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11화 (111/170)

111편

<-- 15. 죽기 전에 감옥 한 번은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요? -->

*

배낭 끈을 단단히 조였다. 빠진 것이 있나 둘러 볼 필요도 없이 짐 양이 많지 않았기에 떠나기로 한 당일 아침, 늦은 감이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별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었다. 게다가 옷 몇 벌은 수선할 수 도 없이 갈기갈기 찢겨 제 수명을 다해 오기 전 보다 가져가야 할 짐이 줄어있었다.

핸드폰 충전기, 보조배터리, 교통카드, 신분증, 이어폰 등등 외출 시 영혼의 동반자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짐 챙기는게 수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 몇 년간 전자기기는 구경도 못 했는데, 대한민국으로 돌아갔을 때 구닥다리 취급 받는 거 아닌가 몰라.

“갈까?

내 배낭까지 전부 챙겨 든 머슨이 물어왔다.

“응”

간다고 해 봤자 마차타고, 말 타고, 산과 강을 건너 발바닥에 땀띠 나도록 걷는 것이 아니라 마왕 버프를 받아 눈 깜작할 사이에 세자인으로 이동하는 아주 짧은 여정이었다. 마을 어르신 들이 잘 지내고 계시는지 걱정이다. 흑마법사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닐지...

불안한 마음과 그리움 그리고 아쉬움을 담아 방 문을 닫고 나왔다. 원래는 에반의 방이었으나 체닌의 방으로 둔갑한 옆방으로 갔다.

“준비 다 했어?”

들려오는 건 체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니라, 주인 없는 방의 고요였다. 물건이 그대로 놓여있는 것을 보아 아직 짐도 챙기지 않은 모양이다. 아, 실수 했어. 우리 먼저 챙길 게 아니라 체닌을 깨우러 가는게 먼저 였는데. 제길.

쯧, 혀를 차고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익숙한 뒤통수가 그릇에 코를 박고 전투적으로 아침을 해결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체닌은?”

“크합! 컥, 컥. 인기척 좀 내고 오면 안 돼?”

“먹느라 주위는 신경도 안 쓴게 누군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 에반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사람 죽겠네 죽어. 겨우 진정이 된 에반이 소매로 입을 닦아내며 먹던 접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먹으라는 거야, 치우라는 거야?”

“전자”

이미 실컷 먹어 치운 스프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자작하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빵 건더기 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이제 떠날 사람들이라고 너무 막나가는거 아니냐?

너나 실컷 먹으라는 뜻으로 손바닥으로 접시를 밀어 에반의 몸 가까이에 바짝 갖다 주었다.

“넌 언제 갈 건데?”

“이거 먹고 바로. 주방장님 끝내주는 음식 먹을수 있을 때 잔뜩 먹어줘야지.”

“어련하시겠어.”

“매일 해가 중천이 돼서야 일어더니, 떠나는 날 되니까 갑자기 부지런해 졌네. 서운하게 시리.”

에반이 말 끝을 흐리며 웅얼거렸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쌓인 정 때문인지 맑은 날의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스푼으로 접시 밑바닥을 의미없이 툭툭 긁어내는 에반을 보며 잔웃음이 흘러나왔다.

“집에 가서 혼자 이불 붙잡고 우는 거 아닌가 몰라.”

“닭살 돋는 애정행각 안 봐도 돼서 좋네 라고 생각할건데”

“심술부리기는”

“머슨, 에리나가 바가지 긁으면 나한테 와. 평생이고 재워줄 수 있으니까.”

“싫다.”

그러고선 내 옆에 찹쌀떡처럼 달라붙어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고 머리를 맞붙인다. 에반의 표정이 형연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천년만년 행복하세요.”

덕담이었으나 듣기에 썩 좋은 말 같진 않았다. 이번엔 목도 막힌 게 아니면서 냉수를 실컷 마신 에반이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우리집 주소. 편지해라.”

“편지 보다는 불쑥 찾아가는 걸 좋아해서 말이지.”

“좋을 대로.”

꼭 놀러 와라. 라는 말이 얼핏 들린 것 같다. 머슨이 들고 있는 배낭에 종이를 잘 챙겨 넣고 미련처럼 남겨진 아쉬운 마음을 갈무리했다. 이제는 정말 떠나기 위해 체닌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식당에도 없으면 도대체 어디를 갔다는 거야. 에반에게 체닌에 대해 다시 묻자 고민도 없이 여관 출입문을 가리켰다.

“나갔어.”

“...어딜?”

“신발 사러 간다던데. 진흙 밭에 굴러도 되는 버릴 신발.”

“...”

진흙 안 밟고 텔레포트로 갈 건데요. 전 백작부인 님아. 어휴. 떠나기도 전에 괜한 수고를 하게 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나간 지 얼마나 됐는데.”

“1시간 좀 못됐어. 멀리는 안 갔을 거야. 이 근처만 둘러보고 온다고 했으니까.”

“찾으러 가야겠지?”

“근처만 둘러본다는 말이 꼭 빨리 돌아온다는 소린 아니지.”

나보다 먼저 머슨이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외출 하는 주인을 보고 긴장한 강아지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머슨의 모양새가 딱 그러했다. 워, 워- 그대로 옷을 잡아 당겨 머슨의 발이 나아가지 못하고 헛발 짓을 하게 만들었다.

“여기 있어. 내가 금방 다녀 올 테니까.”

여러 사람에게 들켜서 좋을 게 없는 와중에, 머슨의 과하게 잘 생긴 외모로 이목을 집중 시킬 필요는 없었다. 이제 이 곳 지리도 익숙해 졌겠다. 나 혼자 조용히 찾아 오는게 낫지.

자신의 문제(?)를 눈치 챈 머슨이 반죽하듯 얼굴을 마구 만지더니 어떻게 해도 못나지지 않자 에반을 보며 부러움의 눈빛을 강렬하게 쏘아댔다.

“뭐냐, 나 좋아해야 되는 건가”

절대 스푼을 놓지 않던 에반이 슬며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인물 못났다는 소리는 안 들었는데.”

에반의 말은 과시가 아니라 사실이다. 훈훈하게 생긴 외모 탓에 게르니아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당해 버렸으니까. 그러나 인간 수준을 벗어난 외모의 소유자 마왕 앞에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에반, 니가 이해해.

어쨌든 그러한 연유로 체닌을 찾으러 가는 건 나 혼자로 족하니 머슨은 얌전히 여관 안에서 기다려주시면 되겠다. 의자를 빼 그 위에 억지로 앉히자 머슨이, 눈 깜빡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난다. 손을 쭉 뻗어 머슨의 어깨를 짚고 힘껏 눌렀다. 강제로 착석하게 된 머슨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간에 힘을 주었다. 굉장히 불만스러운 것이다. 마도구의 효과로 변해 버린 머슨의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도 이제 마법을 쓸 줄 아니까. 걱정 하지 마. 너무 구속하면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

내 말에도 여전히 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착하다. 착하다. 코를 찡긋 해보이고 사뿐히 밖을 향해 뛰어갔다.

“금방 올 게!”

그러나 나는 알았어야 했다. 차원 이동을 해도 지문 한방에 끔살 당하는 역으로 이동된 불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새벽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시작한 거리는 찬 기운이 겨우 가실 즈음에서는 이미 손님을 맞을 준비를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 보다 파는 이가 더 많은 시장에서 체닌 찾기는 수월해 보였다. 게다가 튀는 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갔을 것이 뻔하니, 제 아무리 시력이 좋지 못하다고 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신발 파는 노점상이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다. 거리는 한산했다. 그렇다고 아예 사람들이 없어 썰렁하다는 말은 아니다. 몸과 몸 사이에 끼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거나, 한 발자국 걸어 나가는 것 마저 버거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어깨를 부딪칠 걱정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가는데, 사람이 새끼 손톱 만큼 작게 보이더라도 알아 볼 수 있어야 할 체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근처에 주홍색 머리의 영애 한 분 지나가지 않으시던가요?”

귀부인이라고 하기 엔 지나치게 젊은 체닌은 영애라 칭하는게 어울렸다. 머리가 하얗게 샌 신발장수는 “아아 봤지!” 하며 내가 걸어온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얼마나 깐깐하던지, 신발이란 신발은 다 꺼내 보더니, 겨우겨우 하나 사들곤 다시 돌아 갔어”

“다시 돌아 갔다구요? 제가 온 방향 맞죠?”

“응. 샛노란 드레스를 입었던 것 까지 기억해.”

다시 돌아갔다면 여관쪽으로 갔다는 소린데, 체닌은 돌아오지 않았었다. 어디 다른 길로 새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 보다 불안한 예감이 더 크게 찾아왔다.

“간지 얼마나 됐어요?”

“한 20분 됐나. 얼마 안 됐어.”

20분이면 여관에 들어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발이 빨라졌다. 자각도 없이 있는 힘껏 여관 쪽을 향해 뛰어가다가 결국 눈 아래에 있는 꼬마를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혀 엉덩방아를 찌어버렸다.

“꺄앗!”

내 아픔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아이의 놀란 비명이었다.

“괜찮니?!”

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는 코를 훌쩍 거리며 나를 원망의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미안해. 어디 안 다쳤어?”

“...괜찮아요.”

길 바닥에 아이를 계속 앉혀 둘 수는 없어서 일으켜 주려 손을 내밀었다. 소심한 성격 탓인지 쭈뼛쭈뼛 하던 아이가 내 손을 맞잡았다.

“어?”

아이의 손에는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레이스 장갑이 엉성하게 끼워져 있었다. 내가 아는 기색을 해 보이자 빼앗아 갈까 싶어 황급히 손을 뒤로 돌린다.

“그거 어디서 났어?”

익숙한 레이스 장갑. 체닌이 늘 끼고 다니던 그것이었다. 아이가 불쌍하여 나누어줄 위인은 절대 아니니 어딘 가에서 주웠거나, 아니면 훔쳤다는 소리인데...

“내, 내꺼 예요!”

“빼앗으려는 게 아니야. 그냥 어디서 얻었는지만 말해 줄래?”

“...”

“혼내지 않아. 언니가 이 장갑 주인을 찾고 있어서 그래. 집나간 동생이거든.”

“동생이요?”

“응. 너 동생있니? 징하게 말 안듣는.”

남의 장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겁을 잔뜩 먹던 아이는 동생 얘기에 귀가 쫑긋 움직 이더니 이내 격한 공감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애야. 찾으면 엉덩이를 때려주려고.”

========== 작품 후기 ==========

*에반 : (특별 과외) 못 생겨진다는 건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머슨 : (경청)

에반 : 피부만 망가져도 외모가 절반은 죽는다고 볼 수 있어. 절대 씻지마. 막 똥밭에 구르기도 하고, 기름진 것만 먹고, 물 대신 탄산, 잠도 새벽 늦게자는거야.

머슨 : (메모) 알았어. 그렇게 하면 에리나가 뽀뽀해 줄까?

에반 : ... 내가 여자라면 가까이도 안 갈것 같긴 하지만...

머슨 : (가차없이 메모를 찢는다.)

*독자님 : 아 진짜 성녀는 끝까지 거머리 같네요. 떨어져라!!!!!

작가 : 거머리 라서 그렇게 피를 모으나 봅니다. (절레) 다음 생에 거머리로 태어나길

*독자님 : 작가님 밀당 쩔어여! 몰아서 보는걸 불가능하게 만드십니다ㅠㅠ!!

작가 : 독자님과 밀당을 하는 나! 소.설.밀.당.녀. 내이름이 뭐라구?!

독자님 : (놀라울 정도의 침묵)

작가 : 감사합니다.

*독자님 : 새벽이라 이상한 궁금증이 생겼어요...(부끄) 진짜 쓸데없는 질문이긴 한데요 모두가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지만 푸훟 한번 질문해봅니다. 에리나하고 성녀중에 몸매가 누가 더 좋을가요 예를 들어 가슴 컵 사이즈라던지...

작가 : (에리나 눈감아) 성녀가 압도적으로 좋습니다. 에리나는 잠시 저쪽에 울러 갔군요. 가슴사이즈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성녀D, 에리나 B70 정도 되겠군요

*독자님 : 반려자의 소멸이 영혼까지 소멸? 아님 그냥 죽음인가요 / 성녀는 고라니로 태어나라! (줄임말 입니다)

작가 : 영혼까지 바사삭 소멸되는 겁니다. / 고라니...? 고기맛 라면 니꺼 (?)

독자님 : 오늘도 폰결제 긁고 있어요 그런데 다음편이 없네요?ㅋㅋㅋ

작가 : 으앙 죄송합니다. (황급히 다음 편을 들고온다)

독자님 : 늦었다. 매우 쳐라

*독자님 : 성녀 바르기까지 몇편 남았는지 예고좀 해주세욧~

작가 : 1차 발림 다음챕터, 2차 발림 다다음챕터가 되겠네요!

*독자님 :쿠폰 받으시고 노트북고 물아일체되어 집필을 바라오며

작가 : ㅋㅋㅋ 물아일쳌ㅋㅋ 감사합니다. 다시 서울로 넘어와 결국 산 노트북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건 안비밀(ㅋ)

*선작,추천,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사월화님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