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편
<-- 17. 이제와서요? -->
쾅-
등 뒤로 요란하게 문이 닫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요란한 건 내 심장이었다.
“바, 방금 그거 체닌이랑 에반 맞지?”
“응.”
“아니 왜…!”
“일부러 에반이 있는 곳으로 좌표를 맞췄어.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 에리나도 편할 것 같아서.”
“내말은 그게 아니라, 왜 둘이... 그걸 하고 있냔 말이야.”
“섹스?”
“그래, 그거.”
무덤덤한 머슨과는 다르게 내 얼굴은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빨갛게 익어 터질 지경이었다. 타인이 침대에서 나뒹구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 사람들이 내가 아주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지금 아침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도 밤 낮 없이…읍”
머슨의 입에서 더한 얘기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막아버렸다. 하여간 무슨 말을 못해요.
나는 그대로 문에 등을 기대며 스르르 주저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당황스러워 이제는 피식 웃음까지 났다.
“언제 둘이 붙어먹은 거람.”
조합 한 번 되게 이상하네. 체닌과 에반이라니.
머슨이 내 옆에 앉더니 듬직한 팔로 어깨를 감싸왔다. 이어 텔레포트 직후 힘껏 눌러댔던 관자놀이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우리도 한 번 할까?”
느릿느릿 색기 어린 투로 유혹하니 발끝이 간질거렸다. 입술은 점차 귓 바퀴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가 지나간 자리엔 뜨거운 숨결로 길이 만들어졌다. 사람이 지나다닐 확률이 높은 황실 복도에서 머슨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를 흥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가했다.
“원해, 에리나.”
내 어깨에 걸쳐있던 그의 손이 팔뚝을 쓸며 아래로 내려가더니 이내 가슴 밑을 뭉근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으읏-”
“가슴이 조금 커졌어.”
“너무, 흣, 귀에 대고 말하지 마.”
“나 때문일까?”
귀를 삼킬 듯 지분거리던 입술이 기어코 내 뺨을 타고와 농염한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장난치듯 간질이던 혀는 어느새 저돌적으로 변해 내 안을 휘저었고, 타액을 삼킬 틈도 없이 몰아치는 머슨 때문에 턱 아래까지 미끈한 감각이 맴돌았다. 머슨에게 조금은 호흡을 맞춰 보려 부단히 혀를 움직였지만, 몸이 옆으로 넘어가고 내 뒤통수를 바치며 강하게 끌어당기는 머슨의 힘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가 주는 야릇한 감각에 신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하아, 미치도록 달아.”
“읏- 읍 읍”
점점 그가 이성을 잃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옷을 찢어 맨살을 맞부딪히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으로, 들어 가고 싶어.”
“그래 일단 방으로 가자. 여긴 좀… 흣!”
순간 다리 사이로 뭉툭한 것이 강하게 치고 들어오며 야릇한 감각이 전류처럼 흘러 들어왔다.
“이 안으로 말이야.”
“...”
나를 내려다 보는 그의 눈이 너무도 애절하여 이성이고 뭐고 다 날려버리고 본능에 충실해볼까 라는 생각이 일순 들었다.
“여기”
“흐앗!”
알아 들었거든?!
머슨은 행여나 내가 이해하지 못 했나 싶어 다시 한 번 허리를 튕겼다. 난 그의 어깨를 양 손으로 잡으며 선택의 기로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예전 같으면 단칼에 안 된다 결론 내렸을 텐데. 요즘은 자꾸 머슨화 되어 가는 지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머릿속에 찾아온다.
그러다 지난 번에 꿨던 꿈 혹은 태몽이라 생각 될 수 도 있는 그것이 떠올랐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임신이 맞다고 뚜렷하게 확정지을 만한 것은 없었다. 테스트기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 곳에서 그런걸 기대하긴 글러먹었고, 내 몸에도 어떠한 변화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마법이라면 어떻게 해결을 해 줄 것도 같았는데 왜인지... 쉽사리 머슨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내가 아직 받아드리지 못해서 일까.
“으읏, 잠깐.”
“응.”
내 위에서 폭주하고 있는 머슨을 진정 시키려 그를 불러 세웠지만 그는 대답만 착실하게 할 뿐 어느 것 하나 멈추지 않았다. 내 가슴께를 풀어 헤치고 있는 손, 목선에 닿아있는 입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허리짓 까지 전부 현재 진행중이였다.
“후웃- 아니야. 여긴 아닌 것 흐앗! 같, 아!”
“어째서?”
“사람도 지나다니고, 체닌이랑 에반, 도, 읏 바로 앞에…”
“괜찮아, 괜찮아.”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달래지 말고, 멈추라고!
마왕성에서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와 잠자리를 멀리했지만 완전히 다 나아버린 최근에서는 그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내 본능이 그를 원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하면 안 될것 같단 말이야.
흥분감을 채 이기지 못하고 그를 향해 완강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있자, 머슨은 그걸 알고 더욱더 강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고. 급기야 그가 내 치마를 허벅지 위까지 훅- 밀어 올렸다. 안 돼!
놀라 옷을 내리자 잠시 그가 멈칫 한다.
“삽입은 싫어?”
“여기선 지금 이것도 안 돼.”
그의 표정이 눈썹이 내려가며 한 눈에 봐도 상처 받은 것처럼 눈망울이 떨리기 시작했다. 와, 이러니까 나 진짜 나쁜 사람인 것 같잖아.
“원해...”
머슨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속삭였다. 으윽- 마음이 동한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야!
“그래도 안…”
“이거 뭐야?!”
“돼...?”
머리위에서 들리는 비명에 고개가 돌아갔다. 오늘 들어 두 번째 듣는 소리인 것 같은데 말이지.
“남의 사생활 다 망쳐놓더니 여기서 무슨 해괴망…”
“쉬! 쉬! 조용히 해요!”
체닌이 질겁하며 나를 향해 삿대질 했고 그걸 바라보던 에반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더니 재빨리 체닌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리곤 입모양만으로 체닌에게 열렬히 설명하는 모습이 퍽 애처로웠다. ‘마왕님! 마왕님!!’ 하면서.
덕분에 나도 정신이 번쩍 들어 손쉽게 머슨을 밀어 낼 수 있었다.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리하고 머리를 대충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흠흠, 민망하군. 머슨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반대로 체닌과 에반이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린다.
뭐야, 이상해.
머슨의 정체가 전부 밝혀진 지금에서 이 둘의 격식은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지금껏 지내온 생활이 있었던 터라 영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마음 같아선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지만 정작 인사를 받는 머슨은 아무 감흥도 없어 보였기에 나도 굳이 이 점을 고치려 들진 않았다. 게다가 만약 저 둘에게 “마왕 한테 그냥 반말해!” 라고 했다면 평생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아무 대화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뜻하지 않은 작은 헤프닝(?)을 마치고 우린 오랜만에 넷이 둘러 앉아 서로 얼굴을 맞대었다. 약간은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지만 그것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장 먼저 말문을 튼 사람은 체닌이었다.
“다친건 어때?”
톡 쏘듯 무심한 말이었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날 걱정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팔뚝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크게 하하! 웃어버렸다.
“괜찮지 뭐!”
“너, 방금 나랑 굉장히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지”
뜨끔. 티 많이 났어?
“...응”
솔직하게 답한 내 말에 버럭 화를 낼 줄 알았더니 의외로 체닌이 조용하다. 묘하게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허공을 바라보며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체닌으로 인해 우리 둘의 시시콜콜 한 대화는 아주 짧게 끝나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에반이 방긋 웃으며 얘기하다가 이내 머슨을 눈치를 보고는 급격하게 말소리가 작아졌다. 머슨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 버거운지 몸 방향이 아예 내 쪽으로 완전히 틀어져있었다. 머슨 너 왕따 당하는 거 알아?
이 모습이 우스웠지만 부러 티내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는 좀 더 쉴 예정이었는데 그럴 수 없게 돼서 말이야.”
“쉬지 못할 문제라도?”
“세르데벨라 르네.”
이름 하나 얘기했을 뿐인데 마치 어느 마법의 언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낯이 동시에 어두워진다.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아.”
“테렌투스가 제아무리 황권이 강하다 할지라도 신의 뜻에 반하지는 못해. 어쨌든 우린 인간이니까.”
별 다른 도리가 없는 착잡한 현실에 분이 났는지 체닌은 아랫입술을 힘껏 내리씹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세르데벨라 르네를 성녀 자리에서 내쫓지 못 한다 이말이지?”
“입 아프게 뭘 물어.”
내 옆에 머슨이 없었다면 체닌은 큰 소리로 바락바락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것이다. 씨근거리며 겨우 화를 눌러 내리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체닌과 같이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가만히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려 놓았을 뿐.
“아무도 내쫓지 못한다면.”
힐끗 머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저도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입술 끝만 올려 웃어 준 후 다시 정면의 체닌과 에반을 바라봤다.
“제 발로 뛰쳐나가게 만들어야지.”
========== 작품 후기 ==========
*예약 아이템으로 올려요! 제발 제대로 올라가길!!!
독자님 : 후기 다시 보니까 넘 설레고 조아용!(작가님께 볼뽀뽀!!)
작가 : 얼굴 돌려도 돼죠?...*
독자님 : (질색)
*독자님 : 작가님 ㅜ 노블 이용권 곧 끝나여.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머슨, 메에리나~
작가 : (책상을 쾅쾅!) 아 졘쟝!! 이해 못했어! 독자님의 황금 같은 드립을 전혀 이해 못했어!!! 아 뭘까 ㅠㅠ! 이건 무슨 드립이였을까! 독자님 돌아오면 꼭 말해줘여!
*독자님 : 아 출근해야 되는데 하면서 계속 봐쏘용 히히힣
작가 : 오늘 안 힘드셨어여?8ㅅ8 츄륵 댓 시간이 새벽5시 인거 보고 진짜 깜짝놀랐어여 ㅠㅠ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쿠폰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