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편
<-- 16.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2 -->
행동하기 무섭게 쇠창살 건너편에서 횃불이 움직이며, 근육 빡빡이의 얼굴 두개가 드러났다. 아우씨 깜짝아!
보랏빛 혀로 입술을 핥던 그들은 우리를 품평회 하듯 위 아래로 쳐다 보더니 이제는 대놓고 질나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난 썩은 고기 안에 박는 취미는 없어”
“씨발 나도야! 주홍 머리년은 내가 찍어뒀어”
“언제는 분홍머리가 꼴린다며. 아까 일의 복수도 해 줄 겸 한번 죽도록 흔들어 보라구. 킬킬”
아까일이라 하면 내가 근육덩어리의 분신을 잡고 신나게 쥐어짠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둘의 대화가 우리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도 알았다. 온 몸이 피와 멍투성인 나를 두고 썩은 고기라 칭했고, 갈색 머리는 굳이 콕 집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번지점프하면서 들어도 체닌임이 분명했다.
계속해서 투닥거리던 둘은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는 실랑이에 지쳤는지 이제야 합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럼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하자. 어때?”
“그 편이 나도 훨씬 좋아.”
가까스로 합의를 끝낸 둘은 음험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서서히 다가왔다. 등 뒤의 하이힐을 힘주어 잡았다.
‘철컹-!’
정말 별의 별 것을 다 하는 구나. 고문에 강간이라니. 그 수준이 딱 세르데벨라 만하네.
“꺄악!”
체닌의 팔이 붙잡히고 근육덩어리가 더러운 혀를 뺨에 가져가 대기 시작했다. 다행인건 체닌의 몸을 직접적으로 잡지 않고 양 팔로 벽을 집은 채로 더러운 혀를 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친구 구경할 때가 아닐 텐데?”
“어, 시발 그러네.”
어느새 내 앞으로 가깝게 다가온 근육이가 목에 코를 대고 냄새를 킁킁 맡기 시작했다. 온갖 오물이 묻어있어서 너랑 딱 어울리는 냄새가 나긴 할 거다. 나는 한 손으로 은근하게 근육이의 어깨를 밀었다.
“여성 상위 좋아해?”
“호오- 현명해. 그래. 저항해 봤자 몸만 피곤해 진다고.”
“나는 좀 거친데 말이야.”
“환영이지.”
손가락으로 근육이의 뺨을 쓸었다. 여기서 나가게 되면 화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뜨거운 물로 소독해야지.
뇌 마저 근육으로 만들어져있는지 근육이는 멍청하게 웃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 주었다. 옆의 다른 근육이는 휘파람 까지 불며 좋겠다고 동조해준다. 난 그를 눕히고 근육이의 배 위에 올라 탔다. 차가운 바닥에 보호해줄 머리칼도 없이 민머리를 눕힌 근육이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를 내려다 보며 최대한 야릇하게 미소지었다.
“기대해.”
‘빠악!’
“으억!”
하이힐로 눈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근육이의 몸이 크게 떨리며 양 손으로 한 쪽 눈을 가렸다.
“이 미친년이!”
“약간 이런 스타일이야? 흥분하면 욕하는 스타일.”
혹시나 다른 근육이가 눈치 챌까 신음까지 흘려가며 이야기해줬다. 다른 근육이는 자기 성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뒤의 상황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관심도 없다.
“그럼 한 번더.”
인중을 인정사정없이 내리치고 벌어진 입 사이로 힐을 목구멍 까지 집어넣어 있는 힘껏 눌렀다.
“억- 억!!”
“하앗, 엄청 흥분된다. 그치? 좀 더 해줄게.”
최후의 일격으로, 남자의 몸에서 몸을 일으켜 함부로 놀려대는 성기를 짓밟아 주었다. 뭔가 터지는 느낌이 났지만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쾌감이 든다. 남자의 눈이 크게 떠지고 고통에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한 놈은 어떻게 든 된 것 같고, 이제는 남은 놈의 차례다.
팔을 높이 들 때 마다 뼈마디가 쑤셔왔지만, 이름 모를 엔도르핀이 몸 안에서 감돌기라도 하는지 고문 당한 사람의 행동이라곤 믿기 힘들만큼 훌륭히 몸이 따라주었다. 놈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가 뒷통수를 붙잡으며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어, 안녕? 이어 체닌이 놈의 머리를 (정확하게 관자놀이를) 옆으로 휘둘러 찍었다.
빠악!
뚝딱뚝딱 달 토끼가 떡을 찢는 것처럼 남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 치며 어느정도 남자가 인사불성이 될 때 즈음에야 손을 멈췄다. 그런데 체닌이 멈추질 않는다. 이상한데 눈을 뜬 것 같은데?
“가자!”
바닥에 풀썩 무릎을 대고 주저앉은 남자의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달아났다. 아무래도 뛰는 것은 무리였는지, 기합 소리에 비해 속도가 조금 빨리 걷는 수준 밖에 되지 못 했다는게 흠이다.
“아직 쫓아오진 못하는 것 같아!”
“부축하지 말고, 먼저 가서 자물쇠를 열어”
체닌을 먼저 보내고 벽을 짚어가며 열심히 걸어 나갔다. 길이 하나니까 문 찾는 건 쉽겠지. 다행히 체닌은 헤메지 않고 내가 거의 도착할 즈음 자물쇠를 풀어 녹이 슨 쇠문을 열고 있었다. 문을 잡고 여는데, 뒤에서 욕설 섞인 고함이 들려왔다.
몸이 굳는 체닌의 등을 두드리고 힘껏 문을 열었다. 그리고 전에 보았던 환한 빛이 눈 위로 내려 앉았다. 잠시 찡그린 후에야 서서히 빛에 적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체닌과 같이 몸이 굳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우웨엑-!”
체닌이 목을 숙여 몸에 있는 것은 전부 쏟아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상처투성인 여자들의 시체를 박제해둔 유리관이었다. 가슴이 파이거나, 입술이 뜯기고, 다리 사이로 시뻘건 탯줄 같은 것이 달려있는 슬프고도 잔인한 형상이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닦인 빈 유리관 두 개가 유독 눈에 띈다.
“우리가 저기 들어갈 지도 모르는 일이었겠네”
“...알았어.”
“뭘?”
잔뜩 게워낸 체닌이 입술을 닦으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여기가 어딘지.”
체닌은 차마 앞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걸어나갔다.
“이 지하실만 빠져나가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알아. 나도 이곳은 한 번도 내려 온 적이 없어서 그 새끼가 이딴 짓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여자를 밥 먹듯이 강간하고 죽이는 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테론 아비츠”
“맞아.
황성이 아니라 테론아비츠의 저택안에 가둬둔 것이었다니. 그래 황제의 시야에서 벗어나 마음껏 우리를 볶아먹고, 삶아먹기 위해선 황궁의 지하실이 아닌 다른 곳이 필요 했겠지.
“여기 계단이 있어”
손으로 더듬어서 문고리를 찾던 체닌은 위로 길게 뻗은 원형 계단을 찾아냈다.
“그냥 일직선으로 뚫지 뭘 이렇게 빙빙 꼬아 놨어.”
잠깐의 투덜거림 후 아픈 발을 들어 한 칸 한 칸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근육덩어리 들의 소리가 가까워져 간다. 이 상태로 가다간 붙잡힐 게 틀림 없었다. 게다가 이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도 장담 할 수 없는 노릇이라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불안감이 늘어갔다.
“에리나 바로 뒤 까지 쫓아왔어!”
“으윽, 먼저 가!‘
근육덩어리들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끝까지 도달해있던 체닌은 다시 내려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조금 만 더.”
다리가 끊어 질 것 같다. 이를 악물로 빨리 올라가 보려 노력했지만 한 번 고장나 버린 장난감 태엽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근육덩어리들의 민머리가 계단 아래로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에리나!”
“알아!”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도착한 곳에는 쇠문이 아닌 나무문 하나가 보였다. 체닌이 어깨로 밀어 보았지만 마치 굳게 닫힌 쇠문처럼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열쇠를 찾아.”
수십개의 꾸러미 중에서 사이즈가 비슷한 것을 넣어봤지만 나무문은 도통 열리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하여 체닌이 손을 떨기 시작했고, 급기야 열쇠 꾸러미가 떨어지더니 바닥을 굴러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끝났어.”
“아니야”
열 수 없으면 부셔야지. 아직 손에 쥐고 있던 힐로 문을 열심히 찍어내렸다. 홈이 파이고 같은 곳에 계속해서 힘을 가하자 서서히 구멍이 뚫릴 기미가 보인다. 손목이 들어갈 정도로만 열리면 건너편의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에 구멍을 내기도 전에 근육덩어리 들이 먼저 우리의 바로 머리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니년들이 감히... 도망 갈 수 있을 것 같아?”
가히 반쯤 미친 상태로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도착한 근육덩어리들은 눈의 초점을 잃은 상태다. 지금 잡히면 개죽음을 면치 못할게 불 보듯 뻔했다. 그 와중에도 난 열심히 문을 찍어 내렸다.
열려, 열려, 열리라고!
그리고 다시 힘껏 내리치려는 그 순간...
‘퍼엉!’
문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아니, 문을 지탱하고 있던 옆 벽마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먼지바람이 일고 구두를 든 채로 가만히 앞을 바라 보았다.
서서히 팔이 내려가고, 목숨처럼 쥐고 있었던 구두가 발 아래로 떨어진다. 한 걸음 내딛기가 그렇게 버거웠던 다리가 절로 움직였다. 뺨에 단단하고 포근한 것이 닿고 익숙한 체취가 코 안으로 스며들자 거짓말처럼 참아왔던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여전히 내 뒤는 근육덩어리들이 살기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난 그가, 머슨이 나타난 순간 알 수 있었다. 모든 고통은 이제 끝이야. 안심이야. 집으로 갈 수 있어.
========== 작품 후기 ==========
*근육덩어리들은 생각보다 멍청했습니다.
*작가 : 수요일날 올 수 있습니다!(당당)
독자님 : (믿어본다)
작가 : (죽은자의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수요일날 몫까지 두 편 들고왔어요 !
*독자님 : 성녀고 황제고 다 필요없어!! 그냥 다 죽여버리자!!
작가 : 마음에 듭니다!!! 모두가 죽고 에리나와 케일 둘 만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읍니다.(해피엔딩)
에리나 : 결말 쉽게 내려 수작부리지 마
*독자님 : 성녀랑 엘 혼좀 나야합니다. 외모, 능력 빼앗아야 합니다!!!
작가 : 혼구녕을 내주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독자님 : 작가님 실물이 궁금해요!
작가 : 옆에 있는 거울을 들어 보시면 제가 있습니다. (찡긋)
독자님 : ...?! 소름끼쳐, 왠지는 나도 몰라.
*독자님 : 이거... 소장본 나오는거죠?
작가 : 계약은 이북으로만 되어있구요, 개인적으로 제가 소장본 내는건 자유라 하셔서 계획에는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작가가 넘나리 바쁜나머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네여 ㅠ (이미 조금 늦은감이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후라이빵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