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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17화 (117/170)

117편

<-- 16.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2 -->

발꿈치가 땅에 닿질 않았다. 키가 큰 근육덩어리들에게 들리다 시피 끌려가고 있는지라 신발의 앞코가 바닥에 비벼지고 몇 번은 허공에서 헛발을 찬다. 걷는 것을 포기하고 얌전히 들려 나가면서도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들이 우리를 순순히 풀어줄 리는 없으니, 기회가 생기면 곧 바로 탈출하기 위하여 길을 알아 둬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통 어두컴컴한 외길만을 걷고 있으니 별 다른 수확이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운도 없어라.

어디에나 끝은 있다고 드디어 녹이 슨 쇠문 하나가 나타났다. 살짝 벌어져 있는 틈새 사이로 빛이 새어나고 있었다.

“열어라.”

그 문에는 손도 대기 싫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남자가 말했다. 날 붙들고 있던 근육덩어리들이 망설임도 없이 바닥으로 내 몸을 패대기쳤다. 휘청- 다행히 엉덩이를 땅에 박진 않았지만 균형을 잃고 기괴한 탭댄스를 춰야했다. 근육덩어리 중 좀 더 키가 작은 근육이가 허리춤에 달려있는 열쇠 꾸러미에서 하나를 들더니 자기 주먹만 한 거대한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난 눈을 부릅떴다. 이제 부터는 확실히 봐 둬야 한다. 지긋지긋한 외길 다음, 두꺼운 쇠문 다음에는 무엇이 있고 출구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잠금이 풀리는 경쾌한 소리가 나고 단단히 걸어 두었던 고리가 열린다. 동시에 문 틈 사이가 조금 더 벌어졌다. 빛이 더욱 강해졌고 그 사이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잠깐”

근육덩어리를 지시하던 야비한 남자가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그리곤 횃불로 바닥을 비춰 보더니 이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는지 다시 횃불을 들어올렸다. 무식하게 덩치만 큰 근육덩어리에게 가려져 미처 그것이 무엇인지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래 궁금해하지 않아도 난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가려야지.”

“네.”

내 두 눈 위로 암흑보다 어두운 것이 덮여 왔다. 본능 적으로 만져 보니 까슬한 천의 질감이 느껴졌다. 떼가 잔뜩 낀 것인지 아니면 갓 자아낸 순백의 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후자의 경우는 에반이 베지테리언이 되는 확률과도 가까울 것이다.

“눈은 왜 가리시나. 내가 보면 안 될 것이라도 있나 봐?”

내 말에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웃기 시작한다. 다시금 바짝 붙어있는 근육덩어리의 몸의 떨림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일종의 배려였지.”

“...?”

“이 길을 지난 수많은 여자들에 대한 배려 말이야.”

“시발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죄인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다.”

누가 죄인이야?! 외치려는데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을 뚫을 만큼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신경을 자극하게 하는 것이 후욱- 몸 위로 풍겨 왔다. 바로 진득한 피향이.

“우욱-”

“저런, 벌써 이러면 쓰나.”

다시금 근육덩어리들에게 붙잡혀 걸어 나갔다. 이따금씩 맡아지는 피향 때문에 계속해서 헛구역질이 올라 감정의 상태가 평온한대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피 같은 건 이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헛구역질이 나오는지 모르겠네.

계단 한 칸 밟지 않은 채로 평평한 길을 나아갔고, 발 소리가 울리는 것을 보아 예의 그 지하실(이라 추정)의 연장선은 확실했다. 한껏 들어 올려 진 양 팔 때문에 겨드랑이가 빠듯하게 아파 올 즈음 드디어 눈을 가렸던 천이 풀어졌다.

잿빛 벽돌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는데 관리하지 않은 탓에 성한 벽돌이 하나 없이 깨지고 금이 간 상태였다. 또한 보기만 해도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 갖가지 고문기구들이 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으며 그것들은 믿기 싫었지만 몇 번이고 사용한 흔적이 너무도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피가 흐르다 못해 터져 방울 방울 생긴 모양들이 사방에 튀어 있었고, 내 어깨를 짓눌러 앉으라고 했던 딱딱한 나무 의자 위에도 검은 피딱지들이 이미 수차례 묻고 또 묻어있는 상태였다.

와... 이거 진짜네 진짜. 아 잠깐만

힘의 차이가 엄청나니 별 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의자에 앉자 곧이어 당연한 수순처럼 발목과 손목이 묶였다. 심문이라 하면 최소한 책상 하나, 내 말을 받아 적을 펜이나 종이 한 장 정도는 있을 법한테 우습게도 이곳은 고문기구들 외에는 다른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나에게 별 다른 위해를 가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던, 다시 말 해 맞짱 뜨면 어떻게든 이길수 있을 것 같던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가 허리를 숙여 내 눈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분위기 탓인지 지금은 내 뒤에 서있던 근육덩어리들 보다 강한 존재감을 뿌렸다. 내 눈동자에 긴장을 눈치 챈 것인지,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시작해 볼까?”

*

에반은 살아오면서 수를 센다는 것이 꽤 힘이 드는 일이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머슨이 아비츠 저택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때는 차마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손해에 정신이 아찔해져 포기했었고 지금은 도저히 눈으로 믿기 힘든 상황이 잠시 숨 고를 시간도 주지 않고 연달아 이어지자 정신이 견디지 못 해 세는 것을 포기했다.

폐하를 만나러 가자! 라고 머슨에게 당당히 얘기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가 겁도 없이 황성 안으로 곧바로 텔레포트 할 줄은 몰랐고, 하필 이동 된 곳이 정확히 황제의 앞이라는 것에 까무러쳤으며, 황제 또한 의연하게 머슨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반의 기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리나가 사라졌다. 아는 것이 있다면 숨기지 말고 말 해.”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는 당돌함. 게다가 존칭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정신나간 무례함까지. 에반은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은 자신에게 대견하다 칭찬해 주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칭찬한 지 5초도 되지 않아 에반은 고급카펫 위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머슨을 향한 황제의 예를 갖춘 태도 때문이었다.

“...이건 꿈이야 꿈.”

중얼거린 에반의 말에 누구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머슨과 황제 크리헬의 상하 관계는 그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에반은 혼자 이 상황을 이해하려 고군분투 하는 중이었다.

“에리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무사합니다.”

창문을 닫는 걸로도 모자라 커튼 까지 쳐둔 고요한 실내에 강한 바람이 일었다. 매섭게 몰아친 바람이 에반의 코를 스치자 콧잔등이 시리게 아팠고 곧이어 값비싼 물건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든 건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났다.

“머, 머슨! 뭐 하는 짓이야?!”

머슨이 크리헬의 멱살을 잡아 벽에 몰아세운 채였다.

“크흑”

“잘도 무사라는 말을 지껄이는 군. 에리나에게 걸어 두었던 내 마법들이 모조리 해제됐어 작정하고 나랑 에리나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녀석의 짓인데 그딴 말이 나와?”

죽일 기세로 찍어 누르는 머슨의 악력에 크리헬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에반은 자신의 뛰어난 군주가 이토록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어 머슨의 팔을 잡아 뜯기 위해 달려나갔다.

“에리나가 어디에 있는지 당장 말 해”

“놔 줘야 말을 할 거 아니야! 폐, 폐하!”

에반이 손을 쓰기도 전에(마땅한 방법은 없었지만) 머슨은 크리헬을 놓아주었다. 바닥으로 풀썩 쓰러진 그는 아픈 목과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 시키려 고개를 털었다. 삐딱하게 선 자세로 크리헬을 내려다보는 머슨의 눈빛이 크리헬을 재촉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건만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시선은 백 마디 말 보다 강력하여 아픈 몸을 달랠 틈도 없이 다리에 힘을 줘 자세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지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머슨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햇빛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 갇혀 있을 에리나를 생각하니 불안함과 걱정이, 온 몸을 지배했던 분노를 억누르고 튀어나왔다. 더 들을 필요도 없어 머슨은 곧 바로 몸을 돌렸다.

“이곳 황성의 지하감옥이 아닙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금 크리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현재 흑마법을 사용하여 테론 아비츠를 살해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에리나는 내 반려다.”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던 에반은 뜬금없이 에리나는 내 아내야! 라고 주장하는 머슨의 말이 생뚱맞다고 생각했겠지만 크리헬과 머슨의 입장에선 그 말이 어떤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왕의 반려. 인간의 몸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각인이 맺어진 순간 반려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마왕과 함께 영생을 공유하고 그의 마력을 제 것처럼 이용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즉 반려가 된 에리나가 마법으로 바다를 가르고 산을 없앤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마력이 없어 빌빌 거리는 자들이나 하는 흑마법 이라니? 이건 누가 봐도 엄연한 누명이었다.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크리헬은 모든 걸 알면서도 에리나를 풀어주지 않고 감옥에 방치한 상태였다.

“지금... 죽여 달라는 건가?”

하지만 크리헬은 모든 걸 알면서도 에리나를 풀어주지 않고 감옥에 방치한 상태였다.

“지금... 죽여 달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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