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편
<-- 16.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2 -->
공간이 머슨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졌다. 노기어린 낯이 당장이라도 크리헬의 혀를 뽑아낼 것만 같았다.
“에리나를 감옥으로 끌고 들어온게 누구인지 아십니까?”
“세르데벨라나 엘이겠지.”
“역시 알고 계셨군요.”
“세르데벨라에게 연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해서 감히 에리나를 가둬둘 순 없어.”
“...성녀님, 아니 성녀는 제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네 놈이 그 거짓말을 깨닫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제가 깨달은 건 그것 뿐만이 아니죠. 전 더 이상 성녀를... 사랑하지 않게 돼버렸습니다.”
무덤덤한 목소리에 비해 크리헬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만 같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갖은 풍파에도, 검은 손아귀들 속에서도 소중하게 지켜왔던 나만의 보물 상자가 사실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껍데기일 뿐이었다는 걸 알아버린 그는 길을 잃은 아이와도 같았다.
지난 날 에리나가 자신에게 일깨워주었던 것이 단 하루도 마음을 편하게 놓아주질 않았었다.
‘폐하께선 어떤 성향의 사랑인데요?’
‘행복을 빌어주고, 봄날의 유채꽃처럼 화사한 미소만 짓게 해주고 싶은 사랑’
‘그냥 하는 말인데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니까 귀담아 듣지 마세요. 아시겠죠? 제 생각에 그건 사랑이 라기 보다는 응원 같은데, 조력자 느낌의…‘
선한 눈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린 영향력 있는 말.
‘속고계세요.‘
‘...‘
‘폐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는건 저잖아요.’
‘...’
또 하나의 틀을 세워버린 부정할 수 없는 말.
애써 밀어내려는데 자꾸만 그 아이의 미소가 떠오르고 허무맹랑하지만 귀염성 있는 대화들이 되풀이 된다. 이어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손 한번 뻗어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눈 앞의 남자가 두껍고 큰 벽을 세워 막아 두고 있는 것을 알 면서도... 질 낮은 욕심이 생겨났다.
“네 사랑 놀음에는 관심 없어. 마지막으로 얘기한다. 에리나가 있는 곳을 말 해.”
“...얘기하면 구하러 가실겁니까?”
“말이라고 하나”
“성녀가 무모한 거짓말 까지 해가면서 끌고 온 여자입니다. 전 에리나가 마왕님의 반려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고, 무작정 에리나의 편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성녀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니 저에겐 엄청난 뒷감당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같잖은 변명을 듣자고 내가 여기 서있는 게 아니다.”
“테론 아비츠가 사망한 것은 사실이고 그 현장에서 백작처의 자취가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마법에 대한 전적이 없던 에리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텔레포트를 시전하려 했었죠. 모두 성녀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의심이 갈 정도로 정황들이 분명하여 제가 그녀들을 도울 방법은 없었습니다. 권력의 안정을 위하여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방관했고, 이러한 안일함에 죄없는 백성들은 끔직한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
“후회하지만 시간이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선택은 바꾸지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그녀를 구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크리헬이 머슨을 향해 한 발 자국 다가섰다.
“전 거짓말쟁이를 잡고, 마왕님께선 사랑하는 이를 구하세요. 에리나는 테론아비츠의 개인저택 지하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여기 좌표입니다.”
좌표를 미리 적어두었던 쪽지를 건내받자 마자 머슨은 작별인사도 없이 푸른 빛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허공을 보며 시큰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크리헬이 아니라 머슨이고, 자신이 선택해야 할 것은 풋사랑이 아니라 백성이다. 질 낮은 욕심을 접고 접어 강물처럼 흘려보내는 작업을 스스로 시작 하기로 한 건 에리나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그 날 밤부터였다. 아주 더디고 더뎌서 마음이 고인 물처럼 자리 잡혀 있어 보이지만 그 수면이 아주 미세하게 줄었음을 크리헬은 알 수 있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맡은 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성녀에게 왜 그랬냐고 화내고 싶은 마음도 눌러 담았고, 당장에 에리나의 손목을 잡고 감옥 밖으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도 참아내렸다.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는데, 입안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썼다.
“마, 마마마마왕?! 마왕?! 제가 지금 잘 못 들은게 아니죠?!”
“...”
황제 앞이라는 것도 잊고 에반이 펄쩍 뛰어올랐다.
“어쩐지 마법을 유별나게 잘 쓴다 했어. 사람을 그렇게 죽이는 데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곧 게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킬 사람처럼 한참을 놀라워하던 에반은 철푸덕 대자로 드러눕고 머리를 쥐어싸며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서서히 정신이 드는 듯 했다.
“정신 사나워.”
차갑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무릎을 모으고 뒤늦은, 정말 뒤늦은 인사를 올렸다. 크리헬은 손사레 치며 벌레 쫓듯 에반에게 이만 나가라 명했다.
“놀란 마음은 이해 하지만 지금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 아주 많으니 사적인 감상은 집에 가서 하도록 하라”
“...처리해야 할 일이라 하면…”
황제가 자조적으로 피식웃으며 답했다.
“너도 들었지 않나?”
“성녀님에 대한 일인 가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으니 황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움과 경악의 연속이었던 에반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품안에 고이 넣어 두었던 종이 뭉치들을 한 장도 남김 없이 전부 꺼내어 크리헬을 향해 공손하게 내밀었다.
“아비츠 백작가의 흑마법에 대한 자료입니다. 혹시 도움이 될지 몰라 몰래 빼돌렸어요.”
*
채찍이라는 건 정말 많이 아프구나.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내가 입밖으로 내밀고 있으니 말 다했다.
“말 해! 흑마법을 언제부터 사용하게 됐는지!”
“하아, 하아, 성녀가 니새끼한테 날 조지라는 명령을 들은 순간 부터겠지”
“배짱도 좋군”
가슴을 향해 채찍이 휘둘러졌다. 살갗이 파여 옷이 흥건하게 피로 젖어들었다. 본래의 색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진한 검붉은 원피스로 둔갑한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주먹으로 얼굴을 몇 방 맞을 때에는 이가 빠지지 않으려 어금니를 정말 세게 깨물었고, 반려라는 메리트 덕분인지 죽을 정도로 맞았음에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눈이 부어서 그런건지 고문에 정신을 놓기 시작해서 그런 건지 시야가 흐리다. 처음엔 분명 세 사람이 보였는데 이제는 여섯, 아홉, 스무명 까지도 사람의 형체가 나누어 보이기 시작했다.
입 속에서 흐르는 피를 처음엔 뱉어냈지만 이제는 그 힘마저 없어 여름날의 개가 침을 흘리듯 입 밖으로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으로 이 정도 까지 버티다니. 흑마법으로 신체 강화를 하는 건 꽤 많은 피를 필요로 했을텐데 말이야.”
“미친... 헛소리하고 있네. 마석 깔려서 흑마법 작동 안 된다며”
비릿하게 웃으며 얘기하자 남자가 자신의 말에 모순을 깨닫고 잠시 멈칫 하더니 이내 채찍을 빼앗아 들고 나를 쳐 내렸다.
“닥쳐!”
“으윽- 불리하면 폭력이야 하여간 무식한 것들은”
========== 작품 후기 ==========
머슨 : 에리나 어디써!!
황제 : 방황하는 내 마음. 나의 님은 어디에
머슨 : 에리나 어딨냐고!
황제 : 사랑을 표현한 아름다운 노랫말들은 전부 거짓이었구나.
머슨 : 에리나 위치 내놔!!(열불터져 쥬금)
황제 : 아아... 사랑이여...
에반 :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독자님 : 작가님 ㅠㅠ아프지마영 ㅠㅠ!!
작가 : 감사합니다 ㅜㅜ!! 계단을 내려갈 땐 핸드폰하지 맙시다. 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특히 치마를 입었을 땐 더더욱)
독자님 : 아픔보다 수치스러움이 더 컸다는 것이 사실?
작가 : (소리없이 운다.)
*독자님 : 여기서 질문! 머슨이 다 때려뿌셨는데 그릭아저씨(라고 쓰고 양파아저씨라 읽는다)도 끔살당했어여?
작가 : 그릭아저씨는 연회가 끝나고 긴휴가를 받아 고향집에 내려갔다고 합니다
독자님 : 올ㅋ 갑자기 지어냈는데?
작가 : (해피엔딩이 아니면 죽는 병이 있는 작가. 그릭에게도 해피엔딩을 주고싶다.)
*독자님 : 잭팟 축하드려요!!!
작가 : (잭팟둥절) 가, 감사합니다!!(일단 좋은일인것 같으니 고개를 숙여본다.)
*독자님 : 출첵1, 출첵2
작가 : 출첵3
독자님 : (원시의 분노)
작가 : (출첵한 작가 여기에 잠들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루히비아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확인 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