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편
<-- 16.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2 -->
체닌을 찾기 위해 나간 에리나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돌아오지 않자, 머슨은 극도로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영롱했던 눈동자가 짙게 어두워지고, 그의 주위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껏 알던 머슨과는 전혀 딴판의 머슨이었다. 한 마디 건내는 것 조차 두렵고, 긴장되었다.
에리나와 체닌이 걱정되는 건 에반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마저도 잊혀질 정도로 머슨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오히려 머슨을 진정시키기 위해 에리나를 찾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머슨!”
또 하나의 건물이 무너져 내려갔다. 바로 아비츠 백작가의 별채들이 말이다.
머슨은 에리나가 돌아오지 않자 곧바로 아비츠백작가로 향했다. 자신을 가로막는 사병들을 무참히 찢어 발라 길을 열었고, 사병들은 뼈와 살이 분리되거나, 사지가 떨어져 나가며 몸 속에 폭탄이라도 심어 놓은 듯 뻥- 하고 터져 죽어갔다. 그 모습에 에반은 아침에 먹었던 맛있는 요리를 전부 게워 내야 했다.
무법자인 그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공포의 대상이 된 머슨은 주저 없이 건물 안으로 쳐들어갔다. 내부를 전부 살펴보고 에리나가 없으면 무너트렸고, 다음 건물, 다 다음건물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공포에 찬 비명이 울려댔지만 머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로지 에리나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흐윽- 제발 살려주세요!”
“에리나 어딨어.”
“어떻게든 알아 올게요. 제발 목숨만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던 시종인은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자신의 내장이 터져 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머슨에게서 나중은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눈 앞에 에리나가 있어야 했다. 무슨 잔수작을 부린 건지, 에리나에게 걸어 두었던 위치추적 마법이 전혀 발동되지 않았고 이토록 거하게 난장판을 피우고 있는데도 에리나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실에 머슨은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혹시나 에리나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을 까봐.
혹시나 에리나가 나를 버리고 떠났을 까봐.
온 몸에 피가 차게 식는다. 살의가 들끓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나에게서 에리나를 떨어뜨려 놓지 마.
일단 에리나에게 헤코지를 할 가능성이 높은 아비츠 백작가부터 잡아 족치기로 했다. 신경을 거스리는 일이 많았던 가문이기에 잔인하게 짓밟아 주리라 마음먹었다. 에리나가 놀랄 까봐 억누르고 억눌렀던 분노가 이제야 튀어나온다.
“...머슨, 이 사람들은 죄가 없…. 히끅.”
시종인들의 시체가 길을 이루었다. 경악에 찬 에반이 머슨을 말리려 말을 걸었지만, 피를 뒤집어쓴 머슨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전신이 붉게 물든 머슨은 그 보다 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마왕의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죽여 버릴까.
쫑알쫑알 시끄럽게 굴어대는 에반을 보고 일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몇 안되는 에리나의 사람이니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미움 받는 건 싫으니까.
살의가 거두어 지고, 머슨이 다시금 에리나를 찾기 위해 떠났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던 에반은 뒷걸음질 치며 한참을 달렸다. 두려움, 공포, 절규, 등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역겨운 피냄새가 가시지 않자 아무 문고리나 잡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아. 하아-”
방금 전 머슨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에반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몸서리쳐야했다. 떨쳐버리려 눈을 거세게 비볐다. 얼얼한 눈 사이로 보이는 건 금테를 두른 초상화 였다. 통통한 체형에 심각하게 미화되어 보이는 뚜렷한 이목구미, 손가락 마다 끼어져 있는 각종 보석 반지와 보기 싫은 수염을 가진 남자였다.
“아비츠 백작.”
하필 들어와도 이딴 곳에 들어오냐. 투덜거리던 에반이 다시 문고리를 잡아 나가려는 순간에 다시금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여기가 낫네.”
아비츠 백작은 무슨 일인지, 저택이 이 사단이 나는 데도 코빼기 하나 비추지 않았다. 헐레벌떡 달려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소리치다가 눈 뒤집힌 머슨에게 목이 뜯겨나가 죽을 줄 알았건만 운도 좋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백작의 방 답게 어디하나 비싸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썩 고풍스러운 느낌은 아니었으나, 치장하기를 좋아했던 고대 어느 나라의 궁전처럼 화려함의 극치였다.
언제 또 이 건물이 무너질지 몰라 마음 놓고 여유롭게 감상할 순 없었기에 대충 눈대중으로 방의 견적이 얼마나 될지 등의 쓸데없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애써 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 돈 냄새 풀풀 풍기는 방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되게 열어보고 싶게 생겼네.”
금고다. 갖은 귀중품 들을 아무대나 턱턱 올려 놓았으면서, 얼마나 더 귀한 것이 있으면 금고까지 만들어 보관해 두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열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굳게 닫혀있는 금고의 문을 한번 흔들어 보았다. 쿵- 쿵- 역시나 잠금장치에 걸려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백작 부인이 금고를 열었다고 했었지.”
체닌이 한 말을 기억해 냈다. 거기에 흑마법에 관한 문서들이 나왔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될 이 건물에 썩혀 두기는 아까운 증거였다.
“백작 부인이 문을 열었다면, 열쇠를 백작이 지니고 다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금고를 등지고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서랍 하나 열어볼 필요도 없이 에반은 단숨에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럴거면 아예 여기 있다고 써 붙이지 그래”
유독 손 떼가 많이 타고, 책장 사이에 툭 튀어나온 하나의 책.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열쇠 모양으로 페이지가 파여져 그 안에 금고의 열쇠가 숨겨져 있었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달칵-’
생각 보다 많은 서류 양에 에반은 내심 놀랐다. 숨겨야 할 것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한 편으로는 백작이 이 많은 글을 읽는 다는 것에도 의외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류들을 전부 꺼낸 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내용은 백작이 흑마법에 관한 모든 자료를 기술해 놓은 것들이었다. 체닌이 이야기 했던 것과 전부 일치 해 그녀의 말을 뒷 받침 해주기에도 충분했다.
“소설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눈 앞의 자료들 보다 더 소설이라고 믿고 싶은 인물이 나타났다.
“히이익!”
“없앤다. 가자.”
순식간에 목덜미가 붙잡혀 다리가 공중에 대롱대롱 떴다. 이 와중에도 서류 한 장이라도 놓칠까 품 안에 가득 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머슨은 에반과 함께 텔레포트를 한 후 아비츠 백작의 본관 마저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이 아냐.”
에반은 무얼 알고 얘기한 게 아니었다. 단순히 머슨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 한 것 뿐. 그러나 들려오는 머슨의 대답에 의미 없이 내뱉었던 자신의 말을 다시금 되 내여야 했다.
“내가 인간은 아니지.”
“...!”
“이 일대를 다 뒤지다 보면, 에리나에게 닿을 수 있을거다.”
“아, 아니 잠깐 내가 지금 잘 못 들은… 뭐, 뭐라고?”
어버버, 당황하여 묻는 에반의 말에 성실하게 대답해 줄 정도로 머슨은 심성이 곱지는 않았다. 이제껏 잘 지냈던 건 다 에리나의 시야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지 결코 그가 진심으로 에반을 호의적으로 생각한다거나 해서 나온 행동들은 아니었다.
백작가를 순식간에 공터로 만들어 버린 머슨은 가볍게 손을 털고 걸어 나갔다.
에반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인간이든 악마든 에리나를 찾기 위해서라면 나라 하나쯤은 눈감고도 없애버릴 위인이 바로 머슨이라는 것을. 자신의 고향,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에반은 서둘러 그를 불러 세웠다. 감정으로 호소하는 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게 분명하니 그 방법은 옛날에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다.
“에리나 찾아야지!”
“그래서 지금 가잖아”
“헛물만 켜다가 시간이 지체돼서 위험해지면 어떡해”
“...”
두려울게 없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그딴 팔자 좋은 소리 할 거면, 죽든가 꺼지든가 알아서 선택 해.”
“팔자 좋은 소리가 아니야. 좀 더 현명하게 움직이자는 거지.”
다 커서 바지에 실수 할 뻔 했다. 에반은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고 사나운 짐승을 자극 시키지 않으려 아주 조심히 말을 이어나갔다.
“방법은 있나?”
“폐하께 가자.”
아비츠 백작이 저택을 비워두고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병들도 함께. 백작이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흑마법사들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체닌의 말이 자꾸만 걸렸다. 그리고 그 때가 머지 않았다는 것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비츠백작의 방에서 얻은 문서들을 황제에게 전달하고 반란에 대비하라 반드시 말을 해야했다. 오로지 에리나만 생각하는 머슨이라면 나라가 망한다 하더라도 별 신경을 쓸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에반은 달랐다. 겨우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있는 나라의 평화, 마을의 평화, 자신의 평화를 깨트리고 싶진 않았다.
“어째서”
“너는 강해 머슨. 하지만 몸은 하나야. 아비츠 백작가를 뒤지는 것만 해도 시간이 얼마나 소모된 줄 알아? 폐하께 지원을 부탁드리자. 그럼 동시다발 적으로 에리나를 찾을 수 있을테니까.”
긴장하며 머슨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표정이 내내 험악한 지라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정도의 의미로 보였다. 그런 그가 성큼 에반에게 다가갔다.
“으어어!”
거세게 팔목이 잡혀 머슨의 품 안으로 가까이 말려 들어갔다.
“가자. 크리헬 한테.”
에반은 심장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린 것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당겨진 몸에 풍기는 체향과 아슬아슬하면서도 고혹적인 목소리에 심장이 터질뻔 했다. 에반은 그 순간 자신의 성저체성을 다시금 의심해봐야 했다.
“...에리나 여러가지로 대단해.”
========== 작품 후기 ==========
*감옥에 갇혀있어야 할 것은 에리나가 아니라 작가입니다ㅠㅠ 죄송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미세먼지도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