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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47화 (147/170)

147편

<-- 19. 이런 엔딩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머슨의 서툰 식사는 계속되었고, 일찌감치 수저를 내려놓았던 둘은 지켜보는 것도 지쳤는지, 슬금슬금 엉덩이를 떼기 시작했다.

빨리 테이블을 치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불현 듯 찾아오고, 손길은 다급해져만 갔다. 머슨의 턱을 눌러 강제로 벌리게 한 뒤, 한 숟가락으로 치기엔 조금 많아 보이는 양의 밥을 한데 쓸어 모았다.

입 벌려라, 고봉밥 들어간다.

두 볼이 터질 정도로 빵빵해진 머슨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당한 건지 몰라 눈만 깜빡 거리고 있었다.

“우음, 에리나도 좀 먹… 크헉”

“미미 라니까.”

등을 강하게 후려치자, 밥알이 볼썽사납게 튀어 나올 듯 머슨의 몸이 요동쳤다. 재빠르게 그의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삼키게 만들었다.

이어 내 밥그릇도 깨끗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저녁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의자에 등을 기대며 축 늘어져 있는데, 머슨이 알아서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칭찬의 의미로 엉덩이를 두드려주자 그가 씩, 웃어 보인다.

잠시 머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자인에서의 자취생활(?)이 겹쳐 그려진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은 머슨을 위해 존재하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안일을 하나 알려주면 그 다음 부턴 알아서 척척 해내는 모습에 뿌듯해 하곤 했었다.

세자인이 그리워.

내가 생각해 놓고도 우스웠다. 세자인에 있을 땐 어떻게든 이쪽 세계에 오고 싶어 난리를 쳤는데, 막상 돌아오니 다시 세자인이 그립다니.

머슨과 지낸 3년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놓는 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에리나”

반찬 통을 들고는 어쩔 줄 몰라 서성이던 그가 짐짓 불쌍한 표정을 하고선 도움을 청했다. 으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머슨의 손에 있던 것을 빼앗아 냉장고 안에 넣어 두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가 테이블을 치우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도윤이 한달음에 달려오더니 나와 머슨을 부엌 밖으로 밀어냈다.

“쉬세요, 쉬세요.”

머슨이 치워놓은 덕에 테이블 위는 깨끗해져 있었고, 남은 것은 수북이 쌓인 설거지 거리였다. 익숙하게 고무장갑을 낀 도윤이 싱크대 근처로는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좁은 부엌에 성인 세 명이 모여 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기에, 우리는 사양 않고 거실로 빠져 나왔다.

“그럼, 부탁해요.”

“같이 먹은 건데요.”

그릇에 붉게 낀 기름도 도윤 앞에선 꼬리를 내리고 단숨에 쓸려나가는지, 설거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메이슨 씨는 저랑 같이 거실에서 자면 돼요.”

내 옆에 꼭 붙은 채로 쇼파에 앉아 있던 머슨이, 더더욱 밀착해 온다. 이건 명백히 싫다 라는 뜻이었다. 혹시나 도윤이 우리의 관계를 눈치 챌 까 싶어 맞닿아 있는 팔에 힘을 줘 그를 밀어냈다.

“바닥에서 잘 수 있지?”

불만에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의지가 꺾인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아주머니가 바닥에 이불을 깔아 주었고, 머슨은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잘 준비를 마친 아주머니가 방으로 들어가고, 도윤이 씻고 있는 사이 그의 뺨 위에 재빠르게 입을 맞췄다.

“잘자, 알았지?”

“같이는 안 되는 건가?”

“응, 안 돼.”

웃으며 머슨의 뺨을 토닥였다. 단호한 말에 머슨이 나지막한 숨을 내뱉는다.

시무룩해 보이는 머슨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져 왔다.

“내일 나랑 데이트 하자.”

“데이트?”

“응, 이쪽 세계에서 데이트 한 번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다시 한 번 몰래 쪽. 좋은 윤기가 도는 머리를 헝클어 준 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으나 깨어 있다고 해서 딱히 할 것이 있지도 않았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둠속에 몸을 묻었다.

*

단 잠 속에서 헤매며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포근한 이불 냄새에만 취하고 싶을 때,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무언가가 몸 위를 무겁게 눌렀다.

“으음-”

손을 휘휘 내젓자 묵직한 것이 사라졌다.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침대가 한번 울리더니 내 옆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시원한 체향이 코에 닿고, 이불보다 더 좋은 것이 내 몸을 감싸왔다.

이 상태로 다시 잠에 빠져 들 수 만 있었다면 딱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부드럽고 말캉한 것이 얼굴 곳곳에 닿았다 떨어지며 간지럽혔고, 강아지가 하는 것처럼 입술을 핥아 올리는 탓에 결국 눈을 떠야했다.

“일어났네.”

울림이 큰 저음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 온다.

“깨웠잖아.”

“에리나의 눈이 보고 싶었어.”

“내일 봐, 내일.”

못마땅해 얘기했지만, 내 몸 만은 그렇지 않았던 듯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미안해”

그러면 그만 할 것이지, 입술은 왜 계속 핥는데?

“축축해”

고개를 돌려 그를 피한 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아냈다.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져 머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내 몸을 질척하게 붙잡으며 놓아주지 않았던 잠이 조금씩 달아나고, 몸의 편함 보다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에 대해서 생각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너 왜 여기 있냐?”

네 자리는 분명 거실이었을 텐데 말이지.

“나, 졸려 에리나.”

“어디서 수작이야”

단단한 가슴을 어루만지다가 손가락 끝에 부끄럽게 튀어나온 것이 느껴지자 아프도록 꼬집었다. 약한 신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머슨은 지지 않고

“괜찮아, 안가도 돼.”

하면서, 손을 내 아랫배에 얹는다.

“누구 마음대로?”

“수면 마법 걸어놨어. 해뜨기 전까진 절대로 못 일어나. 집이 무너져도 모를 거야.”

치밀하긴. 우리 둘이 붙어 있는 것은 머슨 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고양된 행복을 가져다주었으므로 더 이상 따져 묻진 않았다.

뭐, 해가 뜨기 전 까진 괜찮다니까.

내 아랫배를 만지던 머슨이 배꼽 근처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에 있는 거지, 작은 에리나.”

설렘이 묻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아기에게 까지 닿는 듯 했다.

“응.”

“언제 알게 된 거야?”

“확신이 든 건 이쪽 세계로 넘어와서야.”

“확신이 든 건?”

“임신 했을지도 모른 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거든.”

“왜 말 안했어”

숨소리마저 대화의 연장선처럼 또렷이 들리는 고요 가운데에 머슨의 음성이 높아졌다. 놀라 몸을 움찔하자, 내 반응에 더 놀란 그가 황급히 등을 쓸어주며 다시금 목소리를 낮췄다.

“언제 부터야”

“테론 아비츠의 지하 감옥에서부터.”

“하아, 에리나.”

드물게 그가 나를 타했다.

“있잖아, 내가 늘 꾸는 꿈이 있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하게 펼쳐진 지평선 너머에 사람 둘을 간신히 태우는 작은 쪽배가 떠있는 꿈. 태양을 등진 쪽배 위에는 늘 머슨이 있었고, 나도 함께 그 배를 타며 목적지도 없이 바다 위를 떠돌아.”

꿈에 대해 말문을 연 나는, 내 정체를 알고 있었던 꿈 속의 머슨부터 태몽까지 빠짐없이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신나 떠들어대는 나에 비해 머슨은 조용하기만 했다. 맞장구 쳐주지 않는 것은 둘째고 마치 화라도 난 사람처럼 이를 거세게 악문다.

“…이번엔 막 하늘에서 금은보화가 떨어지는데, 깔려 죽는 줄만 알았다니까. 머슨?”

“후, 그 새끼…”

맥락 없이 튀어나온 욕설에 머슨의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태몽 얘기하는데 욕이 왜 나와?”

“...미안해, 에리나. 갑자기 싫은 얼굴 하나가 떠올라서.”

“이런 중차대한 얘기를 하는데 딴 생각을 하다니.”

진심으로 섭섭해졌다. 눈에 띄게 당황한 머슨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해야, 에리나. 망할 주신놈 때문에…”

“주신?”

생각지도 못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 쪽에 넘어 올 때, 잠깐 만났었다고 했잖아. 게다가 에리나가 말한 꿈의 그 장소가…”

“맞다! 그럼 우리 돌아갈 때도 그 주신을 통해 돌아가는 거야?”

머리에 번개가 번쩍 튀는 것 같았다. 머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해 버려서 인지, 돌아갈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제가 전환 되어 머슨에게 여러 가지의 것을 물었고 그는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성심성의 껏 대답해 줬다.

“...그러니까 네 힘으로 주신이 있는 곳 까지 가면 주신이 문을 열어 준다 이거네.”

쉽게 말해 환승한다는 뜻이었다. 경로야 어찌됐든 돌아 갈 수 있는 방법이 확실하게 존재하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만나면 한 번 물어나 봐야겠다. 왜 성녀로 그딴 애를 뽑았는지에 대해서.”

========== 작품 후기 ==========

한 편 더 올라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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