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편
<-- 19. 이런 엔딩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어두워진 길목엔 해 대신 가로등이 빛을 밝히고, 시끌벅적 하던 가족들의 눈 위에도 졸음이 내려앉았다. 꽤 오랜 시간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럼에도 단 한순간도 질리지 않았다.
“돌아가자.”
연극에 막이 내리듯 집안 전체에 불이 꺼졌다.
더 이상 지켜볼 수도 없게 짙은 어둠으로 물 든 집 안을 의미 없이 보고 있다가, 어깨에 닿는 머슨의 손을 느끼곤 떨쳐내듯 몸을 돌려버렸다.
구름처럼 떠올랐던 몸이 바닥에 닿고, 문득 올려다 본 6층의 우리 집은 멀게만 느껴졌다.
허한 마음을 채워 줄 그가 눈 밑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겼다.
“괜찮아”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얼굴 곳곳에 도장을 찍듯 내려오는 입술이 간지러워 머슨을 밀어냈다. 새어나오는 잔 웃음이 쓰기만 하다.
왜 나보다 더 아픈 표정을 지어
목을 끌어안아 눈높이를 맞춘 뒤 여린 눈 위의 살을 살짝 깨물어 버렸다.
“네가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날 사랑에 빠지게 한 만큼 책임을 져야지.”
“난, 에리나를 위해서만 살아.”
“그런 뜻이 아니야 바보야.”
말릴 수 없는 맹목적인 사랑에 다시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알고 있었다. 머슨은 끝없이 영원할 내 삶에 벅찬 사랑을 쉼 없이 채워 넣을 것이라는 걸.
언제나 나에게 최선을 다 할 머슨 이라는 것을 알기에, 평생 하지 못 할 말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사랑 하는 사람과 이어진다는 것은 곧 해피엔딩을 뜻하지만, 너와 함께 하기로 택한 내 인생은... 완벽한 해피엔딩이지 만은 않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집을 등지고, 주황 등이 반짝이는 고즈넉한 거리에서 빠져 나왔다.
어느새 도윤의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도 끊겨버려 결국 텔레포트를 이용했다. 이동 장소는 당연히 내 자취방이 되었다.
“머슨, 도착하면 옷 갈아입어.”
“응”
머슨도 만났고, 데이트도 즐겼고, 가족들 까지 소개해 줬으니 이젠 돌아갈 일만 남았다. 도윤의 집에 들어서니 늦음 밤이라 그런지 도윤도 코를 골며 완전히 뻗어있는 상태였다. 인사도 없이 가는 것이 무례한 일인 줄 알면서도, 굳이 모두가 잠든 이 시각에 떠나고자 했다.
내일이 되면 또 숱한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고, 분명 며칠 더 지내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을 내가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쓸데없는 미련이 남을까봐, 그게 두려워서 이기도 하다.
난 이미, 이쪽 사람이 아니야.
옷을 갈아입고 나온 머슨을 잡아 망토 어깨에 달린 보석을 떼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진 것의 전부라 미약하게나마 은혜를 갚고자 한 행동이었다.
“원래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신 따뜻함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쪽지를 적어 보석 옆에 놓아 둔 뒤, 도윤이 선물해준 신발을 들고 섰다.
“가자.”
머슨과 손을 마주잡자 강한 마력이 흘러들어 몸 안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넘치는 마력에 피부가 팽창하듯 부풀어 가는 것만 같았고 곧 터질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그의 허리를 덥썩 안아버렸다.
푸른빛이 사정없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밝아! 이런 건 예상 못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도윤이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눈을 떴다.
“어?”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놀란 눈의 그가 무어라 말 하려는 순간 공간이 뒤집히고 사방이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이동되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돼.”
무리를 하고 있는지, 머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질끈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위에서 머리를 끄집어내는 것처럼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우뚱-’
아니, 분명 발 밑에 닿는건 딱딱한 재질이었으나, 힘 주는 쪽으로 몸이 기운다. 서서히 눈을 뜨자 탁 트인 바다 수면이 보였다. 여기 좀 익숙한데?
이때 머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지? 내가 힘 좀 썼어.”
“머슨?”
“그럼, 날 에리나 한테 보낼 때도 더 빨리 도착 할 수 있었던 거네.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얘도 머슨?”
“하하, 진정해. 과정이야 어찌됐든 무사히 돌아왔으면 된 거 아닌가?”
“시끄럽고 문이나 열어”
아니, 잠깐! 어떻게 된 거야 머슨이 둘 이라니? 게다가 여긴 내 꿈 속 세계잖아!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이동한건 가까이에 있는 이쪽 머슨이니, 가짜는 저쪽 머슨이라는 소린데…
불쑥 고개를 쳐들고 가짜 머슨을 노려보자 시선이 마주친 그가 움찔 하는 것이 느껴진다. 걸렸다, 이놈! 단숨에 달려나가 멱살을 잡고 얼굴을 끌어 내렸다.
“너 누구야?!”
“하하, 누가 부부 아니랄 까봐 다짜고짜 멱살 잡아 뜯는 건 똑같네”
“어?”
분명히 단단히 잡고 있었는데, 손아래에 닿는 감촉이 사라지고 가짜 머슨의 모습이 연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여기야.”
“히익!”
이어 귓가에 들리는 여자 목소리에 소스라치며 뒤를 돌아봤다.
“세르데벨라...?”
“이건 어떨까”
이어 변신 쇼라도 보듯이 황제, 에반, 세자인의 촌장님까지 줄줄이 바뀌어갔다. 눈이 핑핑 돈다.
“그만해”
어느새 나를 막아선 머슨이 눈 앞의 변신 술사(?) 가슴을 툭 하고 밀어 버렸다. 밀려난 변신 술사는 다시금 머슨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모습이 제일 좋아. 잘생겼거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꿈속과 똑같은 배경에 심지어 이 쪽배마저 틀림없이 꿈에서 보아왔던 그것이었다. 지금 나는 엄연히 깨어있는 상태인데 말이지. 게다가 두 명의 머슨.
“...”
어젯밤. 머슨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머슨, 돌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주신이 차원의 문을 열어 줘야 한다고 했었지?”
“맞아.”
“...그럼 저 변장 술사가 주신이야?”
“응.”
당연한 것이었기에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여긴…”
머슨이 답하기 전에 주신이 재빨리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나의 공간이지!”
그래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말 하는 것처럼 여기가 주신의 공간이라면 주궁장창 내 꿈에도 나왔었던 건 뭔데?
“물론, 네가 무의식 속에서 보았던 것들도 모조리 나였어!”
깜짝 발표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얘기한다.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잠시 비틀거렸다. 머슨 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었는데…!
“사기꾼!”
“에헤이, 엄연히 신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신들은 다 그래요?!”
“뭐가 말이지?”
“남에 꿈속에 막 들어와 가지고 거짓말이나 하고!”
“임신 사실도 알려줬지. 몸을 너무 혹사 시키 길래 가만 두면 안 될 것 같았거든. 몸조리는 필수야.”
인심 썼다는 듯 말하는 태도가 너무도 얄미웠다. 머슨을 밀치고 앞으로 걸어 나가 주신 앞에 바로 섰다.
“그럴 거면 구해주지 그랬어요!”
“지나친 관여는 또 안하는 주의라.”
“그래서 성녀를 그런 애로 뽑았어요?”
궁금해 하던 것을 거리낌 없이 단번에 물어 보았다. 주신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해 보인다. 질문을 다시 했다.
“왜 성녀로 그런 애를 뽑았냐구요”
“그…”
“‘그냥’ 이라는 말은 말고요”
머슨 덕에 주신의 얼토당토 않는 말을 막아낼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린다.
주신은 짐짓 고민하며 자신의 턱을 매만지다가 마땅히 답 할 말이 생각났는지 한 번 더 손뼉을 쳤다.
“제비뽑기!”
산 넘어 산이었다.
표정이 험악해져 갔다. 세계를 관장하는 주신이라는 자가 이토록 무책임 할 줄이야. 대수롭지 않게 뽑은 성녀 하나 때문에 지금 몇 명의 생명이 꺼져 갔는데…!
“표정 풀어. 그냥 뽑았다는 말 말고는 해 줄 말도 없는 걸. 이게 진실이야.”
“당신이 ‘그냥’ 뽑은 성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 흑마법을 전파하고 반란을 주도했다고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예?”
“흑마법의 사용을 금한 건 내 뜻이 아니라 인간들의 규율이야. 물론 반란도 마찬가지. 주신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잖아.”
경악했다. 당장 턱주가리를 한 대 날려서 바다 밑으로 빠트려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부들거리는 주먹을 허공에 내리 찍으며 커진 음성으로 따박따박 따져 물었다.
“그럴 거면 성녀를 뽑지 말지 그랬어요! 성녀라는 사람이 전하 라는 신의 말은 뒷전이고 사람들 피를 뽑아서 자기 사리사욕이나 채우질 않나, 야망은 또 엄청나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자기 신도들 생각은 안하고 나라를 뒤집으려 하질 않나! 이런 사람을 왜 인간 세상에 보내요? 이건 성녀가 아니라 썅년이죠!”
격양된 감정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이 정도로 얘기 했으면 뭐라도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주신의 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 지금 씹힌거야?
바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다시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부글 한 열이 끓어오르려던 찰나에 주신이 움직였다.
내 어깨위에 양 손을 턱, 턱 올린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네 말이 맞아. 내가 잘 못 뽑았지.”
“인정 하는 거예요?”
이렇게 쉽게?
“꽤 전부터 생각 하긴 했었어. 엘 한테 교육을 맡겨 놨더니, 케일 보고 부모를 죽여 달라고 소원을 빌었더라고. 그때부터 뭔가 잘 못 되었다 싶었지.”
“그런데 왜 지금 까지 방치한 거예요”
“귀찮으니까”
이게 정말…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무덤덤하고, 건조한 낯을 하고선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벨라가 한 일은 나에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야. 너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 할 만큼 먼 세월에서부터 대수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너무 까마득해서 그런 것이 내 안에 존재는 하고 있나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이 위에서서, 그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 몇 천이 죽고 왕이 바뀌는 것쯤이야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지.”
나의 기준으로서 주신을 설득 하려 했던 것을 포기했다.
그래, 내가 아무리 장황하게 얘기 해봤자, 주신이 듣기에는 봄철에 흩날리는 흔하디흔한 꽃가루처럼 닿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신의 심정을 이해 할 만큼 대단한 그릇도 되지 못했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이유들은 집어 치우고 본론만 얘기했다.
“그래서 성녀를 이대로 둘 거예요?”
“그럴 필요는 없지. 내가 잘못 뽑았다는 건 인정한다니까”
“귀찮다면서요?”
“이젠 귀찮은 것도 덜었어. 왜냐면…”
드디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세르데벨라가 성녀자리에 남아있는 게 아닌가 했던 불안이 옅어져 갔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주신이 눈을 마주본 채 미소 지었다.
“얻어 걸렸거든.”
알아듣지 못해 인상을 쓰자 주신이 친절 하게도 다시 설명해 준다.
“네가 성녀를 하면 된다고, 에리나.”
========== 작품 후기 ==========
*예? 성녀요? 여기서요?
〈작가의 대실수 이후 독자님 반응〉
*독자님1 : ???149화 인데 150화 완결이라녀? 외전은? 작은에리나는? 머슨이 머슴되는걸 지켜보는 우리마족들의 모습도 궁금한데? 150화가 끝?
작가 : (수 많은 물음표에 당황하다) 작가가 무슨 정신으로 쓴 건지 저도 모르겠네요(한심)(자아분열)
*독자님2 : 네? 말도 안돼여 ㅠㅠ 잘못쓰신거겠져? 너무 허무한대 ㅠㅠㅠㅠ
작가 : ....뜬금없이 10년 후 로 시작되지 않고서야 ㅠㅠ 한 화많에 완결낼 수가 없습니다ㅠㅠ 죄송합니다 ㅠㅠ
*독자님3 : 아, 알겠다! 지금까지 연재분을 120화로 압축한다는 뜻이구나!
작가님 : 낙장불입이라면 정말 그렇게 했을겁니다ㅠㅠㅠ(당황)
*독자님4 : 50화 남았다네요 진정하세요 여러분ㅋㅋㅋㅋ
작가 : ㅠㅠ그렇습니다 ㅠㅠ 아직 쵸큼 남았습니다ㅠㅠㅠㅠ으엉 ㅠㅠ(사죄)
〈실수와는 관계없는 독자님 코멘트〉
*독자님 : 외전으로 계속 써주세여... 작은에리나가 마님이 되는 챕터2!
작가 : (급구) 돌쇠 구합니다. 말 잘듣고 잘생긴 돌쇠 구합니다. 무급에 휴일이 없다는게 조금 흠입니다!
*독자님 : 이 소설을 보기 위해 30일 결제했어요 쭉쭉~ 오래 연재해주세요!
작가 : 지, 진심이신가요? 저 정말 기뻐서 모니터 뿌시고 옆 동 아파트 건물 뽑고오겠습니다
*독자님 : 작가님 사랑해요(뜬금ㅎ)
작가 : 고백타임 인가요? 키스타임은 언제죠?
독자님2 : 죽빵타임은 아는데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호경맘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확인 못하고 올려여 추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