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39화 (139/170)

13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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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읽어나갔다. 예전에는 페이지 넘기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좋아해 마지않던 책이었지만 모든 걸 알고 나니 화만 치솟는다.

“와, 이거 완전 다른 사람을 만들어놨네.”

무슨, 성녀가 쇠약한 할머님을 구하려고 제 다리가 부러지는 줄도 몰라?

누가 살짝 밟기만 해도, 그때 당시에는 웃겠지만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릴 장본인이 바로 세르데벨라였다. 아아, 이 소설의 장르가 코미디 라면 이해 할 법도 하다.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니까.

게다가 머슨 아니 소설 속 케일은, 성녀 때문에 마왕이고 영생이고 모든 걸 포기하겠다 선언한다.

“그저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그대의 개라도 되겠소.”

우웨엑. 먹은 것도 없지만 뭐라도 게워내고 싶은 심정이다.

치정과 신파의 끝을 달리던 소설은 결국 성녀가 세 남자 중 한 명을 선택하지 못해 넷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어이없는 결말을 맞이한다. 굳이 따지고 보면 유일하게 케일의 고백만 받아 주었으니 진정한 승자는 그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난 이런 허무맹랑한 결말을 보기 위해서 이 책을 산 게 아니다.

“힌트 없냐고 힌트!”

비슷한 거라고 해봤자 소설의 마지막 줄에 써 있는

‘분명 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영원히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개소리뿐.

가만히 책을 덮고 숨을 고르다가, 참지 못하고 힘껏 던져버렸다.

‘퍽!’

“무슨 일이예요?!”

“아, 벌레가 있어서요.”

요즘 따라 힘 조절이 안 되네.

별 소득 없는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도윤과 줄곧 외출을 했다. 그렇게 바라던 옷과 운동화를 사고, 냉장고에 먹을게 떨어지면 마트도 다녀왔다. 내가 임산부라는 것을 의식해서 인지 힘쓰는 건 모조리 도윤이 했고, 나는 그저 고르기만 할 뿐이었다.

“이 정도는 들 수 있어요”

“우리 엄마 알면 나 맞아 죽어요”

“제가 말 안하면 되잖아요”

“그냥 줘요”

계란 한 판도 못 들게 한다. 나 아직 완전 쌩쌩한데.

많은 짐을 한꺼번에 들고가는 도윤의 뒷모습을 보니 머슨이 생각났다. 임신을 했건 안했건 간에 내 손에 짐 하나 못 들게 했던 그의 다정함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보고 싶네.”

동시에 걱정이 됐다. 내가 없어 진 걸 알면 분명 난리를 칠 텐데. 아비츠 백작 저택을 통째로 날려버렸던 전적이 생각났다. 그의 스케일에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아, 제발 얌전히 있어줘.

다치지 말고, 다치게 하지 말고.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 해 봤다.

“이름 모를 신님. 앞으로 기도도 꼬박꼬박 드리고 신전도 다닐 테니까, 제발 머슨이랑 만나게 해주세요.”

나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였다. 그때

‘콰가강!’

“앗, 깜짝아!”

맑은 하늘에 천둥이 울렸다.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라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도 몸을 움찔했다.

“비가 오려나?”

그나마 있던 구름도 멀리 멀리 떠나간 지금, 새파란 하늘은 당분간 비를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

“천 년을 채우기 전에 널 다시 만날 줄이야.”

살랑 거리는 바람에 분홍 머리칼이 춤을 추듯 했다. 한 곳에 모아 길게 늘어뜨리자 머리끝이 바닷물에 의해 축축하게 젖어 온다.

‘에리나’는 쪽배 위에 주저앉아 깊은 수면을 한 없이 바라 봤다. 그 안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푸른 섬광을 타고 나타난 케일은 에리나의 모습에 심장이 빨라졌다. 껍데기 일 뿐 진짜 에리나가 아님을 알면서도,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당장 그 모습 지워.”

“왜?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네 반려잖아.”

“지워.”

검은 살기가 공간을 뒤덮었다. 푸르기만 할 것 같은 바다가 어둠으로 물든다. 절대 뒤집어지지 않을 것 같던 쪽배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주신님, 주신님 하면서 그렇게 잘도 따르더니.”

에리나, 아니 에리나의 모습을 한 주신은 거세져 가는 물살을 보곤 혀를 찼다. 이어 물 속에 얼굴을 푹 담근 채 ‘후!’ 하고 바람을 부니, 거짓말처럼 검은 기운들이 씻겨 나간다.

“내 공간이야. 더럽히는 건 용서 못해.”

케일이 주신의 멱살을 잡고 끌었다. 주신이 당황해 하며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얄밉게도 얼굴위엔 웃음이 한가득이다.

“사랑하는 여자한테 이래도 돼?”

“문을 열어”

잇 사이로 억눌린 분노가 새어나왔다. 케일은 잠시도 기다리기 힘들었다. 당장 자신의 눈 앞에 진짜 에리나가 서있어야 했다. 온 몸의 장기가 비틀리고, 몸 밖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매 초마다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진정 좀 해”

“놀아줄 시간 없어”

케일이 힘을 쥐자 에리나의 모습을 한 주신의 발이 공중에서 떨어진다. 충분히 목이 졸리고도 남는 자세였으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기만 하다.

가만히 붙들려 있던 주신이 머슨의 불거진 손을 마주 잡았다. 이어 장난기 어린 눈이 사라지고 그 안을 대신 하는 건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여자의 달콤한 눈이었다.

“머슨, 보고싶었어.”

케일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거머쥔 손아귀에 힘이 풀려간다.

“자 키스해 줘야지”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었다. 뿌리치듯 미간을 구긴 케일은 다시금 주신을 몰아세웠다.

“장난치지마.”

“에이,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애가 타 죽을 지경인 자신과 다르게 줄곧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하는 주신에게 화가 난다. 여기 까지 오는 데만 해도 며칠이 걸렸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일주일? 한 달? 아니면 그 이상? 천계도, 마계도 아닌 오직 주신만의 공간. 지도 상에서 찾을 수도 없고 인간의 걸음으로 갈 수 없는 곳.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통로 속을 지나 에리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 까지 달려 온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전지전능이라 칭하는 이 자라면 문을 열 수 있을 테니까.

“문을 열어!”

“놔 줘야 열지”

웃고 있었지만 주신은 난처했다. 이성을 잃은 지 꽤 돼 보이는 마왕이 자신에게 까지도 위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괴팍하고, 제멋대로에 자비가 없는 그는 천계의 신들 사이에선 인기가 좋지 못했으나 주신은 썩 마음에 들어 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솔직하고, 강하니까. 별이 태어나기 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월을 겪어온 주신은. 케일 보다 강한 마왕은 만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자신의 공간에 함부로 불쑥 찾아오는 경우도 아주 이례적인 것이었다.

‘에리나가 고생을 좀 하겠군’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겨우 풀려난 주신은 하늘높이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케일은 당장 그에게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원래 이렇게 차원을 쉽게 열어주면 안 되는 건데 말이지.”

“열어”

“...따지고 보면 내 잘못도 있으니 괜찮으려나?”

케일이 무어라 더 이야기 하기 전에 혹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주신이 바다 아래에 손을 담갔다. 잔잔하던 수면이 불안정해지며 이내 쪽배 앞에 회오리를 만들어 낸다. 하얀 빛들이 촘촘히 밖인 회오리 안은 마치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 같기도 했다.

“주의할 점이 있어. 지금 떨어지면 언제 도착할 지는 장담 못해. 그리고 그 아이를 너무 괴롭히진 마. 만나면 내가 미안했다고 꼭 얘기 해주고. 자세한 대화는 다시 이곳에서 하자고도 말해줘.”

“무슨 소리…”

“그럼 잘 가”

에리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주신은 망설임 없이 케일의 등을 밀어버렸다. 물살이 케일의 몸을 감싸고 회오리가 점자 크기를 줄여갔다. 구멍은 점점 작아져 그 흔적도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주신은 탈탈 두 손을 털어 보였다.

“시간이 좀 걸리는 건 내 심술. 겁을 준 대가야.”

========== 작품 후기 ==========

*독자님 : 끄엉 ㅠㅠ작가님 연참이라 하는 선물 폭탄을 받고싶어요! 하지만 두 개 작품을 하셔서 무리겠지영

작가 : 연참을 원하시는 독자님들이 많아서, 오늘은 두 개 올립니다.(탑 안의 시녀님 숙연...)

*독자님 : 작가님 가둬두고 다음얘기 듣고 싶어요!!

작가 : 업데이트 하고 야식을 먹을 예정입니다.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고파서. 그리고 바로 쓰러져 자려구영

독자님 : 아니 니얘기 말고

*독자님 : 꿈? 아니면 정신세계? 무의식?

작가 : 주신이 머슨인척 연기 하던 사기의 세계였습니다!

*독자님 : 확실히 2부로 현대판 써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계획 있으신지, 소곤소곤)

작가 : 정확히 ‘현대로 간 머슨의 적응기를 쓰자!’ 하는 계획은 없습니다. 완벽히 충족은 못 시켜 드릴지언정 비슷한 건 나올 수도 있겠군요!

*독자님 :아 오늘 몇시간동안 앚아서 이것만 읽었습니다 ㅠㅠ

작가 : 우와 ㅠㅠ 감사합니다ㅠㅠ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부족한 글이지만 연참 쑝쑝!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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