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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102화 (102/170)

102편

<-- 14. 그녀가 집을 나가나요? -->

사람이 넷으로 늘어나 에반의 방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좁디좁은 방이 가득 찼다. 긴 말 할 것 없이. 당장에 이혼 의사가 담긴 편지를 적게 만들었다. 이제 이것을 머슨이 몰래 두고 오기만 하면 되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쟨 왜 여기에 있어?”

대충 글씨를 휘갈겨 쓰던 체닌이 문득 고개를 들어 에반을 바라보았다. 에반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 하고 되물었다.

“그래, 너.”

게르니아가 깨어나면 당장에 아비츠 백작가 침입사건의 용의자로 지목 될 에반은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함께 이 여관에 숨어있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엄연한 피해자인데, 애꿎은 가해자가 될 까봐 몸 사리는 중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억울했는지, 자조적으로 허허 웃는다.

“그렇다면 부인께선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셨나요?”

이건 나도 궁금하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죽는 한이 있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체닌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마지막 7일째 되던 날 이 문을 두드렸는지 말이다. 까다로운 귀부인처럼 콧대를 잔뜩 높이고 있던 체닌의 낯빛에 순간 어둠이 스쳐지나갔다.

“봐 버렸어.”

심란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 너무도 티가 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내뱉었지만 지금 체닌이 겪고 있을 떨림이 선연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뭘?”

펜을 쥐고 있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것을 내려놓고 테이블 아래로 손을 감추었다.

“죽을 거란 걸.”

“죽다니, 누가?”

체닌이 나를 응시했다.

“나, 세자인의 모두, 그리고 황제폐하.”

해결 되지 않은 문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 말은 또 다른 폭풍을 몰고 왔다.

단어만으로도 강한 충격을 받았으나 어설프게 키워드만 주워들은 우리는 체닌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길 원했다. 그녀는 백작가의 연회가 끝난 이후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차례차례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비츠 백작은 세상의 모든 욕(慾)을 지닌 사내다. 물욕, 성욕, 명예욕, 식욕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건 다 쥐고 싶고, 좋아 보이는 건 비열한 수를 써서라도 전부 쟁취하고 싶은 마음이 병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듯 야망으로 똘똘 뭉쳐있는 그가 반란군의 낌새를 사전에 눈치 채고 황제를 도와 그것을 막았다는 사실에 체닌은 퍽 놀랐다고 했다. 절대 남을 위해, 특히 나라나 황제를 위해 몸 받쳐 일할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 오히려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는 게 더 납득이 갈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당시에는 아비츠가 성심에 맞지 않는 무슨일을 하건 크게 관심이 없었던 체닌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백작가가 망하지만 않으면 자신이 백작 부인으로서의 호칭을 지닐 수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연회 후 모든게 달라졌어. 니가 백작이 날 죽인다는 쓸데 없는 말을 해서.”

“꼭 했어야 할 말이야.”

“굳이 니 입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알았을거야.”

“그건 모르지. 본론으로 돌아가 줄래?”

한 마디 더 할 것처럼 나를 쏘아보다가, 더 이상 입씨름을 길게 이어나가고 싶지는 않았던지 체닌은 순순히 아까의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니가 준 쪽지를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우연히 아비츠 백작의 금고를 열게 됐는데 베넌 대학살 때 사망한 이들의 시체를 처리한 게 게르니아 시종장이었다는 문서가 나왔어.”

베넌 대학살. 머슨과 처음 만났던 그 시점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고 팔 다리에 닭살이 돋는다. 피를 토해가며 죽어가는 사람들. 내 눈 앞에서 처절한 몰골로 쓰러졌던 그 이름도 모를 아저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장본인이 내 옆에 앉아 있다.

머슨과 마왕 케일을 분리 시켜 생각했기에 3년 동안 그가 두려운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좀 머슨이 어렵게 느껴졌다. 부정할 수 없이 둘은 하나, 동일인물 인 것을 나름 인정하려 노력하자마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 강제로 끌어내진다.

“에리나”

내 몸의 변화를 느낀 건지. 머슨이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난 두 말할 것도 없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그의 입을 막았다.

메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다시 체닌에게 집중했다.

“게르니아가 베넌에 관여했다고?”

“응. 아비츠 백작의 사유지도 아닌 곳인데 말이지. 그런데 이상한건 그것뿐 만이 아니었어.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 나간 마을의 자료들이 치밀하게 정리되어 쌓여 있었지. 그리고 세자인도 마찬가지고.”

“세자인은 그런 마을들과는 공통점이 없잖아.”

“세자인에 마법사 양성소를 세우려해. 영지의 반을 미리 차지한 것도 하루 빨리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 였고. 이미 조건은 다 갖춰졌을지도 모르지.”

“아카데미 말입니까?”

이번 질문은 에반이었다. 체닌은 헛웃음치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인재양성. 아비츠 백작과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해? 뿐만 아니라 마도구를 끊임 없이 사들인 결제내역도 금고안에 들어 있었어.”

“흑마법이군.”

머슨이 답하자마자 에반의 눈은 거의 튀어나올 듯 크게 확장되었다.

“마도구는 죽어나간 사람들의 피를 담아내기 위함이었고, 선천적으로 마법에 재능이 없는 아비츠 백작가의 사병들에게 그것을 나눠주워 흑마법을 사용하게끔 만드는 거지. 나도 흑마법에 관한건 이번에 알았어.”

“이, 이번에 알았다뇨? 알려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증거를…”

“게르니아.”

뜻밖의 이름이나왔다. 그리고 체닌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앞서 말했던 것에 비해 힘겨운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는것 처럼.

“어제, 백작이 날 불렀어. 나로썬 이례적인 일이었지 그 탐욕덩어리가 먼저 날 찾는 다는 건 말이야. 기름기가 흐르는 백작의 얼굴만 보면 구역질이 나오고, 소름이 끼치는데 왜 아껴두었던 향수를 뿌리고, 거울을 한 번 더 본 후 그에게 갔는지 몰라. 난 바로 후회했지.”

밤에 활개를 치는 짐승들도 서서히 눈이 감길 즈음인 아주 늦은 새벽이었다. 시녀 하나가 따귀를 맞을 각오로 체닌의 방에 들러 그녀를 깨우러 갔다. 연회가 끝난 직후 내내 밤잠에 들지 못하던 체닌은 다행이 깨어 있었고, 비교적 잠에 취하지는 않은 올바른 정신으로 백작의 방에 찾아갔다.

‘백작님?’

체닌이 왔는데도 백작은 짙푸른 새벽하늘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정말 싫었지만, 체닌은 그의 허리를 한 번 안아줄 심산으로 백작에게 다가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다행이 체닌이 백작에게 더 가까워지기 전에 백작이 말을 걸어왔다.

‘...또 세자인의 일인가요?’

‘아니야.’

여기서 안심했다. 더 이상 세자인에 관해선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것 보다 간단한 일이야.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

‘훌륭히 해낸다면 너 만을 위한 사교의 장을 만들어주지. 내 사랑하는 백작 부인만을 위한 연회 말이야.’

백작이 체닌의 옆으로 다가가 두터운 손으로 그녀의 가슴 위를 훑었다. 체닌은 백작의 손을 끌어 내려 자신의 가슴을 쥐게 한 뒤 느긋하게 얘기했다.

‘뭔데요?’

아무리 싫고, 치가 떨리는 백작이라도 체닌, 그녀가 바라는 것을 콕 집어 이야기 하니 귀가 여릴지 않을 수 없다.

백작이 힘주어 체닌의 가슴을 터뜨릴 듯 강하게 부여잡았다.

‘악!’

‘지금 바로 게르니아가 있는 방으로 가 있는 힘껏 목을 졸라. 이렇게 말이야. 의식이 없으니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를 거야.’

아비츠 백작은 체닌을 놓아 준 뒤 이제는 전에 없던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등을 어루 만졌다. 그리고 문 밖으로 손을 내밀며 에스코트 까지 해준다.

‘백작부인, 믿고 기다리겠소.’

========== 작품 후기 ==========

*15분 뒤에 다음 화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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