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편
<-- 19. 이런 엔딩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불온한 밤이 지났다. 깊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방 안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가구나 방의 구조는 변한게 없었으나, 마치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낡고 허름했던 것들이 새것처럼 변해있었고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스크래치 또한 말끔하게 없어졌다. 먼지투성이였던 방은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러질 정도로 깔끔하게 청소되어 반짝 윤기까지 흐른다. 뿐만 아니라 분명 잠들기 전 까지는 딱딱한 바닥 위, 머슨의 품 안이었으나 지금은 얼룩덜룩 했던 곰팡이 자국이 없어진 새하얀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거 내다 팔아도 되겠어”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머슨에 의해 무참히 찢겨졌던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뻔뻔하게도 내 몸 위에 반듯이 입혀져 있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렸던 그. 머슨은 눕지도 않고 매트리스를 등지고 앉아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야, 야”
“...”
“머슨”
“...”
“케일, 마왕님!”
“...”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평소의 머슨이라면 내가 일어난 것을 귀신같이 깨닫고 강아지처럼 몸을 부비며 응석을 부려야 했지만, 지금은 차가운 마네킹 인형 같다. 잠이 든 것이라면 침대 위에 눕기라도 하지, 목이 아프지도 않나?
엎드린 채로 고개만 쑥 내밀어 그의 옆모습을 확인하려 했다.
“죽었어?”
“...”
“...?”
내가 다가서자 그가 몸을 스윽- 돌린다. 거, 거짓말이지?
반대쪽으로 고개를 내밀자 이번에도 등을 지고 몸을 돌려 버린다. 오호라. 오기가 생겨 위, 옆 할 것 없이 그를 끈질기게 쫓았다. 그러나 탁월한 반사 신경을 가진 그를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슬 짜증이 났다.
지금... 입장이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물론! 원인은 나의 거짓말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머슨의 오해 때문에 어제 그 사단이 난거 아닌가? 상황만 보자면 피해자는 나다! 삐쳐도 내가 삐쳐야 할 시점에 이건 무슨 경우지?!
“내 얼굴 안 봐?!”
홧김에 그의 어깨를 눌러 버렸다. 맥없이 내 손을 따라 그의 상체가 꺾인다. 매트리스 위에 그의 머리가 풀썩 닿고, 얼굴이 천장을 향했다. 놓치지 않고 바짝 그 앞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왜 삐쳐…, 어?”
말을 잇지 못했다. 풍성하고 긴 속눈썹 끝에 애처롭게 매달린 물방울이 끝내 관자 놀이를 타고 떨어졌다.
...아직도 울어?!
옷 소매로 눈을 비빈 머슨은 날 뿌리치고 다시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당황스러워 그를 붙잡지도 못했다.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울고 있었던 거야?
이, 이건 좀… 그, 너무, 심각하게… 귀엽잖아!!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웃어댔다. 어제 그런 일을 겪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가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씐 콩깍지의 두께가 유리창을 깨고 지구 반대편까지 이어져있나 보다.
눈물이라도 조금 닦아 주려 몸을 움직이려는데 아래가 여전히 뻐근하게 아파왔다.
“아앗…”
“...!”
내 소리를 듣고 놀란 그가 나를 돌아본다.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차있었다. 아, 아니야 그러지마. 투명한 유리막이 덮여 오듯 순식간에 차오른 눈물은 기다려주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떠받들고, 존경하는 마왕이 울보라는 걸 마족들은 알까 몰라.
머슨이 날 살피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멈춰 버린다.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왜그래?”
“...다치게 할 까봐 겁이나.”
“그러게, 후회할 짓은 하지 마셨어야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머슨의 눈꼬리가 땅에 닿을 듯 내려갔다. 자책은 길어져만 가고 내 곁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면서 연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 놀려줄까도 싶었지만,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 그인지라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미묘한 경계는 누구하나 먼저 나서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대화도 주고받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는 상태다.
무릎을 모아 끌어안은 뒤 그 위에 턱을 받쳤다.
“되게 서운해 하겠네.”
시선은 허공이었으나 명백히 머슨 보고 들으라 하는 소리였다. 그의 귀가 움찔 거리며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울보에 겁쟁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인 게…”
말 할 때 마다 그의 인상이 아프도록 찡그려졌다. 슬쩍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아빠라서.”
“...!”
“앗!”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소심하던 손이 거침없이 내 팔목을 잡았고, 망설이던 몸이 단숨에 매트리스 위까지 뛰어 올랐다. 벽과 머슨 사이에 갇힌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를 마주했다.
“다시 말해 봐.”
“뭘?”
“방금 했던 말”
“울보에 겁쟁이에 천치인거?”
쪽. 뺨 위에 가볍게 뽀뽀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다음.”
은근슬쩍 왜 뽀뽀야? 웃음이 흘러 나왔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모르는 척 하자 아프지 않도록 그가 손목에 힘을 더했다. 채근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실컷 눈에 담았다.
“에리나”
꼴깍. 침을 삼키는 모습에 끝내 푸하-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애가 타는지 저 혼자만 심각하다.
“축하해, 아빠 됐네 머슨”
그의 어깨가 올라가고, 입술이 예쁘게 호선으로 그려졌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으읍?”
손목이 풀리고 머슨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벅찬 키스는 너무도 달콤해서 금방이라도 중독될 것 만 같았다.
상상했던 행복에 젖은 재회는 이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안 그래도 유별났던 머슨의 행동이 점차 심해져갔다. 잠깐 침대 밖에 두 발만 내려 놓아도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말 역할을 해 보인다.
“...화장실, 다섯 걸음이면 가거든.”
집 밖을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을의 쌀쌀한 날씨에 비해 옷이 조금 얇은 편이긴 했으나, 머슨의 두꺼운 털 망토를 두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 몸을 꽁꽁 싸맨 그는 나를 번데기처럼 만들어 버리더니 이내 가볍게 안아 들었다. 당장에 볼을 잡아 당기며 내려 놓으라고 소리를 쳐야 했다.
도윤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한달음에 집 앞으로 찾아갔다. 그건 그렇고 머슨을 뭐라 소개해야하나, 걱정이 됐다.
“남편 죽었다고 했는데.”
“...내가, 죽어?”
아차,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지.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
대충 얼버무린 후 머슨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다시금 생각해 봤다. 친 오빠라고 하기 엔 너무도 닮지 않았고(이정도면 심각한 유전자 몰빵이지). 전남친? 아니야. 친구 정도가 가장 적당할 것 같은데….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머슨의 얼굴을 손으로 가려버렸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야
누가 봐도, 스카이다이빙 하면서 봐도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더 있었다. 망토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만 제거하면 그가 입는 옷은 그다지 눈에 띄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핏 되는 검은 바지와 와이셔츠는 여기에서도 많이들 입으니까. 그러나 주목을 받는 건 옷 따위가 아니라 그의 외모였다.
텔레포트를 시전 하고 싶었으나 집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고, 사람 없는 공간을 찾기가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무턱대고 이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걸어가는 것을 택했는데 이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 가던 사람들이 뒤를 바라보고,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명함도 받았다. 벌레 보듯 바라보는 무심한 머슨의 시선에 그들이 뻘쭘해 하자 옆에 있던 내가 대충 받아 들고는 보내버렸다.
“집이 가깝기에 망정이지.”
결국 집에 다다를 때 까지도 관계정리를 속 시원하게 생각해내지 못했다.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하나 잡고 끄집어 냈다.
“내 남편의 형이라고 하자.”
“싫어”
“아이를 가진 상태로 한국에 들어온 내가 걱정돼서 따라 왔다고 해. 어쨌든 네 동생의 아이니까”
“내가 아빠야.”
“아니 그게 아니라…”
벌써 부터 예상되는 그의 고집에 속이 답답해져 온다.
========== 작품 후기 ==========
*오늘 짧아서 죄송합니다 8ㅅ8!!!
*독자님 : 미니미는 건강한거죠?! 어제 미님아웃 하나요!
작가 : 미니밍은 아빠를 닮아 엄청 건강하답니다 키듓
*독자님 : 노블 끝나는 분들 넘 아쉬워여 ㅠㅠ 다시 돌아와서 완결까지 같이 자까님을 재촉해야 되는데! 내일 꼭와여 저맨날 기다릴꺼에여!!
작가 : 큡.. (찾았다 내 사랑 내가찾던 사랑.) 외로움 많은 숲속의 도토리인 제 곁에 남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찡큣. 노블 끝나는 독자님들 다시 오실때 꼭 코멘으로 생존신고 부탁드립니다!!보고시퍼영
*독자님 : 주신은 언제 족치는데요??
작가 : (독자님들이 흐콰한다...) 고, 곧...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 처럼 잠깐 들려서... 회오리감자 족치는것 처럼 아주 가볍게...
독자님 : 그.래.서.언.제.요.?
주신 : (지난화 부터 왜 계속 오한이 들지)
*독자님 : 저에겐 8시간이 남았답니다 (말라감)바스러지기전에 도음을 주세요 ㅠㅠ
작가 : 허억!! 8시간 지났나?!!안지나쮸?!!! 안돼에에엑 독자니이임 가루가 되게 둘순없져!
독자님 : ? 가루가 된다곤 말 안했
작가 : 독자님!!안돼에에에엑!!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스쿨드님, 아지와양이님 감사합니다^^
*확인 못하고 완전 급하게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핵급함 지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