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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23화 (123/170)

123편

<-- 16.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2 -->

뜬 눈으로 타오르는 여명을 확인하고, 그것이 다시 빛을 잃어가며 안식에 들어가는 것 까지 모조리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지겨운 여명이 고개를 들이 밀었고, 한숨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또 다시 밝아올 아침에 신경질이 일렀다. 사흘 내내 한 순간도 잠에 빠져 들지 않아 피곤할 법도 하지만 체닌은 편안히 침대에 누워 잠들고 싶은 마음 따윈 일절 없었다.

“보세요, 백작부인. 아름다운 드레스들이 한가득 이랍니다. 이제 그만 피 묻은 옷은 던져버리시고 이중 하나를 고르시는 게 어떠세요?”

황성안의 하녀들은 ‘당장 그 악취나는 옷을 쓰레기 통에 처박아 버려!’ 라는 말을 에둘러 좋게 좋게 이야기 했다.

“그... 백작 부인이라는 호칭좀 그만 둘 수 없어?!”

지하감옥에 갇혀 있을 때 입었던 옷을 아직까지도 벗지 않은 체닌이 새하얀 침대 시트에 온갖 오물을 묻혀가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때 겪었던 공포가 몸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내 머리와 감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계속해서 반복 되는 하나의 장면에 자신의 두 귀를 막았다. 아직 까지도 자신과 에리나를 감시했던 남자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백작부…”

“그만! 난 더 이상 아비츠 백작의 노리개 따위가 아니야! 세자인 영주의 외손녀라고!”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으니 아직까진 아비츠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맞았으나 체닌은 한 시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이상 아비츠 백작과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 라는 마음 뿐이다.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기억도 끔찍했지만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에 벌어졌던 그 짧은 순간은 어떤 공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었다. 너무 깊어 정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둡고 거대한 분노가 보란 듯이 체닌의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인간이 아니야...”

에리나를 향한 말과, 손길은 로망스 소설의 한 장면을 뚝 잘라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고, 그녀를 향한 걱정과 애정어린 말투는 부러울 정도로 달콤했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의 짓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살육이 동시에 일어났다. 체닌은 모든 것을 똑똑히 두 눈으로 담았다. 한 손으로 에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은 한 손으로 간수들의 혀과 눈을 뽑고 신체를 두부처럼 조각 조각 토막내는 것을. 아무렇게나 댕강댕강 썰어 대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나 간결하고 정확한 두께로 잘라내는지 남자들은 자신의 신체가 조금씩 떨어져 나갈 때 마다 죽음보다 끔찍한 괴성을 질러야 했다.

그의 손길이 체닌의 앞에서 딱 멈추었을 때, 체닌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다. 등에서 땀줄기가 흐르는데도 알아채지 못했고, 드레스 사이로 소변이 다리를 타고 바닥을 적시는 데도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의 검지가 생각을 하듯 허공에서 빙빙 돌더니 잠시 눈을 내려 작고 동그란 에리나의 분홍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풀리며 타인에게 심한 말 한 번 꺼내보지 않은 순수한 사내와 같이 변했다. 체닌은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에리나를 보고 마음이 섰는지 다행이도 그는 체닌을 향해 어떠한 고통도 내리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튀기자 어느새 몸이 부웅 뜨는가 싶더니 이 곳, 황성의 어느 빈 방으로 이동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기 라도 하였는지 황성의 하녀들이 줄지어 체닌을 맞이 했고 꾀죄죄한 그녀의 용모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려 설득에 설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설득은 며칠이나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위험은 없습니다. 걱정을 내려 놓으세요.”

체닌은 무서웠다. 자신의 욕심이 어마어마한 존재를 불러들인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찰나의 명예를 손에 넣고 그에 대한 대가로 파멸을 눈앞에 두었다.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매일 이와 같은 나날을 보낸 다면 체닌은 세자인에서 한가로이 과일이나 따먹으면서 지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이례적인 생각까지 했다.

땟국물로 얼룩진 시트를 목숨처럼 쥐며 발끝을 오무렸다.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전신에 힘이 들어가고 있던 것이다.

‘똑 똑 똑’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건만 방문이 덜컥 열렸다. 허락 없이 여성의 방에 들어오는 행위는 충분히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지금 이 방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체닌은 오히려 문을 열고 고개를 드민 남자를 환영했다.

“꼴이 어마어마 하시네요.”

체닌은 울컥했다. 비록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라 해도, 며칠 동안 같이 식사도 하고 많은 얘기도 나누면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컷 고생한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저거라니. 에반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긴장감이 확 풀어졌던 방금 전의 자신을 속으로 실컷 욕해주었다.

“...내가 보고 겪은 것을 말해주면 넌 당장에 기절할거야.”

“제가 보고 겪은 것도 만만치 않을걸요”

“아니 니가 무엇을 경험 했던 내가 겪은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에반이 팔짱을 끼며 씩 웃었다.

“아비츠 백작가의 대 저택이 한 순간에 한줌 먼지로 변하는 장면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 한 사람한테 뭐요?”

“사람의 몸이 네 손바닥 만한 크기로 아주 반듯하게 조각 조각 썰려 나가는 걸 본 적있어? 아무리 칼을 잘 다루는 요리사가 왔다 하더라도 그 만큼 정교하게 자르진 못해!”

“확실히 그건 보지 못했죠. 하지만 아비츠 백작가 안에서 일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건 봤어요”

어느새 체닌과 에반의 대화는 누가누가 더 기괴한 경험을 했나에 초점이 맞춰졌다. 둘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침까지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시트를 손에서 놓을 줄 몰랐던 체닌은 어느새 침대 밖으로 성큼 걸어나와 에반의 코 앞에 까지 서서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얘기했다.

“지하감옥에 갇혀 본 적은 있니? 그 감옥 안에 여자들의 시체가 박제되어있는 걸 본 적이 있느냐 말이야. 나보다 몸집이 배는 큰 곰 같은 수컷들 한테 얻어 맞고 강제로 다리를 벌릴뻔 했어.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머슨... 그 놈이야! 에리나를 품에 안고 있으면서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수컷들을 무참히 죽여나가던 머슨!”

복 받쳐 따발따발 쏘아대고 나니 꽉 막혀 있던 체증이 가라앉은 것 같이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그 시원함도 잠시. 다시금 말대답을 해 올 줄 알았던 에반이 조용하다. 키가 큰 에반을 올려다 보니 그가 꽤나 슬픈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 눈을 본 순간 체닌의 하나 밖에 없는 유일 한 가족,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자신을 이렇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마음에 동요가 찾아왔다.

“...동정은 하지마.”

에반의 눈을 바라 볼 수 없어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체닌이었다. 백작 부인이다 뭐다 떵떵 거렸던 자신의 과거가 수치심으로 물든다.

“어떻게 동정을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니가 동정 받는 사람의 기분을 알아?! 니들 속 편하자고 남한테 건네는 동정 하나가 나를 미치도록 처참하게 만든단 말이야!”

“그럼 옷을 갈아 입으세요.”

체닌이 소리를 질렀으나 에반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녀들이 꺼내온 여벌의 드레스를 가리켰다.

“뭐하자는 거야?”

“피범벅에 먼지투성이, 머리도 엉망이고 손톱 발톱 어느 곳 하나 성한 것 없는데 끔찍한 악취까지! 거지라 부르기에도 그들한테 미안해질 지경이네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동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런 모습을 한 사람 앞에서 빵 한 조각 먹었다가는 지옥으로 끌려 갈 것만 같은 기분이라구요.”

“...”

뜬금없는 에반의 대답에 체닌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을 놀리려는가 싶다가도 그의 눈빛과 말투가 진심을 다해 자신을 꾸짖고 있었다. 슬쩍 가슴께의 옷자락을 잡아 코 근처에 끌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냄새 심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서있는 저 하녀분들이 이 나라의 용사분들 이라고 말하구 싶군요.”

“...”

“옷 갈아 입고 나와요. 목욕이 먼저 인건 아시죠?”

“...씻으면 밥 같이 먹어 줄건가?”

“애예요? 혼자 밥도 못 먹게”

“여, 여기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저도 혼자 먹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알았어요.”

체닌의 입술에 호선이 그려졌다. 음식만 있다면야 혼자든 열이든 상관없는 에반이었지만 체닌을 위해 부러 저렇게 얘기해 준 것을 모른 채로. 체닌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어차피 내가 없으면 같이 밥먹어 줄 사람도 없잖아? 여기서 좀 기다려.”

“아차, 여긴 레이디의 방이니 밖에서 좀 기다려. 앉아 있어도 돼.”

“그런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태어나 이렇게 빨리 씻어 본 적 이 있을까? 아무리 물을 붓고 몸을 밀어도 피부가 완벽히 깨끗해지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행여나 체닌의 피부가 상할까 살살 문지르는 하녀들을 보고 답답해하던 체닌은 결국 자신이 솔을 빼앗아 들고 몸을 벅벅 문질러댔다. 이 또한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움직이기 펴한 단초로운 상아색 드레스를 차려입고 에반과 함께 단초롭지 않은 식사를 했다. 황성에서 산해진미를 먹을 수 있다니, 이것은 아무리 높은 귀족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는 기회임은 확실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면서 주방장이 내오는 음식을 족족들이 다 먹어 해치우는 두 사람은 가히 프로라고 할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접시가 쌓이지 않도록 바로 바로 치우는 하녀들 덕분에 체닌과 에반은 아주 편안하게 만찬을 즐겼다. 아주 흡족하게 만찬을 즐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목 아래로 집어 넣을 수 없을 즈음이 돼서야 스푼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숨이 안쉬어 진다.”

“마찬가지예요.”

배가 부르니 몸이 게을러지고 잠이 쏟아졌다. 잠시라도 좋으니 이 의자에 앉아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었다. 그러나 뜻 밖의 불청객이 편안함을 방해했다.

“밖이 좀 소란스럽지 않아요?”

“그러게, 무슨 일이라도 낫나”

“바닥이 쿵쿵 울리는게 마치 군대라도 쳐들어오는 것 같은…”

공중에서 체닌과 에반의 시선이 딱 부딪혔다.

“아비츠 백작!”

‘덜컹!’

일어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반란을 도모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이렇게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쳐들어 올 줄은 몰랐다.

체닌이 소리치자 에반이 황급히 입술을 막았다.

“알아요.”

“폐하께서 위험해!”

“글쎄요. 그건 가봐야 알 것 같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에반은 단 한마디의 설명도 없이 체닌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

패기 있게 황성 문을 열어젖힌 건 좋았으나, 그 다음의 행보는 두 발이 대지 위에 단단히 묶인 듯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황성 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건만 그 사소한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우둔한 아비츠 백작은 문을 열라고 명령을 내린 자신의 입을 도려내고 싶었다.

“그 많은 사병들을 끌고 황성엔 무슨 용무가 있어 왔나”

“어, 어떻게…!”

금빛 갑옷을 입은 황제의 군대가 완벽히 무장을 한 채로 질서정연하게 주둔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아비츠 백작가 안에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사병들이라고나 하나 수 많은 전쟁을 겪고 그것들을 승리로 이끌어낸 황제의 군사만큼 무예가 뛰어나지는 못했다. 타오르던 사기에 냉수가 끼얹어졌다.

“반란을 꾀하는 네 놈의 속을 모를 줄 알았더냐”

“...!”

지난 연회 때 까지만 해도 반란의 낌새조차 알아 차리지 못 했던 황제가 어떻게 갑자기 자신의 군대를 끌고 대비할 수 있었는 지가 의문이었다. 백작의 두툼한 손이 터질 듯 주먹을 강하게 주이었다.

“성녀, 세르데벨라와 폐하께서 작정하고 이 나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논 것이 틀림없군요.”

“내가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군”

아비츠백작이 눈을 치켜 뜨며 황제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 주위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으며 흰자위 까지 같은 색으로 스며들어갔다.

“반란에 대한 모든 계획은 성녀 그 계집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황제 당신과 함께 도모 한 한낱 놀이에 불과했던 것이지 않나!”

“갑자기 떼를 쓸 줄은 몰랐는데”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한 황제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나른하게 얘기했다. 길길이 날 뛰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아비츠 백작 뿐이었다.

“네놈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괜한 목숨들을 잃게 하지 말고, 순순히 죄를 받들어 고개를 조아려라.”

“그 같잖은 협박 따위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믿는 구석이 있는 게로군”

========== 작품 후기 ==========

*급하게 올리고 뿅 사라져요! 다음 업데이트때 독자님 코멘트 답변 같이 달게요!!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 ㅜ.ㅜ 언제나 꼭꼭 우산을 챙겨들고 외출하셔여 8ㅅ8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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