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44화 (144/170)

144편

<-- 18. 조심해주실래요? -->

그의 축축한 뺨을 어루만졌다. 상처로 얼룩진 눈동자가 제 뺨에 닿은 손을 느끼곤 다시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하면 내 진심이 전해질까. 어떻게 하면 단단히 꼬여버린 그의 마음을 풀어 낼 수 있을까. 답이 없는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나직이 속삭였다.

“널, 사랑해.”

“...”

“너도 느끼고 있잖아.”

머슨이 손을 겹쳐왔다. 예전처럼의 다정한 손길은 아니었다. 강하게 쥐었지만 차마 떼어진 못하고 오롯이 체온을 느끼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거 봐. 난 또 속고 싶어진다고.”

완고 하게 쌓아 올렸을 벽이 허무하게도 무너져 내린다. 애처로운 눈물 자욱이 채 없어지지도 않은 얼굴에, 서글픈 기쁨이 스며들어갔다. 그의 고뇌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만약 내 마음이 정말로 거짓이었다면, 이처럼 비극적인 모습에도 뻔뻔하게 입을 놀릴 수 있었을까?

머슨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때문이라면 더더욱 싫어. 더불어 오해로 불거진 이런 상황이라면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럼 속아.”

마주 본 채 똑바로 이야기했다. 네가 속는 다고 생각 한다면 한 번 더 속아. 널 향한 표현들이 모조리 다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 하더라도, 그냥 모르는 척 멍청하게 속으라고. 영원히 진심을 전하지 못하는 나는 아프겠지만, 넌 더 이상 이런 슬픈 표정은 짓지 않아도 되잖아.

“속은 채로 예전처럼 사랑하며 살다가, 행여나 내가 다시 도망가면 또 끌고 와. 그때에는 아예 도망가지 못 하게 다리를 끊어 버려. 그리고 또 사랑한다 얘기하면 속고, 속고 계속 속아. 지금처럼 눈물 뚝뚝 흘린 채로 기뻐하면서 사람 마음 찢어지게 하지 말고, 바보 얼간이 머슨은 내가 평생 널 사랑하는 줄 알면서 행복하게 살란 말이야!”

격해진 감정에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머슨의 것과 섞여 누구의 것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젖어갔다.

무정한 태도의 그가 야속했으나, 동시에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혼자 해결 해보겠다고 나섰던 오만이 사랑하는 이를 다치게 만들었고, 결국 우리의 관계를 틀어버린다. 독단은 성장의 첫 걸음이 아니라 무지의 탄로였다.

생각해보면, 늘 걱정만 끼쳤던 내가 밉고, 한심해서 더 눈물이 났다.

갈라졌던 입술에도 짠기가 돌고, 머슨의 뺨에 닿았던 손은 의도를 잊은 채 붙들리고만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그냥 다 속아줘.”

헐떡 거리는 호흡을 겨우 눌러가며 말을 이었다. 다행이도 머슨은 잠잠하다.

“난, 이곳에서 살던 사람이야. 세르데벨라의 책 속에서 널 처음 만났고, 그때도 널 좋아했어. 사랑에 빠져 보고 싶다는 생각도 늘 했지. 그러던 중 이유는 모르겠지만 책 속으로 빨려 들어왔어. 거기서 실제의 ‘케일’을 만나게 된 거야. 처음엔 다시 이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 ...기억 잃은 마왕을 이용하기도 했지. 맞아,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오면서 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고, 평생 네 곁에 있기를 원하게 됐어. 그리고 모든 걸 털어 놓을 생각이었다고, 세르

데벨라를 성녀직에서 쫓아낸 후에 말이야.”

줄줄이 이야기하자 목이 따끔해왔다. 행여나 머슨이 말을 끊어 먹을 까 싶어 조금 빨리 말 한 탓도 있다. 거칠기만 했던 두 번의 정사 후라 그런지 텁텁하게 쩍 갈라진 입안이 더 잘 느껴진다. 목을 매만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오른 손을 움직였으나, 머슨에게 잡힌 그 손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그가 순순히 놓아준다.

“큼, 흠”

턱 밑을 주무르곤 마른 기침을 뱉었다. 위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싶어 슬쩍 긴장이 되었다.

“아앗”

내 위를 점령했던 몸이 치워 지더니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운다. 다리 사이가 아려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몸에 수분이 돌고 칼칼했던 목이 다시금 부드러워졌다.

해소를 느끼는 것도 잠시. 머슨이 나를 뒤에서 감싼 채 끌어안았다. 벽에 기대 앉으려던 것이 머슨의 가슴팍에 기대게 된 꼴이 되었다. 그의 정돈 되지 않은 숨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도망가면 다리를 자르라고? 두 번째는 없어 에리나.”

행여나 놓칠까 내 땀이 머슨의 옷에 스며들어 젖어 옴에도 그는 나를 거세게 안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어리석었어. 배짱 좋게 혼자서 성녀를 만나러 가놓고는 당해버렸거든. 문을 여는 능력은 차원의 문을 뜻하는 것이었고, 발밑에서부터 열린 문 때문에 피하지도 못하고 이곳에 떨어지게 된 거야. 돌아가려고 몇 번이고 시도 했어. 하지만, 텔레포트도 안 되고 성녀가 이곳에 넘어오지도 않아서 방법을 찾지 못했던 거야.”

반응이 없는 머슨으로 인해 초조해졌다. 그가 믿어줄까? 속아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용기내어 그의 손등을 살짝 꼬집어 봤다.

한참을 대답이 없던 그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벨라 한테 나를 부탁했잖아. 떠날 사람처럼.”

처음 신전에 가서 성녀에게 말 했던 내용이다. 내가 떠난 후에도 마왕님을 잘 부탁한다고 했었지. 망상이니 어쩌니 조롱만 당했지만, 그때 당시의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돌아 갈 생각이었으니까.”

으윽. 뼈가 아려오도록 그가 강하게 껴안는다.

“지옥에서 에리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영혼을 봤어.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너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어깨위로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고 검은 머리칼이 뺨에 비벼졌다.

“...그런데도 계속 아닐거 라고 최면처럼 중얼거렸어.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죽을 것만 같은데, 입 밖으로 불안에 떠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는데, 잠 한숨 안자고 널 만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 왔는데... 다른 놈 품에 안겨서 웃고 있는 넌, 날 결국 죽였어.”

“...”

“내가 어디까지 속아줘야 할까, 응? 에리나.”

머슨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놀라웠다. 지옥에 진짜 에리나가 살아있다니.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내 영혼이, 이미 죽어버린 에리나의 몸 속으로 들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영혼이 빠져버린 본체는 생명을 잃음이 당연했던 것이다. 게다가 도윤은 머슨이 생각 하는 그런 관계가 전혀 아니다. 도윤으로 인해 희미하게 타올랐던 그의 불신이 크기를 부풀렸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끔찍한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머슨, 맞아. 이 몸은 진짜 내 몸이 아니야.”

“성별이 다르건, 노파건 상관없어.”

“그런 뜻이 아니라. 이 몸 안으로 이동해버린 영혼 때문에 내 본체는 썩어버렸어. 여긴 내가 살던 방이었고, 내 시신이 발견된 장소야. 불에 타 가루가 돼버린 몸에 돌아 갈 수도 없는 신세란 말이야. 가족, 친구들 전부를 한 순간에 잃었어. 에리나 홀든인 채로는 여기서 살아갈 수가 없다고.”

“...”

“네가 봤던 그 남자애 도윤이도, ‘에리나 홀든’인 채로 처음 본 애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를 걔 어머니가 거둬줬고,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어. 절대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어떤 관계도 아니었단 말이야. 생각해봐. 내가 만난 적도 없는 도윤이 때문에 여기를 다시 왔을 거라고 봐?”

“이 세계 자체가 그리웠을 수도 있잖아.”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곳에 그리워할게 뭐가 있겠어!”

힘을 줘 그의 팔을 풀어내 몸을 돌려 눈을 바라봤다. 믿어줘.

내 진심이 통하고 있는 것일까, 대화를 모조리 차단한 채 몸만 밀어 붙였던 그가 변화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과 마주 보고, 나와 마주보기 시작한다. 우리 둘 사이에 놓여있었던 진흙탕이 사실은 발목도 적시지 않을 깊이라는 걸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먼저, 그 안으로 들어서 손을 내밀었다.

그가 다가온다.

“...난 너 밖에 없어.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오로지 머슨 아니, 케일이라도 좋아. 너 하나 밖에 없어. 네가 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니까 묵은 오해는 이제 그만하자.”

그렇게 울었건만 또 눈물이 나온다. 커진 머슨의 두 눈에 안심이 되어서 일까,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여겨서 일까.

“속인 건 미안해, 하지만 마음까지 속인 건 아니었어, 정말로.”

“...”

“이제 이런 모습은 그만해, 흐읍. 이젠 힘들어.”

어째서 연인들의 재회가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기쁠거라고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상상했던 머슨과의 재회에서 눈물은 빠질 수 없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선택지도 몇 개 만들어 놓지 않고, 멀어져 있던 사이에 무슨 변화가 생길 줄도 모르면서 감히 그렇게 확정 지어버리다니.

그의 품에 안겨서 참 추하게도 울어댔다. 그나마 위로가 됐던 건,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 있던 머슨도 내 눈물을 보자 함께 울었다는 것이다.

나처럼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턱 밑으로 떨어지는 그것을 난 분명히 보았다. 남녀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곰팡이와 먼지가 그득한 공간에서 울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림이 조금 우습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어느 멜로영화를 가지고 와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보다 슬프진 못했을 것이다.

늦은 재회 속에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가 현대에 떨어진 직 후 겪었던 일들이나 머슨이 차원을 타고 넘어 올 수 있게 된 경로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고, 그 과정에서 세르데벨라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머슨도 처음엔 믿지 않았으나, 한글로 써진 소설과 세르데벨라의 존재를 알고 있던 나, 그리고 몰래 신전을 다녀오기까지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혼란이 오기 시작했고, 지옥에서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영혼을 보자 함께 지냈던 모든 세월이 전부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한다. 내 존재의 부재와, 믿기지 않는 진실들 속에 허우적대다가 도윤을 보고 분노의 정점 찍은 것이다.

“에리나가 없으면 판단이 흐려져”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야 변명처럼 들린다. 서러워 몇 마디 내뱉다가 이내 포기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든 탓에 지금은 어떠한 에너지도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해.”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의 목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같은 말이 자장가처럼 울려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등위에 무언가 닿았다. 하나, 둘 쌓이더니 결국은 주르륵 흘러 내려가 버린다. 소리 없이 우는 그를 느끼며 불편한 잠에 빠져 들었다.

========== 작품 후기 ==========

에베벱베베베 울보들~~ 부부싸움은 칼로물베기

*독자님 : 오해 풀어지면 주신 강냉이 꼭 털수 있기를

주신 : (오싹) 몸이 오슬오슬한게... 역시 납량특집의 계절인가

*독자님 : 따흐흑 저에게 1분이 남았는데 다른 작품 한 편 포기하고 댓글을 달렵니다ㅠㅠㅠ전 작가님 반응을 보지 못하겠죠 ㅠ

작가 :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아아-브라운 아이즈)제 맘 속에 멋대로 들어와놓고 나가버리는 독자님 ㅠㅠㅠ 책임지세여ㅠㅠㅠ!!

*독자님 : 작가님 연휴라 3일권 끊었어요 3일간은 실시간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3일동안 에리나 손자까지 태어나길...

작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짐) (하아. 독자님을 위해 좀더 분발했어야했는데..따씌...)

*독자님 : 신랑을 옆에두고 머슨을 상상해버림 오해...오늘밤에 풀어주시는거에여?

작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짐2) 오해는 풀렸습니당 다행이도 에리나가 머슨을 한 대 치진 않았네요!! 둘다 멘탈이 바스라진 상태라 다행(읭?)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확인 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