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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38화 (138/170)

138편

<-- 18. 조심해주실래요? -->

혹시나 이 모든 것이 신의 장난이라면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반드시. 난 아파오는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무슨 일이야?”

방 밖으로 나서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를 듣고 놀란 아주머니가 뛰다 시피 나온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퉁퉁 부은 눈을 한 채였다.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밖은 어스레한 기운이 내려앉아, 태양 빛이 제 집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아주 잠깐 졸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있어 놀랐다.

“이 사람! 누구야?!”

짧게 깎은 머리 덕분에 반듯한 이마가 유독 눈에 띄었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두꺼운 눈썹은 화가 난 듯 위로 솟구쳐있다. 아들의 손가락이 정확히 내 얼굴 위를 향했다. 뭐야, 기분 나빠.

손을 밀어 옆으로 치워내자 그가 당황한 듯 ‘허!’ 소리를 낸다.

“학교는 어쩌고 왜 집을 왔어?”

“지금 그게 중요해? 이 사람 누군데 왜 내 침대에서 자고 있냐고”

“중요하지 그럼 안중요해? 입술은 왜 그 모양이야, 어디서 또 쌈박질 하고 온거 아니야?”

아아, 확실히 그래 보인다. 눈썹 만큼이나 도톰한 입술은 아프도록 터져 그 위에 피딱지가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것에 긁히기라도 했는지 눈 옆에 자잘한 생채기들이 나있는 상태였다.

군대 다녀왔다고 했지 않았나? 그런데 웬 사춘기 남학생 하나가 굴러들어온 기분이다.

아주머니도, 아들도 서로 성질을 죽이지 않고 끝까지 자기 할 말만 쏘아 붙였다. ‘이 사람 누구야?’ , ‘너 왜 집이야’ 가운데 서있는 나는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냥 아무나 포기하고 순순히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두 사람은 침까지 튀겨가며 열을 더해갔다. 이 상태로라면 절대 기세를 죽이지 않을 것 같다.

“제가 먼저 말 할게요!”

스포츠 경기 도중 주심이 카드를 내듯 손을 번쩍 들고는 둘 사이를 막았다. 사나운 두 쌍의 눈이 나에게 향한다.

“진정하세요.”

진심이다.

겨우 언성이 잦아들고 거실 바닥에 앉을 수 있었다. 아들은 턱 하니 양반 다리를 하고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미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사정이 조금 어렵게 됐어요. 그때 아주머니가 도와주셔서 잠시 신세를 지게 됐고요. 아주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전 사람이 이미 한 번 죽어나간 집에서 두 번째 시신으로 발견 됐을지도 몰라요.”

물론 첫 번째도 나였다. 게다가 이러나저러나 죽기도 힘든 몸이 돼버린 지금. 두 번째 시신으로 발견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부러 그런 말을 했다. 아들이 별 반응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하자 아주머니가 허벅지를 내리쳤다.

“아!”

“들었으면 너도 이름을 말 해야 할 거 아니야?!”

분명 붉어져 있을 허벅지를 거칠게 문지르며 아들은 못 이긴 척 제 소개를 시작했다.

“강도윤. 스물 세 살이고. 저 방의 주인입니다!”

가리킨 곳은 당연 내가 자고 있던 그 방이다.

“안 돼! 넌 이제부터 거실에서 자”

“아, 왜!”

“미미, 임신했어. 임산부를 밖에다 재워?”

도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다. 그리고 시선이 내 배로 내려간다. 그러나 아직 불러오지 않은 배에 그가 고개를 갸우뚱해 보인다.

“납작…”

“애 생긴다 하면 배부터 불러오는 줄 알아?”

이번엔 등짝을 얻어맞은 도윤은 닿지 않는 등에 팔을 뒤로 꺾고, 아래로 꺾고, 난리다.

“그럼 남편한테 가야지!”

도윤이 소리쳤다. 아주머니는 ‘이 녀석이!’ 하면서도 아들을 더 이상 때리진 않는다. 오히려 내 눈치만 힐끗 볼 뿐이다. 아무래도 애 아빠가 하늘나라 저 너머에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작 멀쩡히 살아있는 머슨을 고인 만들어버린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미안해!

“...도망갔어?”

분위기를 읽은 아들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어왔다.

“그러면 찾아서 머리털을 다 쥐어 뜯어놓을 수라도 있지.”

“아...”

한 단어만으로 도윤의 복잡한 심정이 느껴졌다. 돈도 없고, 지인도 없고, 다른 나라에 와서 애까지 임신한 과부를 쫓아내려 했었다니. 미안함에 부쩍 말이 없어진 도윤은 제 짧은 뒷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몰랐어요, 그... 미안해요.”

“제가 얹혀사는 건 변함없는데요.”

그래 어찌됐든 내가 아무리 불쌍한 사연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라고 한 들, 이 가족의 일상에 끼어든 건 맞다. 하지만 도윤이나 아주머니나 귀찮다거나, 민폐라는 식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보기 드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내 쪽이 미안해 해도 수천 번은 더 미안해해야 했다.

“우리도 잘 알거든. 애비 없는 가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문득 TV옆에 세워진 사진이 보였다. 도윤이 꽤 어릴적 사진이었음에도 그 옆자리엔 아버지의 존재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우렁찼지만, 슬픔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뼈대가 만들어져 나올 수 있었던 애달픈 소리였다.

“도윤이 녀석을 뱄을 때 남편이 사고로 먼저 떠나버렸어. 그래서 알아, 미미 네가 얼마나 힘들지를. 눈치 보지 말고 기댈 수 있을 때 기대. 나 젊었을 적엔 이렇게 손내밀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다고.”

따스하다. 아주머니의 마음씨와 눈빛, 겉으론 표현 하지 못하지만 아주머니와 똑같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 도윤의 모습이.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낙담했던 현실에 활기가 불어넣어진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아니 곧, 머슨은 만날 때 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이 순간 내가 얼마나 많은 힘을 받았는지, 얼마나 깊은 따스함을 느꼈는지. 꼭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래서, 넌 왜 집에 있다고?”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앉은 채로 바닥에서 높이 뜬 도윤은 아주머니의 질문에 재깍 대답하지 못한다. 찔리는 것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한 바탕 소란이 계속 됐다. 반짝이는 소금을 몰고 온 밤의 파도가 지붕 위를 뒤 덮을 때 까지도.

*

달그락 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졸린 눈을 하고서 나가보니 어느새 출근 준비를 마친 아주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밥 맛은 없었지만, 이대로 방에 다시 들어가기도 뭐 해 반찬을 꺼내고, 국을 떠 테이블 위에 놓은 뒤 그 앞에 앉았다.

“우욱”

“들어가 있어.”

망할 입덧. 괜찮다가도 난리다.

팬티바람으로 쇼파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도윤은 학교 갈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자퇴 하겠다 다짐한 후 집으로 내려왔으니 당연한 건가.

취업을 원했던 도윤은 아주머니의 등살에 억지로 대학에 입학해 맞지 않는 과를 전공하게 됐다. 학교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군대를 일찍 갔다 왔으나 복학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결국 과 모임에 참석을 잘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선배와 시비가 붙었고, 한 바탕 주먹다짐을 한 뒤 그대로 집에 올라온 것이다.

아주머니도 말은 틱틱 내뱉었지만 자신의 아들이 짠했는지, 더 채근하진 않는다.

“이따 도윤이 녀석 일어나면 같이 병원 가봐. 어제 미리 말해 뒀으니까 잘 따라 갔다 오기만 해.”

“아, 예”

아직도 산부인과 이야기다. 대답은 잘 했지만 물론 가진 않을 것이다.

조용한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아주머니는 곧바로 집 밖을 나섰고, 하릴 없이 뒹굴던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이런 거라도 해야지.

이불을 털고, 쌓인 설거지를 하고, 마른 빨래를 걷어 갠 후 다시 세탁기를 돌렸다. 탈수가 시작되자 그 소리에 도윤이 눈을 뜬다.

“으윽, 무슨 아침부터 빨래예요”

“열 두신데요.”

시간에 한 번 놀라고, 헐벗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두 번 놀란 도윤은 덤벙대나 싶더니 화장실로 급히 들어가 버린다.

‘쿵!’

요란하게 닫히는 문소리가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내 새끼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로 문이 다시 열린다.

“씻고 바로 나갈 준비해요.”

‘쿵!’

“얼씨구, 늦게 일어난 게 누군데.”

빨래를 해결 한 후, 짧은 준비를 마치고 도윤과 밖을 나섰다. 산부인과는 가기 두렵다고, 태어나 처음 가보는 곳이라며 갖은 불쌍한 척을 해보이니 도윤의 마음이 약해진다. 게다가 남자인 자신도 산부인과는 어색했는지 알았다며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문제없는 거죠?”

“네, 튼튼합니다. 아프면 바로 병원가면 돼요”

이후 도윤과 함께 들린 곳은 서점이었다. 지켜보고 있는 도윤 때문에 세르데벨라의 책, 말하자면 야한 로맨스 소설 책을 사는 것이 눈치 보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안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철판 깔기로 했다. 다행이 도윤은 이에 대해서 깊게 묻진 않았다.

나온 김에 옷이라도 살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소설책을 당장 읽지 않고는 못 베길 것 같아 곧 바로 집으로 향했다. 외출복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앉아 포장된 비닐을 뜯었다.

“어디보자…”

========== 작품 후기 ==========

*한 편 더 올라가용요용요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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