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36화 (136/170)

136편

<-- 18. 조심해주실래요? -->

“...이름이 뭔가.”

“에리나 홀든입니다.”

고유의 밝은 기운도, 사랑스러운 미소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영락없는 에리나 였다.

소리치고 싶었다. 왜 네가 그 얼굴을 하고 있냐고, 어째서 그 목소리로 나에게 살려 달라 말하는 거냐고. 떨고 있는 눈앞의 여자는 무엇 하나 에리나를 닮지 않았으나 빌어먹게도 아주 익숙했다.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었고, 매일 밤 잠든 모습을 수없이 훔쳐보았던 바로 그 얼굴.

턱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윽”

“그럼 넌 도대체 누구야.”

강하게 붙들려 다물어지지 않는 잇 사이로 타액이 흘렀다.

“에, 에리나 홀든...입니다.”

“넌 도대체 누구냐고!”

“흐윽!”

케일의 고함이 마치 지옥 불에서 허덕이고 있는 영혼들의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는 눈 앞의 여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하나 뿐인 반려. 에리나에게 향한 말이었다.

허망함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당연히 있어야 할 신체의 일부가 뚝 떨어져 나간 것만 같았고, 그로 인해 삶의 이유 자체가 무의미 해졌다. 짙게 몰려드는 절망감. 사랑했던 만큼 차오르는 배신감 까지. 천 년이 넘는 세월중 이토록 그를 이토록 감정의 밑바닥 까지 몰아내는 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무엇 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무엇을 속였건, 케일은 에리나 없이는 살지도, 소멸되지도 못 한채 빈껍데기처럼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고 또 찾아 헤맬 것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에리나.”

역시나 눈 앞의 여자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상처로 너덜너덜 해진 목소리는 그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낼 정도였으나 그의 행동은 목소리의 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악하고 모질었다.

‘으드득-’

에리나와 똑같은 얼굴의 여자는 결국 머슨의 손아귀에서 턱이 으스러져 버렸다. 메마른 땅에 버려진 생선처럼 쉼 없이 파닥거리기 시작한다. 슬픈 눈으로 그녀를 내려 보다가 머슨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여자의 몸은 거침없이 지옥 불 안으로 고꾸라졌다.

“에리나.”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떠나버렸다 한 들, 케일은 멈출 수 없었다. 가슴속에 거센 불이 일고 물 위로 떠오른 ‘배신감’ 이라는 단어는 이미 케일의 가슴 한 편에 자리 잡아 버렸다. 더불어 차마 지우지 못한 지독한 사랑이 케일을 엇나가게 만들기 시작했다.

“...내 옆에만 있어야 해.”

돌아오지 않겠다 몸부림치면 사지를 묶어서라도 끌고 올 것이고, ‘사랑 한다’ 라는 말이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에리나가 울고불고 싫다 악을 쓰면 그땐 마음이 좀 아플 것이다. 뺨 위에 흐른 눈물을 부드럽게 핥아 주면서 예전처럼 우리 둘이서만 지내자고 달콤한 말들로 달래 줘야겠지.

결심이 선 케일은 지옥을 박차고 나와 단숨에 텔레포트를 시전 했다. 사시사철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 지옥문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질 정도로 푸른빛이 공간을 에워쌌다. 마법을 부리는데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도, 버거움도 없었던 그가 머리를 짚었다. 폭발 하듯 대지가 울리고 케일 주위로 응집 됐던 마나가 순식간에 퍼져나가 푸른 섬광이 번쩍였다. 문을 지키던 해골 문지기들 마저 팔꿈치로 제 눈을 가릴 정도였다. 다시금 빛이 사라지고 먹구름 아래에 한적한 어둠이 자리를 찾을 즈음엔 케일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

“오늘도 수고 했어!”

“예, 들어가세요!”

소금기로 푹 젖은 머리를 툴툴 털었다. 일주일 즈음 되니 일하는 데에도 익숙해지고, 지하철 타는 것이나 TV 에어컨 등 전자기기에 대한 낯선 감각도 사라졌다. 원래 자주 애용하던 것들이라 그런지 다시 적응하기에 큰 어려움 같은 건 없었다.

“미미씨, 잠깐 나 좀 볼까”

막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와중이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소장님이 튀어나왔다. 집은 항상 아주머니랑 같이 돌아갔기에 아주머니까지 덩달아 소장님 앞에 섰다.

“자, 주급이야.”

흰 봉투가 불쑥 내밀어졌다. 그래, 일을 하면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왜 난 이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 감격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저, 정말이요?”

“오늘이 딱 일주일 째 되는 날이잖아. 손도 야무지고, 성실해서 다른 아주머니들도 미미씨를 참 좋아하는 거 알지?”

“감사합니다!”

당장에 봉투를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눈치가 보여 품 안에 밀어 넣기만 할 뿐 차마 확인 하지는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 입기도 전에 봉투를 꺼내 보았다.

“33만 6천원”

빳빳한 새 돈은 아니었으나, 어찌 됐든 돈은 돈이다!

신나 바닥을 뒹굴었다. 아주머니 옷을 언제 까지고 빌려 입을 수 만은 없어, 옷도 사고 싶었고 발 편한 운동화도 필요했다. 그리고…

“완결이 나왔다 이거지.”

3년 사이 세르데벨라의 책은 이미 완결이 난지 오래였다. 세르데벨라의 흔적을 찾아 보려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건질 수 있는게 없었다. 작가도 미상, 출판사에서도 작가 얼굴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하물며 개인번호도 모른 댄다. 아주머니 아들 방에 있는 컴퓨터로 열심히 키보드 두드려봤자 세르데벨라의 소설 책 팬들의 극찬만 나올 뿐이지 작가 자체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혹시나 책의 마지막 권에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이라도 한 줄 써놓지 않았을 까 싶어서 그것이라도 꼭 사고자 했다. 하지만 얹혀사는 주제에 감히 책 까지 사달라고는 절대 말을 못하겠고, 그렇다고 수중엔 땡전 한 푼도 없어 고민 하던 찰나였다.

“좋았어.”

난 봉투에서 10만원을 꺼내 아주머니께 드렸다. 한사코 거절 하던 아주머니는 단호한 나의 태도에 결국 주머니에 그것을 넣어 두었고, 그제야 내 마음에 있던 짐이 아주 조금은 덜어졌다.

첫 날, 남의 방을 어떻게 함부로 들어가냐며 거절했던 내 최소한의 기본 예의는 사라진지 오래다. 컴퓨터를 본 순간 발걸음은 염치도 없이 아들 방으로 향했고, 익숙하게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아들도 안 온다는데, 잠깐 정도는…”

군대에서 전역한 후 바로 복학하여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학교 생활이 바빠 집에는 자주 안 들린다고 한다. 아들이 없어 적적한 와중에 내가 나타나 말동무라도 되어주니 집에 활기가 돈다고 아주머니는 좋아하셨다.

오늘도 일례 행사처럼 세르데벨라에 관한 검색을 주구장창 하다가, 더 이상 눌러보지 않은 새 게시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종료버튼을 눌렀다. 오랫동안 화면을 보고있으니 눈이 아파와 미간 사이를 문질렀다.

“하, 이러다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지날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져왔다. 아직 몸에 마력은 충분 한지 마법 쓰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늘 눈치를 봐야 하는 내 입장에서 마법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머슨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도 안 되는 데. 이거면 말 다 한거지.

그렇다고 해서 세르데벨라가 문을 열고 이쪽 세계에 다시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차기작을 원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나 세르데벨라는 완결을 낸 직후 다른 작품을 내지 않고 불현 듯 사라져 버렸다.

막막하다.

이 말만이 지금 내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였다.

“미미! 라면 다 끓었어!”

나와 비슷하게도 야식 먹는 것을 즐겨하는 아주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야식의 연속이다. 드라마를 보며 사소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 중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다.

“먹어봐. 계란이랑 버섯이랑 잔뜩 넣고 끓였으니까”

“와,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냄비 뚜껑을 열자 뿌연 김과 함께 라면 냄새가 확 퍼져 올랐다. 그런데, 난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라면 못 먹고 죽은 귀신처럼 달라 붙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오히려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우욱”

“...”

라면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체했어?”

고개를 저었다. 하루 종일 입맛이 없어 먹은 것도 별로 없었다.

“우욱”

다시금 헛구역질이 나온다. 아주머니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아주머니와 비슷한 눈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 됐다. 아주머니는 재빨리 라면의 냄비 뚜껑을 덮었다.

“...남자가 있었어?”

나는 여전히 입을 가린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독자님 : 예? 뭐죠? 우리 호러 보나요?

작가님 : 귀신이 무서워서 공포는 절대 연재 못하는 작가임뮤닷 호에우에엥ㅇ

독자님 : 말투가 공포 그 자체

*독자님 : 다음 편이 보고싶어서 다음날이 되길 원하지만, 다음 날은 월요일 이거슨 자닌한 데스티니

작가 : ㅋㅋㅋㅋ(빵터지다) 맞아요.. 저잊고있었는데... 독자님 코멘트 덕에 깨달았어요. 월요일이라는 걸(웃음을 잃다)

*독자님 : 여주(신체) 굴림물, 남주(정신)굴림물 =굴러. 보다 보니 클램프의 츠바사가 생각나네요 이 남주가 네 남주냐, 아니면 저남주? 쟤? 왼쪽? 오른쪽?

작가 : 아 ㅠㅠ 츠바사를 안봐서 ㅠㅠㅠ (땅을 치고 후회중)(독자님의 코멘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죽는 병이있음) 츠바사 보고 오겠습니다

*독자님 : 설마 착각하거나 정신이 회까닥해서 가짜에리나랑 잘 살다가 진짜 에리나가 애기와 함께 등장하나요?! 가짜 에리나는 자기가 진짜인줄 알고 깝치다가 저세상 가는 그런거요?!

작가 : 재.. 재밌다... 에리나가 애기와 함께 등장하는 씬에서 카타르시스 작렬....

아쉽게도 가짜 에리나는 오늘 이후로 나오진 않습니다.(숙연)

*독자님 : 자까님 걍 둘이 꽁냥대는거 보여주면 안대여? 자까님 누구편? 우리편? ㅇㅈ? ㅇㅇㅈ

작가 : ...(그러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린 작가.)그, 에리나가 조금 더 능력이 있었다면, 현 세상와서도 다시 문열고 돌아가면 편할텐데 그쵸?

에리나 : 갑자기 왜 내탓.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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