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32화 (132/170)

132편

<-- 17. 이제와서요? -->

“망상에 빠진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세르데벨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소설책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세르데벨라의 '문을 여는' 능력은 내가 원래 살고있었던 세계와 통하는 차원의 문일 것이고, 세르데벨라는 이곳과 저쪽을 오가며 소설책을 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세르데벨라의 뻔뻔스러운 낯짝을 생각하니 열이 났다. 남자 셋을 포함해 이 나라 전체를 자신만의 환상으로 덮어 그것을 곧 실현시키려한 그 배포가 다른 의미로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소설의 도입은 ‘베넌 대학살’부터 시작된다. 소설이 결말 까지 다다른 시점에서 내가 이동되었고 우연의 일치인지 이동한 그 순간은 바로 베넌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이었다. 흐름상 맞지 않은 구조였다. 게다가 ‘성녀’의 능력 중에 예언은 없다.

“베넌 대학살도 모조리 세르데벨라가 꾸민 계획안에 들어간다는게 확실해졌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도지만.”

단순히 흑마법을 사용하기위한 제물로 바쳐진 마을이 아니었다. 자기가 그려놓은 로맨스를 실현 시키려는 첫걸음이었을 뿐.

점점 윤곽이 잡혀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저자는 세르데벨라가 맞고, 허황된 소설이 더 이상 소설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아주 치밀하게 모든 상황을 계획했던 것이다.

“도대체 넌, 어떤 결말을 꿈꿨던거야, 세르데벨라.”

치가 떨리고 그녀의 무모한 계획들에 욕하는 것 마저 이골이 났다. 후, 갑작스레 들이닥친 예상 밖의 사실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숨을 크게 내뱉는 것으로 날려버렸다. 정신차리자. 일어나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몸을 털어보았다.

“증거확보다”

있는 힘껏 책장을 발로 가격했다.

‘퍽!’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찌르르 전류가 흐른다. 아 아퍼! 하지만 속 시원해! 내 시도가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높은 곳에 꽂혀있었던, 이른바 세르데벨라의 망상집이 차례대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책장 전체가 흔들거리더니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이런 불법서적은 전부 회수해야 마땅하지. 아휴 보기만 해도 유해하다 유해해.

이것들을 증거로서 전부 가져가 머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것도 밝힐 것이다. 머슨을 이해시킨 다음 세르데벨라의 덜떨어진 사랑꾼 천신에게도 세르데벨라의 정체를 낱낱이 까발릴 것이고. 뭐, 그와 말이 통할지 안통할지는 미지수지만.

마력이 없었더라면 절대 들고 갈 수 없을 정도의 무게였지만, 지금의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책들을 전부 챙길 수 있었다. 내 옆에 두둥실 떠있는 책들이 마치 펫이라도 되는듯 나를 졸졸 따라 다닌다.

“어디로 갔는지... 여하튼 신전에 돌아오면 아마 기겁을 할 거다, 세르데벨라.”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수확을 얻어 지금 다시 머슨에게 간다하더라도 아쉬울 건 없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즐겨 읽었던 책의 저자가 책속의 인물인 세르데벨라일 줄이야. 당분간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란 퍽 어려울 듯 싶다.

“어?”

세르데벨라의 방 문을 막 나서려는 순간 하얀 솜뭉치 같은 빛 덩이들이 내 머리, 어깨를 통 통 밟고는 튀어 오른다. 이번엔 다리를 지나 머리칼을 잡아 당기기도 하고... 한 두 개가 아니였다. 눈 동자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결국은 빛 덩이들을 따라 몸을 반 바퀴 돌렸다.

“뭐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잔 먼지만 날리던 세르데벨라의 방에 빛 덩이들이 가득 메워져 마치 눈이 내리는 것만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자유자재로 방안을 뛰돌던 빛 덩이들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군데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가 둘이되고 둘이 넷이 되며 서서히 합쳐가던 그것들은 세르데벨라 방의 닫힌 커튼을 열어 올리고 그 안에 달린 거대한 유리창만큼이나 몸을 불렸다.

홀린 듯 그 앞에 다가섰다.

거대한 타원형으로 모여 자리를 잡은 그것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반짝 빛만 뿜을 뿐이었다. 빛 덩이들이 만든 이것은 마치...

“문?”

그래, 문 같았다.

깨달은 순간 타원의 빛이 한 가운데로 쩍 갈라지더니 그 틈사이로 거센 바람이 인다. 양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으나, 그 바람이 얼마나 센지 바닥을 긁으며 두 발이 뒤로 밀려났다.

“윽!”

“네가 왜 여기있어?!”

바람을 타고 거친 고함이 귀를 자극했다. 눈을 뜨려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여기 있냐고!”

공간을 울리며 찢어지는 비명과 동시에 바람이 뚝, 멈췄다.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서서히 선명해지는 시야 앞으로 보이는 건 얼굴이 붉게 문든 세르데벨라였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이내 무너져버린 책장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성의를 풀럭이며 책들 속에 자리를 잡고는 그것들을 파헤쳐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이거 찾아?”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다시금 와인색 표지의 책들이 공중에 높이 떠올랐다.

“...내놔.”

그녀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살기를 숨기지 않은 잔악한 표정이 얼굴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못하겠다면?”

“그게 뭔 줄 알고”

당연하게도 내가 한글을 모를거라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어렸을 적 영재소리 들을 정도로 한글을 일찍 뗐어. 넌 다 들킨거고 세르데벨라.

“세르데벨라의 망상집.”

“...”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되는 거야? 천신이야, 황제야 아니면... 마왕이야?”

빠득- 그녀가 턱에 힘을 얼마나 주었는지 뼈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럴리 없어, 니가 읽을 수 없는 책이야 그건!”

“읽을 수 있어. 아니 외울수도있어. 나 니 책 꽤 팬이었거든.”

그녀의 미간이 맞닿을 듯 모아졌다.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아니 할 말을 찾으려는 듯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그 요동치는 감정 중 기본으로 깔려있는 것은 당황임이 틀림없었다.

“...너, 뭐야.”

“말했잖아. 네 팬이었다고. 지금은 뭐 안티를 넘어서 증오하는 수준까지 왔지만 말이야. 원래 돌아선 팬이 더 무서운거 알지?”

“어떻게 여기에 왔어. 이 곳과 저쪽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 나말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소설책 한 권을 집어 그녀의 눈앞에서 펼쳐보았다. 아무렇게나 집어 손 가는대로 페이지를 넘겼는데 공교롭게도 극중 성녀와 마왕의 야릇한 19금 장면이다. 소리 내어 읽어줄까 싶었지만 머슨의 이름이 들어간 장면을 읽기엔 나 조차도 버거워 그저 세르데벨라가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가까이 들이밀고만 있었다.

“너 문을 연다는게 그런 소리였어? 저쪽 세계로 넘어가서 망상소설집이나 내고 이쪽에선 그걸 실현시키고.”

상기된 그녀가 책을 덮으려 손을 휘저었지만 내가 빨랐다. 휘릭- 바람소리와 함께 다시금 내 옆으로 돌아온 책은 순순히 세르데벨라의 품으로 돌아가주지 않았다.

세르데벨라의 목소리가 수치심으로 떨려왔다.

“...당장 순순히 내 놓는 것이 좋을 거야.”

주란다고 그냥 줄 거면 이 고생을 하지도 않았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날 이쪽 세계에 부른게 너야?”

“하, 내 세계에 왜 너같은걸 데리고 오겠어!”

“네 세계? 정신차려, 망상은 이제 끝났어. 소설은 현실이 될 수 없다고”

우두커니 서있던 세르데벨라가 조소를 머금더니 이내 참지 못하겠다는 듯 헛바람을 터뜨린다.

왜이래?

실성한 것처럼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대던 그녀는 귀가 아릿하게 아파올 즈음에서야 웃음을 거둬들였다.

“에리나 홀든. 정말 내가 쓴 소설의 전부가 망상이라고 생각해?”

“뭐?”

“실제로 황제는 나에게 빠져서 아비츠 백작이 뒤통수를 칠거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엘도 마찬가지야 제 날개를 찢어서 까지 날 위해 헌신했잖아. 그렇다고 케일은 아닐 것 같아?”

“...”

“내가 잘 꾸며 놓은 무대위로 올라가서 무참히 사람들을 죽였고, 각인의 증표까지 만든게 바로 케일이야! 너만 없었으면, 너만 없었으면 모두 계획대로 될 일이었어!”

‘나만 없었으면’ 이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말에 대해 잠시 고민해봤다. 내가 머슨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세르데벨라의 소설처럼 모든 것이 변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어 금세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폐하는 아비츠 백작을 막았을 거고, 받는 것 없이 헌신 한 천신은 지쳐 너를 떠날 테고, 마왕은 끝까지 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거야.”

“...잘도 떠드는 군.”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위협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궁지에 몰린 자의 발악은 안쓰럽기만 할 뿐이니까.

아차

절로 손뼉이 쳐진다. 방금 세르데벨라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가설이 하나 생겨났기 때문이다.

“베넌 대학살, 마족의 신체를 먹으면 마력이 생긴다는 소문... 그거 네가 네 오빠한테 흘린거지?”

세르데벨라는 역시나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서 라기 보다는 파리 목숨만도 못한 아주 시시콜콜한 질문이었기에 그런 듯 싶었다.

“그래놓고 오빠를 죽였다면서 펑펑 울어댔던 거라니. 네가 쏟은 무수한 말 중에 진실은 과연 몇 개나 되는 거야?”

“...너만 없었으면”

“아직도 그 소리네. 내가 있든 없든 똑같다니까”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세르데벨라가 어느 틈엔가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시선을 내리려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어깨 위로 방금 전 질리도록 보았던 하얀 솜뭉치가 튀어 올라가는 바람에 잠시 그것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거…”

“난, 다시 쓸 거야. 거만하게도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아니, 난 다시 모든 걸 바로 잡을 거야. 그러니까 넌 이제 빠져”

“으윽…!”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이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렴”

한번 경험했던 그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정면에서부터 불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발 아래에서부터 끊임없이 올라와 마치 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묶기라도 하듯이 거칠게 불어왔다.

안돼!

내가 선 눈높이는 변하지 않았건만 발 아래에 닫는 감각이 사라졌다. 바닥에 타원형의 하얀 구멍이 생겼고 점차 그것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고개가 뒤로 꺾일 만큼의 강한 빛을 쏟아냈다.

“아악!”

“전에 나를 찾아와서 말했었지? 케일을 부탁한다고. 그거 들어줄게. 난 자애로운 성녀니까.”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끝이 어딜까. 두려운 마음이 생길 정도로 계속해서 하얀 터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어딘가 붙잡으려 손을 뻗어 봐도 바람 만이 스칠 뿐 거머쥘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흐읍!”

시야에 닿는 것 전부가 하얀 와중에 저 멀리서 검은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 몸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것은 가까워져 갔고, 어느새 공간을 전부 차지 할 정도로 비대해져 내 눈앞까지 들어차 있었다.

본능 적으로 온 몸에 힘을 가득 주었다. 눈을 질끈 감고 추락시에 다가 올 고통에 대비하였다.

‘푹신-’

어?

고통은 얼어 죽을. 빛과 바람이 뚝 끊기고 엉덩이 아래로 두꺼운 쿠션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거야”

이제는 완전히 검다.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이 밤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더듬 더듬 만져보니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인지 찬 기운이 느껴졌다.

“...침대 같은데”

사방이 어둠이라 도저히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빛무리를 그리니 놀랍게도 손 위에서부터 밝은 빛이 퍼져 나간다.

형광등을 켠 것처럼 주위가 환해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성녀가 강제로 밀어 넣은 문 밖은…

“하, 이제와서…”

소설 속으로 끌려 들어오기 전의 내 자취방이었다는 걸.

========== 작품 후기 ==========

*독자님 : 헐 차원이동녀일줄이야!

작가 : 세르데벨라는 판타지 세계속의 인물이 맞고, 주신이 내린 능력으로 왔다리 갔다리 할 수 있었던거죠!

*독자님 : 발동!! 이라뇨 집 간다는 플래그가 발동됐다는 소리인가요? 앙대!

에리나 : 저 집이예요 집. 무한도전 밀린거 봐야게땋 ㅎㅎㅎ

작가 : 독자님은 걱정하시는데 혼자 속이 편하다니 ㅠㅠ 안대겠다 ㅠ 고통을쥬마!

*독자님 : 작가님 ㅜ 정주행 하느라 2시간 밖에 못잤는데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어요! 이제 곧 기간 끝나는데 담편 못보고 어케 살아가져 ㅠ 게다가 에리나 집 돌아가는 플래그? 안대오 ㅠ 에리나는 머슨이랑 떨어질수없어오 ㅠㅠ

작가 : ㅠㅠ우와 정주행 해주시다니 감사해여!! (몸둘바) 에리나는 집으로 안전귀가(?)하였습니다 듀듕.

머슨 : (하염없이 에리나만 기다리고 있음)

작가 : 저...화내지 말고 들어... 그..네 부인이짜나..공중분해돼쪄(도망

머슨 : ?!!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푸니님 감사합니다^^

*허겁지겁!! 확인 못하고 올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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