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편
<-- 17. 이제와서요? -->
“이 꼴이 되었지.”
스스로도 지옥이라 불렀으면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미련을 두고 있는 그 모습이 가로막힌 벽 앞에서 좌절하는 여행자 같았다. 인생의 전부를 내걸었던 만큼 그녀에게 찾아오는 허망함은 내가 상상하는 것의 몇 배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혔으리라.
“체…”
‘빠악-!’
죽음을 결심한 사람처럼 무던해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아찔함을 느꼈다. 위험한 생각이 들어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도 아비츠랑 같이 뒤져버려 이 죽일년!”
‘빠악-!’
또 한 번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체닌의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붉은 피는 그녀의 옷깃을 축축하게 적시기에 충분했다. 발 밑으로 떨어지는 돌멩이는 체닌이 손에 쥐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잠깐만요, 누구신데 이런 짓을 해요!”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뒤를 돌아보자 놀랍게도 그것을 던진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색이바래고 입기에는 다소 뻣뻣한 원단의 낡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모여 체닌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탁!’
또 돌이 날아온다, 그러나 이번엔 맞지 않고 체닌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갔을 뿐이다.
“이봐요!”
“꼴 좋다. 네 년이 그렇게 혐오하던 우리랑 네 처지랑 이제는 다를 게 없어!”
침까지 뱉어가며 삿대질 하는 여자들의 분노는 생각보다 컸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의 체닌이 잠잠한 것도 조금 이상했다.
“뒤져버려!”
어, 어? 이번엔 조금 위험하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동시에 큰 돌을 가지고 체닌을 향해 던진다.
“위험해!”
외치자마자 돌들이 더 이상 체닌에게 다가가지 않고 공중에 그대로 둥실 떠있기만 했다. 여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몇은 엉덩방아를 찌었고, 눈 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만 쩍 벌린 상태였다.
“저, 저주야! 게르니아의 저주!”
“아직도 흑마법이 있는 걸 지도 몰라”
“꺄아악!”
비명과 함께 여자들이 사라졌다. 내 몸에도 힘이 풀리며 그제야 돌들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진다.
놀란건 체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너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구나.”
피가 얼굴 반을 적셔왔는데 체닌은 닦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의 발치 앞까지 가 손을 내밀었다.
“잡아.”
“저들, 아비츠 백작가의 시녀들이었어. 내 시중을 들었던.”
“...”
시녀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예상이 갔다. 체닌이 그녀들을 어떤식으로 얼마나 힘들게 괴롭혔을지
“내게 지옥은 여기였는데, 저들에게 지옥은 나였구나.”
피와 눈물이 섞인 체닌은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끝없는 참회로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아니 어쩌다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거야?”
“성장통을 겪는거야, 지금은 자게 좀 내버려 둬.”
풀썩 쓰러진 체닌을 데리고 텔레포트하여 황실로 돌아왔고 그런 그녀를 받아든 에반은 눈알이 튀어 나올 듯 기절초풍이었다. 의원에게 그녀를 맡긴 후, 외상이 있을 뿐 위험한 건 아니라는 말을 듣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곧 처형이 시작될텐데.”
그녀가 그토록 증오했던 아비츠백작의 처형이 이제 시작된다. 그러나 반나절은 누워있을 기세인 체닌은 보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옆에 있어 줘.”
“그래야지.”
에반을 뒤로하고 처형이 시작되는 광장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던 머슨이 날 보자마자 번쩍 들어 올리더니 명당을 만들어준다. 인파가 많아 키가 작은 나는 앞사람의 뒷통수 밖에 볼 수 없었는데 머슨 덕에 시야가 확 트였다. 게다가 들어 올려 진 사람은 나뿐 만이 아니었기에 눈에 튀지도 않는다.
“흑마법으로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고, 역모를 꾀한 극악무도한 죄인 크펜 아비츠는 단상 앞으로 나오라!”
아비츠 백작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사방에서 계란과 토마토들이 날아들었다. 안 그래도 꾀죄죄한 몰골이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겁에 질린 눈동자는 수많은 군중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배회할 뿐이었다. 비대한 양 팔이 붙잡히자 그가 거세게 저항해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단두대 아래에 꼼짝없이 팔이 묶인 채로 엎드려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 꽤 멀리 떨어진 내 시야에서도 아주 잘 보였다. 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큰 소리로 딱 한마디 외쳤다.
“세르데벨라 르네! 내가 죽어서도 네년을 겁탈하고, 사지를 찢을것이다!”
쿠웅-
동시에 그의 머리가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나를 포함하여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똑똑히 보았다. 악인의 말로를.
단언컨대 죽어 아깝지 않은 자였다. 귀한 목숨도 아니다.
“이제 내려 줘.”
조심스러운 머슨의 손길 아래에 사뿐히 발 아래에 바닥이 닿는다.
“지옥에서 보겠군.”
“아비츠 말이야?”
“에리나를 힘들게 한 대가를 치러야지.”
그는 죽어서도 평온하지 못할 것이다.
백작의 잘려버린 신체는 무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외딴 숲에 버려져 까마귀들의 먹이가 되었다. 처형식이 끝난 한참에서야 일어난 체닌은 에반의 품에 안겨 옷을 다 물들일 정도로 펑펑 울어댔으며 끝에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외쳤다.
둘 만의 시간이 필요 할 것 같아 머슨을 데리고 목적지 없이 황실 복도를 거닐었다.
“세르데벨라는 언제 만나러 갈거야?”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내일 당장.”
“그렇게 빨리?”
“이미 충분히 늦었어. 가장 먼저 벌을 받아야 할 건 세르데벨라였으니까.”
내 옆을 잘만 따라오던 머슨이 걸음을 멈추었다. 두어 발자국 앞서 가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걱정하는건 알아. 하지만 더 이상 마법을 제외할 마석도 남아있지 않을 거고, 나도 마력을 쓸 수 있으니까 괜찮아.”
“불안해.”
“여차하면 텔레포트 써서 삼십육계 줄행랑칠게.”
“아무래도 내가 같이 가야겠어.”
머슨이 내 손을 힘주어 잡는다. 아플 정도로. 고통에 인상을 썼지만 그는 힘을 풀어주지 않았다.
“아프다고.”
“이렇게 붙잡지 않으면 놓칠것같아.”
“네가 붙잡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떼어놔도 난 이제 네 옆에서 거머리처럼 붙어있을 거라니까?”
“...불안해”
그의 마음이 전해진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듯이 살짝만 발을 헛디뎠다간 깊이 모를 어둠속으로 훅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두려움이.
다가가 머슨의 가슴을 한 팔로 크게 안았다.
“그렇게 생각 하지 마. 마음이 아프잖아.”
“같이 가면 안 될까?”
초조해 하는 그를 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가 옆에 있어준다면 천군마마를 얻은 듯 용기가 배로 불어날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세르데벨라에게 따져 물을 것이 있었다. 아주 조금은 비밀스럽게.
문을 연다는 건 도대체 어떤 문을 말하는 거야.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 내가 왜 이곳에 빙의되어 들어왔나 하는 것에 대한 유일한 실마리가 바로 세르데벨라 르네니까.
“머슨.”
“제발.”
드디어 그가 손을 놓아주나 싶었건만 이제는 몸이 부셔질 듯 아주 강하게 나를 안아온다.
“...가자.”
“정말?”
“응. 대신 나랑 세르데벨라랑 둘이 이야기 할 시간을 좀 줘. 그러다가 내가 위험해지면, 혹 천신의 기운이라도 느끼면 나에게 쏜살같이 달려오는 거야.”
내가 생각한 최선의 타협점이었다. 머슨이 곧바로 내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떼쓰지 않고 거기에서 멈췄다.
“...응”
칭찬의 의미로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우리가 무사히 돌아올 때 말이야, 해줄 말이 있어.”
“뭔데?”
“지금은 안 돼.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거라서. 그리고 아주 행복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모든 걸 밝힐 것이다. 이제 비밀은 질렸다. 내가 사실은 이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것부터, 배 안에 우리의 2세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전부, 숨기는 것 없이 날 것 그대로를 머슨에게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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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작가의 사담
- 최근 어린 남매냥이 두마리를 분양 받았습니다. 초보 캔따개라 모르는 것이 많아 하루종일 냥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삽니다 8ㅅ8.
작가 : (냥이를 안는다.)
냥 : 얼굴 치워라 냥
작가 : 내가 죻다귱? 읏흥 ㅎ 발로 내얼굴을 막 만져주넹 〉〈
*독자님 : 머슨과 에리나의 미니밍아웃 빨리 보고시포요!
미니밍 : 으애엥 뿌애에엥
작가 : 치, 침착해. 침착해. 곧 나온다, 너 나와 울지마 제바류ㅠㅠ
*독자님 : 작가님 넘 기여우세영〉〈(머슨이 귀엽다고 했던 말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 : 으갸걍 뿌엥츼쀼릿★
독자님:...
작가 : ...죄송합니다.
*독자님 : 작가님 항상 꽃길만 걸으세요!
작가 : 이렇게 어여쁜 말을 해쥬시다니 〉〈 감사합니다!
*독자님 : 너무 성실연재를 하니 이상한느낌이 들어영ㅋㅋ
작가 : (무릎)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참회의 눈물) 크흙...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