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편
<-- 18. 조심해주실래요? -->
살면서 별의 별 경험을 다 해봤지만, 내가 죽었다는 소리를 두 귀로 직접 들을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죽었다니.
멍하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자, 아주머니는 내가 겁을 먹어 그러는 줄 알고 달래주기 바빴다.
“지금 알았으면 된 거지. 그럴 리가 없는데 요 며칠 전부터 계속 이 집에서 빛이 나와가지고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 외국인 아가씨 때문이었구만.”
“...”
오늘 처음 본 사이임이 분명한대도 한 번 경계를 푼 아주머니는 과할 정도의 선의를 보여주었다. 먼 타지에 와 갈 곳도 없이 사람이 죽어 나간 집에서 지낸 내 사정을 딱하게 여겼는지 내 손목을 꽉 붙들고는 자기 집 안 까지 데려간다. 그 죽어 나간 사람이 바로 나 인줄도 모르고.
“...그래서, 그 사람 어떻게 됐대요? 가족은요?”
감사하다는 인사도 뒤로 한 채, 난 무례하게도 질문부터 던져댔다.
“난리가 났었지. 우리 집이 그 자취방 앞이잖아. 사이렌 소리고, 곡소리고 사람들 다 몰려와가지고 며칠을 잠을 못 잤어 내가.”
“그래서요?”
“누가 와서 해친 것도, 아니고 돌연 갑자기 죽어버렸는데 그 부모만 애가 탔지. 끝까지 밝혀진 건 없는 모양이더라고. 장례도 치르고 화장까지 다했어.”
“화, 화장이요?!”
내 몸이 불타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고요?
아주머니는 요즘 세상에 누가 사람을 땅에 묻냐며 기겁하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게 내 몸이니까 놀라는 거죠!
뿐만 아니라 가족들 생각에 코가 시큰해져 왔다. 많이, 진짜 많이 놀랐을 텐데.
머슨과 함께 머물기로 결정한 주제에 이제 와서 눈물이 고인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가족생각은 뿌리치려 해도 내 머릿속 전체에 가득 메워져 불효막심한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가씨, 울어? 그게 그렇게 무서웠어? 아이고, 짠해서 어떡해”
꾹꾹 담아 눌러왔던 것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나는 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댔다.
*
울음이 멈추고 마음이 진정 되었을 땐 이미 동녘의 해가 떠오르고 있을 즈음이었다. 거실 구석에 쭈구려 앉아 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발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나를 달래느라 지친 아주머니는 바닥에 앉은 채로 쇼파에 머리를 기대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중이다.
아주머니의 가족사진이 없었다면, 이 집엔 아주머니 혼자 사시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집에 다른 사람이 왔음에도 내다보는 사람 하나 없고, 심지어 목 놓아 울기 까지 했는데 집안은 고요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TV옆에 놓여 진 작은 사진엔 아주머니 말고도 가족이 한 명 더 있었따. 열 살이나 되어 보일까? 작은 소년 하나가 방긋 미소 짓고 있었다. 사진 속 아주머니는 지금 보다 더 젊었다. 저 소년은 지금 쯤 나와 비슷한 또래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고 심심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고, 여기서 잠이 들었네.”
자세가 불편했던 탓이었는지 아주머니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구석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는 비명이라도 내지를 듯 입을 쩍 벌리다가. 이내,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다시금 다문다.
“진정좀 됐어??”
“덕분에요.”
“어휴.”
아주머니가 무릎을 짚어 일어서더니 내 팔뚝을 잡아 채근했다.
“따라와 봐.”
몇 발자국 걷지 않아 도착한 곳은 아주머니의 방이었다. 넓지 않은 방에는 기다란 2층 행거에 수많은 옷들이 종류별로 걸려있었다. 그 앞에 선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 하나 싶더니 번개같은 속도로 옷 걸이 두 개를 척, 척 빼내어 나에게 건냈다.
“입어.”
“아, 감사합니다.”
“쯔쯔. 그 옷은 뭐, 헌옷 수거함에서 주워온 거야?”
아주머니, 외국인 노동자가 거지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난 비참하게도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갈아입고 나오라는 소리에 단추를 푸르고 한 번에 원피스를 벗어냈다. 발목을 감싸는 밴드가 인상적인 검정 냉장고 바지와, 화려한 호피 무늬의 찰랑거리는 티셔츠 까지. 디자인은 둘 째 치고, 편하긴 하다.
갈아입고 나오니 아주머니가 아주 잘 어울린다며 박수까지 쳐주신다. 하하, 모델이 워낙 좋아서.
“꼭 우리 샤를 같네!”
“샤를이 누구예요?”
아주머니가 가리킨 곳엔 육각의 등껍질을 뽐내며 당당하게 고개를 빼끔 내밀고 있는 거북이가 보였다.
“...”
아, 거북이.
어항속의 손바닥 만 한 거북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제 등껍질 안으로 휙 숨겨버린다.
하하하.
아주머니는 못 다한 잠을 채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고, 아들 방을 가리키며 편히 쓰라고 내어준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방을 마음대로 쓰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으므로 결국 거실 쇼파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 시간을 뒤척여도 잠이 오질 않아 벽위 달린 원형의 시계만 바라보았다.
5시 40분.
작은 바늘이 두 바퀴 돌 때 까지도 난,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오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재빨리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보였다.
“일어나, 밥먹어야지”
아침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차려졌다.
김치, 멸치, 젓갈, 김, 날 위해 만드신 듯한 계란 후라이까지. 따끈 한 밥을 마지막으로 준비가 끝났다.
이 얼마 만에 보는 반찬들인가. 안 그래도 물 말고는 마실 게 없어 허기가 진 와중에, 이런 진수성찬이라니. 에리나 홀든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훌륭했던 밥상이었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비우자, 이제 막 두 숟갈 째 뜨려던 아주머니가 한 그릇을 더 내어와 주신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잘 먹겠습니다.”
“참 복스럽게도 먹네”
두 뺨이 미어터질 정도로 밥을 쑤셔 넣었다. 아주머니는 무슨 버라이어티 쇼라도 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깔깔 웃어보였다.
갑자기 에반이 생각 나는 이유는 뭐지.
폭풍 같던 식사가 끝나고, 얻어먹은 것에 대한 당연한 순리로 설거지는 내가 맡았다. 물기 어린 고무장갑을 벗어 놓고 돌아서자 그 사이에 아주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나설 준비를 했다.
“어디가세요?”
“일하러 가야지, 따라와. 소장님한테 잘 말하면 일자리 하나 내어줄 수도 있으니.”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무수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그 모습에 잠시 넋이 빠졌다.
질리도록 보아왔던 건데.
아주머니가 나를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바쁘게 통화하며 걷던 아저씨와 부딪쳤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얼굴을 가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러내려야 했다. 스마트폰에만 빠져있어야 할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꽂혀있었기 때문. 추측을 해보았다. 하나는 내 머리색과 이목구비 때문일 것이고, 둘은 아주머니가 호의로 건네주신 옷 때문이었으리라. 민망해.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 지옥 같던 지하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주머니와 함께 도착한 곳은 은색의 크고, 기다란 컨테니어 박스가 줄지어져 있는 ‘김치 공장’이었다.
위생 장갑과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자마자, 재미있는 사건이라도 발견 한 듯 흥미어린 눈을 하고서 모여왔다.
“외국인 노동자 아가씬데! 사람이 죽어나간 집에 혼자 밥도 못 먹고 지내고 있더라고, 사정이 딱해서 내가 데리고 왔어”
“잘했네!”
“타지 생활이 힘들지?!”
“한국말 할 줄 알어?!”
“네, 쵸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는 듯 아주머니들이 내 말 한마디에 신나 웃어댔다. 상황은 순조로웠다.
“이름이 뭐야?”
“아, 글쎄 이름도 안 물어보고 뭐했어!”
순간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뭐라고 하지? 에리나? 수 많은 영어이름들이 머릿속으로 마구 들이닥쳤다. 시간을 오래 끌면 안 되기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름을 내뱉었다. 어린 시절 부르고 또 불렀던 그 이름을.
“미미요.”
엄마한테 그렇게 사달라고 졸랐던 미미인형 말이다.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나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던 소장님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니 질문 하는 것을 포기했다. 불법체류자 인걸로 생각 됐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아주머님들이 힘을 써주신 덕에 일자리 하나를 얻어낼 수 있었다.
세척되어 나온 배추를 소금물에 저리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기계는 깨끗한 배추를 자꾸만 가지고 들어왔고,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저려 지는 게 배추인지, 내 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질릴 정도로 만져왔던 양파가 배추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오고 반듯하게 서있던 두 다리가 번갈아 가며 짝 다리를 집기 시작할 즈음 꿀 맛 같은 휴식 시간이 다가왔다.
마스크를 벗어 내곤 물 한통을 다 비웠다.
“힘들진 않았어?”
“췃 날이라 그런쥐, 쵸큼(첫 날이라 그런지 조금 힘이 드네요.)”
아주머니 들이 동시 다발 적으로 힘내 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만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필요한 것이 없냐며 물어왔다. 평소 같으면 없다고 거절 했을 테지만, 어젯밤부터 계속해서 간절하게 필요 했던 것이 하나있었다.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스마트 폰을 받아 들고 공장 밖으로 나왔다. 엄지 밑에 땀이 차 몇 번이고 옷 위로 문질렀다.
두 눈이 다이얼 액정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큰마음을 먹고 ‘0’ 한자리를 입력했다. 이 다음 숫자를 입력하기 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원하는 숫자를 모두 입력 한 후에야 겨우 초록색의 통화 버튼 앞까지 엄지가 향했다. 마법도 걸려있지 않건만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힌 듯 도저히 눌러지지가 않는다.
“후.”
눈을 질끈 감고 ‘톡’ 하고 건드린 후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어 자연스럽게도 ‘따르릉’ 하는 통화음이 들린다.
두근, 두근, 두근.
1초가 10년 같이 길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을 가려버렸다.
대답을, 대답을 해야 하는데.
‘여보세요?’
눈물샘에 버튼이라도 달린 게 아닌가 싶었다. 누가 억지로 그것을 눌렀는지 곧 바로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크흡. 흠. 여보세요.”
‘네, 누구세요?’
엄마였다. 기운 빠져 있는 목소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도 쌩쌩하기만 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북적함이 나와 다르게 활기가 넘쳐났다.
‘엄마! 이거 넘치는데 어떻게 해?’
‘물을 더 넣어!, 누구시라고요?’
언니와 엄마,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빠와 오빠의 웃음소리까지. 그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미 하늘나라로 갔다고 믿는 막내가 사실은 여기에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잘 못 걸었습니다. 죄송해요.”
‘아, 네 괜찮아요.’
뚝-
16초. 짧았다. 인사를 하기에도, 존재를 느끼기에도 짧은 시간. 문득, 넓은 세상 안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가족도, 머슨도 만나지 못한 채로 쓸쓸하게.
*
〈에리나가 이동 되던 날〉
차원의 문을 닫은 벨라는 에리나가 사라진 바닥 위에 미친 듯이 책을 쌓아 올렸다. 땅을 파고 올라오는 것도 아니건만, 이렇게라도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오지 마, 두 번 다시 내 세계에 얼씬도 하지 마!”
정신없이 책을 던지던 벨라의 팔이 공중에서 멈췄다. 오싹. 소름이 끼치며 온 몸의 털이 서는 기분이었다. 땀 하나가 둥근 얼굴선을 타고 흐르더니 턱 밑에 고였다.
“...케일.”
문 밖에 케일이 서있었다.
그는 벨라를 무심하게 지나치더니 방 안 곳곳을 뒤졌다. 아주 소중한 걸 잃어버린 것처럼 책상 밑, 이불 아래, 커튼 뒤까지 아주 샅샅이 살폈다. 이어 벨라가 쌓아 놓은 책을 발견하자 그것 위에 강한 불덩이를 내리 꽂는다.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린 책들에 벨라는 좌절했다.
‘막아야 하는데!’
좌절한 것은 벨라 뿐만이 아니었다. 신전 어디에도, 무수히 쌓여있던 책 아래에도 머슨이 찾는 것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본격, 미미의 한국 적응기!!
*독자님 : 에리나의 본체가 죽었다니 ㅜ 아쉬워요 에리나의 본래 이름은 뭘까요?
작가 : 에리나의 진짜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었죠. 흐름상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한 번쯤은 나올 것 같긴하네요! 김말순.
에리나 : 뭐?
*독자님 : 작가님 제 통장털이범으로 신고할거예요! 컴백 이후로 일주일에 두세번 결제한다는 ㅠㅠ멈출수없다 ㅠ
은팔찌 : (어떤 이유에서던 작가를 잡아가고싶다.)접수
작가 : 다음 화는 철창에서 인사드리겠....
*공지
(1). 완결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곧 습작 공지가 올라갈 예정입니다. 확인해주세요!
(2) 구독불가 완결 후 연재하려고 했던 차기작 '탑 안의 시녀님'이 생각보다 일찍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남주가 둘 이니 취향대로 골라 드시면 됩...(읭?)
*짧은 홍보.
용이 사라진지 천 년이 지났다. 그 누구도 용을 믿지 않았지만 오직 한 사람, 그는 달랐다. 마스티공작가의 장남 '데인 마스티'만은 지금도 용이 실제한다고 굳게 믿었다. 용에게 사로잡힌 공주님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대륙 최강의 검사가 되었다.
"용에게 잡힌 공주님을 구하러 왔습니다!"
"저 공주 아니예요. 그리고 구해지고 싶지 않다니까?!"
〈집안일만렙여주/순진여주/당찬여주〉
〈남주1/대륙최강검사/순진남주/의지만렙남주/어벙한남주〉
〈남주2/마지막용/예민남주/히스테릭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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