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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25화 (125/170)

1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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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고 포근한 잠자리, 푸짐한 음식, 쫓길 일 없는 여유로운 시간 까지 마왕성 안에서의 생활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아픈 것도 잠시, 마력을 발산 한다는 값비싼 네플레로 꽃에 뒤덮인 방 안에 있었던 덕에 쌓인 눈 위에 비가 내리듯 상처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사라졌다. 어느정도 기운을 차렸을 즈음엔 머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왕성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며칠 내내 걸어도 전부 돌아보지 못 할 만큼 넓은 마왕성에서 나는 매번 길을 잃기 일쑤였고,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머슨이 짠- 하고 나타나 나를 다시 방까지 데려다 주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왕성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고, 잠시 한 자리를 빙글 배회하고 있을 즈음 머슨이 나타나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 뭐, 이젠 놀랍지도 않다.

“돌아가자”

“신기한 걸 봤어.”

“오늘은 또 어떤 걸 봤는데?”

“네 초상화.”

“흐음- 실물을 놔두고 그깟 초상화에 신기해?”

날 내려다 보는 표정이 쌜룩한 걸 보니 내 말이 못마땅한 것이 틀림없었다. 구겨진 입술을 검지로 살살 문질러 펴준 후 그를 달랬다.

“그냥 초상화가 아니었단 말이야. 방의 벽면 한쪽이 온통 네 얼굴이었어.”

정처 없이 마왕성의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반 틈 정도 열려진 문 사이로 보이는 머슨의 적안이 있었다. 실례인줄 알면서도 자연스레 발걸음이 그리로 옮겨졌고, 굉장히 무례한 행동인 줄 알면서도 문을 슬쩍 밀어 더 열어보았다.

와아-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타임스퀘어에 걸린 연예인 광고마냥 익숙한 검은 망토를 걸친 머슨의 상반신이 떡하니 넓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웅장함과 고귀함이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왕성 내부에서 머슨의 초상화를 발견 못 한 건 아니었지만 이정도의 스케일은 한 번도 본적 없었다.

“거기는 뭐하는 데야? 뭐, 마왕기념관이라도 돼?”

내 말을 들은 머슨의 미간이 좁아졌다. 못 물어 볼 것을 물은게 아닌데도 그는 불쾌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레이넌의 방이야.”

“...어?”

“난 그 곳 근처도 안 가. 불쾌해 지거든.”

머슨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나 싶더니 몸서리를 쳤다. 내 직감이 말해주는데 그 방에는 머슨의 거대한 초상화 말고도 그와 관련된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꼭 다시 한 번 더 들려야지.

나는 마왕성에서 보고 느낀 것을 머슨에게 줄줄이 이야기했고 머슨은 그때마다 내 말을 한 마디도 빠트릴 수 없다는 듯이 열의 가득찬 학생처럼 집중했다. 굳이 나를 안지 않고 텔레포트로 방으로 이동하면 편할 일이지만 우리는 굳이 복도를 걸으며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이 소소한 행복은 우리 둘만 있었을 때만 해당된다.

“히이익!”

“어머낫!”

머슨이 나를 안고 걷다보면 자연스레 성안에서 일하는 시종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마다 저 반응이다. 마왕이 여인을 품에 안고 자상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전설 속 동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아주 신기해하며.

머슨은 주위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을 위인이지만 난 달랐다. 괜히 귀가 빨개지고 머슨의 가슴팍 속으로 숨어들게 된다.

“야, 야, 이만 텔레포트”

“벌써?”

머슨이 아쉽다는 듯이 물어왔고, 나는 그의 의도에 반하게도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왕님?!”

“소문이 사실이었어!”

아닌 척 하지만 다들 곁눈질로 우리를 훔쳐보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휑하던 복도에 어디선가 몰려온 마족들로 주위가 부산스러워졌다. 이거 완전 동물원 원숭이 신세 아니냐!

나만을 눈에 담고있던 머슨이 나의 반응을 눈치 챘는지 잠시 움찔 거린다. 그의 몸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퍼지더니 어느새 얼굴에 미소가 걷혔다. 머슨의 눈동자는 방향을 틀어 정면을 향해있었다.

나는 재빨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부여 잡았다.

“흐즈므, 흐즈므, 흐즈므(하지마)”

“에리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내가 두고만 봐?”

음색이 짙고 무겁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두고만 봐. 괜히 살기로 마족들 다 쫓았다가 소문이 더 무성해지는게 훨씬 싫어!

내가 격렬하게 거부하자 머슨은 결국 살기를 거둬 들었다. 낮게 쉰 한숨과 동시에 표정이 느슨하게 풀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으으- 어지러.”

텔레포트는 역시나 체질에 안맞아.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고 있는 동안 머슨이 날 침대에 눕히곤 자기는 의자를 끌고와 내 앞에 자리를 잡는다. 가만히 누워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간질간질 한게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머슨이 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칼들을 쓸어 넘겨주며 나직이 얘기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마음에 들게 바꾸면 돼.”

방금 전 일 때문에 하는 말 인게 틀림없었다.

“너는 평생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왔겠지만 난 아니야. 철면피가 아니라고. 내성이 생기기엔 한참 멀었어.”

“대신 에리나는 강단이 있잖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앞 뒤 안보고 뛰어들 수 있는 강단.”

“그거랑 그거랑은 완-전히 다른거거든?”

“어쨌든. 그런 에리나라면 충분히 누려도 된다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내 얼굴께에 닿아있는 머슨의 손목을 잡아 내쪽으로 당기었다.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머슨은 내 의도를 금방 알아 차리고 내 옆자리로 몸을 밀어 넣어 나란히 몸을 뉘였다.

그의 가슴팍에 팔을 올려 감싸 않은 뒤 널따란 어깨에 뺨을 비볐다.

“머슨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뭘 더 누리라는 거야.”

말하자. 그가 몸을 돌려 터질 듯 나를 세게 안는다. 컥, 커헉!

“살려줘...!”

“미안해, 하지만 너무 벅차서 꼭 세게 안아줘야 할 것만 같았어”

황급히 힘을 푼 머슨이 내 이마에 자잘한 뽀뽀를 남기며 얘기했다.

“너무 늦게 깨달았어. 너와 함께만 있을 수 있다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상관 없다는 걸 말야.”

테론 아비츠의 저택에서 전설 속 용사보다 더 멋있고, 믿음직스러운 머슨을 만났을 때 전신을 감돌았던 벅찬 설렘과 안도감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머슨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임을 완전히 자각한 순간이었다.

“화려한 마왕성이 아니라 시골의 세자인 이여도 좋아. 수도도 괜찮고 그 어디든 말야.”

"나도 늘 그랬어, 에리나.“

내 등을 쓰다듬어 주는 큰손이, 그 따뜻함이 만족스러워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래, 넌 언제나 그랬었어.

*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가 갈증에 눈을 떴을 땐 작은 호롱불 하나만이 유유히 흔들리며 방 안을 비춰주고 있었을 때였다. 몸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팔을 걷어내자 머슨이 꿈틀 거리며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깨우려던 건 아닌데.”

“필요한 거 있어?”

“목이 말라서.”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머슨이 협탁위의 컵에 물을 따라 내 손에 쥐어주었다. 한 컵을 완전히 비우고 나서야 잔잔히 남아있던 몸의 찌뿌둥함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방안의 불을 밝혔다. 비어버린 컵을 제 자리로 가져다 놓으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슨이 내 손에서 컵을 가져가려 한다. 난 가볍게 그의 손길을 피하고 몸을 일으켰다.

“환자 아니거든.”

전에도 나를 너무 애지중지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는 그게 더 심해졌다. 혹 내가 다치진 않을까, 내가 불편하진 않나 하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게 느껴진다. 귀엽기는.

협탁 위에 컵을 내려 놓는데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서류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에리나가 자고 있을 때 피에르가 가지고 왔어. 아비츠 백작의 처분이 결정되었다는 내용이야.”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너무 오래 기다리게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이 없네요ㅠ 그때의 제 상황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자면,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상태에서 하루, 이틀, 일주일 연재를 못하게 됐고 올리지 못하는 편수가 길어지니까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게 버겁고 두렵게 됐었습니다ㅠ 도망치듯 잠시 조아라를 떠나있는 동안 독자님들 생각도 계속 나고, 미처 완결내지 못한 소설에 대한 아쉬움도 떨쳐지지가 않았습니다 ㅠ

오랜만에 조아라에 다시 들어가게 되니 여전히 기다려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셨고, 거기에 힘을 받아 다시금 연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못난 작가 때문에 오래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ㅠㅠㅠ

완결까지 힘내겠습니다!

*예쁜 표지 그려주신 금손 이안이안님 감사드립니다!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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