏 문을 전부 열어 버렸다.
“?!”
기괴한 내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5번 1악장이 흘러나와야 할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가 몸을 지배했다. 슬쩍 뒷걸음질 치자 어느 틈엔가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사제님이 날 보며 미소지었다.
“어딜 가십니까? 확인해 보셔야죠.”
꿀꺽.
칼 갈았네 이사람.
“말씀 해주신 것처럼, 문은 검은 베이스에 머리가 터져 피가 튀긴 것만 같은 붉은 도트 무늬를 추가했습니다. 양 옆에는 눈이 세 개 달린 사자 조각상도 빠트리지 않았고요.”
그냥 사자 조각상이 아니라 흉포한 송곳니가 길게 드러나고 동공 없는 붉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괴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흡사 박쥐 날개와 같은 커텐은 바닥 밑으로 기이하게 흘러내렸고, 살아 숨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핏줄 패턴이 생생하게 들어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화사했던 벽의 색을 완전히 바꿔 짙은 보라색으로 덮어버렸다.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검은 테이블 위엔 잘린 손목 모양의 촛대가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주장하고 했고 그 외에도 찌르면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심장 모양의 전등, 전부 목이 잘려 있는 구체관절 인형들, 거인의 페니스를 뚝 잘라다 놓은 듯 한 옷걸이 까지 가지각양의 그로테스크한 물건들이 즐비해있었다.
“...이것도 진짜 다셨네요.”
“손수 가져와 주신 것 아닙니까.”
물컹한 혓바닥을 본 따 만든 침대위에 커다란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제님이 얘기한 것처럼 이건 우리가 직접 가지고 온 것인데, 바로 레이넌 방에 걸려있었던 머슨의 초상화이다.
감히 성녀의 방에 누가 마왕의 초상화를 걸어 놓는단 말인가?
이 생각부터 출발하여 “도저히 못 걸겠다.“ 우는 소리를 하면, 마왕의 반려인 나는 성녀가 되면 안 된다! 라고 얘기해 주려했었다. 그래서 머슨에게 부탁해 레이넌 방에 있던 초상화를 가지고 오도록 한 것 이었는데…
“정말 걸 줄이야.”
“각도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완벽한 수평이네요. 훌륭해요.”
여러 가지로 말이다.
보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내부로부터 시선을 돌려 바깥을 바라보았다.
“말씀 하신 것처럼 방이 다 꾸며졌으니,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시는 걸로 하시죠.”
“예? 미쳤어요?!”
놀라 소리쳤다. 1년 365일 가위 눌릴 것 같은 이 방에서 사람이 어떻게 지낸단 말입니까!
“성녀님의 취향에 맞게 꾸며드렸는데, 혹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내 꾀에 내가 넘어가는 구나.
아무리 멀쩡하게 생긴 방이더라도 성녀 노릇을 하며 신전 안에 있는 건 질색인데, 이런 악귀의 소굴 같은 곳은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싫었다.
“여기서 살라는 말은 안했잖아요! 그저 방이 의미 없이 비어있는 것만 피하고 싶다고 하셨죠!”
“아무리 고가의 물건을 들여 놓는다 한 들, 머물러 주는 이가 없다면 빈방이나 다름없지요.”
“...신도 그렇고, 단체로 사기 배워요?”
“성녀님, 다른 신자님들 앞에선 말씀을 주의해 주셔야겠습니다.”
주의고 나발이고 그런 거 안 할 건데요.
내 뜻과는 반하게도 사제님은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돌아오는 주일, 미사를 드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네에? 싫은데요?!”
“아비츠 백작 사건이 있은 후, 내전에 대한 두려움, 흑마법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자님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믿는 신자님들이 많아져, 비관적으로 돌아서는 분들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성녀가 주범인데 당연하죠. 천년의 사랑도 식겠네 아주.”
미소로 일관하던 사제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신전에 찾아온 위기에도 냉정하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성녀님은 바뀌었습니다. 에리나 님께서 그 믿음을 찾아 주시면 됩니다.”
“이봐요, 사제님. 나도 주신을 안 믿는다니까 누가 누구한테 믿음을 줘요?”
여기서 믿고 안 믿고의 차이는 실존의 여부가 아니라, 그가 정말 나를 보살펴 주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두 눈으로 보아온 결과 절대 그를 위해 기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신을 위한 믿음이 아닌, 신자님들 스스로가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 주시면 됩니다.”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이 사제님은 ‘신을 위해 봉사 한다.‘ 라는 느낌 보다, 인간계에 남아있는 신자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당장 미사에 날 세우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마왕의 초상화를 걸어 두고, 받아 드리기 힘든 요구인 것을 알면서도 전부다 맞춰준다. 만약 신실한 종교인이었다면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전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제님이 신실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열의도 없는 제가 떠드는 것보다는 사제님이 몇 마디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요.”
그는 웃어 보일뿐 딱히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방은 잘 봤어요. 너무 완벽하게 제 머릿속을 구현해 주셔서 놀랐어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매 미사 때 마다 천 명이 넘는 신자님들이 오십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가자, 머슨.”
머슨이 허리를 잡아 옴과 동시에 공간이 틀어졌다. 사제님의 늙은 주름살이 잔상이 되어 오랫동안 눈앞을 어지럽혔다.
*
끝과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새 하얀 공간 안에서 고통에 찬 억센 비명이 울려 퍼졌다. 멀쩡한 정신의 사람이라도 그 소리를 들으면 같이 미쳐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괴음이었다.
세르데벨라 르네.
한 때는 온화함 하나로써 뭇 사람들의 경의를 받았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추악한 죄인의 꼴을 한 채로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은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쏟을 듯 붉게 변했고, 허리를 세차게 꺾어가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뜯겨져 나간 머리카락에 두피가 달아오르고 피딱지가 굳어졌다. 그녀의 자랑이던 햇금발이 지푸라기처럼 떨어져 내려간다.
“벨라, 정신 차려!”
“아아악!”
엘이 벨라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뼛속 깊숙한 곳 까지 쨍하게 퍼져오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벨라의 성녀로서의 마지막 일이 끝난 후. 산송장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몸을 들고 신성(神聖)의 공간을 만들어 대피시켰다. 진하게 남아있는 마력의 흔적을 보아 케일의 짓임을 알 수 있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날개하나가 뜯긴 저로써는 덤벼봤자 10분도 도 버티지 못하고 소멸 될 것이다. 게다가 벨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여 케일이 찾을 수 없는 공간으로 숨어버렸다.
고문에 의해 너덜너덜 해진 신체에 강력한 정신마법 까지 당했으니, 목숨을 부지 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그러나 벨라는 죽은 것만 못하다고 처절하게 외치는 중이었다.
“내 머릿속에, 수 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들어서 뇌를 파먹고 있어!”
“벨라!”
“도와줘, 나를 좀 어떻게…! 아아악!”
격한 발버둥에 발꿈치가 으스러지는데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엘이 두 손으로 그것을 겨우 붙잡아 멈추게 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고통에 힘겨워 하는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옷깃을 뜯어 입 깊숙한 곳에 넣은 뒤, 반대 편 날개를 뜯어 갔다.
“으윽…!”
피가 역류하여 새하얗던 천이 금세 물들어 버렸다. 죽을힘을 다해 한 번에 찢어내자 단전 까지 차올라 있던 기운이 밑으로 훅- 빠져 내려갔다. 손이 발발 떨리고 무참히 찢겨진 날개를 놓쳐버렸다.
잠시 바닥을 짚으며 숨을 고르던 엘이, 다시금 마음을 먹고 날개를 집어 들었다. 벨라가 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만 있다면 제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깃털 달린 공처럼 둥글게 변화시키고는 벌어져 있는 성녀의 입안에 집어 넣었다. 크기가 워낙 커서 작은 목구멍 으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으나, 신성력을 조금 불어 넣으니 목 울대가 크게 울리며 단숨에 삼켜졌다.
“악!”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벨라의 몸이 굳었다. 하얀 빛이 피부 위에 돋아나고, 붉었던 눈이 제 색을 찾아온다. 가쁘기만 했던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했다.
“...벨라?”
“나, 나 산 거지?”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
“내가 그렇게 둘 리가 없잖아.”
“끔찍해. 너무 끔찍해!!”
대뜸 소리친 그녀가 얼굴을 가리곤 소리쳤다. 케일과 있었던 그 순간이 악몽처럼 발밑에서 부터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벨라를 일으켜 품에 안은 엘이 땀으로 범벅이 된 등을 토닥였다.
“이곳에 케일은 없어. 절대 오지 못 해.”
정작, 엘의 등은 감당하기 힘든 피로 흥건해졌다.
“가야 돼. 지금 당장 신전으로 가자. 내 자리를 되찾아 와야 해!”
성녀 직에서 박탈당한 것을 모르는 벨라는, 애걸복걸 하며 엘에게 부탁했다. 차마 그 사실을 알리기가 너무도 가혹하여 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쉬었다가.”
“지금 가야돼! 내가 에리나 그년을 다른 차원으로 넘겨버렸단 말이야! 이젠 모든게 제 자리를 찾을거야. 잠깐 그년에게 홀려버린 케일도 내 품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놈의 케일, 케일, 케일.
열등감과 질투 그리고 미련한 벨라의 모습에 뜨거운 분노가 일렁였다.
“케일은 돌아오지 않아! 널 이렇게 만든게 누구인지 잊었어?”
“에리나 홀든!! 놀랐지, 엘? 에리나 홀든은 사실 차원을 넘어서 온 외부인이었다고!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는 그 문에서 말이야!”
“...”
“다시 문을 열어서 보내버렸어.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으니 원래의 흐름을 찾으면 돼. 내가 써 놓은 그 소설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엘 너 또한!”
광기로 미쳐버린 벨라가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쳤다. 엘은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낯선 두려움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벨라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독자님 : 노블질렀는데 완결 아니라서 행복해요〉〈
작가 : 큐흅 기다려주시는 독자님이 있어서 배는 행복해 하고 있는 중입니다(우리사랑 영원히)
*독자님 : 작가님~ 아픈거 얼른 나으시고 종이책 필요해요 ㅠ 제발요 꼭이요!
작가 : 땃싀. 진짜 소장본에 대한 열망 저도 들끓고 있습니다 ㅠㅠ
독자님 : 그럼 움직여 게으른 작가야
*독자님 :작가님 아푸지 마세요~~ 제 손은 약손(쓰담 쓰담)
작가 : 꺗흥, 앗, 간지러워여 꺄르르 꺄르르~
독자님 : ...손 씻으러 갔다오께요.
*독자님 : 아니 죄송하지 않아도 돼요!! 아프다면 어쩔수 없음을 알기에
작가 : 아직 20대인데 허리며 무릎이며 난리가 났습니다 ㅠ 운동과 바른자세의 중요성 ㅠㅠ 독자님들도 아푸면 안대여!!! 제가 대신아프겠 퀄럭퀄럭 (각혈)
독자님 : 님 걱정이나. (멀쩡)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asdmn님, 타키타루이님 감사합니다^^
*팬아트 수정해서 더 예쁘게 그려주신 메일매일님 감사합니다 9ㅅ9..몸둘바ㅠㅠ(싸,,싸라해요!!)
*확인 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