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편
<-- 16.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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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인게 아니면 됐어.”
“믿어 주는거야?”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여기서 목과 몸이 분리되고 싶은 게 일생일대의 소원이라면 굳이 말리지는 않을게.”
“절대 아니지.”
“알아. 네가 보통 야망도 아니고”
체닌을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라니... 우리 사이에서 생겨날 법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닌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세르데벨라의 말을 믿는 거나 다름없으니 그건 그것대로 호구짓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몇 번을 당해 놓고서도 말이지.
연회가 끝난 직후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아줄 누군가가 필요 했던 체닌은 몸으로 정을 쌓아 온 테론 아비츠에게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를 반기는 건 싸늘한 주검뿐이었다. 놀란 마음에 허둥지둥 그곳에서 빠져 나왔고, 이미 분노로 길길이 날뛰고 있는 아비츠백작이 테론이 죽었다는 사실 마저 들어버린다면 자신 또한 테론 아비츠와 같은 처지로 전락해 버릴까 두려워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백작의 뒤를 봐주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고 한 거 기억나?”
“성녀 세르데벨라잖아.”
“역시 알고 있었네. 하긴 방금 그런 일을 겪고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지.”
워낙 해괴한 짓을 많이 당해 와서 그 전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뭐, 굳이 체닌에게 말하진 않았다. 그것 들을 설명하기 위해선 머슨과의 관계 까지 일일히 다 얘기해야 하는 것이니 벌써 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물론 그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도 보태야 하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얘기가 끝나고, 둘 만 남겨져 있는 이 감옥에 기다렸다는 듯이 적막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주길 기다리는 어색함은 없었지만 답답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니 착잡함이라고 해야 하는 게 더 맞는 말인가
“...”
“...”
숨 소리 마저 크게 들려, 규칙적인 호흡을 듣고 있으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아 수동적으로 숨쉬는 게 돼버렸어. 스읍- 하. 스읍- 하.
“스읍- 하, 스읍…”
“누가 온다.”
“어?”
정말 쓸데없이 숨 쉬는것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다른 소리에 귀가 어두워졌었다. 체닌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고 점점 가까워지는게 느껴졌다. 한 명은 아니었고 적어도 두 세명은 되어 보였인.
멀리서부터 횃불이 흔들리며 다가왔다. 머지않아 이목구비를 확인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섰다. 세 명의 남자였는데, 두 명은 우락부락한 근육을 뽐내며 상의를 탈의한 채 였고, 나머지 한 명은 그들 보다는 직급이 높은지 두꺼운 머플러를 목 위까지 정갈하게 메고 있었다.
찢어진 가느다란 눈이 닭장 안을 살피는 것 같았다. 이어 결정이 섰는지 가벼운 턱짓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데리고 나와.”
뭐, 뭐야?!
철컹- 두꺼운 잠금 쇠가 열리고 남자들이 안으로 들이 닥쳤다. 안이 비좁아 지며 물러 설 곳도 없이 벽으로 등을 붙여야 했다.
“꺄악!”
체닌의 팔목을 거칠게 휘어잡은 남자가 막무가내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가지 않으려 몸부림 치는 체닌의 저항은 그의 발걸음 하나 주춤하게 만들지 못했다. 짐짝처럼 끌어당겨지는 체닌의 모습에 나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갔다.
“놔!”
짜악-
힘으로 당겨지지 않으니 살갗을 따갑게 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손바닥을 펴서 벗은 맨 등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받아라 강 스파이크. 손바닥이 후끈거리고 살 부딪히는 소리가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손바닥 모양의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생겨났다. 일부러 새겨 넣어도 저만큼 정교하게 새기진 못할 거다. 큼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과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연륜 있는 조폭처럼 표정이 험악했다. 그러나 머슨에 비하면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기에 난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올려 보았다.
“니네 뭐야.”
“...”
“묻잖아, 근육덩어리야.”
“정확한 조사를 위해 심문을 할 예정이다. 순순히 따르도록.”
아니나 다를까 문 밖의 남자가 대신 얘기했다.
“이곳의 심문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건가 봐? 죽이겠다는 기세로 데려나가던데 누구 짓이야, 세르데벨라?”
“가, 감히 성녀님의 존함을 함부로…!”
“맞구나, 성녀 짓. 그 직업이 원래 이렇게 한가한 거야? 남 괴롭히는데 시간을 너무 투자 하시네. 갑자기 가학적인 취미라도 생겼나, 아니 원래 그런 애인데 다들 속고 있던건가”
횃불위로 흔들리는 남자의 얼굴이 붉었다.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시고 있는 분을 모욕하여 화가 나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몹시 언짢아 보이는 것 만은 확실했다.
“...데리고 나와라.”
우직하게 서있던 남자가 다시 움직였다. 공포에 물든 체닌은 다시금 발악을 하며 쇠창살을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심문! 누가 봐도 고문당하러 끌려가는 거잖아!”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면 피할 순 없겠지”
남자는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이야기했다.
“아아악-!”
억세게 붙잡아 당긴 탓에 쇠창살에 붙들려있던 체닌의 손톱이 깨져 나갔다. 근육덩어리들은 비명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체닌을 기어코 끌어냈다. 큰 소란인데도 주위는 고요했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지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해 하는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감옥 문이 열리고 체닌의 들쳐 업힌 상태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와중에 나를 향해 체닌이 팔을 뻗었고 근육덩어리들은 무식하게도 체닌의 팔이 반쯤 안에 들어가 있는데도 문을 닫아버렸다.
“아악-!”
고통서린 소리가 들리고 문에 껴버린 체닌의 팔이 안쓰럽게 파닥거린다. 당장 문으로 튀어가 힘으로 열어젖히려고 했지만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다.
“이런 미친놈들!”
근육덩어리들이 킬킬거리며 힘을 가했다. 틈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벌리려 해도 집 한 채를 밀어 옮기려고 하는 것처럼 무모하게만 느껴졌다. 이러다가 정말 체닌의 팔 한쪽이 짓이겨져 버릴것만 같았다.
이 방법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
결국 틈 사이를 벌리는 것은 포기하고 뻥 뚫린 쇠창살 사이사이를 바라보며 몸을 숙였다. 남자는 문을 밀어 닫기 위해 바로 나의 코 앞에 다가와 있었으므로 머릿속으로 생각한 작전을 바로 실행할 수 있었다.
잘 가라, 남자여.
쇠창살 사이로 손을 쑤욱- 집어넣고 근육덩어리의 흉물스러운 고환을 잡아 힘껏 비틀었다.
“으아아악!!”
“짜릿하지, 어?”
정신이 번쩍 드는 고통에 근육덩어리는 서둘러 철문에서 손을 떼고 내 팔을 쥐어틀었다. 팔목이 아려왔지만 잡은 그것을 놓지는 않았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자라에 빙의한 것처럼 악착같이 비틀었다.
“2세 방지 비틀기다!”
경악으로 지켜보던 근육덩어리2가 급히 불을 꺼내리는 것처럼 내 손목을 밟아 내렸다. 겨우 공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근육덩어리는 자신의 중심을 잡고 바닥을 굴렀으며 아픈것도 잊은 체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목이 밟힌 채로 바닥에 찰싹 붙어있는 내 앞으로 검은 윤기가 도는 구둣발이 다가왔다. 상대적으로 호리하게 생긴 대장급의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웬 미친년을 다 본다는 표정이었다.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갸륵하군.”
누가 친구야, 체닌이? 어이없음에 허! 하고 웃어보이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네 모습에 내 마음이 움직였어.”
“무슨 개소리야.”
남자가 등 뒤의 근육덩어리들을 슬쩍 고개만 돌려 바라보았다. 아직 까지 한 놈은 바닥에 주저 앉은 상태였으나 시선을 느끼고 몸을 추스르러 안간힘을 써 보인다.
“심문 대상자를 변경하지. 이 발칙한 숙녀분으로 말이야.”
턱짓하자 그들이 체닌을 밀어 넣고 내 양팔을 붙들어 끌고 나왔다. 남자가 내 뺨을 거칠게 잡아 들어올린 후 시선을 마주치게했다.
“이런 개소리지.”
“심문은 지랄.”
이번은 봐주지 않겠다는 듯 내 몸을 붙잡은 근육덩어리들의 손이 억세다. 여기서 내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 순순히 끌려가거나 둘, 발버둥 치다가 몇 대 맞고 끌려가거나.
나는 굳이 매를 버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분하긴 하여도 내 스스로 걸으려 노력했다.
후우욱- 횃불이 움직이며 내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 보니 체닌이 꽤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멀어져 가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고 검붉게 멍자국이 생긴 팔은 안쓰럽게 쇠창살을 붙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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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서 굴러서 허리랑 다리를 다쳤습니다 ㅠㅠ 손목은 멀쩡한데 앉아 있기가 힘들어서 최근 자주 찾아뵙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