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책은 18세 미만 구독불가 였습니다-99화 (99/170)

99편

<-- 14. 그녀가 집을 나가나요? -->

“어째서요?”

황제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미 느껴 버린 감정을 착각했다 물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왜 그렇게 느꼈냐고 물었을 때에도 명쾌한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눈치였다. 흐음- 낮고 길게 숨을 뱉어낸 황제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조금은 어색한 움직임으로 입술을 떼었다.

“내가 마음을 준 여인이 마왕님을 사랑하거든.”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뒤늦게 내 반응이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어떤 분이 길래 마왕님을 짝사랑하세요?!’ 라는 대사를 도레미파솔라 시 정도의 높이로 얘기했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다행이도 황제는 내 반응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본인이 너무 혼란스러워 하여 내 반응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건가.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왕님께서 널 원하시니 화가 나는 것 같다.”

“조금 나쁜 마음을 먹자면, 오히려 잘 된 거 아닌가요?”

“아니. 난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

“마음이 넓으시네요. 전 제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한테 가버리면 밤새 이불 붙잡고 엉엉 울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 그런 성향의 사랑도 있지.”

황제가 웃으며 얘기했다. 난 마주 웃지 않고 어쩌면 조금 무덤덤한 표정으로 황제의 말을 맞받아쳤다.

“폐하께선 어떤 성향의 사랑인데요?”

“행복을 빌어주고, 봄날의 유채꽃처럼 화사한 미소만 짓게 해주고 싶은 사랑”

“그냥 하는 말인데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니까 귀담아 듣지 마세요. 아시겠죠? 제 생각에 그건 사랑이 라기 보다는 응원 같은데, 조력자 느낌의…”

후회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또 입방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 까지 한 그의 잘못된 감정을 드러내주고 싶었다. 지금 조금이라도 자각 하지 못한다면 평생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성녀에게 붙잡혀 살 것만 같았다.

“너와 다르면 무조건 부정하는 건가?”

말 자체는 세게 들렸지만 어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린 아이가 잘못된 상식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진심으로 꾸짖지 않는 것처럼 황제도 그러한 투로 나에게 물어왔다.

“폐하께서 그 분을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는 언젠데요?”

또 다시 황제의 말이 막힌다.

“저는 첫 눈에 반했든, 관심 없던 사람이 마음 속에 훅 들어오든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은 잘 잊지 못하거든요.”

엉덩이를 움직여 황제에게 좀 더 붙어 앉았다. 할 말 없지? 숨소리만 오가던 와중에 황제가 움직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서로의 골반이 스칠 듯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는 다가오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히 가까워진 얼굴에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엉덩이를 뒤로 뺄까 싶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길까 황제의 말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당신은 날 사랑하고 있다고.”

“그 여자분이 그렇게 얘기했다구요?”

“그래.”

“본인 입으로?”

황제가 가볍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그리고 넌 그걸 믿고, 지금 까지 성녀를 좋아하는 줄 착각했다는 말이야? 어이없음에 입이 벌어진다.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다 큰 성인이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굳게 믿는 것 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그게 사랑의 순간?”

“따지고 보면 그렇다.”

따지고 볶고 할 것도 없이 아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눈을 내리깔고 호흡을 뱉었다. 황제가 슬쩍 나를 불렀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곤 머슨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 애절하고, 가냘픈 눈망울을 만들어 황제를 올려다 보았다. 오, 표정이 아주 썩어가는데. 기겁하는 황제를 억지로 붙잡고 날 바라보게 만들었다.

“폐하”

“뭐, 뭐냐?”

“잠시 저 좀 보세요.”

“보기 싫어도, 억지로 보게 만들고 있잖아.”

눈썹에 힘을 주어 팔 자를 만들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 결국 눈을 한번 질끈 감고 힘주고 있었던 것을 풀어버렸다. 그러나 장난기는 빼고 사뭇 진지한 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통통 튀었던 공기가 온 몸에 달라붙어 팽팽해지고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그러졌던 황제의 얼굴도 서서히 이완되어 갔다.

“속고계세요.”

“...”

“폐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는건 저잖아요.”

“...”

선선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와 장난을 치더니 이내 황제의 뺨에 몇 올 스치며 다시금 내려앉았다. 달 빛 아래로 비추는 황제의 하얀 얼굴 위에 고집 센 한 가닥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손을 올려 그의 입술 옆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정적. 그리고 정적.

그의 동공에 내가 담겨있다. 내가 보고 있듯 황제 또한 내 눈동자 안의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저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가? 난 손을 들어 황제 눈 앞에서 휘휘 저어보였다. 마치 인형처럼 굳어버린 듯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난 표정을 탁- 풀고 황제의 어깨를 양 손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최면이라도 걸렸어요?”

“...아니다.”

“방금 완전 어이없었죠? 그죠?”

“...”

“폐하 한테 그 말을 들은 제가 딱 그 기분이었어요. 아니 누가 ‘당신 나 사랑하잖아’. ‘맞아! 난 널 사랑했어’ 라고 자기 마음을 단정 짓겠어요.”

“...”

황제는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린 사람처럼 내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본인이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되돌아보고 있는 중인가요?”

“...한심하군.”

“맞죠?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해요.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난 다시 황제와의 거리를 두어 떨어져 앉았다. 황제가 움찔 하더니 한참이나 먼 곳에 옮겨 앉는다. 거참. 아무리 장난이여도 그렇지 반응이 너무 즉각적이잖아?

“나한테 냄새나요?”

내가 거리를 좁히려 하자 이제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다. 와, 지금 건 좀 상처.

“어디 까지 가요?!”

우리가 앉아있던 호수 반대편 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린다. 저 멀리서 황제가 소리친다.

“순전히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마왕님의 반려라는 말 진짜냐?”

“마왕님이 직접 얘기했으니 진짜겠죠.”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대충 털어 낸 뒤 입가에 손을 모아 황제에게 소리쳤다.

“알면 다쳐요!”

========== 작품 후기 ==========

*그렇습니다. 황제는 쉽사빠였습니다.

*독자님 : 아직도 똥의 트라우마가...

에리나 : (절레절레) (독자님에게 트라우마만 남겨드렸던 문제의 똥 편)

작가 : 니 잘못이야 (떠넘기기)

*독자님 : 독자한테 차였다고 우는 황제 ㅋㅋㅋ 나한테 시집올래?

황제 : 생각해보겠다. (감추지 못하는 입꼬리)

작가 : 씰룩거리지나 말던가

*독자님 : 똥이라니... 수치사 할 것 같아요 긴박한 전개라 스릴있게봤어요!

작가 : 긴박한 전개가 똥... 긴박한 전개 하니까 쓸데없는 사담이 하나 떠오르는데요, 지금 생각해봐도 소름 (작가혼자만)

작가가 고등학교때, 선후배 기강이쎄서(예체능) 1학년때 엄청 고생을 했었어요. 한 날은 너무 억울하게 혼난적이 있어서 여자친구들 끼리 모여 다같이 화장실에서 선배들 좀 심한거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화장실에서 변기내리는 소리가 솨아아아- 서로 눈빛만 주고 받고 부리나케 도망쳐 나온 기억이 있답니다.

독자님 : 응 안물

*독자님 : 머슨 혼자만 로맨스판타지, 에리나는 시트콤

작가 : (둘 중 하나는 로판이니 오, 오십퍼는 성공해따!)

독자님 : ㅡㅡ

*독자님 : 머슨은 에리나 상처 안받도록 장단맞춰 준 것 뿐인데, 에리나는 왜 그걸 모를까요?

작가 : 아직 머슨의 심정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8ㅅ8

에리나 : 헐 머지 해가 서쪽에서 뜨나봄 작가가 쉴드를 쳐주다니

*독자님 : 체닌은 버려진건가여? 왜안나와영 ㅠㅠㅠ

작가 : 곧 나와용ㅎㅎ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넙죽)

*작가 : 갸아 ㅠㅠ 시간이 많이 없어 독자님 답코멘을 조금 밖에 달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여 ㅠㅠㅠ!!!! (주옥같은 코멘트들이 넘 많아서 울분을토하다)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후원쿠폰 주신 e.Never님 감사합니다.

*확인못하고 올려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0